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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낙화(落花)
작가 : 손끝
작품등록일 : 2017.7.1
낙화(落花)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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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하는 남자. 그런 남자만을 바라보는 여자.
둘 다 포기하지 못하는 남자의 뒤틀린 이상과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상황.
답답한 현실 그리고 뒤틀린 인격.

 
연꽃
작성일 : 17-07-01 18:49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7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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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난 지금 두려운데? 네가 내 모든 걸 알면 나를 떠나 갈까봐.”

 

 방안에 홀로 켜진 TV에서 철 지난 영화의 한 장면이 흘러나온다. 대사를 하고 있는 여배우는 과거 몸을 팔았다고 언론에 자자한 여자로 요즘 이미지를 세탁하고 케이블에서 활동을 하는 중이다. 그녀가 활동 중인 프로는 과거 문제가 불거져 매장 당했던 연예인들만 모아서 갱생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저조한 시청률과 갖은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있다. 특히 이 여배우가 악성 댓글의 주된 대상인데 그녀는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한때는 힘들고 괴로웠어요. 그런데 계속 당하고 나니깐 점점 적응이 되어가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는 sns에는 '모두들 조심하는 자신이 되도록 노력해보자.' 라고 글을 남겨 진짜 갱생 한 것 아니냐 라는 소문도 돈다.

 

 그녀는 지다가 좋아했던 여배우로 그녀가 나온 영화는 모두 챙겨볼 정도로 신경을 썼다.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찾은 영화를 틀어놓고 바지를 입는다. 그는 거울 앞에서 입은 옷의 매무새를 정리한다. 머리가 꽤나 부산하지만 맘에 드는지 살짝 미소를 짓는다.

 

 10평 남짓한 원룸은 밖에 나와 뒹구는 옷들로 어질러져 있다. 침대의 머리맡에 있는 회색의 맥주 캔들이 옷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방 안에서 지다는 하얀색의 양말을 신으면서 여배우가 하는 대사를 듣는다.

 

 “이제는 지긋지긋해. 언제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더니 지금은 보기도 싫다니. 원래 그럴 마음 이었니? 나를 욕하는 저 사람들과 너도 같은 마음이었니? 내가 너의 장난감이었냐고!”

 

 무심히 귀를 열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는 물끄러미 TV를 바라본다. 좋은 연기력이다. 좋은 발성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이 지워져도 예뻐 보이는 화면 속의 그녀를 바라본다. 믿을 수 없는 스캔들을 가진 그녀를 덤덤히 바라보던 그는 다시 거울을 바라본다. 무표정의 한 남성이 서있다. 자신의 키를 담을 정도로 크고 방 안의 풍경을 다 담을 수 있을 정도의 거울은 앞에 서있는 가식적인 한 사람을 비춘다. 표정이 심심해 보였는지 지다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어색하다. 연기력은 서로 극과 극인 그녀와 지다는 같은 뒷배경을 지니고 있다. 다만 한 사람은 그 뒷배경을 철저히 은닉하고 있는 반면 누구는 들켜버린 나머지 바닥끝까지 떨어졌다.

 

 갑자기 침대에서 진동이 울린다. 늘 그랬듯 이불을 뒤적거린다. 어질러진 방 안은 평소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며 맥주 캔들은 그의 습관을 나타내주었다. 베개까지 뒤져가며 핸드폰을 찾던 그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지 허리를 피고는 고민한다. 그러고는 침대 아래로 고래를 숙여 밝은 빛을 내고 있는 핸드폰을 발견한다. 긴 팔을 뻗어 핸드폰을 집은 그는 화면에 뜬 이름을 바라본다.

 

 ‘다희’

 

 지다는 냉큼 전화를 받는다. 그의 입에는 아까 지었던 인조적인 미소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 다희야.”

 “내려와. 기다리고 있을게.”

 

 일방적인 전달을 끝으로 전화는 뚝 끊어졌다.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지다는 갑자기 분주해진다. 싱크대 위에 있던 지갑을 챙겨서 뒷주머니에 넣고 TV 위에 올려둔 담배를 챙긴다. 그러고는 열쇠를 찾는 데 도저히 찾을 없던 그는 그냥 문을 박차고 나온다. 문 앞에서 구겨 넣은 신발을 제대로 신다가 떠올린다. 얼마 전에 열쇠에서 도어락으로 바꿨다는 것을. 그는 멍하게 도어락을 바라보다가 문을 쾅 닫는다. 도어락이 내부에서 잠기는 차가운 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기계음을 안 좋아하던 그는 도어락으로 바꾼 자신을 욕한다. 그러다가 이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급하게 자리를 뜬다.

