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학폭의 다양함.
성제가 중앙에 과녁판을 그린 라면박스를 내게 씌우고
나를 교실 뒤에 세웠다.
그리고 재크나이프를 던졌다.
- 퍽!
재크나이프가 라면박스를 뚫고 들어왔다.
온몸에 소름을 돋았다.
느낌이 더러웠다.
성제가 던지는 재크나이프는 정확하게 과녁에 꽂혔다.
- 6점짜리 부탁함다!
- 감사함다, 이번엔 7점짜리로 부탁함다!
성제 패거리가 양쪽으로 갈라서서 외치는 점수에 따라
성제가 던진 재크나이프는 과녁에 적힌 점수를 뚫고 들어왔다.
얄밉게도 힘을 조절해 내 몸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했다.
어쩌다 실수로 힘을 조절 못 해 과녁을 뚫고 내 몸에
들어올 때는 살갗만 상처를 냈다. 쓰라렸다.
처음엔 성제가 나를 향해 재크나이프를 던질 땐 무서워 울었다.
그러다가 겁이나 오줌을 지렸다.
잘 땐 깜짝깜짝 놀라 잠을 깼다. 악몽에 시달렸다.
갈수록 나는 속으로 빌었다.
성제가 실수로 잘 못 던져 얼굴을 맞추든가
아니면 목젖을 맞춰 죽여줬으면 기도했다.
재크나이프 던지는 장난은 주로 ‘쓸비’
쓸데없이 비대한 음악 선생 시간에 했다.
어묵 국물 속에 든 머리카락까지 찾아내는 ‘쓸비’가
눈에 뭐가 씌었는지 성제가 재크나이프로
나를 과녁 삼아 던져도 장난이라고 했다.
오히려 라면박스를 뒤집어쓰고 장난친다며
대나무 몽둥이로 내 머리를 때렸다.
- 더 쓸까요? 계속 쓰면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해질 거 같아서...
여형사는 내가 쓴 글을 읽었다.
그제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 제발 부탁합니다, 형사님... 내가 살 길을 찾을 때까지
성제를 붙잡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 그 정돈 내가 할 수 있어, 최대한 오래 잡아둘테니 걱정 마...
진술 중간에 성제가 재크나이프로 찔러 상처가 난 내 등을
여형사가 핸드폰으로 여러 각도로 찍었다.
그때, 갑자기 서장실에서 여형사를 불렀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형사가 나갔고 대신 김형사가 질문을 던졌다.
김형사의 질문에 아는 것은 대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살해당한 재단의 여직원과 성제의 관계 아니면
성제 집안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나는 떠도는 소문에다 내가 상상한 거를 플러스 하고,
성제에 대한 복수심까지 덧붙여 복합적인 내용을 창작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뜸 죽은 여직원도 동네 누나처럼
성제 패거리들이 팔과 다리를 잡고 성제가 겁탈하는
것을 혹시 목격하지 않았느냐?
목격했다면 확 치미는 성욕을 느끼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 장소가 어디냐고 넘겨짚었다.
- 관음증 말하세요?
- 어 그런 비슷한 거...
- 보지도 않았는데 성욕이 치밀 이유가 없고요, 봤다면 난 바로 신고하고요...
형사 아저씨가 지금 나를 넘겨짚는다는 것을
눈치 못 챌 정도로 제가 띨빵하지도 않고요,
혹시... 형사 아저씨가 관음증 있으신 게 아니고요?
- 야 말을 해도... 형사는 의심나는 건 다 물어봐야 하거든,
그게 형사야, 형사는 경찰의 꽃이야, 형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공치사를 남발하는 김형사가 보기 싫었다.
- 가도 되나요?
- 그래, 그래 가... 잘 가,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방금 한 말은 없었던 걸로 하자...
흔히들 말하는 참고인 조사만 받고
나는 수사과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러나 성제는 따로 불러 다른 취조실에서
재크나이프 지문 검사 등 동네 누나 자살 건,
며칠 전에 일어났던 교직원 살인사건,
전에 뒷산에서 일어났던 미결상태인 몇 건의 성폭행과 살인사건에
혐의를 두고 조사를 받았다.
아무리 아버지가 그 지역 국회의원이고
막강한 사학재단을 가졌다고 해도 풀려나오기
쉽지 않았다.
특히 여형사 남편이 될 다른 팀 반장인 장형사가
신부 얼굴을 망가뜨려 난 것에 광분하더니
상해죄로 고소까지 해 그 괘씸죄로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아마 경찰서장이 빨리 풀어주라는 닦달에도 소용이 없었던 것 같았다.
허술하게 만든 휴게실에서 기다리던 엄마와 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
- 엄마 뭐 하는데?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 니 아버지가 하도 여길 들락거려서 그만...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엄마였다.
항상 당당했고 누구한테도 기죽지 않았다.
만일 김일성이나 김정일 앞이라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당신 뭔데 할 엄마였다.
그런데 아들이 경찰서에 갔다고 하니까 경악했고,
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엄마를 눈물 질금거리게 했다.
- 아무것도 아니지?
아버지가 무덤덤하게 물었다.
- 그럼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참고인으로 경찰서에 간 거뿐...
그때, 경찰서 주차장에 세워 둔 벤츠 차에 타고 있던
성제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 우리 성제는?
- 몰라요, 다른 방에서 취조받는 거 같은데요...
