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들은 피할 수 있는 고통도 스스로 찾아 즐기며ㅋ 갖가지 객기 어린 짓들-태풍 오는 날 지리산 가기, 나이트클럽 기도들과 싸우기, 음주 후 바다에서 수영하기 등등)을 낭만이라는 미명하에 저지르다 하나둘씩 국가의 부름을 받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게 남들이 떠나갈 때 같이 떠났으면 좋았으련만, 신의 아들들(동네 방위 및 면제자)을 제외하곤 거의가 다 떠났는데도 여전히 영장이 나오질 않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같이 놀 사람이 없어 당시 대학에서 실시하던 병영 집체훈련을 술 마시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ㅋ 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휴학하고 집으로 내려와 6개월 방위 서고 있던 친구 녀석과만 어울리게 됐는데 이젠 노는 것도 지겨운데다 눈치도 보여 그저 둘이서는 저녁 먹고 나서 만나 동네 마실다니는 것으로 소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날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려 오랜만에 우리가 처음 당구를 배웠던 당구장엘 갔더니 아 글쎄 거기에 유흥 대장 녀석을 필두로 아직 군대 가지 않은 우리 또래의 백수란 백수는 거의 다 모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
뭐 동창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째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 마침 비도 오고 하니 셔터문 그만 내리고 우리끼리 당구 치면서 막걸리나 한잔하자고 해 그날 밤을 그 녀석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겁니다. 뭐 우리들이 조직을 결성해 곧 있을 선거에 개입해 군 면제를 받으려 한다나 어쨌다나..
말도 안 되는 이러한 소문이 돌자 더 이상 이렇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드셨는지 제 아버지는 하루라도 빨리 저를 입대시키기 위해 이곳저곳에 알아보시고선 제게 일주일쯤 뒤에 입대하게 됐으니 준비하라고 통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가 술만 퍼마시다 몸 만들 시간도 없이 갑자기 군대에 가게 됐는데 영장을 받아보니 뜻밖에도 육군이 아니라 포항에 있는 해병대 제2훈련단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는데 당시만 해도 해병대 하면 훈련은 차치하고 오도된 전통으로 악명 높았을 때라 그러기도 했지만 파병 가면 돈 많이 준다는 소리에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던 제 외삼촌과 이모부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와선 얼마 안 가 발병해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이 소식을 제 아버지가 아닌 이모로부터 전해 들으신 제 어머니는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혼자서는 어딜 다녀본 적도 없는 분이 퇴근시간을 못 기다려 거제에 있던 아버지 회사로까지 찾아오셔서는 "남들은 군대를 빼네 마네 한다는데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라며 따지셨다는데 그런어머니에게 당신께서는 "저 녀석 저거. 저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사고라도 칠까 싶어 그랬다"며 "힘들면 다 힘들지 어디 지만 힘들겠소. 그것도 못 견뎌내면 큰 놈 되긴 글렀지. 어딜 가든 다 지 하기 나름이니 우리 큰 아들을 믿고 한 번 기다려 보자"라고 하시더랍니다.
이렇게 해서 제가 오랜 백수생활을 끝내고 해병대로 입대하게 되는데...
(제가 지금 넋두리도 아니고 여자들이 그렇게나 싫어한다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대부분이 다녀와 식상한 군대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제가 훈련소에서 겪은 몇 가지 일들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 이를 남들에게 말했을 때 웃지 않는 사람이 없어 이를 들려 드리고자 할 따름입니다. 어쩌면 이것을 쓰기 위해 남들 앞에 내어 놓기 심히 부끄러운 글들을 써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쓰자고 하니 또 그 때 그 분위기와 느낌을 표현하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런 건 최양락씨 같은 분이 얘기로 풀어내시면 참 잘 할 것 같은데 그를 섭외할 수도 없고 말이죠ㅉㅉ
어쨌든 최선을 다 해 써 보도록 할테니 혹시 재미 없더라도
크게 나무라진 말아주세요. 제 역량이 그것 뿐인걸 뭐 어쩌겠습니까?ㅋㅋㅋ)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