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동굴.
몽은 그렇게 우보(禹步)를 이용한 축지법을 이용하며 걸어갔다. 물론 아직은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느렸지만,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은데도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 못지않았고, 한번 내딛을 때마다 접히는 거리는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리는 것보다 훨씬 힘이 덜 들었다. 그것은 마치 천천히 뒷짐을 지고 산책을 하는 것과 다름없는 그런 것이었다.
몽은 그렇게 걸어가며 축지법을 익히는 한편 단전에서 기(氣)를 끌어올려 오른손으로 보내는 것도 꾸준히 연습을 했다. 한번 기를 끌어올려 오른쪽 어깨를 통해 오른팔과 오른손으로 보냈던 그 순간의 희열을 잊지 못해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해서 그것을 반복해보는 몽이었다. 물론 그것을 반복할수록 더욱 수월하게 더 많은 양의 기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걸어서 공청석유가 있는 곳에 도착할 즈음 멀리서 시원하게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몽은 자리에 멈춰서, 신물지도를 꺼내 방향을 확인했다. 신물지도에 나타난 공청석유의 위치는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오는 바로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몽은 다시 한 번 방향을 확인하고는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곳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이 쏟아지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몽이 산길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려 퍼지며 눈앞에 엄청나게 높은 폭포가 나타났다.
폭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쏟아지는 물의 양이 제법 많은데다가, 높이가 엄청나게 높아서 그런지 웅장한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웅덩이가 깊게 패여 있었고, 아래로 유유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몽은 웅장한 폭포의 위용에 놀라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한 번 신물지도를 펼쳐봤다. 신물지도는 폭포의 아래 웅덩이도 아니고, 폭포 너머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는 바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 이상하네..... 어디를 말하는 거지?”
‘안 좋아.’
뜬금없이 들려오는 백강의 말에 몽이 물었다.
“네? 뭐가 말이에요?”
‘저기, 폭포의 한 가운데 말이야. 기운이 좋지 않아.’
백강의 말에 몽이 자세히 살펴보니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폭포수의 뒤편으로 조금 검은 부분이 보였다. 분명 물의 색깔이 그곳에서 조금 달라졌다가 그 부분을 지나서 원래의 색깔로 돌아오는 것이 그 뒤편에 동굴이 있는 것 같았다. 몽의 눈에도 그 정도로만 보일 정도였으니 보통의 사람들은 결코 그곳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었다.
백강의 말 때문에 몽은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백강이 또 말했다.
‘저기에 꼭 들어가야 하냐?’
백강의 말에 몽이 펄쩍뛰며 말했다.
“그럼요! 지금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흠.... 그래. 뭐가 있을 진 모르겠지만 한번 올라가 보기나 하자. 그나저나, 너 저기까지 올라갈 수는 있겠느냐?’
백강의 물음에 몽은 폭포를 올려다보았다.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그 위에서 쏟아지는 거센 폭포. 그것을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오를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곳곳에 조금씩 울퉁불퉁한 곳들이 있어서 그곳에 손과 발을 딛고 오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몽은 조심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아래쪽으로 다가갔다. 떨어지는 폭포수에서 흩어진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려놓고, 공기 중으로 차츰 흩어지며 그 다음 물방울들에게 무지개를 그리는 역할을 넘겨주고는 얼른 사라졌다.
물방울들 중에서도 굵은 물방울들은 지상으로 쏟아지며 땅을 축축하게 적셨다. 폭포의 절벽 아래로 다가간 몽은 이리저리 튀는 물방울들로 인해 금세 옷이 흠뻑 젖었다.
몽은 우선 폭포가 떨어져 내리는 곳 옆으로 절벽을 기어 올라가서 동굴이 있는 높이까지 도달하면, 거기서 몸을 옆으로 옮겨 폭포를 향해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몽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돌부리가 튀어나와 있거나, 손을 넣을 틈이 있는 곳을 더듬으며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느리긴 했지만 꾸준하게 조금씩 위로 오르던 몽은 중간쯤 오르다가 그만 이끼가 낀 돌에 손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히익!”
