다휘는 연호의 집무실을 두드렸다.
그녀가 들고 있는 원목으로 만든 작은 쟁반에는 달콤한 냄새가 잔뜩 풍겨 나오는 하얀 머그잔이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연호는 빛이 잔뜩 들어오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책상은 하얀 서류들로 가득했다.
“연호 오빠··?”
다휘는 그의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다휘의 기척에 부스럭거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어, 어··· 다휘··?”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상체를 들었다.
그의 눈은 아직 잠에 빠진 채였다.
“아침도 안 드시고, 점심도 안 드실 생각이시죠?”
“으응·· 아마도.”
“꿀물 타 왔어요. 드시고 일 하세요.”
다휘는 그가 보고 있는 서류를 옆으로 치우고, 나무 쟁반을 내려놓았다.
따뜻한 온기가 뿜어져 나오자, 연호의 얼굴이 환해지며 그는 두 손으로 머그잔을 들었다.
“고마워··! 네가 직접 탄 거야?”
“음, 네. 일단은. 그러니까 맛없어도 뭐라 하지 마세요··.”
연호의 물음에 다휘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연호는 한참을 허덕이고 있던 술의 바다에서 다휘가 끌어올려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잔을 기울였고, 다휘는 연호의 책상 위 수많은 서류들을 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 거예요? 다 오늘 안에?” 그녀가 물었다.
연호는 다휘의 물음에 익숙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별 일 아니라며 말했다.
“조직의 모든 돌아가는 일은 내가 알아야 하니까···.” 연호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 삼킨 꿀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몸 전체를 달구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다휘는 그런 말을 쉽사리 하는 연호가 안쓰럽기도,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연호 책상의 뒤쪽에 위치한 창문의 창틀에 몸을 기댔다.
“그런 사람이 어제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 거예요?”
다휘의 날카로운 질문에 연호가 한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는 모든 원인 제공을 은호에게 돌리며, 연호가 의자를 돌려 그녀와 마주했다.
다휘는 서 있었고 연호는 의자에 앉아 있어서 높이가 맞지 않아, 연호가 그녀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이런 구도는 어색했지만, 연호는 그녀를 향해 환히 웃고 있었다.
“은호 때문이야.”
“은호가 뭘 했는데요?”
“··· 음, 그게··.”
다휘는 아침 식사 시간에 은호에게서 흘려들은 말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연호의 얼굴이 굉장히 초췌해 보이고 힘겨워 보였지만, 진실은 꼭 듣고 싶었다. 그를 괴롭혀서라도 들을 참이었다.
“음··· 일종의 진실게임 같은 거였지.”
“무슨··?”
“아무리 다휘라도, 더 이상은 못 알려 주겠는데?”
연호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햇빛을 받아 굉장히 뽀얗게 보이는 피부와 다정한 인상에 다휘는 어쩐지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리는 것 같았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결국 그녀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그에게 들릴 것 같아, 몸을 돌리며 연호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다휘의 반응을 연호는 귀엽다고 생각하며, 다휘의 등 돌린 뒷모습을 보면서 입가를 가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오늘은 내가 다휘랑 노는 날이니까, 일은 나중에 하고 밖으로 나갈까?” 연호가 말했다.
그는 사실 서류도 꽤 급했지만, 지금은 이제야 마음을 연 여자의 케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휘는 연호의 말에 그의 책상 위에 수두룩하게 쌓여 있는 종이들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챈 연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앞에 서서 서류를 가려보였다.
“응? 이건 나중에 해도 돼. 출발하자.”
연호가 살갑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다휘는 사실 서류들 보다는 술을 먹은 연호의 상태가 더욱 걱정되었다.
그녀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속은 괜찮구요?”
“어··· 음··.”
연호는 그녀의 직구에 잠시 고민이 들었다.
과연 지금 운전을 할 수 있을까? 혹여 라도 차 안에서 토하게 되면···
“아, 아니! 저기, 그럼 운전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 테니까. 2시간 후에 주차장으로 와!”
연호는 다급히 그녀를 집무실에서 내보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숙취 해소제였다.
연호는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들리더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에요, 보스?]
전화의 상대는 은호였다.
“은호야! 어디야? 나 숙취 해소제 좀 줘!” 연호는 다급히 그녀에게 소리쳤다.
수화기 너머로 은호가 부스럭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 집무실에 계세요?]
“응!”
[곧 갈게요.]
“그래, 고마워!”
연호는 통화를 끊으며 2시간 후에는 자신이 멀쩡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혹시 모르는 경우에 운전을 부탁할 누군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 *
“약해 빠진 놈.”
“다휘 오니까 잔소리는 나중에 해줘. ··· 다휘야! 여기야!”
주차장의 검은 승용차 앞에 서있는 도담과 연호.
연호가 자신을 대신하여 운전을 부탁할 사람은 도담이었다.
도담은 어쩐지 심기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서로를 보고 신난 연호와 다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휘야. 오늘 운전은 담이 형이 해 주기로 했어. 그럼 타! 출발하자.” 연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온 다휘를 향해 말했다.
다휘는 연호의 말에 도담을 보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서 그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도담 씨.”
“··· 어.”
그는 다휘의 인사에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운전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
연호는 뒷좌석의 문을 열며 다휘에게 손짓했다.
다휘는 차에 올라탔고, 연호가 그녀의 옆에 앉으며 문을 닫았다.
도담은 두 사람이 탄 것을 확인하고서 차를 부드럽게 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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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희 어디로 가요?”
출발하고 10여분이 지나도 세 사람 사이에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자, 다휘가 끝내 연호를 향해 물었다.
연호는 아이패드 단말기로 서류를 살펴보다가 다휘의 질문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연호가 서류를 보고 있었다는 걸 눈치 챈 다휘는 ‘역시 일이 급하긴 한가보다’ 하고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걱정 하지 마. 다휘가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코스를 준비했어.” 연호가 말했다.
다휘는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잘난 외모 덕에 이따금씩 심장이 주체를 못하긴 하지만.
그녀는 창밖의 스치는 숲의 장면을 보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얕은 잠에 들었다.
.
.
“다휘야! 도착했어!”
“어·· 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창 밖에는 굉장한 도심이 펼쳐져 있었다.
도담은 주차할 장소를 찾고 있었고, 연호는 아이패드 단말기를 내려놓고서 그녀를 깨우고 있었다.
“다휘야, 여기 선글라스 써.”
“왜요?”
“음·· 뭔가 멋진 사람 같잖아? 물론 다휘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멋지지만.”
연호는 그녀에게 검은 선글라스를 건넸다. 얇은 금테와 동그란 알이 특징이었다.
“내려.”
주차를 한 도담이 뒷좌석의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자 연호가 서둘러 내리더니 다휘가 앉은 쪽의 문을 열었다.
“자, 내리시죠. 다휘 아가씨?”
“아·· 그, 그러지 마세요!”
다휘는 연호의 장난 끼 가득한 말에 급히 선글라스를 쓰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도담이 마지막으로 내리면서, 세 사람은 도심의 한 가운데에 서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