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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악동 카쟝: 세상을 바꾸는 도둑들
작가 : 꾸마네
작품등록일 : 2022.2.18

부유 도시 '마루'와 빈곤 도시 '달구'.
고위인사들의 욕망과 탐욕으로 빈부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달구 시민들의 불만도 최고조에 이른다.
도둑계의 악동 '카쟝'과 그의 동료 '리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부(富)의 재분배'다.
세계 최고 회사 '명장제약회사'의 사장 '백민관'. 그는 언제나 '젊음'을 갈구한다.
도적단 중 가장 악랄한 '흑사단'과 그들의 수장 '흑사'. 그의 목적은 언제나 '돈'.
진짜 도둑은 누구인가? 도둑을 뛰어넘는 도둑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ii858@naver.com

 
골드 맨숀(2)
작성일 : 22-02-24 17:29     조회 : 71     추천 : 0     분량 : 7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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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아까까진 어둡고 정신도 없어서 자세히 못 봤지만 지금 강 할머니를 보니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있었다. 카쟝은 그녀의 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보았다.

 

 ‘리브는 사라지고 할머니는 쓰러지셨고. 이런 소행을 벌일 사람은 흑사 뿐이야.’

 

 구급차는 40분이 지나고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마루시는 어디에서나 10분 거리에 큰 병원들이 많았지만 달구는 그렇지 않았다. 강 할머니는 곧장 응급실로 들어갔고, 카쟝은 병원 로비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이제 카쟝에겐 돌아갈 집도 없었다. 증거를 모아 리브의 행방을 찾고 싶어도 골드맨숀 202호는 파괴되고 먼지처럼 사라졌다. 증거가 될 만한 것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행동. 전형적인 흑사의 방식이었다. 카쟝은 그저 로비에 앉아 눈을 감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강정희 씨 보호자 되시죠?”

 

 3시간이 지나고 카쟝은 그녀의 보호자 자격으로 그녀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카쟝도 피곤할 대로 피곤했지만 지금은 할머니의 상태가 더욱 중요했다.

 

 병실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이름 모를 장치들에 연결되어있는 강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시들어버린 나무처럼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나 때문이야....”

 

 카쟝은 마음의 벽이 무너지며 죄책감이 쏟아졌다. 그는 병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침대 위에서 음성이 들렸다.

 

 “으브...?”

 

 모기소리보다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카쟝은 그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

 

 병상의 할머니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그녀는 잠꼬대를 하듯 허공에 말을 하고 있었다. 카쟝은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할머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보...?”

 

 그녀는 남편을 찾고 있었다. 카쟝이 기억하는 바로는 강 할머니의 남편은 10년 전에 사고로 죽었다.

 

 “강정희 씨 보호자 되십니까?”

 

 카쟝은 깜짝 놀라 돌아봤다. 담당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의사의 표정을 보니 할머니의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 할머니의 상태는 어떤 가요?”

 “지금으로서는 확답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더 지켜봐야 하나요?”

 “보호자 분. 잠깐 복도로 나올 수 있으실까요?”

 

 카쟝은 의사를 따라 병실을 나갔다. 두 사람은 복도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의사는 한숨을 푹 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환자 분 의식은 곧 차리실 겁니다. 하지만 연기 속에 있던 화학물질을 들이키셔서 폐가 완전히 망가지셨어요. 혼자서 호흡을 하지 못할 정도로.”

 “호흡을 못한다는 말은....”

 “지금도 호흡기로 겨우 연명하고 계시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뿐이지 언제 상황이 악화될 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이런 말씀 드리는 거, 저도 힘들지만 보호자 분께 꼭 말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강정희 씨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요?”

 “상심이 크시겠지만, 방금 말씀드린 대로 강정희 씨의 폐가 완전히 못 쓰게 됐어요.”

 “얼마나...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으신가요?”

 “길어야 일주일 정도입니다.”

 

 담당의사는 강 할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고 다른 병실로 향했다. 카쟝은 병실로 들어와 강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아까보다도 더 말라있는 느낌을 주었다. 카쟝은 그녀의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여보...?”

 

 또 다시 시작된 잠꼬대. 카쟝은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강정희는 꿈속에서 남편을 만난 것처럼 중얼거렸다. 카쟝은 그런 정희를 보며 그녀의 집을 떠올렸다.

 

 ‘강 할머니 집은 완전히 폭파되지 않았어.’

 

 카쟝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할머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잠깐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카쟝은 병실을 나섰다.

 

 

 ***

 

 

 장 비서는 귀에서 휴대폰을 뗐다.

 

 "사장님, 지금 막 도착했답니다."

 

 장 비서의 말에 민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지난 밤 시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꿈자리까지 뒤숭숭했다. 카쟝의 감염 시도로 꼼짝없이 학목 바이러스의 백신을 제조해야 할 판국이었다. 민관의 신경은 한껏 곤두서있었다.