몽은 깜짝 놀라며 얼른 반대편 쪽 손에 힘을 꽉 주어 겨우 절벽에 매달려있을 수 있었다.
“휴우...”
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이끼가 덜 끼어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어 확인을 한 다음 그곳으로 몸을 실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올라가서 마침내 몽은 동굴이 있는 높이까지 절벽을 올랐다. 이제 남은 것은 쏟아지는 폭포수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물살은 절벽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에 물 자체가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절벽 면에는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어 이끼가 많아 아주 미끄러워, 무척이나 위험했다. 몽은 동굴이 있는 곳을 한번 쳐다보고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몽은 조심조심 절벽을 기어서 옆으로 몸을 옮겼다. 조금 전 이끼에 미끄러졌던 터라 몽은 더욱 조심스럽게 몸을 옮겼다. 물기가 많은 곳이라 조금 전 기어 올라오던 곳보다 훨씬 더 이끼가 많았지만, 온통 신경을 집중시켜 조심스럽게 옮겨간 덕분에 이번에는 다행이도 미끄러지지 않고 무사히 동굴에 이를 수 있었다. 동굴속에 발을 들이고서야 몽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 왔다.”
동굴의 바닥은 물기로 축축했고, 동굴 속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몽은 서늘한 기운이 흐르는 동굴에 들어서자 얼마 전 나찰 람바(藍婆)를 만났던 것이 떠올라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불쑥 일어났다. 그때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백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냄새가 난다. 냄새가.... 좋지 않아.’
백강의 말에 몽이 움찔하며 물었다.
“예? 무....무슨 냄새요?”
몽의 말에 백강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쯧쯔.... 너는 이 지독한 냄새가 안 나느냐? 인육과 피가 썩어가는 냄새 말이다! 나찰 녀석들의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구나!’
백강의 말에 몽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뭐....뭐라구요? 나찰?”
‘그래. 네가 생각하는 바로 그 나찰 말이다.’
백강의 말에 몽은 심장이 쿵쾅거리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몽이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그렇게 서있자, 백강이 다그쳤다.
‘이놈아! 안 들어가?’
“아니, 나찰이 있다면서요!”
‘그래! 너는 꼭 들어가야 한다면서 이놈아!’
“그....그렇긴 하지만....”
‘그럼 이렇게 멀뚱히 서서 시간만 잡아먹지 말고 얼른 들어가 이놈아!’
몽은 백강의 재촉에 물었다.
“아니 뭔 뾰족한 수라도 있으세요?”
백강이 몽에게 시답잖은 소릴 한다는 듯 말했다.
‘이 녀석아! 그럼 너는 내가 네 팔에 장신구 대신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
몽은 백강의 재촉에 천천히 동굴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몽은 전에 봤던 입가에 피를 묻히고, 이에는 사이사이에 사람의 살덩이가 끼어있는 무섭고 잔인한 모습의 나찰을 떠올리자 한층 더 심장이 요란하게 쿵쾅거리며 요동을 쳤다.
그 소리가 몽의 귀에 어찌나 크게 울리는지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아 혹시 나찰이 듣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몽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동굴 깊숙한 곳에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소리 같았는데, 너무 멀어서 그 소리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쇠 긁는 소리 같은 것이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몽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얼마 전 만났던 나찰의 목소리와 아주 흡사한 소리였다. 정말 백강의 말대로 앞에는 나찰이 있었던 것이다. 몽은 그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몽은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되어 백강에게 목소리를 낮춰 말을 건네려다가, 백강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기 앞에 나찰이 있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왜? 두렵냐?’
‘그야 당연하죠!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이 저기 앞에 있는데!’
‘그렇게 겁이 많은 녀석이 신물을 찾겠다고 혼자서 천지사방을 누비고 다니냐? 엉? 그리고. 저 녀석들은 사람만 잡아먹는 녀석들이 아니야. 귀신들도 자기들보다 약한 귀신들은 잡아먹어 버리지.’
‘귀....귀신도 잡아먹는 다구요?’
‘그래. 아무튼 더 이상 잔말 말고 어서 가봐.’