- 취조? 너 왜 그랬어? 우리 성제한테.
- 뭘요?
- 니가 우리 성제 모함했다며? 살인자라고 소리쳤다며?
- 진실은 밝혀지겠죠...
- 뭐, 내가 돈까지 줬잖아?!
- 내가 갚아줬잖아요!
엄마가 버럭 소리쳤다.
- 엄마, 무슨 소리야?
- 가자, 가자, 제수씨 먼저 갈게요, 나중 선거 사무실에서 봅시다.
총선 투표 사흘 전이었다.
아버지가 서둘러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경찰서 주차장에 세워 둔 QM5에 올라탔다.
아버지가 운전하고 엄마가 아버지 옆자리
조수석에 앉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차가 움직였다. 경찰서 정문을 빠져나갈 즈음
갑자기 내가 엄마 가슴 속에 손을 넣어 그 큰 젖을 만졌다.
목이 처진 러닝셔츠 속에 출렁대던 그 수밀도 젖가슴을...
엄마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차가 정문 앞에서 쿨럭거렸다.
아버지가 내 돌발행동에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이었다.
정문을 지키던 의경이 고개를 숙여 쳐다봤다.
- 아버지 죄송해요, 주인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어릴 때가 갑자기 생각나서...
엄마 젖은 물컹물컹하면서도 탄력적이었다.
엄마 젖을 만지고 잠들고 싶었다.
엄마 젖을 빨고 엄마의 모성애를 느끼고 싶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엄마 자궁속으로 들어가 눕고 싶었다.
그 속은 오직 나만의 세계니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이 엄청난 파도를 어떻게 서핑하고
헤쳐나갈지 암담함이 엄습했다.
- 몽대야, 왜 뭔 일 있냐? 성제가 살인자는 또 뭐고?
아버지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고 안쓰러워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 아들, 무슨 일인데, 엄마 알면 안 돼? 그래 만져라, 만져, 실컷 만져라, 넌 내 아
들이니까, 니가 먹고 큰 이 젖, 얼마든지 만져라, 당신 이상하게 생각 안 하죠?
-그럼, 내 죽기 전까진 공동 소유지...
아버지 뒤로 자리를 옮기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 몸을 사렸다.
- 하지 마, 하지 마, 난 간지럼 많이 탄다, 말이야.
아버지 가슴 속에 손을 넣었다. 따뜻했고 탄탄했으며 딱딱했다.
다시 엄마 뒤로 가 엄마 목을 사뿐히 안았다.
엄마는 놀라지 않고 내 손을 다독여 줬다.
- 엄마, 사랑해...
-나두 우리 아들 사랑해...
- 아빠, 징그럽지만 아빠도 사랑해요...
- 그래, 나도 우리 아들 하늘만큼 사랑한다...
엄마는 울컥했다.
평상시 아들 사랑해, 하면 기겁을 하고
제발 속으로 말하라던 아들이 오늘은 무슨 일인지
자기 입으로 말하니 뭔가 말 못 할 이유가 있는 거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렇다고 속 시원하게 말하라고
다그쳐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닌 것 같고...
엄마와 아버지는 조심스러워하며 내 입만 열기를 기다렸다.
아들이 한참 예민한 고2니까.
- 일본 갈래요...
- 뭐?!
뜬금없는 내 말에 엄마가 화들짝 놀랬다.
- 그래, 가...
아버지는 내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는지 순순히 허락했다.
-언제?
엄마가 물었다.
- 지금, 당장...
- 뭐?!
엄마와 아버지가 놀라 동시에 돌아봤다.
- 아버지 앞에 차...
- 어, 그래...
- 내가 자주 가는 떡볶이집에 가방 맡겨놨어요, 가다가 찾아가요...
- 끝내 말 안 할래?
엄마는 내 고집을 알기에 그래도 혹하는
심정으로 내가 갑자기 일본 가려는 이유를 물었다.
- 작은 아빠 집에 가서 차차 전화로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빨리 여길 뜨고 싶어요...
- 그러자...
아버지는 더 묻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했고
엄마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니가 누구 아들인데...
나는 엄마와 아버지를 떡볶이집 부근 차 안에 있으라 하고
체육선생 어릴 때 친하게 지냈던 동네 누나 혼자서 하는
떡볶이집에 갔다.
이혼하고 이곳에 이사와 터전을 잡았다고 했다. 아이도 없었다.
영계 킬러라고 소문이 났다. 총각 딱지 떼는데 전문이라고 했다.
생긴 것은 완전 그랬다. 색기가 줄줄 흘렀다.
그래서 엄마 아버지가 아주머니를 보고 혹 오해할까 봐
혼자 갔다 온다고 했던 거였다.
아주머니가 처녀 때 한참 백악관 나이트클럽 죽돌이 할 무렵
아버지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한텐 한 번씩 추파를 던졌지만, 그냥 천성이었다.
거기까지고 더 진행하지 않았다.
술을 과하게 마신 날 아주머니가 그랬다.
아버지가 무서운 것도 있지만
왠지 동네 오빠 아들을 잘해주고 싶고
보살펴 주고 싶은 보호 본능 같은
모성애를 느꼈다고 했다.
그곳엔 고등학생들은 자주 오지 않았지만,
저학년 중학생이나 초등학생이 많이 찾았다.
성제와 그 패거리들이 오지 않아서 아지트로 삼은 것이었다.
사실 나는 친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