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더 이상 쉴 수 없었다. 욕조에 잠수했던 머리를 일으켜 거품의 커튼을 열고 나왔을 때 내 눈앞에는 중학교 시절 그 끔찍한 수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질끈 감고 있는 눈꺼풀을 뚫고 ‘수영장의 난(亂)’이라 각인되어 있는 그날의 사건이 선명하게 보였다.
수영 실습이 있던 체육시간에 물속에서 기합을 받은 이 사건 역시 오빠 때문이었다. 오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은 기본 전제였고 그 배려 없고 몰상식한 선생은 내 인생의 최악의 선생으로 기억한다. 월경(月經)중이라서 물에 안 들어가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하자 반응한 그 남자 체육선생의 말은 소름끼치도록 치욕스러웠다.
“지 오빠랑은 좀 다른가 싶었더니 똑같구만.
어디서 농땡이 치려고! 잔대가리 굴리지마!”
수치스러움과 모욕감을 억누르고 짐짓 눈을 부릅뜬 채 월경 기간이라고 한 번 더 말했다. 내 시선이 선생의 눈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황망해 하는 것을 눈치 챈 선생은 떨어진 내 시선을 바로 세우려고 둔탁한 손가락으로 내 턱을 올리며 고함쳤다.
“윤식이도 매번 거짓말 하고는 진짜라더라.
반장하고 화장실가서 증거물 가지고 오면 믿어준다!
실시! "
눈가를 중심으로 볼이 확 붉어졌다.반장까지 난처해했다. 반 아이들은 한 떼의 염소처럼 무리지어 웅성거렸다.
잠깐 낯설고 서럽게 반장과 반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곧 수영장물로 시선을 떨궜다. 사춘기였던 나, 그 선생의 구역질나는 제안에 응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 생각됐다. 그렇게 굳어있는 잠깐 동안 계속 이어지던 선생답지 못한 언행은 실로 그 선생을 격멸하기에 충분했다. 체육선생은 당구 큐대를 반으로 잘라서 만든 몽둥이를 늘 들고 다녔는데 그것으로 월경중인 내 배를 쿨쿨 찌르면서 오빠가 문제아라는 사실을 낱낱이 공포했다. 문제아 오빠로 인해 굽실거리던 엄마가 기좀 펴게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오빠와 같은 부류로 몰리는 것이 싫어서 모범생으로 지내온 처절한 몸부림을 한순간에 짓밟아 버리는 만행이었다.
수영장이었기에 쩌렁쩌렁 하게 울리던 그 선생이 나열한 오빠의 불량스런 행동들. 그 불량 행동도 소름 끼쳤지만 반 친구 전체 앞에서 날 망가뜨린 그 선생의 언행은 더 소름 끼쳤다.
눈 밑에서 축축한 습기가 올라왔다.그 선생은 내 죄 아닌 것으로 나에게 멍에를 지우는 구역질나는 악마 같았다.
그럼 난 천사? 아니었다. 난 결국 물속에서 이를 악물고 기합 받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그 선생과 오빠를 뼈 마디마디 토막 내어 살인하는 것으로 복수하고 말았다.
마음속에 무덤을 만들고 그 토막들을 묻으면서 저주의 욕설도 함께 묻었다. 만약 지옥이 있어서 내가 그곳에 떨어진다 해도 그 살인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불량한 일진동생이란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그날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일진동생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만 했기 때문에 후회하기는커녕 생각으로만 한고 말아버린 살인이 못내 아쉽기까지 할 정도였다.
오빠는 2년 후배인 나와 함께 가까스로 중학교 졸업을 했다. 오빠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난 인문계 고등학교로 다른 길을 갔는데도 불구하고 일진동생 꼬리표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여전이 날 따라다니며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