몽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지만, 백강이 재촉하자 조금씩 동굴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소리가 나는 곳이 점점 더 가까워지자 제법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는데, 그것은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둘이서 나누는 대화같이 들렸다.
“이봐! 네가 먼저 양보하면, 내가 반만 마시고 너한테 넘겨주겠다니까 정말 왜 그래?”
“아니! 너야말로 내가 먼저 반만 마시고 너한테 넘겨주겠다니까 왜 양보를 못하는 건데? 먼저 양보하면, 내가 고기 손질할 때 잘 드는 이 칼도 주겠다니까!”
동굴 속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나찰들 중에서도 무염족(無厭足) 둘이서 공청석유를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는 소리였다. 원래 둘이서 함께 붙어 다니며 사람들을 잡아먹거나, 시체를 파먹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음기(陰氣)가 강하게 흐르는 이곳에 낮 동안 몸을 숨기기 위해 들어왔다가 공청석유를 발견하고는 어느 한쪽도 상대방을 믿지 못해 먼저 반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지금까지 십년이 넘도록 다투고 있는 중이었다. 둘은 그렇게 싸우다가 배가 고파지면 함께 나가서 사람이나 썩은 시체를 먹고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다투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몽은 두 나찰이 나누는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전에 나타나서 자신을 나찰로부터 구해줬던 신장(神將)을 떠올리고선 얼른 천서를 품에서 꺼냈다. 그때 백강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잠깐!’
몽이 백강의 외침에 멈칫하며 물었다.
‘왜요?’
‘너...지금 신장을 부르려고 하는 거냐?’
‘네. 저번에도 나찰을 잡아주셨어요. 비록 아직 형편없는 수준의 저를 무척이나 못마땅해 하셨지만, 그래도 나찰은 아주 가뿐하게 잡아주셨거든요.’
백강은 아무리 사천년이 된 백매라고 해도 귀(鬼)의 존재이기 때문에 여전히 신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몽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백강이 말했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어쨌든 너도 나찰을 잡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언제까지 신장을 불러내서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나찰을 잡을 거야?’
‘그야.... 저도 제가 잡을 수 있으면 좋죠.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니까....’
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강이 몽을 나무랐다.
‘이 녀석아! 그렇다고 무작정 불러내면 네 실력이 조금이라도 늘 것 같냐? 우선 부딪혀보고,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게 되었을 때 도움을 청해야지!’
백강의 질책에 몽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몽이 생각해도 백강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백강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직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者皆陣烈前行)은 시전 할 수 없을 테고.... 그럼 간단히 봉(縫)으로 하자! 우선,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내어 너의 오른손과 왼손에 봉자를 쓰고 오른손으론 네가 공력을 끌어올렸던 그대로 기를 펼치며 나찰 녀석을 너의 공력의 그물에 가둔다고 생각을 하거라!’
‘그럼 왼쪽 손은요?’
‘왼쪽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뻗기만 하면 돼! 할 수 있겠느냐?’
‘네. 한번 해볼게요.’
지금까지는 단순히 공력만 끌어올렸지만, 이번에는 공력을 끌어올려 기운을 펼치면서 공력의 그물이 만들어지고, 그것으로 나찰을 가둔다는 생각까지 해야만 하는 것이라 조금 까다로웠다. 몽이 왼손의 검지를 깨물어 피를 냈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봉(縫)자를 썼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 검지를 깨물어 피를 냈다. 왼쪽 손으로는 왼손바닥에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가 흐르는 오른쪽 검지를 이용해 왼손바닥에도 봉(縫)자를 쓰고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후우... 침착하자.. 침착...'
그때, 나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흠... 이봐. 혹시 신선한 피 냄새가 나지 않아?”
“어디서 수작이야? 이런 외진 동굴에서 신선한 피 냄새가 난다고? 말 같잖은... 음?”
수작 부리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던 나찰이 갑자기 신선한 피 냄새를 맡고 말을 멈췄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외진 곳에서, 더군다나 폭포의 뒤에 감춰져있고, 절벽을 기어 올라와야 하는 이곳에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신선한 피 냄새가 풍겨왔고, 나찰 둘이서 피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한 소년이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습이 그곳에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