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픽션으로 실제 사실이나 지명, 인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립니다.
2014년 제1차 순경공채시험 합격자 발표
첨부. 합격자명단
"제발... 제발... 신이시여...."
"와.. 이런 양아치 날강도 새끼를 봤나, 노량진 컵밥짬이 6개월 밖에 안된 놈이 너무 욕심이 많은 거 아니냐?"
새벽까지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고도 아침 9시에 일어나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준혁을 보며 재욱이 욕을 했다.
"그 6개월 동안 공부한게 평생 내가 한 공부량보다 더 많을 거다 이새끼야, 중요한 순간이니까 조용히 해봐, 1043174... 1043174...."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합격자명단 파일을 열어 모니터를 바라보던 준혁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 엄마!!!!!!!!!!!!!!!!!!!!!!!!!!!!!!!"
갑자기 큰 소리로 소리치며 안방으로 달려가는 준혁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재욱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2014년 순경공채시험 합격자명단>
. . . 1043174 조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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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이제 1)국공이다 국공"
무려 3시간 동안 합격축하 전화를 받느라 불알친구인 김재욱까지 쫓아내듯 내보낸 준혁이 신나 중얼거리던 중 멈칫했다.
"씨발.. 정신차리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준혁이 품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여자의 사진 1장을 꺼냈다.
"누나...."
12년 전,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연쇄살인사건.
7명의 피해자가 나올동안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전 국민들이 두려움에 빠졌었다.
그 사건의 마지막 피해자가 당시 12살이던 준혁의 8살 위 누나인 조은비였다. 경찰이 특별수사본부를 운영하여 6개월이나 범인을 뒤쫓았지만 잡지 못했고 결국 장기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공소시효도 넉넉하게 남았고, 개새끼. 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잡고 만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5년, 그 마저도 현재 국회에서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다는 법안이 통과하기 직전이다.
띠링
준혁이 휴대폰으로 전송된 문자메시지를 봤다.
<2014년 상반기 순경공채시험 합격자 여러분, 자랑스러운 경남지방경찰청 가족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1주일 뒤, 여러분들은 중앙경찰학교에서 8개월간의 교육을 수료하면 정식 경찰관으로 임용될 예정입니다. 준비사항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경남지방경찰청->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준혁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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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뒤, 충주 중앙경찰학교 순경 임용식.
"8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정식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경찰관으로 임용되신 281기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또한 거리의 판사로서 법을 엄정히 집행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경찰청장이 임용을 축하한다는 말로 시작하여 30분째 '축하'를 가장한 '훈화'가 계속 되었다.
8개월간의 경찰학교 생활이 준혁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중학생, 고등학생, 심지어 대학생 때도 꿈도 못꿀 맛있는 학식, 교육비 명목으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4인 1실의 쾌적한 환경, 주말보장... 흔히 사람들이 경찰학교생활을 일선서에 배치되기 전 '마지막 꿀'라고 하는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다.
"하암~"
훈화가 계속되자 뒷열에서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던 준혁이 크게 하품을 했다.
"뒷통수에 입냄새 배겠네, 새꺄"
준혁의 앞열에 있던 룸메이트 문찬희가 준혁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찬희는 준혁보다 4살이 많았는데, 개그코드가 비슷해 서로 죽이 잘 맞았다.
"교장선생님 훈화말씀도 아니고 이거 언제까지 합니까?"
"몰라 새꺄, 단상에 올라가서 아저씨 언제 끝나요? 해봐"
"내 출셋길은?"
"내 알바 아니지, 출세안하면 어때? 나처럼 이쁜 여경 여친 만나서 결혼해~ 알지? 부부공무원은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는거?"
"하, 깨가 쏟아지네. 소개나 시켜주고 얘기하든가"
"야, 멀리서 찾을 필요 있냐? 너보다 계급도 2개나 높고 아리따운 운전교수님 있잖아. 시집도 안가셨단다"
'퍽'
준혁이 뒤에서 찬희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아래 위도 없는 새끼..."
경찰학교 운전교수인 박나은은 급한 성정과 큰 덩치 때문에 경찰학교가 위치해 있는 산의 이름을 따 '적보산 멧돼지'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36살의 노처녀 히스테리라도 부리는지 평가를 깐깐하게 보는 것으로 유명했고 교육생들은 5명의 운전교수 중 나은을 가장 기피하였다.
준혁도 나은이 평가교수가 되지 않길 신께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신은 준혁의 편이 아니었고 평가 중 '바퀴가 차선을 조금 물었네, 마지막에 들어올 때 방향지시등 안켰네' 같은 말을 들으며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 때 당시 준혁이 이를 갈며 나은을 욕하던 것이 생각났는지 찬희가 준혁을 계속 놀렸다.
"야, 돈도 많으시댄다"
"그만해, 형이고 뭐고 다 엎어버리기 전에"
"어이쿠 무서워라"
혼자 실실 웃고 있는 찬희를 한 번 노려본 준혁이 앞 단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끝으로, 다시 한 번 경찰관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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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들, 내가 나중에 청장님되서 잘~ 챙겨드릴게. 다음에 다시 만나요"
임용식이 끝나고 8개월간 생활하던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던 준혁이 거들먹거리며 얘기했다.
"내가 봤을 때 니는 옷 안벗고 정년퇴직할 수 있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인정..."
남안의 말에 찬해가 맞장구쳤다.
준혁의 방은 찬해,남안,동은 4명이서 생활을 하였는데 준혁이 24살, 찬해와 남안이 28살로 동갑이고 동은이 27살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죽이 잘 맞아 즐겁게 생활했는데 준혁이 경남지방경찰청, 찬해는 인천지방경찰청, 남안과 동은은 경기남부, 북부지방경찰청 자원이라 졸업 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몸 건강해라, 준혁아"
짐을 모두 챙겨 나서는 준혁을 보며 동은이 인사했다.
"형도. 진짜 형들 내가 청장되면 다 내 밑으로 불러서 한자리씩 줄게, 다음에 봐요"
"저 정도면 병이다 병"
찬해의 혀를 차는 소리와 룸메이트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방을 나온 준혁이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차량에 몸을 실었다.
임용식이 끝난 금요일, 정식 첫 출근은 3일 뒤 월요일이기 때문에 집이 있는 창원으로 방향을 잡던 준혁이 학교 입구 비석을 보고 멈칫한다.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하여튼.. 가오 하나는 끝내주네"
비석을 보고 한 번 울컥한 준혁이 뒤에서 울리는 경적소리에 다시 차량을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