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을 보고 있던 치훈은 고개를 숙이며 신발로 바닥을 차고 있다. 그런 치훈의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폰을 놓고 커피머신 앞으로 가서 정리정돈하는 슬비에게 묻는다.
"누구? 남자친구? 애인? 아닌 썸?"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씀하셨던 과정을 다 거쳤던 사이?"
"썸 타다 남자친구로 그러다가 애인까지 근데 왜 그렇게 전화를 받아"
"모르겠어요. 그냥..."
"벌써 권태기?"
"아니에요. 제가 좀 못된아이라 마음이 뒤틀려서 그럴거에요"
"그 친구는 대학가는구나?"
"네, 사장님처럼 엄마아빠가 부자거든요?"
"ㅋㅋㅋ 그래 정리 끝났으면 여기로 와 봐"
슬비는 마무리를 하고 다시 치훈이 앉아있는 테이블 앞에 가서 서 있다.
"눈 감고 손 내밀어 봐"
"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말고 눈 감아"
슬비는 눈을 감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손에 뭔가가 놓인 듯한 느낌이 딱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꾹 참고 있다.
"이제 눈 떠"
눈을 뜨면 손에는 열쇠가 놓여있다.
"이건 이 카페 열쇠야 자동도어 비밀번호는 톡으로 보낼게"
"네 고맙습니다"
"오늘 수고했어 그럼 내일보자"
치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슬비의 머리를 쓰담쓰담해주고 웃으면서 뒤돌아 나간다. 그 모습에 몇 번이나 꾸벅 인사를 하고 있는 슬비.
혼자 남아 조그마한 카페지만 일일이 안을 둘러보고 한번씩 손으로 만져도 보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었다. 서둘러 카페를 나와 문을 잠그고 다시 확인한 뒤에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아침.
겨울방학이라 늦잠을 잘 거라고 생각한 슬비엄마는 깨우기 위해 슬비 방에 들어가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일찍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아침밥은 먹고 가야지"
걱정이 되는지 폰으로 전화를 하지만 받지 않는다. 그냥 포기하고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 시각, 슬비는 이미 카페에 와서 원두에 대한 메모가 적힌 노트를 보면서 공부를 하고 어제 배운 과정을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테이블에 놓인 폰은 계속 울리고 있지만 듣지 못하고 카페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이 되어 달려 온 치훈은 카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면 슬비가 서 있다.
"어서오세요."
하며 뒤돌아 서면 치훈이 서 있고 슬비가 달려가 인사를 꾸벅한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도대체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야"
"공부도 하고 오픈 준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난 또 안 나온 줄 알고 이렇게 부랴부랴 나왔잖아"
"대충 입어도 간지나는데요? 사장님"
"언제부터 나와 있었던 거야"
"새벽 일찍"
"꼭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아니다."
"네 저 공부 못해서 일찍 나와서 어제 배운 것 무한 반복하고 있었어요"
"그래 참 잘했어요."
치훈은 긍정적이고 뭔가 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슬비가 마음에 들었다. 좀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오늘은 손님을 맞이하고 직접 샷도 내려보자"
"네, 사장님..."
점심시간이 되어 몇 명의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테이블에 앉아있다. 메뉴를 결정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슬비 앞에 서서 커피를 주문한다. 그와 동시에 치훈과 슬비는 커피를 만들어 쟁반에 놓고 슬비가 서빙을 한다.
"주문한 커피 나왔습니다"
손님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슬비는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서 있다. 하지만 그런 슬비의 존재가 부담스러운지 눈치를 보며 마시는 것을 눈치 챈 치훈이 얼른 다가와 슬비 옆에 서서 말한다.
"오늘 처음 온 알바생인데 처음 맞이하는 손님이라 소감을 듣고 싶어서"
"커피 맛이 다 그렇고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긴 좀 다른데요?"
"나쁘지 않아요."
"고맙습니다. 앞으로 자주 들러주세요"
"네 그럼"
그 말을 듣고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슬비가 걸음을 옮겼다. 치훈 역시 손님 말에 슬비를 다시 보게 된다. 그 이후 몇 명의 손님이 다녀간 뒤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테이블에 나와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