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야, 이거 시말서 감 아니냐?”
“넌 매번 그런 소리를 하지.”
“여기서 죽은 사람 나올 것 같은데.”
“그러 지들끼리 싸우다 실수로 죽었다고 대충 퉁치면 돼.”
“하긴, 넌 매번 그런 식이지.”
“그래서 진한은 어디에 있지?”
“오늘 무슨 날인 것 같은데……. 그럼 제일 큰 곳에 있지 않을까.”
그림자가 걷히고, 시체가 똑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 공간 안에 그림자 따위는 없었다. 그저 수많은 자상만을 가진 시체들만 사방에 널려 있을 뿐이었다. 의자도 다 망가지거나 넘어져 있었다. 뭔가가 폭발했다.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꼴이 날 수가 없다.
가령 하늘에서 악마가 떨어졌다거나.
안에 칼날이 가득 든 폭탄이 폭발했다거나.
이런 수준의 일이 아니라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체들은 얼굴도 심각하게 짓이겨져 있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이들 중 한 명히 그 진한이라는 작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그냥 고깃조각일 뿐이다. 이제는.
그리고 그 피로 가득 찬 성전 한 가운데에, 연화가 엎드려 있었다.
그 도서관에서 봤던 그 장면 그대로, 몸을 벌벌 떨면서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진상을 알아챘다. 생각하기 힘들지만, 이게 모두 연화가 한 짓이라는 걸.
가끔은 받아들이기 싫고, 무섭고, 어려운 게 진실인 경우도 있는 법이다. 진실은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나는 신을 찾는 어린 양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를 구원해주세요. 널 지켜주고 싶어. 그때 그 도서관에서처럼.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겠지. 그렇겠지?
한발 한발 연화에게로 발을 내딛었다. 연화의 떨림이 내게로 전해져 왔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는 연화를 품에 안았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나 자신과 연화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너만 없으면,”
연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만 없으면 연화는 사라질 수 있어. 내가 이 몸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연화를 찢어버리고 태어날 수 있어.”
“그러니까.”
“죽어.”
아무런 감각도 들지 않았다. 배에 꽂힌 식칼. 무통증. 나는 연화의 눈을 쳐다보았다. 붉은 색. 그제야 내 배에서 찌르는 통증이 몰려왔다. 절망적인 고통이었다. 연화는 그 고통에 쐐기를 박듯 한 방 더 날렸다.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어지러웠다.
“죽어.”
연화가 쓰러진 내 위에 올라타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이었다. 문 너머에서, 한현과 총을 든 정현석이 보였다. 정현석은 이쪽을 보고는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였다. 안돼.
안돼
당기지마
제발
제발 그냥 날 죽게 내버려둬도 좋으니까 차라리
그냥 연화를 살려줘 내 친구란 말이야
비록 내 배에 칼빵을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발
부탁해
어떤 말도 전해지지 않고 방아쇠가 당겨졌다. 총알은 무참이 연화의 머리를 꿰뚫었다. 식칼을 그대로 떨어뜨리고, 연화는 내 위로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보인 연화의 목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내 더러운 흉터가 남은 목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새하얀, 깨끗한 목이었다.
개 같네. 그게 무슨 소설 누구의 마지막 대사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돌아와도 된다고 해줘
내가 돌아와도 된다고 해줘
다 좋을 거라고 약속할 게
거울은 들여다 보지 마
네가 알아보지도 못할 얼굴에서
날 도와줘 의사를 불러
날 들여보내 줘
날 들여보내 줘
날 들여보내 줘
날 들여보내 줘
날 들여보내 줘1)
1) Radiohead – Wolf At The Door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