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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악동 카쟝: 세상을 바꾸는 도둑들
작가 : 꾸마네
작품등록일 : 2022.2.18

부유 도시 '마루'와 빈곤 도시 '달구'.
고위인사들의 욕망과 탐욕으로 빈부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달구 시민들의 불만도 최고조에 이른다.
도둑계의 악동 '카쟝'과 그의 동료 '리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부(富)의 재분배'다.
세계 최고 회사 '명장제약회사'의 사장 '백민관'. 그는 언제나 '젊음'을 갈구한다.
도적단 중 가장 악랄한 '흑사단'과 그들의 수장 '흑사'. 그의 목적은 언제나 '돈'.
진짜 도둑은 누구인가? 도둑을 뛰어넘는 도둑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ii858@naver.com

 
권성환
작성일 : 22-02-24 19:35     조회 : 81     추천 : 0     분량 : 7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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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생일이란 건....”

 “내 ‘미소 짓는 소녀’가 완성됐던 날이죠.”

 

 ‘미소 짓는 소녀’가 세상에 나온 후, 그의 가치는 구름을 뚫을 정도로 상승했다. 처음엔 그의 인기가 그저 반짝인기라는 혹평가가 대다수였으나 그의 인기는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러시군요.”

 

 인기가 사그라지기는커녕 승승장구를 거듭했고, ‘미소 짓는 소녀’를 이어 ‘거미줄 하늘’, ‘안단테 거리’가 세계 최고 금액으로 거래되기까지 했다. 그 이후, 그의 인기는 마루시를 넘어 전 세계로 퍼졌다. 이젠 그가 연습장에 끼적인 낙서도 몇 십 억을 호가하는 예술품이 되었다.

 

 ‘역시 권성환이 ‘미소 짓는 소녀’를 개인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구나.’

 

 “따님 분과 얼른 만나고 싶으시겠어요.”

 “그렇습니다. 1년 동안 못 봤으니, 하하.”

 

 ‘결국 자기 작품 보러 간다고 수 십 명의 일정을 바꾼 셈이군.’

 

 하득산은 레드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을 본 권성환도 또 한 잔의 와인을 비웠다.

 

 “요새 권 화백님의 마니아층도 많이 늘었더라고요.”

 “네, 들었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다른 예술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내 작품만 찾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하하.”

 “아! 그러고 보니 특히 유명하신 분 있죠, 권 화백님 작품만 찾아다니는. 저도 경매를 진행하면서 몇 번 뵀습니다.”

 

 권 화백의 마니아라고 불리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으나 그 사람은 특이했다. 권 화백의 작품만 나왔다 하면 단번에 고가를 제시했다. 남들이 한두 푼씩 가격을 올릴 때 그는 초장부터 예상 낙찰가의 두세 배를 불렀다. 그러니 다른 희망자들이 입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습니까?”

 “그럼요. 화백님 작품만 나왔다 하면 십중팔구는 그 분이 낙찰을 받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관계자들끼리 그분을 칭할 땐 ‘권두배’라고 불러요.”

 “권두배?”

 “권 화백님 작품만 나오면 일단 가격을 두 배로 불러서요.”

 “아하하. 그렇습니까.”

 

 성환은 그 상황을 떠올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결국 화백님의 실력 덕분 아니겠습니까?”

 “별말씀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경매사님이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겠습니까?”

 “무슨 자리 말씀이시죠?”

 “그 사람과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제 마니아라는 사람.”

 

 득산은 스테이크의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저도 그 분과 이렇다 할 안면은 없습니다. 하지만 화백님이 원하신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려서 곧 자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것 참, 매번 신세를 지게 됩니다. 하하.”

 “아닙니다. 저보다는 그 분의 의사가 중요하겠죠.”

 

 권 화백은 팔짱을 꼈다.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인데 만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나도 내 가장 큰 팬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득산은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그렇겠네요. 그 분 입장에선 화백님을 만나는 게 큰 영광일 거예요.”

 “그런 소중한 팬을 위해선 내가 일찍 죽어야 할 텐데... 하하하.”

 

 득산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네? 그건 무슨 소리시죠?”

 “하하, 그냥 내 친구들과 대화할 때 쓰는 농담입니다. 경매사님도 아시다시피, 보통 예술가가 죽으면 그 사람의 예술품 가격이 10배 이상 뛰지 않습니까? 미술계에서는 그 정도가 유난히 심한 걸로 알려져 있고. 그런 식으로 내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팬에게 더 큰 가치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표현입니다. 하하.”

