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20화 한글수업
작성일 : 20-09-29 06:09     조회 : 38     추천 : 0     분량 : 692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제20화 한글수업

 

 

 장마가 시작되었다. 밤새 쏟아진 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 몰랐다. 비가 오니 밭일이고 논일이고 나갈 수가 없다. 하늘이 내려주신 강제휴가인 셈이다.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 할 일 없이 뒹굴고 있는데 노미가 종이와 벼루 붓을 잔뜩 들고 도련님들 있는 건넛방으로 향했다.

 

 “도련님들, 지 드가도 되겠는교?”

 

 누워있던 도련님들이 벌떡 일어나 노미를 맞았다. 형수가 간식이라도 들고 온 줄 알고 반갑게 맞았는데 노미 손에 든 것이 간식 바구니가 아니라 필기도구라 도련님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진작부터 언문을 좀 갈쳐드려야지 했는데, 장마도 오고 하니 이참에 모두 언문들을 좀 배우시겠는교?”

 

 하고 노미가 말하자 그다지 반갑지 않은 막내들과 달리 남화가 정좌로 앉으며 반긴다.

 

 “형수님!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남화는 몇 번이나 절을 했다.

 

  노미는 도련님들을 주르르 앉혀놓고 각자 앞에 종이와 붓을 나누어 주었다.

 

 “일단 얼마나 아시는지 지가 알아야 하니, ‘ㄱ’부터 ‘ㅎ’까지 아는 대로 써 보이소.”

 

 다들 어찌할지 몰라 서로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데 남화가 부끄러운 듯 고백을 한다.

 

 “형수님, 저희들이 모두가 다 까막눈입니더. 큰형이랑 작은형만 쪼매 읽고 쓸 줄 알고 저도 가물가물하고 동생들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습니더.”

 

 한다. 한문은 모르는 글자가 없이 줄줄 읽고 쓰는 사람들이 정작 우리글인 한글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농촌 상황이 다 이러했다. 교육기관들을 일본이 차지한 이후로 학교에서는 우리말을 쓰는 것도 우리글을 쓰는 것도 금지였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가장 심각하게 침해를 당한 것이 바로 교육이었다. 일본은 한중일 세 나라 중 서구의 문물을 가장 빠르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지리적 이점도 한몫했다. 그렇게 힘을 얻은 일본은 현대화된 무력으로 조선을, 중국을, 그리고 러시아를 이겼다.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하던 시절이었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손에 쥔 일본을, 그 무서운 기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천지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그들의 욱일기가 보여주듯 그들의 야욕이 온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던 시절이었다. 총칼로 얻은 승리는 더 강력한 총칼을 필요로 했고, 폭력과 잔인함으로 얻은 시대는 더 무시무시한 폭력과 잔인함으로 지배해야 했다.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전쟁, ‘성전(聖戰)’이라 불렀다. 자신들이 만든 거짓 단어에 현혹되어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성전을 치르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러한 성전을 치르려면 많은 물자가 필요했다. 더 더 많은 물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일본에게 조선은 일본의 ‘성전(聖戰)’을 완수하기 위해 물자를 제공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이용되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수백 년을, 아니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나라였고 민족적 자부심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백성들이 살고 있었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자국민들을 힘으로 지배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당연히 폭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힘이란 곧 폭력이었고 그것이 곧 권력을 유지하는 당연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당연히 조선도, 또 그들이 정복한 다른 나라들도 힘과 폭력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본의 위정자들이 자국민들을 힘으로 지배했던 것과 달리 조선의 왕들은 자기 백성들을 힘으로 지배하지 않았다. 실은 힘으로 지배할 수 없었다. 조선은 예부터 그 땅의 주인이 왕들이나 귀족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지금 노미가 도련님들에게 가르쳐주려 하는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이 땅의 주인인 백성들이 더 많이 알고 배우게 하고자 우리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리글자인 한글을 만들었다.

 

