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학년도 수능을 보는 우리 85년생들은 스스로를 저주받은 아이들이라고 불렸다. 7차 교육 과정의 첫 희생양인 짬뽕 7차 1세대 86년생, 수능 13번 보는 셈이라는 배틀 로얄 89년생 등 저주받은 아이들은 줄줄이 나왔지만 우린 그때 우리가 제일 불쌍하다 고 자부했다. 6차 교육과정의 마지막 수능이고 다음 해부턴 수능이 바뀌어 원점수도 없고 등급제가 된다고 했다. 400점 만점 수능의 마지막 세대라고, 재수하면 큰일 날 듯 이 말했다. 난 어차피 재수할 돈도 없는데 잘됐다고 자조 섞인 위안으로 정신을 무장 했다.
수능을 치르러 가야 하는 낯선 동네의 중학교는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에 있던 우 리 집에서 꽤 멀고 교통이 매우 안 좋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 두 번 갈아타야 하고 한 시간은 넘게 가야 한다고 울상이 돼 있자 그가 자기가 차를 빌려 오마 했다. 공장에서 쓰는 차가 있는데 말을 잘하면 하루 빌릴 수 있을 거라고, 수능 끝나면 그거 타고 인 천 앞바다도 보러 가자며 나를 설레게 했다. 듬직했다.
난 그냥 김밥 두 줄 사 가려고 했는데 그가 극구 말렸다. 김밥이 정 먹고 싶으면 자 기가 싸겠다고, 자기가 꼭 최고의 도시락을 싸주고 싶다고 했다. 일주일 전부터 곰탕을 끓여 놓았다. 반찬은 뭐 먹고 싶으냐고 자꾸 물어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건 기름져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둥, 저건 잠이 온다는 둥 토를 달았다. 먹기 좋게 아예 볶음밥을 싸겠다고 하길래 내가 농담으로 “난 볶음밥 안 좋아하고 짜장면 좋아하는데.” 했더 니 자기가 짜장면 만드는 법을 배워 만들어 주겠다고 하더니 짜장면이 불지 않을까 심각하게 걱정했다. 결국 김치와 소고기 불고기, 달걀프라이, 두부 동그랑땡, 오이무침, 김이 반찬으로 낙찰됐다. 평소에 쓰던 보온도시락에 다 못 들어갈 양이라 김치와 오이 무침은 새로 산 작은 반찬 통에 담겼다.
전날까지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비싼 형광펜에 평소엔 안 먹던 코코아 함량 높은 초콜릿, 빨대 꽂아 먹는 고급 커피까지 사치를 부리며 기분 좋은 과소비를 했다. 그는 나보다 더 긴장했다. 손목시계 배터리 좀 갈아달라고 시장에 보내놨더니 시험 보기 편 한 추리닝에, 늦잠 잘 수 있다면서 자명종까지 사 왔다. 나나 그나 아침잠 없기는 매한 가지라는 걸 알면서도. “아빠 핸드폰에 알람 있는데 그걸 왜 돈 주고 사.”하며 면박 을 주고 나서도 혹시나 행여나 하는 마음에 3분 차로 두 가지 알람을 다 설정해 놓았 다. 목욕재계하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더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잠이 안 왔다. 한참을 뒤치락거리다 찹쌀떡과 따뜻한 우유로 배를 채우고 잠이 들었다.
천 번 잘하고도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욕을 먹는 법이다. 천만번 잘하다가 중요 한 하나는 꼭 망치는 그런 재수 없는 인간이 우리 집에 살았다.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 에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고 가방에 넣어둔 수험표와 신분증을 괜히 이 주머니에 넣 었다가 저 주머니에 넣었다가 하며 유난을 떨다가 그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가 빌려 온 쏘나타를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좋은 차는 기대도 안 했지만 본디의 색깔조차 알아보기 힘든 차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굴러가면 되지, 뭐. 차에 시동을 걸 때부터 탈탈거림이 심하다 여겼지만 차라고는 버스와 트럭밖에 못 타본 나는 ‘자가용 도 소음이 심하네. 에너지는 보존되니까 차 효율이 떨어지겠군. 헤헤, 오늘 물리 다 맞 아야지.’ 했다. 대로에 나온 쏘나타 보닛에서 연기가 폴폴 나오다가 탈탈거림이 뚝 멈 추자 상황파악이 느린 나보다 그가 먼저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꺼진 시동을 다시 켜자 일 미터도 못 가 다시 꺼지고선 엔진에서 먹구름이 피어나왔다. ‘고삼 학생 수 능 보러 가던 도중 고물차 폭발로 사망’하는 신문 헤드라인이 눈앞에 지나갔다. 뭐가 고장 났는지도 모르면서 겁만 잔뜩 났다.
