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장
기나긴 하루의 끝은 양치
난 어서 자러가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지젤리 씨의 눈치가 보여 얼른 계단을 올라 내가 자기로 한 방까지 도달했다. 참, 태일러에게 잘 자라고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네. 이제야 생각나다니... 그냥 자야겠다. 난 하품을 길게 한 번 했다. 정말, 정말 기나긴 하루였어. 최악의 날, 그리고 최고의 날. 죽을 뻔하고, 의도치 않게 그리팅고흐 형제의 친목을 다져주고, 블로어를 처음 만났으며 태일러와 처음 만난 날. 잭 아저씨와 다투고 태일러가 책을 빌려주고 태일러의 집에 오고 저녁을 푸짐하게 먹은 것, 그리고 새로운 문명을 접한 날. 오늘은 내 인생에서 최고로 긴 날이었다. 내 수면 캡슐은 태일러의 것보다 조금 더 진한 노란 색이었다. 꼭 핫도그 캡슐 색이었다. 내가 수면 캡슐에서 자다니... 꿈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던데...난 두근대는 마음으로 수면 캡슐에 손을 얹었다. 수면 캡슐의 표면에 푸른 빛이 한 바퀴를 휙 감싸들다가 사라졌다. 난 깜짝 놀랐다. 혹여나 이걸 망가드리기라고 한다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울브, 머하구 이허?]
태일러였다. 그녀가 나의 방으로 찾아온 것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녀는 입에 막대기와 허연 거품을 물고 있어서 -뭔지는 모르겠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나..? 난... 자려고...]
[벌서?]
[지젤리 씨가 어서 자라고 하셨잖아..]
[얘도 탐, 이는 다까야디!]
태일러가 말하면서 거품이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자꾸 입술을 앙다무는게 귀여워보였다. 그런데, 저 거품은 뭔가?
[넌 뭐하는 거야..?]
[나? 나은, 자까만.]
그녀는 말을 하다말고 거품을 목으로 삼켰다. 으으.... 맛이. 이상할 것 같은데.. 그녀는 주머니에서 두루마리 휴지 같은 걸 하나 꺼내더니, 한 조각을 잘라서 입에 넣었다. 저게 뭐야?
[이닦고 있어!].
태일러는 다시 평소처럼 똑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를 닦는다고? 그런데 저런 거품과, 막대기와, 휴지는 뭔가. 이를 닦는다 하면, 물로 이를 뻑뻑 닦아내는 것 아닌가? 사실 잭 아저씨가 하는대로 일에 물을 넣고 보글보글 헹구기만 한 적도 많지만.
[너도 어서 이 닦아!]
그녀는 갑자기 방 밖으로 뛰어갔다. 뭐야... 앗, 아까 그 막대기를 놓고 갔네. 어? 이거 자세히 보니 막대기가 아니라 솔처럼 생겼는데? 아, 이런 물건은 더기 마을에 살 때 본 적 있는 것 같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태일러, 태일러!]
난 복도를 달려가는 태일러를 불렀다. 태일러는 내 방 -내 방이라 하긴 그렇나..?-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태일러도 자신이 이 막대를 가져가지 않을 걸 알았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태일러의 손에 있는 이 막대와 똑같이 생긴 막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새 새로 가져온거야? 저건 낭비야!
[태일러, 이 막대기 두고 갔어..]
내가 말하자 태일러가 웃으며 답했다.
[막대기라고? 아니, 이건 칫솔이야.]
[그게 뭔데?]
태일러는 다시 웃었다. 난 얘가 이럴 때 참 별로야. 자기만 알고 남이 모를 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칫솔 말이야, 칫솔. 양치!]
[양치는 알아. 이 닦는 거.]
[맙소사, 너 이제껏 이걸 막대기로 알았단 말이야?]
[어... 니가 이 솔 부분은 입에 물고 있어서 안 보였다고.]
[뭐? 그래도 네가 이를 닦을 때 보일 것 아니야?]
[어...난 이걸로 이 안 닦아.]
갑자기 태일러의 눈이 반짝했다.
[뭘로 닦아? 이 닦는 장치가 있어?]
[어....음....]
뭐라고 말해야할까.. 손으로 이를 닦는게 항상 최고급으로 살았던 태일러에게는 무척이나 비위생적으로 보일텐데..
[으음...'핸드'라는게 있어.]
난 가까스로 둘러댔다.
[이름 참 웃기다. '핸드'라니. 누가 보면 손으로 이 닦는 줄 알겠네.]
[으응.. 좀 그렇지? 나 칫솔 좀 줄래?]
난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자 말했다. 태일러는 대답대신 손에 들고있던 칫솔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이상한 병을 꺼냈다. 안에는 초록색 젤 같은게 있었다. 우웨엑. 칫솔을 입에 넣으려고 하자, 태일러가 내 손을 잡고 막았다.
[치약 묻혀야지.]
순간 느꼈다. 설마 치약이라는게 저 초록색깔... 차라리 이를 안 닦을래! 태일러어어... 그 외침은 마음 속 외침일 뿐이었다. 용기가 없는 내가 정말 미웠다. 태일러는 어느새 초록색 치약을 내 칫솔 위에 짯다.
[너가 '핸드'라는 걸로 이를 닦았다고 하니, 내가 진짜 양치법을 알려줄게. 내가 장담하는데, '핸드'라는 것 보단 이가 깨끗해 질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러면 이상한 거야!