 ‘나랏말씀이 중국에 달아...’로 시작하는 세종대왕의 말씀은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다들 외우고 있는 글귀일 것이다. 그 내용이 이렇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중국의 글자로는 서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이런 이유로 백성들이 배우고자 해도 자기 뜻을 펼치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이 안타까워 내가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매일 쓰면서 편안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왕의 백성에 대한 마음이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자가, 그리고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이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글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외국어로 읽는 분들이 있다면 세종대왕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고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방에는 어느새 석이까지 불려와 앉았다. 노미는 ‘ㄱ’부터 ‘ㅎ’까지의 자음을 쓰고 ‘ㅏ’부터 ‘ㅣ’까지 모음도 써서 벽에 풀을 발라 붙였다. 노미는 글자들이 서로 조합되어 소리를 내는 기본구조를 가르쳐 주었다. 뒤늦게 뛰어 들어온 미순이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석이가 미순이 몰래 건너왔던 모양이다. 비를 맞고는 씩씩거리는 미순이 눈을 석이가 피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한번을 쓱 듣고는 단번에 아는 이도 있고, 도대체가 아무리 가르쳐도 모르는 이도 있었단다. 언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 모두 금지되어 있던 시절이라 조심조심 몰래 했는데도 어느 틈에 입소문이 나서 할머니는 가을 겨울 내내 동네 아이들까지 가르치셨다고 했다. 그렇게 가르친 아이들이 나중까지도 할머니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나도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었다. 나는 지금 집에서 영어홈스쿨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할아버지는 훈장님으로 한문을 가르치셨고, 할머니는 한글을 가르치셨다. 참 어쩔 수 없는 DNA인가보다.

 

 “자, 이제 배운 대로 글자를 만들어 보시소. ‘가나다라...’ 이제 읽으실 줄 알지예?”

 

 ‘네!’ 하고 힘차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영 가물가물한 사람도 있다.

 

 “잘하면 상 줍니꺼?”

 

 하고 윤화가 물었다. 다 아는 거라고 제일 재미없어하더니 상은 받고 싶은 모양이다. 노미는 의미심장하게 좌중을 훑어보았다.

 

 “제일 잘하신 분은 장원으로....”

 

 모두 침을 꿀꺽 삼킨다.

 

 “특별히 오징어 들어간 정구지전(부추전)을 드립니더.”

 

 모두 ‘와!’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은 암껏도 안줍니꺼?”

 

 하고 수심이 가득한 태화가 물었다.

 

 “정이 있는데 암껏도 안주면 섭하고예. 오징어 안 드간 거 드립니더.”

 

 “쪼매 만 넣어주심 안됩니꺼.”

 

 하고 민화가 간절한 눈으로 노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노미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표정이다.

 

 “야, 쪼매는 넣어드립니더.”

 

 했다. 태화랑 민화가 좋아라 한다.

 

 “니들은 와 질 생각부터 하노, 이길 생각을 해라!”

 

 하고 윤화가 호기롭게 다그친다.

 

 “막걸리도 주시믄 솔찬히 좋을틴디요.”

 

 하고 석이가 키득키득 웃는다.

 

 “막걸리는 어른들만 먹는 기다. 아 들은 가라!”

 

 하고 윤화가 호통을 친다.

 

 “아따! 형님! 여서 어른은 형수님 말고는 없지라이. 형님도 아직 장가 안갔응께 어른이라고 헐 수는 없지라이.”

 

 하고 석이가 맞선다.

 

 “내는 스물이다! 스물! 스물이면 어른이다. 막걸리 먹어도 된다!”

 

 하고 윤화가 석이를 발로 찼다. 보다 못한 노미가 중재 안을 냈다.

 

 “정구지전에 막걸리가 빠지면 섭섭하니 어린 도련님들은 맛만 보시라고 쪼매씩 드리겠습니더. 됐지예?”

 

 다들 박수를 쳤다.

 

 모두 각자 나누어진 종이에 배운 것을 총동원하여 글자를 만들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다 아우들이 먼저 하기로 했다. 정화가 자기가 쓴 글을 쑥스럽게 들어 올렸다.

 

 ‘나가라.’

 

 라고 쓰여 있었다. 정화는 큭큭 웃으며

 

 “윤화 형이 젤로 많이 하는 말입니더!”

 

 했다. 다들 와하하! 하고 웃었다. 그 다음은 태화가 들었다.

 

 ‘가가 가가?’

 

 라고 써 있었다. 모두 뭔 소린가 하고 있는데,

 

 “가가 가냐고요.”

 

 한다. ‘그 아이가 그 아이인가?’의 사투리다. 모두 또 다 배꼽을 잡고 웃었다. 무언가 많이 쓴 민화 차례다.

 

 ‘나가 나다. 너가 너다. 나가 너 조아하다’

 

 라고 쓰여 있었다. 모두 감탄했다. 가나다라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생들과 달리 민화는 ‘너’도 쓰고 ‘조’도 썼다. 노미는 잘 썼다고 칭찬하며 ‘조아하다’를 ‘좋아하다’로 고쳐주었다. 글자가 늘어나자 모두 머리를 쥐며 쓰러졌다. 석이는

 

 ‘가자 하자 자자 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히히히’

 

 라고 썼다.

 

 “앞에는 알겠는데 뒤는 모꼬?”