가방을 들고 미친 듯이 뛰쳐나왔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엄마, 하나님, 부 처님, 알라신, 천지신명님, 살려주세요. 제가 지은 죄가 많습니다만 오늘 죽기엔 너무 억울합니다. 뒤에선 차들이 빵빵대고 욕을 하고 난리가 났다. 그가 나를 불러댔지만 무 시하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집을 나섰으니까 서둘러 버스를 잡아타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자꾸 나를 부르며 따라왔다. 앞만 보고 뛰었 다. 일 년 내내 체육 한번 제대로 안 해서 그런지 50미터도 못 가 심장과 폐가 죽는소리를 해댔다. 그가 기어이 날 따라잡았다. “아이 썅, 지금 뻐쓰 타러 가야돼.” 했더니 택시를 타라며 돈 오만 원을 줬다.
돈을 낚아채고 다시 뛰었다. 그 주변이 택시가 자주 다닐만한 길목이 아닌 건 내가 더 잘 알았다. 일단 버스 정류장으로 뛰었다. 버스를 잡아타고 기사 아저씨한테 길을 물었다. 예비소집일 날 고사장에 다녀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았지만, 눈앞이 깜깜해 져서 다음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하는지, 버스를 타도되는지, 택시를 타야 할지 감이 안 섰다. “학생 수능 보러 가?” “네.” “그만 울어. 안 늦었어. 안 늦어.” 난 내가 울 고 있는 줄도 몰랐다. 기사 아저씨가 빈 택시 앞에 버스를 세워줬다.
택시를 타고 늦지 않을 거란 택시 아저씨의 확답을 듣고 나서도 안 그러고 싶은데 바보같이 계속 눈물이 났다. 그의 잘못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가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고 서러웠다. 택시기사가 건네준 티슈 한 통을 땀과 눈물을 닦는 데 다 썼 다. 시간이 넉넉하게 고사장에 도착해서 세수를 하자 눈물이 멎고 마음이 진정됐지만 터질 것 같이 쿵쾅대던 심장은 계속 저리고 아려왔다. 첫 교시 언어영역 시간 내내 왼 손으로 왼쪽 가슴을 꾹 누르고 있으니까 감독관이 자꾸 쳐다봤다. 커닝하는 거 아네요. 젖 만지는 거 아니라 심장 만지는 거예요. 그만 좀 봐요.
고사장을 나서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채점도 하기 싫어 마킹 한 답을 적은 수험표를 박박 찢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지나가던 한 수험생이 그 모습 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한참을 낄낄댔다. 막상 마음잡고 놀아보려고 하자 놀아본 적이 없어 할 게 별로 없었다. 전교에서 나 혼자 휴대폰이 없었던지라 친구들 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었고, 지금 친구를 만나면 수능 얘기만 할 텐데 듣고 싶지 않 았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못 부르는 노래를 부르다가 오락실에서 동전을 낭비했다. 태 어나서 처음으로 영화관에도 가봤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싸돌아다니다가 자정 이 훌쩍 넘어 집에 가자 그가 팅팅 부은 토끼 눈을 하고 앉아있었다. 말 한마디 안 하 고 바로 쓰러져 잤다.
매일 잠만 잤다. 친구들이나 그, 설사가 몇 점이나 맞았느냐고 할 때도 그냥 “망했 다.”고 했다. 문제에 오류가 있네, 없네, 복수 정답을 인정하네, 마네, 떠들 때도 남의 일인 척, 못 들은 척했다. 수능 성적표가 나왔을 때도 보기가 싫어 반으로 접어들고 울 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만 보고 있었다. 그래도 확인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궁금하니까. 살짝 펴보려는데 설사가 내 옆으로 와서 머리를 툭툭 쳤다. “너 한국사람 맞냐? 어? 어떻게 담임 과목을 이렇게 못 봐?” 한국 사람이라고 다 국어 잘할 것 같으면 언어영 역 평균이 만점 나오게요. “수학교육은 안 될 것 같고 과학교육도 간당간당한 데.” “어느 대학이요?” 퉁명하게 내뱉자마자 설사가 내 머리를 또 친다. 아프진 않은데 기분이 나쁘다. “서울대 가기 싫어? 이거 수능 끝나고 완전 정신이 나갔구만. 면접공 부 안 하지, 너?”
나 서울대 갈 수 있어요? 성적표를 보자 정말 언어만 잘 봤으면 대박인 점수다. 평 생을 겪고도 그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그냥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갔으면 됐을 텐데. 화 가 나서 유치한 복수인 줄 알면서도 그한테 몇 점 맞았는지, 어느 대학에 지원하는지, 말을 안 해줬다. 며칠 후에 지레 지쳐 말해주면서도 “훨씬 좋은데 갈 수 있는데 아빠 때문에 망한 거야. 원서 넣은 데 떨어져도 아빠 탓이고.” 하고 강조했다. 그는 “아빠 가 못났는데도 너무 잘해 줘서 고마워.” 했다. “그래도 엄마가 널 도왔구나.” 하길 래 괜히 밥상을 엎을 듯 화를 내며 “죽은 엄마가 어떻게 날 도와. 내가 공부해서 잘 본거지.” 했다. 합격이 확정되자 산더미 같이 쌓여있던 문제집이며 참고서를 불태우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었다. 어차피 수능 끝나자마자 다 까먹은 내용들이었다. 큰불이 날 것 같아 겨우 참았다. 그는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다. 엄마도 칭찬을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