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래 가사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우산을 챙겨가는 날엔 비가 안 내리고 우산을 잊고 안 가져 가는 날엔 꼭 비가 내리는 슬비에게 우산을 들고 옆으로 다가오는 우산남.
그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다들 자기 몸집만한 가방을 메고 한 손엔 실내화 가방을 들고서 나오는 학생들. 부모님들이 교문 밖에서 우산을 쓰고 자기 아들, 딸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비를 맞으며 달려가 품에 안기는 초딩들 사이에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초딩 슬비.
몇 분 후... 몇 시간 후...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저앉아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슬비가 아직 그대로 있다. 기다리다 지친 듯 가방을 머리 위에 올리고 비가 내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 가려 발을 내딛는 순간
"우산 없어?"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초등학교 6학년 도연우. 대답은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가자!"
우산을 같이 쓰고 운동장을 걸어간다. 둘은 빗속을 하나의 우산에 의지해 걸으며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아무말이 없던 슬비가 골목길 어느 집 대문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리 집.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슬비.
마냥 귀여운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 연우.
"이름이 뭐야?"
"슬비 이슬비"
"이슬비... 이름 참 예쁘구나 너처럼."
그 말을 알아 듣고 기분 좋은지 해맑게 웃으며 대문을 향해 뛰어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고 서 있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는 연우.
그때 대문이 살며시 열리고 슬비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연우가 걸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는다.
그 뒤로...
슬비에겐 비 오는 날도 걱정이 없었다. 비가 내리면 어느샌가 슬비 옆에는 우산을 들고 같이 걷고 있는 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어느덧 슬비는 고등학교 1학년. 언제나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등교를 한다. 언제 어느 순간 비가 내릴지 모르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삼단 접이 우산을 꼭 들고 다닌다.
이젠 더이상 슬비 옆에는 우산을 들고 같이 걸어 줄 사람 즉 연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슬비. 손에는 우산을 꼭 쥐고 버스에 오른다. 카드를 찍고서 얼른 빈자리에 앉아 창문에 머리를 찧으며 잠이든다.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앞자리 의자에 머리를 부딪쳐 잠에서 깬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낯선 건물들. 슬비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버렸다는 생각에 서둘러 벨을 누른다.
문을 열어주자 재빨리 뛰어 내린다. 긴 한숨을 내쉬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에이 뭐야! 비잖아! 하지만 나에겐 우산이..."
하면서 손을 보니 우산이 없었다. 아까 타던 버스에 두고 내렸다는 생각에 그 버스를 쳐다보지만 이미 가고 없었다. 결국 비를 피하기 위해서 가까운 버스 정류장 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