['당신은 얼마나 청결하십니까?' 라는 책에는, 과거 사람들이 이 닦는 방법을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놓아서 그대로 하면 된대. 단지 치약을 삼키는 걸로 바꿨을 뿐이지. 아, 그리고 남은 치약을 제거하는 '마우스클리너'를 한 조각 먹으면, 그게 끝이야.]
엄청 복잡하네.. 과거 사람들은 양치를 어떻게 했을까?
[아주 간단하지?]
[아니...]
[어째서?]
[난 이 닦는 법을 아직 몰라..]
[아참, 그걸 말해준다는게 깜빡 잊어버렸네. 그냥 그 치약을 이빨에 고르게 묻히고 이빨을 쓸어내려. 기억해, 위에 50번 아래 50번 다같이 100번! 총 3분이 걸려야 해. 그 다음에는 삼켜. 거부감 가지지 말고 삼켜. 마지막으로 저 휴지처럼 생긴거, 저거를 한 조각 떼서 먹어. 입에 들어가면 녹을거야. 입에서 한번 굴려주고 삼키면 되. 사실, 내가 딸기를 무지무지 좋아해서 내 건 딸기맛으로 샀어. 살짝 분홍빛드는 거 보여? 딸기 싫어하면, 바나나, 메론, 파인애플 맛이 있어.]
[아냐, 아냐. 괜찮아..]
[그럼 나중에 필요하면 불러줘!]
[그래...]
태일러는 방을 나갔다. 놓칠 수 없지..!
[태일러! ...잘 자..!]
태일러는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었다.
[너도!]
난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잘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난 항상 잭 아저씨에게 '잘 자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잭 아저씨는 '내 꿈 꿔~'라고 말했다. 이건 그냥, 자지 말라는 거 아닌가?
[어서 이 닦아!]
태일러가 소리쳤다. 난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초록색 액체가 묻은 칫솔이 보였다. 거부감이 들었다. 난 큰 용기를 가지고 그 칫솔을 입으로 넣었다!
[모어야.]
칫솔이 입에 물려있어 발음이 이상하게 나왔다. 그런데 정말, 뭐야. 이상한 토맛 같은게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원한 맛이다! 이게 무슨 맛이지, 분명 아는 맛인데!
[태일러민트! 누웠니?]
멀리서 지젤리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민트! 민트 향! 이렇게 시원한 맛은 민트 빙수 위에 올려진 민트 잎 맛이 틀림없다!
[마이넹.]
맛있다! 그런데 아까 태일러가 뭐라고 했더라? 위로 15번, 아래로 15번, 전체 몇번이었지? 두배, 두배였던 것 같은데.. 그럼 30번이네. 난 태일러가 가르쳐준 그대로 이빨을 쓸어내렸다. 우와, 시원해. 전체 30번까지 다하고 나자 아주 상쾌한 기분이었다. 이걸.. 삼켜야지... 맛이 없지 않다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삼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리, 달리 뱉을 곳도 없고. 난 입 안 가득 생긴 거품을 꾸울꺽 삼켰다. 목구멍까지 차갑다. 삼키는 건 확실히 좀 별로인 것 같다. 입에 남은 거품을 없애려면... '마우스클리너'? 저 휴지를 먹어야 한다고 했지. 딸기맛이라니. 아까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 딸기 완전 좋아해! 대박 좋아한다고! 얼른 그 휴지를 입으로 넣었다. 생각했던 그 신선한 딸기맛은 아니었다. 약간.... 딸기들의 세계와 내 세계가 분리된 그 느낌? 뭐래, 뭐라는거야. 그 휴지가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아이스크림처럼 말이다. 차갑지 않은 아이스크림. 난 입에 그 휴지가 녹은 액체를 둥글게 한번 굴리고는 삼켰다. 얘도 삼키는 건 좀 별로다. 아, 상쾌해. '핸드', 아니 손으로 했을 때보다 훨씬 상쾌한 기분이 든다. 또 이 느낌을 설명하자면... 마치 민트들이 구름 위를 타고 날아다니고, 딸기의 왕이 나를 업고 민트들을 밟고.. 민트의 여왕, 태일러민트에게로 데려다주는.. 아, 정말 나 왜 이래? 미쳤나봐. 난 내 머리를 몇 번 쥐어박았다. 그 때였다.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블로어가 있었다. 블랭카라고 불러야하는데, 난 블로어가 더 좋다.
[블로어....]
블로어는 귀여운 하품을 한 번 하더니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제서야 블로어 등에 붙은 쪽지를 발견했다.
'너 혼자 자면 외로울까봐. 블랭카라도 같이 자. -태일러민트 클랜베리 지젤리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태일러의 서명에 뽀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한다고 태일러에게 말했었나? 딱히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는데. 어쨋든. 난 이제 이 길고 긴 하루를 정말로 마치려고 한다. 수면 캡슐에 눕자, 저절로 캡슐이 닫혔다.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일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어떤 꿈을 꾸시겠습니까?]
와, 정말 꿈을 설정할 수 있구나..! 하지만... 오늘은 이미 너무 많은 일을 겪었으니 꿈에서는 편히 쉬어야겠다.
[난.. 잠자는 꿈을 꿀래.]
[네, 알겠습니다. 수면용 공기를 배포합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곧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고.. 내일에 대한 걱정도 기대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