 

 득산은 자신의 죽음이기에 그런 고약한 농담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런 게 예술가식 농담인가?’

 

 “그건 또 듣고 보니 그러네요.”

 

 득산은 마지못해 미소 지었다.

 

 “아무튼 내 뜻이 그 팬에게 꼭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드르륵.

 

 하득산은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수건으로 입을 닦더니 권성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권 화백님. 권두배입니다.”

 “네?”

 

 권성환은 얼떨떨한 눈으로 득산을 올려다봤다.

 

 “경매사님?”

 “소개가 많이 늦었죠? 제가 권 화백님 마니아 ‘권두배’에요.”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뻗은 손이 무안해진 득산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금 시간이 얼마 없어서 자세한 설명은 못 드립니다. 화백님이 한 번 만나보고 싶으셨던 마니아가,”

 

 득산은 오른손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에요.”

 “....”

 

 성환은 할 말을 잃고 눈만 끔뻑거렸다.

 

 “그렇다는 건....”

 “네. 화백님 작품의 90% 이상은 다 제가 사들였죠. 그거 다 산다고 돈이 수백억, 아니, 수천억이 들었습니다.”

 “당신, 경매사라며?”

 “물론 제가 직접 사는 건 안 되죠. 어휴, 그건 큰일 날 일이죠. 당연히 경매장에서 입찰표를 쓴 사람은 제 대리인이죠. 참, 이번 경매에 나왔던 ‘삶과 몸짓’부터 ‘봄, 볕, 그리고 벌’까지도 전부 제가 낙찰 받았습니다.”

 

 권성환은 눈을 좌우로 수차례 굴렸다.

 

 “잠깐, 잠깐, 아직 정리가 안 돼서. 당신이 내 마니아면서 경매사고, 경매사 자격으로 경매에 참여할 순 없으니 대리인을 시켜 내 작품을 샀다는 거지?”

 “그렇죠. 매번 화백님 작품이 경매에 나온단 소식이 들리면 제가 대리인을 보냈죠. 제 생각엔 저와 대리인이 권 화백님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했다고 봅니다.”

 

 권성환은 슬슬 정신을 차렸다.

 

 “그랬군. 당신이 내 마니아였어. 이런 깜짝쇼를 준비했을 줄이야. 하하.”

 

 득산도 능글맞게 반응했다.

 

 “제 깜짝쇼가 어떠셨나요? 괜찮았나요?”

 

 권 화백은 엄지를 세웠다.

 

 “역시 내 팬.”

 “아,”

 

 별안간 득산의 얼굴에 난처함이 떠올랐다.

 

 “화백님이 오해하고 계신 게 있는데요.”

 “응? 내가?”

 “우선 저는 화백님의 팬이 아니라, 화백님 작품의 팬입니다.”

 “뭐 그거나 그거나 같은 말....”

 “그런 연유로,”

 

 득산은 성환의 말허리를 싹둑 잘랐다.

 

 “화백님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뭐든지 할 겁니다.”

 

 성환의 주위로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경매사님, 지금 상황이 조금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빨리 제 뜻을 전달해드려야겠네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권 화백은 목이 타들어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오른편에 놓인 물 잔을 들었다. 그러나 이내 잔을 놓쳐버렸다.

 

 쨍그랑-.

 

 “소, 손이....”

 “잘 움직이질 않죠?”

 “당신 무슨 짓을 한거야?”

 “말했잖아요.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하겠다고.”

 

 성환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서, 설마.”

 “자기 그림을 보러 간다고 몇 십 명의 일정을 바꿔버린 건 꽤나 오만한 행동이었어요.”

 

 성환은 느껴졌다. 그의 팔다리 끝에서부터 점차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여기 이렇게 사람들도 많은데서.”

 “아, 이 사람들이요?”

 

 득산은 뒤로 돌아 주변 손님들을 둘러봤다.

 

 “자, 다들 저녁식사 마쳤으면 마무리 준비하자.”

 

 드르륵- 드르륵-

 

 득산과 성환을 제외한 모든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놓고 가는 거 없나 잘 확인하고 나가. 여기 다신 못 오니까.”

 

 손님, 웨이터, 그리고 주방장들까지 일제히 식당 밖으로 나갔다. 성환은 그 모든 장면을 떨리는 눈으로 지켜봤다.

 

 “젠장!”

 

 권 화백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화백님, 이미 늦었어요. 그러게 술 좀 작작 드시지.”

 

 성환은 엎어진 채로 목만 돌려 득산을 올려다봤다.