 

 오래되어 보이는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간다. 그가 17살 때부터 살아오던 건물이다. 그의 문은 전에 한번 교체한 적이 있어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다른 문들을 보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복도 형식의 원룸은 문을 열면 밖을 볼 수 있는 복도가 나온다. 하얀 색의 복도는 시간이 지나고 색이 바랬으며 복도와 허공을 경계 짓는 난간은 여기저기 부식되어 보인다. 그의 앞에는 세 개의 낡은 문들이 보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낡아 칠이 여기저기 벗겨져 있다. 한 층에 최대 네 가구가 들어갈 수 있는 이 건물은 이리도 오래 되었지만 방세는 5년 전에 비해 많이 뛰어올랐다. 방세를 낼 때 마다 가슴 한구석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오르자 지다는 집을 옮길까 생각 해봤지만 추억이 담긴 곳을 쉽사리 옮길 수도 없었다.

 

 4층에서부터 계단을 내려간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던 그는 발을 헛디뎠지만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은 후 이어서 내려간다. 3층을 지나서 2층을 지나간다. 그는 2층에서 잠시 멈춘 후 고개를 복도 밖으로 내민다. 복도의 오른쪽을 살펴본다. 그곳에는 지다와 같은 색의 문이 자리 잡고 있다. 문 앞에는 어젯밤에 마신건지 전부터 그 자리에 말뚝을 박고 있었던 건지 소주병들이 즐비하였다. 어림잡아도 혼자서 다 마실 수 있는 양은 아닌 듯 했다. 문 옆의 벽에 얼차려 하듯이 일렬로 서있는 걸 보면 버리는 것이 귀찮은 게 분명하였다. 아니면 관상용이라던가. 그 옆의 분홍 봉지의 쓰레기봉투 두 개를 보면 분명히 버리러 나가는 것이 귀찮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숨을 크게 내쉰 지다는 밑에서 다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지다와 다희. 둘은 수년을 함께 해왔으며 그 시간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았다. 아마 이곳에서 살기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해온 것 같다. 요즘 들어 그는 둘의 사이가 멀어졌다고 느껴지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처음이지만 나쁜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둘의 사이를 관철하고 다희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결론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도 그에게 있어 다희는 전부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상사와의 모든 관계를 완벽하게 은닉하고 있다. 상사와 다닌 거리 그리고 같이 먹었던 식당, 호텔까지도 모든 것이 지다가 계획하고 설계한 시나리오대로였다. 지금까지는 잘 먹혀왔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했다. 그에게 있어 다희는 자신의 야망에 버금 갈 정도로 큰 자산이며 유일한 그의 버팀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더 철저하고 계획적으로 시나리오를 짠다.

 

 1층까지 단숨에 내려간 그는 우측 벽에 붙어있는 우편함을 바라보았다. 하얀색의 봉투가 여기저기 꽂혀있지만 그중에 황색의 봉투가 눈에 거슬린다. 황색의 봉투는 우편함의 크기보다 커서 억지로 우겨넣은 느낌이 느껴졌다.

 

 ‘401’

 

 자신의 우편함에 꽂혀서 일까. 신경이 더 쓰이지만 문 밖의 하얀 자동차가 시동을 키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지나쳐 간다. 투명한 문을 열자 몇 개의 계단 아래에 정차된 차가 보인다. 시기는 봄임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잊은 빛이 눈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눈이 부셨는지 손으로 빛을 가리면서 차로 뛰어간다. 차 손잡이에 손을 대며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무언가 뇌리에 스친 사람처럼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4층에 위치한 그의 집은 갈색의 문이 보였고 옆에 나있는 창으로는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선이 느껴져서 일까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낮게 떠있는 연 회색의 구름들이 평화롭게 흘러간다. 고개를 갸우뚱한 채 그는 차 안으로 발을 넣은 후 문을 닫는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창문 밖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잠을 조금 잔 탓인지 별로 할 말이 없는 건지 자꾸 창 밖에 시선을 둔다.

