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지도 어언 일주일 째 하임은 그동안 밀린 작업때문에 집에서만 지내다 싶이 했다.
이번엔 일러스트라기보다, 책 표지나 책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많이 맡았던 터라- .. 물론 이사 초반의 일이
간간히 맘에 걸리긴 했다. 부러 음악을 들을때면 이어폰을 쓰게 된다던지.. 아니면 티비 소리를 줄이고 본다던지..
근데 비서까지 불러서 난리친거 치고는 조-용 하다.. 아무 사람도 없는 것 처럼..
하임은 그린 밑그림에 손채색을 끝내고야 기지개를 쭉 편다- 말끔히 정리 된 집에 놓인 각종 인스턴트의 흔적들-
한숨을 쉬며 일어나 인스턴트 그릇들을 챙기고 분리수거를 위해서 나섰더니 복도에 왠 장정들이 가득 서있다-
잔뜩 자재들을 들고 옆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옆집????
쳐다보니- 그 중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어- 강진황씨?"
그 말많고 딱하던 비서가 이 장정들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진환은 빠르게 알은 채를 한다
"아- 안녕하세요 장하임씨- 잘 지내셨죠?"
싹싹하고 살가운게 아에 데이터베이스에 탑재된 사람같다.. 고작 한번 봤는데.. 더군다나 좋은 일이 아니기도 했고,
근데 저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다니 말이다.
"네, 강진황씨.. 안녕하세요-"
하임은 우물대며 대답을 한다.. 진환이었나 진황?
"강 진환 입니다- 매번 그렇게 부르시네요 "
유난히 오늘의 비서는 개운해보인다-
"그보다.. 이 사람들 다 뭐에요?? 며칠 조용하길래 별 일 없으신줄 알았는데요?"
"아? 그랬나요? 제 상사분 말씀하신 거라면 찾아뵌 그날 뒤론 호텔에 계세요...."
하임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진다.. 진환은 황급히 말을 덧 붙인다
"물론- 장 하임씨 때문은 아니고요.. 무척 급한 일이 있으셨거든요-.. 아..아마요"
아주.. 대단하시구만.. 내가 뭐 그 동안 큰소리 낸게 뭐가 있다고, 안들었으니 모르겠지만 푹신한 슬리퍼까지 신고
발소리도 안낼려고 주의했다고!! 그런데 아주 대-단 하시구만 절로 표정이 썩는게 느껴졌다-
"이 사람들은 뭐에요?"
진환이 한층 표정이 어두워진채 덧붙인다.
"제가 장 하임씨께 단칼에 거절당한거.. 상사분 집엔 하라고 하셔서요"
마치, 가련한 성냥팔이 소녀라도 된듯 눈빛이 아련아련하기 그지없다.
"그게 뭔데요..?"
뭐였더라.. 돈은 아닐테고
내가 그때 이 사람 말을 귓 등으로도 잘 안듣긴 안들었구나.. 돈에 포커스가 맞춰져서..
곰곰히 생각해보려는 찰나 진환이 앞서 대답해준다.
"방음벽이요.... 위에 희게 덮을꺼라서 얕은 벽으로.. 말하자면 간단한 리모델링이죠-
신경 쓰이실까요? 아무래도 소음이 약간은, 있겠죠 공사니까-"
하임도 소음이 싫은건 마찬가지다.. 인상이 찌푸려지는건 참을 수 없다.
표정을 살피던 진환이 재빠르게 말을 건다.
"그렇다면.... 하임씨도 호텔을???, 잡아드릴까요?"
"아뇨- 전 그정도로 슈퍼 예민은 아니니까..
낮 동안에 한 두시간은 나가서 작업하면 된답니다, 그래도 5시 전까진 끝내주셨으면 좋겠네요
별난 이웃 둔 덕에 , 제가 고생이 많네요.. 제가!"
하임은 새치름 해져서 입을 삐죽거린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만..
진환은 조심스레 표정을 감추고 웃으며.. 다시한번 말을 건다
"계좌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엥.. 이건 또 뭔소리래
"왠 계좌번호요?? 집 안나간다니까요?"
"아니- 그거 말고 소음때문에 나가서 그림 그리셔야 하잖아요- 그거 피해보상 꼭- 해드리라고
저의 갑님들 중 슈퍼 갑께서 지시하셔서요
꼭 드려야 된답니다- 이정도는 받으셔야죠- 옆집이 공사를 하는데...가르쳐 주세요-"
수퍼 갑? 갑이 여러명이야??.. 뭐 피해보상이라.. 이거까지 안 받을 이유는 없나..
맘같애선 돈보다 미안하단 그 잘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사과를 받고 싶지만.. 뭐 불가능할거 같으니
"번호 아니까.. 문자로 보내 드릴께요-..."
.........그러고 터덜터덜 복도를 걸어가다 갑자기 뭔가가 번득 떠오른다 하임은 돌아와 진환에게 눈을 치켜뜨며 묻는다
"근데- 저 그림 그리는건 어떻게 아셨는데요???"
-
순간 진환은 등골이 오-싹하다- 자신도 모르게 하임 신상 명세에 나와 있던걸 술술 분것이다...
이것까지 알면 이 강단있는 여성은 고소라도 할지도 모르지,
진환은 일단 버벅대다 말을 어떻게든 이으려고 한다..
하임의 눈초리가 매섭다.. 아..... 이건 진짜.. 진짜 실수라고..
