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속이 뻔히 보였다. 엄마 남은 인생의 목표 두가지가 있다면, 설희의 취업과 설희의 결혼이었다. 전 회사에 취직 하자마자 엄마가 들볶아 결국 찬정과의 결혼을 약속했는데, 찬정에게 차이자 설희만큼 실망한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옥 선생은 너무나 매력적인 상대리라.
" 미쳤어? "
자신의 몸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나 싶을 정도로 괴성을 지르며 엄마를 막았다. 그러나 초조해서 그들을 막으려 달려오는 설희와 달리 옥 선생은 여유가 있었다. 빙그레 미소까지 띄면서 엄마의 말에 대답했다.
" 아직입니다. "
옥 선생의 대답에 엄마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 어머, 그래요? 아시겠지만 우리 설희도 아직 결혼을 안했어요. "
" 옥, 옥 선생님! 얼른 가요. 차에 짐 다 실었잖아요! "
설희가 기겁을 하며옥 선생을 재촉 해 그를 운전석쪽으로 밀었다.
" 아, 저 그럼 가 보겠습니다. "
" 네, 옥 선생님, 한번 우리 식사라도 같이 해요. "
엄마의 말에 옥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를 하며 차에 탔다.
엄마가 더위에 미쳤나? 엄마랑 왜 옥 선생이랑 밥을 먹어?
" 옥 선생님, 얼른 가요. "
" 네. "
차를 출발시키고 뒤에 차창을 보니, 그녀가 보든 말든 뒤에서 엄마 아빠가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설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가 미쳐!
" 좋은 분들이시네요. "
그러나 기겁하는 설희의 반응 과는 달리 은우는 그런 부모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고 있었다. 창피해서 죽을 것 같다. 옥 선생을 사위감으로 탐내는 듯한 엄마의 말때문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설희가 한숨을 쉬었다.
" 선생님. "
" 네? "
" 그...있잖아요. 그... "
" 뭐요? "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볼이 너무 달아올라 터질 듯 빨개졌다.
" 엄마가 결혼 말씀 하신 거 신경쓰지 마세요. 아무 남자한테나 그러시거든요. "
그렇게 말하자 운전을 하던 옥 선생이 설희를 힐끗 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 아무 남자... "
오늘은 되는 게 없는날이었다. 엄마가 창피해서 아무렇게나 던진 말에 옥 선생이 중얼거리자, 그 말에 설희가 서둘러 고개를 흔들었다.
" 아, 아무 남자라는게 그런 의미가 아니고, 뭐라고 그래야지. "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변명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 괜찮아요. 부모님들이 좀 결혼 문제에 예민하시죠. "
"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옥 선생의 말에 설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물건을 집에 내려두고, 먼저 가구집으로 가서 물건을 사 오고 조립을 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가는 길, 그와 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이 긴장 되어 자꾸만 헛기침이 나왔다.
" 쿨럭. "
그녀가 기침을 하자, 은우가 에어컨을 줄였다.
" 추워요? "
다정한 말투. 왜 자꾸만 저래. 친절하게 대해주지 말지. 그가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어째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 괜찮아요. "
옥 선생이 잔소리를 하며 뭐라고 하는 게 좋은 건 아닌데, 이렇게 그냥 마냥 잘해줘도 뭐랄까 어색했다.
그래, 그냥 차라리 못되게 굴어라.
설희는 눈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화창한 날이었다. 오늘 이사하기 잘했다. 그러다가 다시 운전하는 옥 선생을 쳐다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가구점에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창 밖을 바라보다가, 옥 선생을 잠시 훔쳐보다를 계속 하다가 가구점에 도착했다.
태어나서 처음 간 가구점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컸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사람이 많았다. 옥 선생과 함께 전시장을 들어가자, 와글 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 사람이 정말 많네요. "
" 주말이니까요. 그리고 워낙 여긴 사람이 많아요. "
" 와보신 적 있으세요? "
설희의 질문에 옥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집에 있는 가구들 중에도 여기서 사온 것들이 있거든요. "
처음 전시장을 헤매는 데, 가족들과 커플들로 넘쳐났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옥 선생과 함께 가구들을 구경했는데, 침대며 소파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신혼부부들을 보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옥 선생과 가구점에 와서 구경하는 왠지 이 그림이.... 커플 같아.
그 생각이 들자 마자,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여긴 같이 왜 온 걸까?
키스한거 보면 날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거기다가 자진해서 이사를 도와주겠다고 까지 했다. 날 좋아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키스하고 나서 사귀자는 말도 없고 좋아한다는 말도 없었다. 혹시 그냥 술김에 키스 한 것이 아닐까? 오늘 이사 도와주는 것도 그냥 집주인이니까 도와주는 거고.
그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생각해 봤자 알 수 없는데, 그냥 이사에만 집중하자.
큰 가구점을 돌아다니다 보니 가구들이 예쁜 게 많았다. 가구를 보며, 옥 선생에게 어색하게 말을 걸었다.
