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보르의 시점〕
나는 밤 새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긴장 탓에 늦게 잠이 들었다. 매번 일어 날 때마다 게임 같은 현실에 아직도 꿈인 줄 착각한다. 눈에 보이는 건 낯선 회색 천장. 또 꿈인가.......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누워 있는 그 자리에서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아무 생각 없이 다시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
“맞다! 지금이 몇 시지?”
나는 이제 서야 장소가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런! 시계도 없었지! 헐레벌떡 몸을 일으켜 의자에 걸어둔 재킷을 서둘러 걸치고는 복도를 가로 질러 뛰어갔다. 이제야 뇌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불편하게도 시계는 AP 모니터에만 표시되어 번거로웠다. 내가 달려간 곳은 맨 처음 모두가 모인 장소. 사전에 거기서 만날 거라는 약속은 없었지만 다른 이들도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남자의 근거 없는 믿음이랄까? 계단을 두세 칸씩 건너 뛰어 가며 아슬아슬하게 AP라고 표시된 문 앞으로 멈췄다. 나는 헉헉대는 숨을 간신이 고르고는 흰색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모니터에는 참가자 서른두 명과 5시 25분이란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어디선가 느끼한 발음이 들려 와 소름이 돋았다. 왼쪽 모니터와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는 올리버가 눈에 보였다.
“좋은 아침이야! 긴장이 되어 잠을 잘 수 있어야 말이지. 간신히 잠이 들다 깼는데 시계가 없잖아. 늦잠 잔 줄 알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일찍 내려오지도 않았을 거야.”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올리버도 동감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나저나 우리 밖에 없는 거야? 너무 잘들 자네. 나도 예민한 편은 아닌데 말이야.”
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갈색과 금발이 섞인 잡종 같은 머리카락이 새 둥지를 튼 것 마냥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 올리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러나 머리를 묶은 탓인지 더 얌전하고 차분해 보였다. 더군다나 올리버의 구릿빛 얼굴 또한 깨끗하여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얼굴을 매만지게 되었다.
“네가 너무 깨끗한 건가 아니면 내가 더러운 건가?”
내가 올리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아직 못 찾았나? 화장실이라면 옷장과 침대 사이 벽 쪽에 있어. 문이 잘 안 보일 거야. 나는 뭐 금방 찾긴 했지만.”
올리버가 어쩐지 눈썰미가 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대답했다. 밧줄처럼 빳빳하고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로 희끗희끗 염색한 것이 전등불에 반사되었다.
“진짜? 어쩐지. 난 게임 끝날 때 까지 근처 강가라도 찾아 씻어야 되나 걱정했는데. 그럼, 잠시만 나 세수 좀 하고 올게. 아직 잠이 덜 깼을 뿐더러 이 몰골로 어딜 돌아다닐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올리버가 그러라고 하였다. 올 때와는 달리 이번엔 여유롭게 복도를 걸어갔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고요한 정적만이 감도는 이곳은 어쩐지 오싹하였다. 약간의 빛과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 계단으로 가는 도중 서재에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 하고 안을 들여다보니 탁자 위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는 에리얼이 보였다.
“와. 꽤 열심이네.”
나는 조용히 열려 있던 문을 닫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