 

 “아니, 요즘 일에만 집중하고 살아서 그래.”

 

 검은 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는지 드문드문 보이는 갈색의 머리를 정리하다가 다희를 바라보고는 눈을 감는다. 그녀는 단정한 숏 컷의 여성으로 평소에는 눈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화장을 진하게 한걸 보니 뭔가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 둘은 9년이나 지난 지금 처음 사귈 때의 풋풋함은 없지만 지다는 이런 분위기에도 만족하였다. 소소한 대화와 차가워 보이지만 그 안의 따듯함이 느껴진다.

 

 “어제는 동생이 갑자기 찾아서 집에 못 들어갔어. 그래서 전화 했는데 너 안 받더라.”

 

 계속 마음에 걸렸었나보다. 직접적으로 왜 안 받았냐고 추궁하기 보다는 돌려서 물어보는 것이 다희의 감정표현 중 하나이다. 지금은 온화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고 있지만 속내는 신경질적 일 것이다. 보통은 연락 좀 하고 살자면서 말을 하는데 돌려서 말하는 걸 보니 유달리 화가 더 났나보다. 전화로도 할 말만 하고 끊었을 때부터 느꼈지만 그녀는 여전히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그렇기에 현재 회사에서 사건이 많았고 학창시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를 지다는 너무도 잘 알고 이해하기에 지금껏 문제없이 지속되어왔다.

 

 그녀의 갈색 앞머리가 살며시 내려와 긴 속눈썹 위를 덮는다. 답답했던지 외손으로 앞머리를 정리한 뒤 신호가 붉은 것을 확인한다. 그러고 지다를 지긋이 쳐다본다. 검은색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올곧게 그를 응시한다. 모든 거짓이 말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 눈은 지다의 눈높이와 비슷하였다. 9년 전에는 지다를 올려다보았지만 이제는 같은 눈높이에서 그를 바라본다. 지다의 키가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복무를 하고 온 동안 그녀가 무려 8cm나 자란 것이 근원이라면 근원이었다. 이상하리만큼 급격하게 자란 그녀는 지다와 얼마 차이나지 않았다. 그 후 지다는 그녀가 하이힐을 신는 것과 굽이 들어간 신발을 신을 때 겉으로 좋지 않다는 티를 많이 냈다. 이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그녀였지만 내심 급격하게 자라난 키에 만족감을 느끼고는 했다. 아마 지다와 동등한 위치에 당도했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다도 다희의 큰 키가 싫지만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머리 위에 턱을 더 이상 괴지 못한다는 사실에 낙담했을 뿐이다.

 

 “어제는 술 마시러 나갔었어. 지우 생각이 자꾸 나서..,”

 

 애꿎은 자신의 친구를 끌어들인다. 미안한 감정도 악감정도 없이 친구를 내세운다. 자신의 감정조차 속이기 시작한 그에게 있어 이미 익숙해진 상황이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고 둘의 지속적인 관계를 위한 정당한 일이라고 판단한다. 적당한 핑계를 집어서 둘러대는 지다에게 다희는 더 이상의 반문을 하지 않는다.

 

 “지우도 곧 깨어나겠지. 더 기다리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뀐다. 엑셀을 밟으며 그녀는 힐끔 백미러를 쳐다본다. 그녀의 얇고 하얀 손이 핸들을 돌리며 차선을 바꾼다. 지다는 다희의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서 쓴다. 산지 얼마 안 된 선글라스를 통해 아까와는 다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색의 먹구름과 검은 색의 하늘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인상을 쓰며 하늘을 올려다본 지다는 선글라스를 도로 내려놓으며 말한다.

 

 “우리 지우가 깨면 셋이서 여행이나 같이 가자.”

 “그래. 그렇게 하자.”

 

 먹구름이 낮게 앉은 하늘에서 작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차의 유리창에 떨어진 빗방울은 속도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며 붙어있다. 그런 안쓰러운 모습을 지다는 무심히 쳐다본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으나 무언가로 가득 차 보인다.

 

 “이따가 퇴근하면 집에서 소주나 마실래?”

 

 다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게 평소 맥주만 마시는 그의 입에서 소주를 마시자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주.... 별로 안 좋아하잖아. 무슨 바람이야?”

