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슬비와 연우는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했던 그때 그 공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3년 전 슬비가 기다리며 서 있는 그 장소에 도착했다.
“얼마나 추웠을까 우리 슬비”
“별로 춥지 않았어요. 오빠를 생각하면서 추운 줄도 몰랐어요 저...”
“그래... 그때 나오지 못해서 미안해”
“사실 그땐 오빠가 무지 미웠어요.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았으니까 미워했던 마음은 다 지워버릴래요.”
“그래 그럼 고맙고...”
“한가지 물어 봐도 되요”
“뭔데?”
“3년 전 그때 내게 하려던 말이 뭔지 물어봐도 되요?”
“그때... 널 좋아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고백하려고 했어”
“그런데 일이 그렇게 됐구나...”
“나도 묻고 싶은 말이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무슨 말을..."
"그때 내게 하고 싶었던 말..."
"기다려 달라고 말하려 했어요. 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그래... 그 말을 듣는데 3년이 걸렸구나”
“이제 오빠의 고백은 내가 아닌 유나언니가 되겠네요”
“유나는... 나를 살려 준 생명의 은인이야”
“유나언니 오빠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여자의 직감이라는 게 있거든요. 난 그 직감이 틀리길 바라지만...”
그 말을 듣고 연우는 슬비를 안아버린다. 슬비도 자연스럽게 연우를 안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린다.
‘나의 첫사랑 연우오빠 정말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보고 싶었어 비오는 날이면 그때의 그 사건으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 빗속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너를 그렸어”
“오빠 연우오빠...”
“슬비야...”
다시 둘은 서로를 안으며 깊은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슬비는 자연스럽게 연우가 비를 맞지 않도록 노력해보지만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연우는 결국 슬비 앞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정신병자 환자처럼 때론 철없는 어린 아이가 떼를 쓰듯 그렇게 연우는 또 다시 비로 인해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우산을 들고 뛰어오는 건우
“형 괜찮아! 어서 차로 가자 어서”
“괜찮아 이겨 낼 거야 이젠 이겨 낼 때도 됐잖아”
“슬비가 보고 있어 이런 모습 보이고 싶어? 아니잖아! 그만 고집 부려 어서차로 가자 슬비야 뭐해”
“아~ 알았어”
슬비와 건우의 부축을 받고 겨우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뒷좌석에 앉히고 나가려는 슬비의 손을 잡는다.
“가지마 나 혼자 두지마”
“알았어요. 오빠 내가 곁에 있을게”
결국 건우는 우산을 쓰고 차 밖에 서 있고 뒷좌석에는 괴로워하며 쓰러져 있는 연우와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슬비가 앉아있다.
아직도 뭔가 괴로운 듯 얼굴 표정이 힘들어 보이는 연우 그런 모습을 보고 노래를 부르는 슬비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슬비우산 연우우산 도건우우산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슬비의 노래는 계속 반복되었고 그 노래를 부르는 슬비를 쳐다보는 연우는 점점 표정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연우의 표정을 살피면서 바뀌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멈춘다.
“이 노래 기억나세요”
“응 기억나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것 같은데”
“맞아요. 아직도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 이 노래를 부르며 걸어다니곤 했는데...”
“그랬었구나”
“그때마다 오빠를 생각하면서 아니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슬비야!”
“연우오빠”
점점 얼굴이 가까워지고 머뭇거리다 슬비의 입술로 다가가는 연우의 입술
그때 밖에서 덜덜 떨며 서 있던 건우가 창문을 두드린다.
“이제 그만 가지 나 추워 이러다 감기 걸리겠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차 문을 열자 건우가 우산을 들고 서 있다.
연우를 운전석까지 데려다주고 운전석 옆좌석에 앉는다.
“왜 뒷자리에 가지"
“슬비가 허락하지 않을거야 형이 있던 자리였으니까”
“넌 이럴 땐 머리가 좀 좋은 것 같더라”
“나 우리학교 전교 5등 안에서 놀아 엘리트라니깐”
“그래봤자 연우오빠와는 비교도 안 돼”
“내가 지금 과거의 남자와 비교 당하고 있는 것 맞지 형”
“과거?...”
“너 형이 유나누나와 같이 떠나는 것 보면 다시 나한테 돌아 올 거잖아!”
“아니 연우오빠 기다릴 건데”
“뭐라고?”
“슬비야!”
“기다리는 건 내 마음이니까 오빠도 뭐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래 기다리다 지칠때까지 내가 기다린다.”
“독한 놈...”
“만약 내가 유나를 버리고 슬비를 만나면...”
“형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믿어”
말을 잇지 못하는 연우,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건우의 말도 줄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