 

 "얼른 올라오시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장 비서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어. 귀한 손님이니 최대한 공손하게 모셔와."

 

 장 비서가 전화를 끊자마자 민관은 그에게 다가갔다. 민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있었다. 백 사장은 하루 종일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올라온다고 하던가?"

 "네. 지금 당장 오라고 전달했습니다."

 

 민관은 산타를 기다리는 꼬마마냥 안절부절못했다. 손님이 오는 동안에도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임 시장 소식을 듣고 얼마나 스트레스였는데. 아주 잘됐어. 체증이 싹 가시는군."

 

 통화를 마치고 3분이 채 되지 않아 사장실 밖에서 승강기 소리가 들렸다.

 

 띵-

 

 [문이 열립니다.]

 

 백 사장은 그새를 못 참고 사장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학수고대하던 택배 상품이 오면 누구든 문 앞까지 나가 기다리는 법이었다.

 

 "자, 어서 오너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은 남자 세 명이었다. 두 사람은 후줄근한 옷차림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정장의 사내는 백민관의 경호팀장이었다.

 

 "사장님, 손님 모셔왔습니다."

 "드디어 왔구만."

 

 민관의 눈으로 경호팀장을 제외한 두 남자가 들어왔다. 두 남자 중 한 사람은 덩치가 장 비서만 한 거구였다. 떡 벌어진 어깨로 인해 얼굴까지 작아보였다. 터질 듯한 상의로 보아 장 비서보다 한 체급 위일 수도 있었다.

 

 "그럼 이쪽이 오늘의 택배겠군."

 

 거구와 동행한, 정확히 표현하자면 거구에게 질질 끌려온 사람은 평균 키에 살집이 있는 사내였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흙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다가 온 모습이었다. 상의는 땀과 먼지로 범벅이었고 하의는 누더기를 걸친 것처럼 너저분했다.

 

 "배송하면서 택배 상품을 막 다뤘나봐?"

 

 택배의 얼굴도 보고 싶었지만 당장 확인할 길이 없었다. 살집 있는 사내의 머리엔 자루가 씌어져 있었다.

 

 "그거는 왜 씌운 건가?"

 

 자루 탓에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답은 거구의 입에서 나왔다.

 

 "이 녀석이 보통 영악한 녀석이 아니라서 말이지. 이렇게 안 해두면 언제 도망갈 지 몰라."

 

 그 영악한 녀석은 자루 탓에 앞이 보이질 않는지 자꾸 휘청거렸다. 손가락으로 톡 밀면 툭 쓰러질 만큼 위태로운 움직임이었다. 거구의 사내는 서론을 건너뛰고 본론으로 직행했다.

 

 "2000억은 어디 있지?"

 

 장 비서는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흑사인가?"

 "그건 알 필요 없잖아?"

 

 거구의 사내는 장 비서의 질문을 단칼에 잘랐다.

 

 "무례하기는!"

 

 장 비서는 앞의 남자를 노려봤다.

 

 "아냐. 그만해."

 

 앞으로 나서려는 장 비서를 막은 것은 백민관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예의나 겉치레는 중요치 않았다. 민관의 관심은 거구가 아닌 오로지 그 옆에 있는 통통한 사내였다. 자세히 보니 그 사내의 팔목에는 밧줄도 묶여있었다.

 

 "수갑 대신에 밧줄을 채웠구만."

 

 민관은 그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2000억은 언제든 주지. 우선은 저 포대를 쓴 자가 정말로 카쟝이 맞는 지 확인해야겠어."

 "알겠다."

 

 거한은 옆으로 돌아섰다. 그는 손을 뻗어 포획물이 쓰고 있는 포대를 집었다.

 

 "자, 봐라. 카쟝이다."

 

 그의 손은 단숨에 포대를 벗겨냈다.

 

 쓱-

 

 한눈에 식별되지 않았다. 포대 속에서 나온 형체는 흉하기 짝이 없었다. 떡 진 머리털은 기본이고, 얼굴 전체가 변형되어있었다. 얼굴이 울퉁불퉁하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했다. 이마, 광대, 턱에서 구타 당한 흔적들이 보였고, 안면 군데군데에 빨갛고 파란 흔적이 남아있었다.

 

 "사람을 아주 고깃덩이로 만들어왔네."

 

 민관은 멍이 든 얼굴을 구석구석 관찰했다.

 

 "흐음."

 

 이내 민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자는 카쟝이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덩치의 사내가 포획물의 머리끄덩이를 움켜잡았다. 머리끄덩이의 주인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풀린 눈을 억지로 뜨려는 모습이 처참하기까지 했다.

 

 “다시 봐봐.”

 

 재차 나서는 장 비서.

 

 “당신 말이야. 아까부터 말이 짧네?”