 “그냥...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 오늘은 너랑 있고 싶기도 해서.”

 

 그녀는 바쁘게 눈을 움직이며 곰곰이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녀의 중요한 일 때문일 것이다. 야근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기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이따가 연락할게. 그때 얘기하자. 오늘 야근일지도 모르거든.”

 

 지다는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져있는 핸드백을 열어본다. 핸드백은 작았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그 작은 핸드백을 다 채우지도 못할 정도로 적었다. 하얀 핸드백은 그녀가 제일 아끼는 물건 중 하나로 오래전에 지다가 선물해 줬던 것이다. 가방 안에는 작은 화장품들과 지갑, 핸드폰이 전부였다. 그 안에 특이한 것이 있다면 작은 사진이었다. 지다는 그 사진을 끄집어낸다. 한 여자와 남자가 활짝 웃고 있다. 이 사진도 마찬가지로 오래전의 추억이다. 둘이 한창 활발하게 젊음을 누릴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희의 이런 표정을 볼 수 없지만 가끔이나마 추억하며 미소를 떠올린다. 그는 뒤적거리던 핸드백을 다시 정리한다.

 

 “그래도 집으로 와. 같이 자자.”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다희가 미소를 지으면서 지다를 바라봐준다. 미소라 할까. 그저 마네킹 같은 웃음이었다. 언제부턴가 볼 수 없던 미소는 인조적으로 다가왔고 표정은 한정적으로 굳어졌다. 그녀의 눈 아래에 옅게 생긴 다크서클이 지다의 눈에 스쳐지나간다. 화장으로 최대한 가린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부각되어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눈 밑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성급히 고개를 돌린다. 자기 관리가 투철한 그녀에게 드리운 피곤의 그림자가 지다의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무슨 일하는데 그래?”

 

 보고도 모르는 척 그녀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곁눈질로 계속 그녀의 눈 밑을 보는 지다는 입술을 잘끈 깨문다. 그 그림자는 언제나 지다의 몫이었지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옮겨간 그림자는 화장으로도 덮어지지 않을 정도로 짙게 드리워져있다.

 

 “오늘도 여전히 그 인간들하고 싸워야 되겠지. 뭐 일상인데.”

 

 백미러에 노란색의 봉고차가 뒤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다희는 신호를 본 후 정차시키고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학교 앞 · 속도를 줄이시오.’ 라는 문구가 초록색의 표지판에 흰색 글씨로 새겨져 있다. 반대편의 차도에 서있는 노란 스쿨버스에서는 작은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비를 맞으면서 중구난방 흩어지는 아이들은 마냥 신나보였다. 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리저리 튀기는 물과 어우러져 노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일도 몸 생각하면서 해. 점점 더 지쳐가는 것처럼 보여.”

 

 학교 앞에 여러 개 있는 방지 턱에 몸을 맡기며 그가 말했다. 더 거세지는 비는 차를 두들겼고 그 소리는 적막한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와이퍼가 쉴 새 없이 눈 앞에서 움직인다. 지다는 그 움직임이 어지러운지 고개를 돌린다.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너부터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지다는 다희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눈 아래에는 근 몇 년 동안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았던 적이 없다. 입을 살짝 내민 것이 자신이 해준 걱정을 오히려 역정으로 받아쳐 삐진 듯하다. 다희는 그런 지다를 힐끗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쉰다. 전부터 어른스런 면모보다는 아이 같은 모습만 보아온 그녀는 늘 걱정이 앞섰다. 마음속에 안고 있는 문제보다는 그의 겉으로 드러나는 허둥대는 면이 그녀 눈에 자주 밟혔나보다.

 

 “내가 술 사둘 테니깐 빨리 와.”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일정 간격으로 지나쳐 가는 가로수를 훑는다. 그의 왼쪽 귀에서 반짝이는 밝은 색의 동그란 귀걸이는 그의 피부를 한층 더 하얗게 돋보여준다. 그 위로는 겨울 내내 기른 머리가 어느새 귀를 간질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창문에 머리를 대면서 밖을 보다가 갑작스럽게 울려오는 굵은 진동음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찌나 놀랐는지 머리가 창문을 타고 쭉 미끄러져 내린다. 심지어 그 진동은 여유롭게 운전을 하던 다희 조차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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