 

 하고 남화가 묻자,

 

 “허허허, 웃고 살자고요. 허허허!”

 

 한다. 다들 참으로 석이답다고 생각하며 같이 ‘하하하’ 하고 웃었다. 이번에는 미순이 차례다.

 

 ‘나는 봄이 좋아라. 나비가 나라 나랑 노라라.’

 

 좋아라 밑에 ㅎ받침을 얼른 넣은 것은 민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오빠들과 달리 어려운 단어들을, 예를 들면 ‘봄’같은 단어들도 쓰고, 받침을 쓴 미순이 글을 보고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방금 배운 것을 다 이용한 덕분이다. 노미는 잘했다고 웃으며 ‘나라’를 ‘날아’로, ‘노라라’를 ‘놀아라’라고 고쳐주었다. ‘나는 봄이 좋아요. 나비가 날아서 나랑 놀아요.’라는 뜻이다. 예쁜 시였다.

 

 다음은 남화 차례였다.

 

 ‘우리나라. 나라가 나라이가?’

 

 모두 잠시 숙연해졌다. 노미는 남화의 표정에 담겨있는 처연함과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나라가 나라인가?’라고 쓰시는 것이 더 맞습니더.”

 

 하며 노미는 ‘나라이가?’를 ‘나라인가?’로 고쳐주었다. 열여덟 남화가 담고 있는 고민들은 그 나이의 소년이 담고 있기에는 버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남화는 그 고민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런 남화가 노미는 유독 더 안쓰러웠다. 남화는 그렇게 운명처럼 시대를 아파하는 심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이 뛰는 데로 자신의 운명을 따라가야 했다.

 

 자기 차례가 되자 윤화가 슬그머니 자기가 쓴 종이를 들어 올렸다.

 

 ‘____가라. ____나라. ____다라라. ____마라. ____바라. ____사라라. ____아라라. ____자라라. _____차라. _____카더라. _____타라. _____파라. _____하라.’

 

 일단 제일 많이 썼다는 거에 모두 ‘와!’했다.

 

 “이기 다 모꼬?”

 

 하고 태화가 물었다.

 

 “앞에 쭉 하고 줄 친 거 보이나? 앞에는 내 오늘내일 안에 형수님한테 다 배울 끼다. 앞에는 말로 할 테니 들어봐라.”

 

 하고는 헛기침을 한다.

 

 “애덜은 가라. 내 쫌 나라!”

 

 ‘나라!’는 놓아라의 사투리다. ‘애들은 가거라. 나를 좀 내버려 두어라.’는 뜻이다. 윤화가 자주 하는 말이라 모두 무릎을 치며 웃었다.

 

 “저 처마에 곶감을 다라라.”

 

 ‘다라라’는 ‘달아라. 달아놓아라.’의 사투리다. 곶감 얘기가 나오자 막내들은 ‘곶감!’을 외치며 반가워한다.

 

 “그리고 거 손대지 마라.”

 

 모두 또 ‘와하하!’ 하고 격하게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리고 내 쫌 바라.”

 

 ‘바라’는 ‘보아라’의 사투리다.

 

 “그리고 니 쫌 잘 사라라.”

 

 ‘사라라’는 ‘살아라’의 사투리다.

 

 “그리고 니 쫌 잘 아라라.”

 

 아라라는 ‘알아라’의 사투리.

 

 “그리고 니 쫌 자라라.”

 

 ‘자라라’는 키나 마음이 자라라 ‘성장하라’는 뜻이다.

 

 “아니믄 다 차라.”

 

 ‘안 그러려면 다 치워라. 그만두어라’는 뜻이다.

 

 “남들이 뭐라 카더라도”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니는 니 타고 싶은 걸 타라. 말이든 소든 그기 차든 기차든 니가 타고 싶은 걸 올라타란 얘기다.”

 

 나름 심오한 뜻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뭐든 열심히 파라. 그리고 니 하고 싶은 걸 하라.”

 

 ‘와!’하고 웃던 동생들은 순간 웃자고 쓴 글 속에 숨어 있는 윤화 생각을 읽었다. 노미가 진심으로 감동하여 박수를 쳤다. 모두가 따라서 박수를 치고 미순이가 제일 격하게 박수를 쳤다. ‘막걸리랑 오징어 들어간 부추전은 내꺼다,’ 하는 표정으로 윤화가 으쓱하고 있는데 문 앞에 어머니가 와서 서 계셨다.

 

 “아이쿠, 엄니 나오셨어라.”

