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북부경찰서 2층 대회의실.
마산북부경찰서장 심형도가 용진의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 주고 있었다.
짝, 짝, 짝, 짝, 짝
직원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서장이 용진의 손을 맞잡는다.
"고생했고 축하하네. 팀장. 이제 김경감인가?"
"감사합니다!"
용진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준혁이 박수를 치다 말고 희연을 부르다가 멈칫한다.
"누나"
"응 왜?"
평소 화장품이라면 질색을 하던 희연이 짙게 화장한 모습을 신기한 동물 바라보듯 위, 아래로 훑어보던 준혁이 말한다.
"지금 누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본 전통연극이 생각 나는데..."
"뭐?"
"가부키(歌舞伎) 라고..."
퍽
희연이 주먹을 말아 쥐더니 준혁의 옆구리를 소리나게 때렸다.
"컥!"
앞에 있던 경일과 병재가 뒤돌아보자 희연이 자못 의문스럽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준혁아. 사레 걸렸니?"
퍽, 퍽, 퍽
희연이 웃는 낯으로 준혁의 등을 소리나게 두드리기 시작하자 병재와 경일이 식은땀을 흘리며 앞을 돌아봤다.
준혁이 옆구리를 문지르며 소리 죽여 외친다.
"아 누나 이뻐서 그래! 누나 이쁘다고!"
"알아"
"...?"
"나 이쁜거 안다고"
"..."
객관적으로 봐도 희연은 상당히 예뻤다.
큰 키에 워낙 선머슴 처럼 행동해서 직원들은 희연을 여자 취급도 하지 않았지만 희연이 길거리에 나가면 아직도 남자들이 다가와 심심치않게 번호를 물어보곤 했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에는 라인과 각선미가 상당히 예쁘다며 청바지 모델 제의까지 받았을까.
평소 희연이 노메이크업 상태로 돌아다녀도 저런 상황이었는데 오늘은 풀메이크업으로 나타나자 준혁이 속마음을 숨기고 반 농담식으로 한 말이었는데... 돌아오는건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준혁은 순간 희연을 예쁘게 본 자신의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눈아, 눈아. 형을 형으로 봐야지 여자로 보다니. 제 구실도 못하는 이 쓸모없는...'
"야"
"예 형"
빠직
희연이 애써 웃으며 말한다.
"...근데 왜 불렀니? 우리 동생?"
분위기를 파악한 준혁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 팀장님... 이제 바뀌는거죠?"
준혁의 물음에 잠시 멈칫한 희연도 한숨을 내쉬더니 말한다.
"그래"
"... 다음 팀장님은 누가 오시기로 되어 있죠?"
"들리는 소문은 많은데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어. 발령이 당장 나는건 아니니까..."
형사팀에서 근무한지 수 개월 밖에 안됬지만 준혁은 상당히 아쉬웠다.
준혁에게 용진은 지구대에 근무하던 시절 팀장과는 다르게 팀원들을 하나, 하나 챙기는 모습부터 과감한 행동력과 결단력, 불의에 참지 못하는 성격까지 처음으로 존경하게 된 상급자였다.
"안 가셨으면 좋겠는데..."
"너만 그렇게 생각하겠니? 저기 있는 선배들도, 나도 마찬가지야. 승진해서 가는 건 축하할 일이니까 어쩔 수 없어. 웃는 낯으로 보내드려야지"
"...네"
*******************
"팀장님의 승진을 위하여!"
"위하여!"
그 날 저녁, 마산의 맛집으로 유명한 고깃집에 형사2팀 5명 전원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미 술잔이 몇 순배는 돌았는지 희연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야 뭐 건배할 때 마다 내 승진을 위해서야? 다른 건배사 없어? 희연이랑 준혁이도 청장님 표창 받았잖아? 희연이와 준혁이를 위하여!"
용진이 잔을 들어 외치자 나머지 팀원들도 웃으며 잔을 들었다.
"위하여!"
술잔을 기울이고 잠시 조용해지자 희연이 용진에게 물었다.
"팀장님"
"어?"
"발령 언제 나세요?"
희연의 말에 나머지 팀원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글쎄... 바로는 아니고 한 달정도 후에 발령나는 걸로 들었다"
"... 어디로 가시는데요?"
"그건 아직 몰라. 왜 다음 팀장 누가올지 벌써 걱정되냐?"