 

 장 비서는 눈을 부릅뜬 채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거구는 아무 흔들림도 없었다.

 

 “장 비서 돌아와.”

 

 백민관은 카쟝이라고 지칭된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이 사람은 카쟝이 아니야."

 

 여전히 거구의 사내는 미동도 없었다.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중인 듯했다. 먼저 움직인 쪽은 민관이었다.

 

 “하지만 헛수고는 아니었어. 카쟝과 같이 일하는 동료를 잡아왔으니.”

 

 민관의 기억대로라면 이 사람은 저번에 카쟝과 함께 자동차에 타고 있던 자였다. 그때는 카쟝에 꾀에 속아 둘 다 놓쳤지만, 그때 놓친 카쟝의 동료는 지금 민관의 눈앞에 와있었다. 민관은 카쟝의 동료 앞으로 다가갔다.

 

 "역시 그때 그 사람 맞구만."

 

 장 비서도 그 남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끄응...."

 

 카쟝의 동료는 거구의 손에 잡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두 눈은 팔다 남은 생선처럼 초점이 흐리멍텅했다. 민관은 고개를 올려 거구의 사내를 봤다.

 

 “2000억은 아니어도, 원래 카쟝의 현상금인 500억을 주지. 그 정도면 충분한 삯이라 생각하네.”

 

 민관은 장 비서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장 비서는 쏜살같이 사장실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 사이 민관은 본인보다 10cm는 큰 사내를 위아래로 훑었다.

 

 “보아하니 당신이 흑사는 아닌 것 같구만.”

 

 민관은 거구의 손목을 보았다.

 

 “손목시계라고 찼나 본데 시계 바로 밑까지 햇볕에 탄 자국을 보니 평소엔 시계를 안 차고 다니나 보군. 오른손잡이가 오른팔에 찬 것을 보면 확실히 시계 자체가 어색한 것 같고.”

 

 장 비서는 거구의 표정을 힐끗 보았다. 그 사내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시계를 통해서 우리의 대화가 녹음되고 있겠지. 아니면 생방송으로 전달되려나?"

 

 처음으로 거구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대답을 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왼쪽 안면을 찡그리더군. 그건 왼쪽 귀에 넣은 이어폰 때문이겠지. 또 그것을 통해서 흑사의 명령을 받고 있겠고.”

 

 민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거구의 동공을 찔렀다. 그에 반응하듯 거구의 시선은 좌우로 흔들렸다.

 

 “어차피 흑사의 실물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네. 그래도 지금 내가 하는 말 정도는 흑사가 듣고 있겠지?”

 

 거구는 답이 없었다. 할 말이 없거나 할 말을 찾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흑사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나?"

 

 민관은 흑사와 직접 대화하고 싶었다.

 

 “흑사, 듣고 있나? 오늘 데려온 사람은 카쟝의 동료네. 오늘은 500억만 주겠네. 수고비로 충분할 거야.”

 

 이제 민관은 아예 대놓고 거구의 손목에다 말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장 비서는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거구의 럭비공만 한 손으로 건넸다.

 

 "자, 받게. 500억일세."

 

 가방을 건네자 거구는 손에 쥐고 있던 머리를 내팽겨 쳤다. 당연히도 살집의 사내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쓰러지는 모습에서 에너지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허리가 부러진 허수아비처럼 그 사내는 바닥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쿵.

 

 “실신했군.”

 

 거구가 가방을 받아드는 동안 민관은 사내의 손목시계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 제안을 하지. 일주일 안에 카쟝을 데려오면 원래 현상금 2000억에 1000억을 더 얹어서, 3000억을 주지.”

 

 흑사에게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백민관도 그만큼 카쟝이 필요했다.

 

 '흑사라면 가능할 지도 몰라.'

 

 말을 마친 민관은 거구의 왼쪽 귀를 보았다. 만두 같이 생긴 귀가 씰룩거렸다. 흑사의 명령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곧이어 귀의 미동이 멎었다.

 

 “알겠다.”

 

 그 세 글자를 남긴 채 거구는 돌아섰다. 볼일을 다 보았으니 명장제약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입도 벙긋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다음 번엔 흑사 당신이 직접 오길 바라겠어. 얼굴 보면서 얘기하고 싶네."

 

 민관의 마지막 말에 거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문이 닫힙니다.]

 

 이윽고 커다란 몸집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거구가 아래층에 닿기도 전에 장 비서는 백 사장의 뒤를 따라갔다.

 

 “사장님, 아쉽네요. 카쟝을 잡을 줄 알았는데.”

 “흑사도 카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을 거야. 어쨌든 돈이라도 얻어내려고 우리한테 판 거겠지.”

 

 장 비서는 바닥에 널브러진 사내를 두 손으로 끌었다.

 

 “몸무게만 따지면 아까 그 거구 못지않겠는데요?”