 

 하고 제일 먼저 발견한 석이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모두 무릎을 꿇고 정좌로 고쳐 앉으며 어머니를 반겼다. 어머니는 병색이 짙은 얼굴이지만 만면에 흐뭇함이 가득했다. 아까부터 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어머니 뒤로 아버지와 진화도 구경하고 서 있었다.

 

 “선생님, 학생들이 올케 잘 따라오는교?”

 

 하며 어머니는 노미를 선생님이라고 존칭하여 불렀다.

 

 “아, 예, 어머니.”

 

 하며 노미는 어머니의 존칭에 당황하여 대답했다.

 

 “참말로 귀한 선생님이시니 다들 옳게 잘 배우거라. 알겠느냐?”

 

 하신다.

 

 “형수님이라고 막 까불고 그라지 말고, 스승님이시다 하고 예를 다 하거라.”

 

 어머니의 다정하면서도 엄한 말씀에 아들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예’하고 대답했다.

 

 “미순이도 잘 배우거라. 여자라고 암껏도 모르고 하면 안 되는 시대니라. 여자들이 더 많이 배우고 가르치고 해야 하느니라.”

 

 어머니 말씀에 미순이 진심을 다해 ‘예.’히고 대답했다. 그런 방안의 광경을 둘러보며 진화도 아버지도 모두 흐뭇한 표정이다. 진화가 동생들 앞에 서 있는 사뭇 선생님 같은 모습의 노미를 보며 눈을 찡긋한다.

 

 ‘당신 참 자랑스럽소.’

 

 하는 표정이다. 노미는 그렇게 동생들의 한글 선생님이 되었고 모두 열심히 배워서 겨울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홍길동전’, ‘춘향전’ 같은 우리나라 옛 소설책을 더듬거리며 읽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노미는 형제들의 이름을 정성스레 써서 벽에 붙였다. 각자 제일 먼저 알고 익혀야 하는 것이 자기 이름이기 때문이다.

 

 ‘정진화, 정윤화, 정남화, 정민화, 정태화, 정정화’ 그리고 ‘김석호, 김미순’

 마지막으로 자기 이름도 적어 넣을 차례였다.

 

 “지 이름이 좀 촌스러워가. 도련님들 너무 놀리지 마이소.”

 

 하며 노미는 맨 마지막 줄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었다.

 

 ‘오노미’

 

 “와예, 형수님 이름이 제일로 이쁩니더. 다들 한문 이름인데 형수님 이름만 순수 한글 이름이다 아입니꺼.”

 

 하며 남화가 사뭇 감동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적은 이름들을 노미는 한글 자음 모음이 붙어 있는 종이 옆에 풀을 발라 붙였다. 정씨 김씨 오씨 이렇게 성은 달랐지만 그들은 가족이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4 제23화 홍익인간 2020 / 9 / 29 48 0 8659   
23 제22화 쇠붙이 2020 / 9 / 29 43 0 7938   
22 제21화 복권이 2020 / 9 / 29 41 0 8229   
21 제20화 한글수업 2020 / 9 / 29 39 0 6928   
20 제19화 단심가 2020 / 9 / 29 44 0 7347   
19 제18화 별이 빛나는 밤 2020 / 9 / 29 38 0 5238   
18 제17화 매 호랑이 바람 늑대 2020 / 9 / 29 38 0 6593   
17 제16화 산밭 아리랑 2020 / 9 / 29 43 0 8289   
16 제15화 산밭 2020 / 9 / 29 41 0 6537   
15 제14화 윤화 2020 / 9 / 28 36 0 6567   
14 제13화 미순이 2020 / 9 / 25 45 0 6819   
13 제12화 달달한 시집살이 2020 / 9 / 25 37 0 7257   
12 제11화 시집 온 첫날 2020 / 9 / 25 50 0 7337   
11 제10화 새로운 가족 2020 / 9 / 24 48 0 5328   
10 제9화 여섯 명의 도련님 2020 / 9 / 24 44 0 6172   
9 제8화 시집가는 날 2020 / 9 / 24 42 0 5148   
8 제7화 마늘밭 2020 / 9 / 24 42 0 7482   
7 제6화 새끼손톱 2020 / 9 / 24 45 0 8351   
6 제5화 진화 2020 / 9 / 23 43 0 10001   
5 제4화 첫날 밤 2020 / 9 / 23 43 0 6129   
4 제3화 혼인 하는 날 2020 / 9 / 23 52 0 5538   
3 제2화 열아홉 노미 2020 / 9 / 23 57 0 6475   
2 제1화 열일곱 노미 2020 / 9 / 23 91 0 5689   
1 시작하기 전에 2020 / 9 / 23 384 0 1839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