"보..보통 작업이란게- 보통은 예술.. 으 저 예술계통의 이야기고--- 그리고.."
그 순간 하임의 접힌 셔츠부분에 노란 물감이 튀어 있는게 보인다... 오 이런게 럭키 스트라이크지!
진환은 최대한 천연덕 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리고 "저어기- 팔에 물감도 묻으셨네요-"
하임은 그제야 납득한듯.. "아아... 네- ..." 여전히 의심 가득한 표정이지만...
"그럼 문자 남길께요- 전 분리수거가 바빠서요-"
하임은 진환을 스쳐서 슥 지나간다. 거참 작고 강단이 있는 여성일세- 저 정도면 우리 또작이랑 붙어도 이길 승산 있을꺼 같은데
또작.... 또라이 작가님- 진환은 슬슬 웃다가 벽 감싸던 아저씨에게 소리를 친다 - "아!!! 거긴 그렇게 하심 안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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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정원에 딸린 테라스에서 지혁의 어머니가 꽃꽃이를 하고 있다- 날은 이제 조금 더울정도지만 , 어머니는 여전히 얇지만 카디건을
걸진 채다- 온통 흰 꽃으로 도배된 조그만한 도자기에 풍성한 꽃을 담는 지혁의 어머니를 딱한 눈으로 응시하던 지혁의 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이 ,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모처럼 쉬시는 날인데- 골프 라도 치러 가시지 그러셨어요"
정없게- 지혁이 그런 일을 당한뒤 내 여자인 이 여자는 마치 자신의 죄라도 된듯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입에 달고 살더니, 살가운 말도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다.
".. 아직도 가끔 가는거야?.. 날도 더운데 그냥 시키지 그래, 고생하면서 뭐하러 굳이 가 마음만 상하고 와.."
아내는 말이 없다. 대답할 말도 마땅치 않은 것이다.
"고생은요.. 고생은 내 아이랑 그 아이가 고생이죠"
회장은 지혁 얘기에 마음 아려하는 아내가 안쓰러울 따름이다- 지견이 놈과 다르게 지혁이는 처음부터 그랬다.
한번 맘먹으면 해 내는 신념도 , 끈기도, 헌신적인 사랑도... 또 ... 끝없이 번뇌하는 이 성미도 오로지 아내만 닮은 아이었다
고운 얼굴까지도..
"날이 이제 더운데 아직도 카디건이야? 신경 쓰이면 레이저 수술을 하지-"
지혁의 어머니는 어깨 쪽에 손바닥만한 화상 흉터가 있다. 젋은 날엔 그게 신경쓰여서 견딜수가 없었더랬다.
지혁의 다리를 보고 나니.. 이런 흉터 하나로 그런 생각을 했었단 거 자체가 죄스러웠다. 내 아이의
튼튼하고 곧던 다리에 생긴 무시무시한 흉터들, 새 살이 덮히기는 할까.. 의문스러울 만큼 크고 깊이 패인 그 상처들...
"내 아이 흉터는 평생 레이저로 수술해도 다 지울수 없을텐데 전 고작 커봐야 손바닥만한 흉턴데.. 그냥 제가 팔 타는게 싫어 입은거에요
마음 쓰지 마세요-.. 그보다 강비서가 별말 안해요?"
회장은 차를 마신채 말을 잇는다.
"그애 얼굴 보는건 나보다 당신이 더 많이 보잖아.. 왜 강비서 이야기를 물어-"
"그애가... 저한테 말 안한지가 언젠데요-... "
지혁의 어머니는 그저 꽃에 집중하는 척.. 꽃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견딜수 없다는듯.
"쓸쓸해 하지마- 누구나 그럴 만큼 , 인격, 성격 훅 바뀔만큼 독한 수술은 그앤 수십번도 더 했어... 누구나..성격 바뀔만 한 일이었잖아
그 아이도 이제 설 준비를 해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주저 앉아 있을수만은 없어-... 하민이 딱하고 안됬지만..
그 아이.. 평생 그렇게 둘순 없잖아... 안되면 집으로 들여서라도 해결 봐야지.. 언제까지.."
회장은 자신이 말 하면서도.. 그럴수 없다는걸 안다. 지혁의 고집은 아무도 못 꺾었다. 예전에도... 혹은 지금은 더.
"그러지 마세요.. 그 아이 성미 다 아시면서... 그 아이 겨우 자리 잡았어요- 예전 처럼 또 그러면.....저 그럼 진짜 그땐 못살아요..
내가 알았던 내 아들이.. 지금 지혁이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언젠가는.. 돌아 오겠지요 ,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
지혁의 어머니는 눈가를 살짝 찍어낸다..
"... 아직도 지혁이가 의사를 자주 만나나?"
"아마요.. 글 쓸때 평정심 잃을까봐-..
약도 먹고 있대요- 잘 아는 의사니까 잘 처방했겠지만.. 잠도 통 못자는것 같고..
뭘 먹는건지 냉장고는 늘 텅 비워져있고.. 있는거라곤 물 뿐이라고 하니.... "
" 돈이 있어도... 뭘 해도... 돌이킬수가 없으니...... 내가 아끼는 내 아들은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건지.. "
어머니는 꽃꽃이하던 손길을 멈추고.. 조용히 말을 한다
"아직 그 아이에요, 시간이 답은 아니겠지만- 살다보면 잊혀지는 것도, 다시 돌아오는 것도 있겠죠"
회장은 한숨을 내 쉬고 한숨은 짙은 초여름 아지랑이에 섞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