 “잘 간수해. 우리는 이 녀석을 미끼로 사용한다.”

 

 민관은 쓰러져있는 자를 유심히 쳐다봤다.

 

 "이제 내가 아니라 카쟝 녀석이 나를 쫓겠어."

 

 민관은 피식 웃었다.

 

 

 ***

 

 

 식당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깔렸다. 감미로운 피아노의 선율은 고막까지 보드랍게 마사지해주었다.

 

 꿀꺽 꿀꺽.

 

 권성환은 그 새를 못 참고 한 잔을 더 비웠다. 그는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에만 5잔의 와인을 마셨다. 애주가다운 면모였다.

 

 “웨이터, 여기 와인 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하득산은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권 화백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 경매에서 선생님 작품들을 맡았던 경매사 하득산이라고 합니다.”

 

 하득산은 씽긋 웃었다. 쌍꺼풀은 없지만 커다란 눈이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다.

 

 “수고 많았습니다. 하하.”

 

 권성환 화백은 긴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은 샹들리에를 반사해 은회색으로 흘렀다.

 

 “아니에요. 원래 경매 전에 봬야 했는데 갑작스럽게 경매가 잡히는 바람에 실례를 범했네요.”

 “아닙니다. 경매 일정을 앞당기자고 한 사람은 나였습니다. 이건 내가 미안한 입장입니다.”

 

 권성환은 만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자신의 작품이 예상보다 비싸게 거래된 것이 그 까닭이었다. 화가에게 그림 값은 곧 그의 가치를 나타냈다.

 

 “요새 들어 화백님 작품이 인기가 많아지고 있어요.”

 “아닙니다. 하하.”

 

 성환은 와인 잔을 잠시 내려놓고 손사랫짓했다.

 

 “이게 다 우리 하 경매사가 열과 성을 다해준 덕택입니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라고는 했지만, 식당까지 빨간 베레모를 납작하게 쓰고 온 모습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과찬이세요.”

 

 곧이어 웨이터가 잘 익은 스테이크를 서빙을 해왔다.

 

 “웰던 등심스테이크와 레어 안심스테이크 나왔습니다.”

 

 하득산은 칼을 들었다.

 

 “식기 전에 어서 드시죠.”

 “그럽시다.”

 

 권성환도 여유롭게 스테이크를 썰었다. 스테이크 단면으로 붉은 핏기가 번졌다.

 

 “그나저나,”

 

 득산의 말문에 성환은 칼질을 멈췄다.

 

 “경매 일정을 급하게 당기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거 말입니까? 하하하.”

 

 성환은 호탕하게 웃었다.

 

 “원래 경매일에 꼭 해야 할 용무가 생겼습니다.”

 “꼭 해야 할 용무요?”

 “그게,”

 

 성환은 자신의 금테 안경을 벗어 안경알을 닦았다.

 

 “내 딸 생일이 그날과 겹쳤지 않겠습니까?”

 “딸이요?”

 

 득산이 알기로는 성환은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여태 독신으로 살아온 줄로만 알았는데 그의 입에서 딸이라는 말이 나오니 의아했다.

 

 “따님이 있으시다는 얘기는 처음 듣네요.”

 “그럴 만도 합니다.”

 

 성환은 안경을 다시 쓰고 와인 잔을 비웠다. 이윽고 스테이크를 다시 썰었다.

 

 “따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지금은 스베니 섬에 있습니다.”

 

 스베니 섬은 비행기를 타고 3시간 정도 가면 도착하는 섬이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휴양지이기도 했다.

 

 “따님 분이 휴가 중이신가 보네요.”

 “휴가라... 그렇죠. 휴가 중인 셈입니다. 하하.”

 

 성환은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득산은 뒷목을 긁적였다.

 

 “이번 진행팀과 경매 참여자 모두들 그 점이 가장 궁금했거든요. 화백님이 왜 갑작스레 일정을 앞당겼을까.”

 “모두 내 잘못입니다. 일정을 미리 확인했다면 그럴 일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화백님께 외람된 말씀이지만, 혹시 따님이 직접 여기 마루로 왔다면 경매날짜를 안 당겨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성환의 단호한 답변에 득산의 눈이 동그래졌다.

 

 “불가능... 한가요?”

 “왜냐면, 그림은 움직일 수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네? 그림이요?”

 

 득산은 그제야 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네. 나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 알려준 나의 작품, ‘미소 짓는 소녀’가 내 딸입니다. 하하.”

 

 권성환은 자수성가형 화가로 유명했다. 그의 무명생활도 장장 30년. 그 30년 동안 예술가의 길을 탈선하지 않고 뚝심 있게 걸어온 것이 그의 인생이었다. 그런 그의 인생에서, 긴 무명에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 바로 ‘미소 짓는 소녀’였다. 세계가 그의 가치를 처음 인정한 작품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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