 

 “ㄴ...너 이 자식, ㅅ...술에다가 뭐...뭔 짓을 한 거야?”

 “글쎄요. 그 일도 제 대리인한테 맡긴 거라 정확히 뭘 했는진 모르겠네요. 뭐, 몸에 좋은 건 아닐 거예요.”

 “ㄴ... 나하테... ㅇ... 왜 이러든 거야.”

 

 성환의 혀도 차츰 마비가 되어갔다.

 

 “같은 말 계속하게 하시네.”

 

 득산은 답답하다는 듯이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화백님이 죽어야 화백님 작품이 더 이상 안 나오고, 새 작품이 안 나와야 현재 작품들의 희소성이 높아지고, 그래야 화백님 작품의 값이 폭등하죠.”

 “ㅇ...이더... 와...완던... 미친 ㄴ...놈 아디야....”

 

 그때 득산의 옆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오자마자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니 득산의 대리인인 듯했다.

 

 “폭발 준비는 다 끝냈습니다. 흑사님.”

 “그래, 알겠어. 카쟝의 소재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한두 명 보낸 것도 아니고 흑사단의 절반 이상을 투입했는데 아직도 못 찾았다고?”

 “그게 일이 좀 복잡해졌습니다.”

 

 “무슨 일인데?”

 “흑사단 내에서도 학목 바이러스 감염자가 나타났습니다. 일단 격리시켜 놓긴 했는데 그 바이러스 때문에 다들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달구를 편하게 다니지도 못하고요.”

 “바이러스가 대수라고. 몇 명이나 걸렸지?”

 “지금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스무 명 정도 됩니다.”

 "그럼 그 외의 인원을 전부 풀어서라도 3일 안으로 카쟝의 행방을 알아내. 저번처럼 카쟝 부하를 카쟝으로 착각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이번엔 절대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성환은 득산의 정체를 눈치챘다.

 

 ‘흑사라고?’

 

 하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이제 와서 그가 할 수 있는 몸짓이라고는 눈을 껌뻑거리는 짓밖에 없었다.

 

 “그리고 청사야, 네가 어디 좀 갔다 와야겠다.”

 “어디 말입니까?”

 “스베니 섬. ‘미소 짓는 소녀’가 거기 있다고 하네?”

 “즉시 다녀오겠습니다.”

 “ㄴ...느 뜨르... 으드...(내 딸은 안돼.)”

 

 성환은 딸을 가지러 간다는 소리에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온몸은 벌써 고목나무처럼 굳었고 그의 눈꺼풀은 서서히 닫혀갔다.

 

 ‘정말 돈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는 놈이었어.’

 

 반쯤 열린 시야로 흑사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시간 내서 화백님과 식사한 보람이 있습니다? 따님 분의 소재도 파악하고."

 

 성환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오늘 식사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처리할 일이 산더미라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영면하세요.”

 

 흑사는 출구로 걸어갔다.

 

 

 ***

 

 

 강정희는 눈을 떴다. 한 번 의식을 차린 후부터는 통증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운 좋게 잠에 들더라도 중간에 깨는 일이 다반사였다. 오늘도 그녀의 눈으로는 낯선 천장이 보였고 귀로는 이름 모를 기계음들이 들렸다.

 

 삐- 삐-

 

 정희의 마지막 기억은 잠을 자다가 속이 너무 답답해서 물을 마시려 거실로 나왔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실로 나온 이후부터는 기억이 없었다. 정신을 잃고 다시 일어났을 땐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극심한 고통이었다. 통증은 그녀에게 숨을 돌릴 여유도 주지 않았다. 아니,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지금 그녀의 코에는 튜브가 끼워져 있었다. 튜브는 콧구멍을 통해 폐로 산소를 공급했다. 정희가 가쁜 숨을 몰아쉬자 곧 간호사가 찾아왔다. 정희는 그녀의 상태를 보러 온 간호사에게 튜브를 뺄 수 없는지 물어봤다.

 

 "환자 분은 기계를 통해야만 호흡을 할 수 있어요."

 

 정희는 있는 힘을 짜내 말을 했다. 안간힘을 써서 말을 했으나 간호사에게는 귓속말 정도로 들렸다.

 

 "저는... 병원비가 없어요... 집에 갈래요...."

 "강정희 씨. 병원비는 다른 분이 다 내줬고요. 정희 씨는 지금 그 병상에서 내려오면 5분도 버티실 수 없어요. 생명이 위독해진다는 뜻이에요."

 “네?”