" 이 침대 너무 예쁜 것 같아요. "
" 설희씨가 좋아할 디자인이네요. "
옥 선생의 말에 설희가 그를 바라보았다.
"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이 뭔데요? "
" 설희씨 흰 색에 깔끔한 디자인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포인트는 무채색으로 주는 거 좋아하고. 컬러풀 한건 싫어하죠? "
그 말 그대로 설희는 컬러가 많은 디자인은 싫어했다. 가장 좋아하는 색은 흰 색. 포인트는 거의 안주지만 준다고 해도 무채색으로만 줬다.
" 어떻게 알았어요? "
" 보면 알죠, 뭐. "
역시 눈치는 대한민국 최고야.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오면서 어색 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엄마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 가구점을 돌아보면서 옥 선생과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 쇼핑이 처음인 설희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 이 장식장 어때요? 귀엽다. "
설희가 한 장식장을 보며 눈을 빛내자,옥 선생이 그녀가 가리킨 장식장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 제가 사실 써봤거든요.저 책장은 어때요? 저 장식장은 의외로 수납이 안좋아서 별로인데. 저 책장에 중간 칸은 장식장으로 쓰고, 아래 위에 책 꽂으면 될 것 같은데. "
가구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옥 선생은 집 주인이라 집 구조에 대해 이해가 높았다.
" 예전에 이 밥상 산 적 있는데, 생각보다 편해요.한번 들어볼래요?가벼워서 좋은 데,설희씨한테도 가벼운 지 모르겠네."
옥 선생이 건네준 상을 손에 들었다.정말 그의 말 처럼 상당히 가벼웠다.접었다 폈다 쓰면 좋을 것 같아 주문표에 번호를 적어 넣었다.접었다 펴는 상 뿐만 아니라 옥 선생이 해주는 말에 설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자취를 해서인지 필요한 물건과 아닌 물건을 정확히 구별했다. 그녀의 취향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그가 고르는 물건은 하나같이 다 설희의 마음에 들었다. 결국 그녀가 산 것들은 거의 다 그가 골라준 물건들이었다.
옥 선생을 올려다 보았다.옥 선생은 손에 작은 전구를 들고 소비전력을 확인 중이었다. 알면 알수록 괜찮은 남자 같기도 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이 팔려서인지,사람들의 붐비는 가운데 어떤 덩치 큰 남자가 지나가며 설희를 밀쳤다. 작은 체구의 설희는 거의 날듯이 바로 옆에 있는 소파로 엎어졌다.
“ 꺅! “
이 소동에 옥 선생이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 유설희씨. 괜찮아요? “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다행히 소파 위에 엎어져 상처는 없었다. 옥 선생이 그녀를 내려다 보자,설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 괜찮아요. “
옥 선생은 손을 내밀었다.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 설희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이때쯤 옥 선생 잔소리가 터져줘야 하는데? “ 앞은 제대로 보고 다니는 거예요? “ 라던지 “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사람 많으니 잘 봐야죠. “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 혼자 두면 안되겠다. 내 옆에 붙어 있어요. “
그리고 설희의 팔을 당겨 바로 옆으로 설희를 끌어왔다. 그가 설희의 팔뚝 위에 손을 얹은 채로 계산대로 갔다. 그가 손을 얹은 곳의 피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침대등 도저히 실을 수 없는 큰 물건이 많아 배달은 다음주에 받기로 하고 거의 맨손으로 둘은 가구점에서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주변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설희의 팔 위에 얹어져 있는 옥 선생의 손은 여전히였다.
이제 사람 없는데… 어쩌지. 멀어져도 됐지만,왠지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 그럼 집에 갈까요? "
설희의 말에 옥 선생이 입을 열었다.
" 배고프지 않아요? 밥 먹고 가서 짐 풀어요. "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은 3시를 넘었다. 아침에 만나서 밥도 한끼 안 먹다니. 설희야 가구를 보다가 음식 먹는 것을 잊었지만, 옥 선생은 자기 물건도 아닌 것들을 보면서 밥도 못먹었다. 그런 옥 선생에게 미안해 설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 배고프시죠?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살 테니 맛있는거 먹으러 가요. "
" 어디 갈까요? "
" 글쎄, 뭐 드시고 싶으세요? "
" 집 근처에 괜찮은 데 있는데 이탈리안 괜찮아요? "
옥 선생의 말에 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옥 선생의 차를 타고 달렸다. 한참을 달려 집 근처로 돌아와 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냥 편한 파스타 식당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세련된 분위기에 설희가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설희는 그냥 아주 편한 면원피스 차림이었다.
이런 옷 입고 들어가도 되나?
약간 꺼려지는 고급스런 분위기였다. 생각치도 못한 느낌에 옥 선생에게 설희가 물었다.
" 여기 자주 오세요? 되게 분위기가 좋네요. "
그러자 옥 선생이 설희를 물끄러미 보았다.
" 처음 와봤어요. "
그리고 살짝 웃으며 옥 선생은 말을 이었다.
" 데이트 할 때 와보려고 알아둔 곳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