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날 이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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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씀이야...
받아치실 줄만 알았는데 왜 저를 따라 하는 건데요, 천사님...!!!
"우리 예현이 잘 자버렸냐고 물었어."
"아 진짜, 이러면 내가 답할 수가 없잖아..."
"응? 뭐라고?"
헐 진짜 멍 때리면 사람이 멍청해지는구나.
이걸 직접 입으로 말해버렸다.
"아, 아니에요. 저는 잘 잤어요."
"응, 그래. 잘 잤으니까 다행이다. 그러면 나는 이제 씻고 나서 아침밥 준비할게. 너 배고플 테니까."
아, 이대로 가시면 안 되는데, 어제 일을 말해야 하는데...
"저기, 천사님!"
"응?"
"어제 무턱대고 천사님 탓이라고 한 거, 정말 죄송해요... 사실 천사님이랑 아무 관련도 없는데 너무 속상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하하, 괜찮아. 먼저 사과해 줘서 고마워."
"고맙다니요, 아니에요."
"아 그리고, 고마운 거 하나 더 있다."
"네?"
"어제 챙겨줘서 고마웠다고 얘기하고 싶었어. 사실은 어젯밤에 이미 말을 했는데, 네가 자는 것 같아서 못 들은 것 같길래, 다시 말하는 거야."
아, 어제 자는 척한 건데... 사실 들었는데... 또 말씀해 주시네, 다정한 천사님.
"네, 감사해요. 저는 이만 방에 들어갈게요."
"응 그래, 이따 밥 먹을 때 불러도 돼?"
"네."
휴우, 가까스로 천사님과 일은 잘 풀린 것 같다.
그런데 악마 놈한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대체 악마가 왜 화난 건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정수리 펀치를 날려주고 싶지만. 천사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로부터 받은 선한 영향력이 일단은 굽히고 보라고 말하고 있다.
'음... 그래, 천사님이라면 자기가 잘못한 게 뭔지를 몰라도 사과를 하시겠지.'
벌컥,
아뿔싸, 악마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쟤는 맨날 이럴 때만 방에서 나오더라???
"야, 여기서 뭐 하냐. 네가 그토록 걱정하는 천사님은 저기 있으신데, 불러드려?"
아 백대빈 저게 또 말을 저렇게 하네?
.... 아니, 설마 아직까지도 삐친 거야?
"네? 이미 뵙고 와서요. 딱히 불러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아니, 근데 너 말이야... 극존칭이 처음에는 귀여웠는데 이제는 좀 더 친밀한 게 욕심이 나서 그러거든? 그러니까 나한테 존댓말 좀 그만 써."
쟤는 또 뭐라는 거야. 제 혼자 할 말을 말벌처럼 톡톡 쏴대더니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존댓말을 그만 쓰래?
"그럼 제가 악마, 아니 그쪽한테 반말을 써야 해요?"
"한 번이라도 써줄 수 있지 않아? 내가 너하고 동거한지 지금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아, 네."
악마라서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드는 걸 어쩌라고...
"하, 답답하다 너도. 내가 너랑 그렇게 친해지고 싶다는 데 왜 아직도 몰라."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저 삐딱하고 짜증 나는 놈이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납득은 안 가지만 백대빈의 발언과 행동이 단순한 외향형에 그치지 않고, 나랑 친해지고 싶다는 주장을 뒷받침한 적은 많았다.
처음부터 그랬지. 마냥 못됐다가도 못나지만은 않은 쟤는.
"사람, 아니 악마 앞에 두고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냐.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는데 지금?"
"아니에요,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반말은 제가 조금 더 편해지면 쓸게요."
"어, 그러던가."
백대빈과 말할수록 속이 더 타들어가는 거 같다.
화해는 안 하더라도 그냥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어떻게 벗어나지. 뺨을 한 대 갈겨? 방으로 확 들어가 버려?
"얘들아, 밥 먹자."
'천사님 나이스 타이밍!'
/
"오늘은 로제 파스타다!"
"어, 좋네."
"헐, 제가 좋아하는 거! 너무 감사해요 천사님."
"하하, 맛있게 먹어 예현아. 나는 예현이가 로제 파스타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지~."
요새는 천사님처럼 다정한 천사가 인간 중에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매일같이 든다.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응? 왜 또 경계심이 많아졌을까?"
"네가 김예현이 이 파스타 좋아하는 거를 어떻게 아는데."
저게 천사님한테까지??????
저런 거 진짜 싫어. 밥 먹을 때까지 분위기를 저따위로 만들고 있어.
"예현이가 텔레비전 쇼에서 로제 파스타 먹방 하는 거 보면서 군침 흘리고 있길래 알았다, 왜."
"하..."
"어서 드세요 다들, 음식 식겠어요."
"어, 그래."
그렇게 우리 셋은 서로 스파게티를 다 먹을 때까지 얘기를 하지 않았다.
/
... 아. 속이 쓰리다.
불이 먹은 듯 화끈화끈하다가도 얼려진 듯 시리고...
뭐야 나 체했나... 체했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백대빈과 화해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밥이 안 넘어갈 것 같다.
집에서 나가라, 나가라 해봤자 안 나갈 거 다 아니까.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천사님과 악마의 방문 앞에 섰다.
똑똑,
뭐야, 왜 인기척이 없어. 둘 다 밥 먹고 자는 건가?
똑똑,
"야. 백대빈. 나와."
벌컥,
뭐야 문 바로 열면서 왜 지금까지...
"야, 김예현. 너 우리 방 요즘 자주 온다? 연재 불러줄까? 아니면 날 찾는 건가?"
"응, 할 말이 있어서."
"너 이제서야 내가 조금 편해졌나 봐? 무슨 친구처럼 반말하는 거 뭔데? 하나도 안 좋거든? 나 네가 찾아온 거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거든?"
저게 내가 기껏 자기가 원한다는 반말까지 실천해 줘도 난리야.
"시끄러워요. 아 근데 이 말 하려 했던 게 아니고......"
꼬옥,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