 

 "혼자서는 5분도 못 버틴다."는 말을 듣는 순간, 죽음이라는 단어가 정희의 온몸을 적셨다. 간호사의 한 마디는, 정희는 의료기기가 없으면 죽는다는 의미였다. 정희는 충격을 받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세상이 바뀌어있었다. 평범하던 나날에서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렸다.

 

 “....”

 

 그녀가 말을 잃고 누워있자 간호사는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떠났다. 그 이후로는 고통이 찾아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때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도 찾아왔다. 고통은 사정없이 몰아쳤고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계속되는 아픔에 살이 말라갔다. 그녀는 일어나있는 동안 눈을 감았다 뜨기만을 반복했다. 식사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했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그녀도 처음엔 이 상황이 전부 꿈이라고 생각했다. 눈만 감았다가 다시 뜨면 안락한 침대 위일 것 같았다. 하지만 병상에서 보낸 시간이 나흘을 넘기자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 느껴질수록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고통을 토하면서도 그녀에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보...."

 

 정희의 남편 임창호였다. 그녀의 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어린 창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희가 그와 만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창호 모습이 선명했다. 형의 옷을 물려 입었는지 치렁치렁한 상의와 밤톨 같은 까까머리. 창호는 정희가 살던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 동갑내기 친구였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순간 오고가는 눈빛 속에서 서로의 운명을 감지했다. 그렇게 창호는 17살 정희에게 처음 설렘이란 단어를 느끼게 해주고, 18살 정희에게 믿음이란 단어를 선물해주고 20살 정희에게 사랑이란 단어를 이해시켜주었다.

 

 두 사람은 성인이 되자마자 같이 살게 됐고, 1년이 지나서 결혼식을 했다. 신혼생활을 먼저 하고 결혼식을 한 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창호와 정희는 마루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창호는 큰 회사의 정원사로, 정희는 또 다른 회사의 청소부로. 그래서 같이 쉴 수 있는 날을 잡아 결혼을 해야 하다 보니 1년 정도 미뤄졌다. 결혼식이라고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사였다. 그것만으로 행복한 결혼식이 되었다.

 

 너무 늦지 않게, 그렇게 간소하게 결혼을 한 그들은 행복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부부나 그렇듯 그들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병원에서 진찰을 한 결과 정희의 자궁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실험관으로 수정을 시키고 인공물을 통해 아이를 낳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10년은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 필요했다. 결국 그들은 아이를 포기하게 됐고, 늘 그렇듯 서로만 바라보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정희가 창호에게 죄책감을 갖게 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옆집 아이가 인사를 하며 지나가기만 해도 남편에게 미안해졌다. TV에서 아기가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창호의 눈을 피했다. 창호는 그런 정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도 아내와 산책을 하다가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면 애써 못 본 척했다. 자신보다 그녀가 더 속상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찰떡처럼 붙어 다니다가 가끔은 다치지 않도록 한 발짝씩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4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아이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한 그들이었다. 더 이상 아이는 필요 없었다.

 

 결혼 4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도 소박하게 이루어졌다. 축하 장소는 그들의 집인 골드맨숀 201호 식탁 위였다. 둘은 서로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며 40주년을 축하했다. 정희는 창호에게 하늘색 넥타이를, 창호는 정희에게 분홍색 스카프를 선물했다. 선물보다는 선물해주는 마음으로 풍족했고, 식탁 위로 오가는 미소가 40주년 자리를 찬란하게 밝혀주었다. 정희는 그날 세상 누구보다 가장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결혼 40주년을 아름답게 보낸 그 다음날이었다. 창호는 정희가 선물한 하늘색 넥타이를 단정하게 맸다. 창호가 넥타이를 매는 건 1년만이었다. 그는 평소에 양복을 입지 않았다. 양복이 오래되기도 했고, 정원사였기에 어차피 회사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하지만 정희가 해준 선물을 누구보다 빨리 입어보고 싶었다. 정희는 그런 창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고 창호도 멋쩍게 웃으며 현관을 나섰다. 그것이 정희가 기억하는 창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창호가 일하던 회사에 도적단이 들이닥쳤다. 하필 창호가 정원을 손질하던 시간이었다. 창호는 도적단의 출연에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가장 먼저 희생되었다.

 

 정희는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남편을 보고는 숨이 멎을 뻔했다. 평생 옆을 지켜줄 것만 같았던 남편이 말없이 그녀의 앞에 누워있었다. 그의 힘없는 모습을 마주한 정희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보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눈물로 보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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