"...부정은 못하겠네요. 아쉬움 반, 걱정 반이에요"
희연의 말에 용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우리 형님은 걱정이 9, 아쉬움이 1 같은데?"
"아 팀장님! 진짜!"
희연이 '형님' 이라는 말에 발작하려고 하는데 경일이 물었다.
"근데 팀장님. 저도 궁금해서 그러는데 내정자는 정해져 있습니까? 팀장님이야 가시면 끝이지만 남아 있는 저희도 살아야죠"
경일의 말에 용진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서에서 수사경과 있는 사람 중에 1명을 올리겠지. 대충 싸이즈 나오잖아? 김덕인, 문권태, 김수종, 조태성...."
용진이 직원들의 이름을 나열하자 경일이 한숨 쉬었다.
"어째 저희를 부드럽게 어루어 만져주실 분이 안보여서 더 걱정되는데요?"
"내가 잘 알아보고 추천하고 갈테니까 걱정..."
용진이 말하다 말고 준혁을 보더니 멈칫한다.
"야 막내, 뭐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준혁을 보고 용진이 말했다.
용진의 말에도 준혁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경일이 고개를 숙여 준혁과 눈을 마주쳤다.
"술 먹다 말고 자빠져 자는 주사는 이 때까지 못본 것 같..."
경일이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용진을 바라본다.
"팀장님"
"...?"
"이 새끼 우는데요?"
"뭐?"
"흑, 흑, 흑, 흑"
준혁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코까지 막혔는지 준혁이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팀장님.. 안 가시면 안돼요?"
"아니 뭐 얼마나 봤다고 다 큰 남자새끼가 눈물까지 흘려?"
"아 안 갔으문 좋겠따구요..."
취기가 올랐는지 혀까지 꼬부라지는 준혁을 보며 용진이 한숨 쉬었다.
"하아.. 꼴통새끼 쓸대없이 정은 많아서... 얼른 눈물 안 닦아?"
술은 사람의 감정을 솔직하게 만든다지만 다 큰 남자 놈이 눈물까지 흐를 줄은 용진으로서는 상상도 못했다.
옆에 있는 경일까지 눈시울이 붉어지려 하는 모습을 본 용진이 급히 말한다.
"한경일, 니 조원 잠시 데리고 나와봐"
용진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며 밖으로 나가자 곧바로 경일이 준혁을 데리고 뒤따라 나갔다.
"...난 희연이 니가 울면 울었지 저 놈이 울 줄은 몰랐는데"
희연의 겉모습과 다르게 속마음이 누구보다 약하다는 것을 아는 병재의 물음에 희연이 쓰게 웃었다.
"평생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발령이잖아요. 잘 풀려서 나가는 건데요 뭐..."
말과는 다르게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는 희연을 보며 병재가 피식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야 막내"
"...예"
용진이 니코틴 연기를 깊게 들이쉬어 내뱉더니 경일이 데리고 나온 준혁을 바라본다.
"내가 죽어?"
"..아니요"
"아니면 내가 뭐 잘려서 옷 벗고 나가?"
"....아니요"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는 준혁을 보며 용진이 쓰게 웃었다.
"막내.. 아니 준혁아"
"..."
"난 니가 좋았다. 들어온지 1년도 안된 짬찌놈이 징계받는 거 볼 때는 뭐 저런 꼴통이 있나 싶었지. 나중에 자세한 얘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지만"
"..."
"불의(不義)에 참지 못하는 니 성격, 과격하지만 제 몸을 사리지 않는 니 행동력, 따뜻한 마음 씀씀이까지.. 니 덕분에 오랜만에 사람냄새라는 걸 느꼈으니까"
"..."
"지금 니 모습.. 변하지 마라"
"..예?"
"어느 순간 조직에 환멸감을 느끼더라도, 억울해 미칠 것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조직을 그렇게 만든 상급자나 그런 상황을 원망할지언정 초심은 잃지 마라고. 이미 한번 겪어봐서 무슨 말인지 알지?"
"..."
"나는 너 같은 형사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박수 받지 못하겠으면 손가락질 받을 행동은 하지 마라? 아니, 박수도 받고 손가락질은 받지 않는 형사가 되어라. 니 스스로에게 당당한 형사가 되어라"
"..."
"조직이나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당당한 형사. 지금 니 모습 그대로...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이야"
"알겠습니다"
용진의 얘기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경일이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는 별을 보며 경일이 중얼거렸다.
"반짝, 반짝. 이쁘네. 졸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