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산밭
다들 새참을 거하게 먹고 나니 꼼짝도 하기 싫어져 논두렁 여기저기에 널브러졌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일찍 찾아와 7월 초순인데도 숨통이 턱턱 막히게 더웠다.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며 여름이 한창임을 알리고 있었다. 새참 그릇을 치우던 노미는 특히 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석이가 안쓰러웠다.
“날이 너무 덥지예?”
했더니, 석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누가 봐도 벌건 얼굴로
“허허 형수님, 나가 솔찬히 더위를 타지 않어라. 허허허!”
한다. 노미는 또 웃음이 터졌다.
“논 일도 대충 끝났으니 다들 내일은 산밭에 가자. 감자 캘 때가 되었지 싶다.”
진화의 말에 누워있던 도련님들이 모두 벌떡 일어나 환호를 질렀다.
“산밭에 간다꼬요!!”
정화가 제일 신이 났다. 노미는 산밭이 도대체 어디길래 도련님들이 이렇게 환호를 지르며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도련님들과 달리 미순이는 풀이 죽었다. 산밭은 여자는 안 데리고 가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여자들도 델꼬 가자!”
하고 진화가 말하자 풀이 죽어 있던 미순이 눈이 동그래졌다.
“여자들도 델고 가분다고?”
하고 석이가 깜짝 놀랐다.
“그래, 내 안사람도 있고 하니 미순이도 같이 가도 된다.”
순간 미순이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오메! 안된당께! 거 가믄 계곡물에 홀딱 벗고 있을 것인디, 미순이 있으믄 쪼까 거시기 할것인디~.”
그제야 노미는 산밭에 계곡물이 있고 여름이면 수영도 할 겸 가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노미도 몹시 따라가고 싶었다.
“언니가 있으니 괘안타. 지 혼자니 몬 데리고 간거지.”
“예, 지도 가고 싶습니더. 미순이가 같이 가믄 저도 심심치 않고 좋지예.”
하고 노미도 거들었다.
“그래, 미순이도 이번에는 따라갈래?”
하고 진화가 다정하게 묻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미순이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야! 야! 지도 가고 싶어라! 언니도 도와주고요잉!”
하며 미순이는 노미가 혹시라도 안 데리고 갈까 봐 노미 팔에 매달리며 방방 뛰었다.
“아따! 말만 한 지집애가 어째 사내들 가는디를 따라갈라한다냐? 형수님이야 형님이 계싱께 근다마는....”
하며 석이는 좀처럼 미순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거추장스러운 눈치다. 다들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몰라 입만 다시고 있는데 미순이가 한껏 콧소리를 내며
“오라버니~~, 귀찮게 안한당께. 잉? 잉? 잉?”
하며 석이를 향해 눈웃음에 콧소리에 방뎅이 춤까지 추며 통통 튀는데 오라버니들이 다 넘어가 버렸다.
“내 몬 산다! 미순이 안 데꼬가믄 클 나겠다!”
하며 민화가 미순이 편을 들었다. 미순이 당장 민화 옆에 탁 붙어 앉더니
“오라버니가 최고여라!”
한다. 최고라는 말에 으쓱해진 민화는 미순이와 손을 맞잡고 같이 방방 뛰었다. 석이는 영 못마땅한 표정인데 미순이가 석이 팔에 매달려 마구 흔들어대니 어쩔 수 없이 석이도 져주기로 한다. 멀찍이 앉아 있던 윤화도 그런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럼, 올해는 다 같이 간다. 미순이도!”
다 같이 가기로 결정이 나자 기다렸다는 듯 태화랑 정화도 미순이 민화랑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돌며 강아지들처럼 좋아한다. 아직 다 애들이다. 남화도 강강술래에 끼고 싶은 눈치인데 나이가 애매해 그냥 윤화 옆에 앉아 사람 좋게 웃었다.
다음 날 새벽 동도 트기 전에 남자들은 농기구들이랑 물고기 잡을 도구들을 챙기고 여자들은 먹을 것들을 챙겨 길을 나섰다. 집에서 두 시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석이는 노란 참외도 한 자루 챙겨 지게에 실었다.
하도 공출이 심하니 집마다 산속에 남모르는 밭들을 만들어 감자나 콩 등을 심어 비상식량으로 삼았다. 들키지만 않으면 이런 산밭들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곳이었다. 그래서 일행은 이렇게 해도 뜨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산길로 들어서자 어느새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바위를 넘고 나무 둥치를 밟고 길도 없는 곳을 남자들은 익숙하게 올라갔다. 노미는 도저히 남자들 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헉헉거리는데 미순이는 숨도 안 차는지 오라버니들을 나풀나풀 잘도 뒤따라간다. 뒤처진 노미를 진화가 잡아주며 올라가고 형수님이 안쓰러운 민화는 내내 뒤를 따르며 올라오는 길에 생기는 흔적들을 안 보이게 치우며 걸었다.
그렇게 길도 없는 산길을 한참을 오르자 물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이 탁 트이는 곳에 도착했다. 작은 폭포가 있는 제법 넓은 계곡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계곡 위쪽으로 작은 초가지붕이 나무숲 사이로 보였다. 진화네 형제들이 예전에 지어놓은 산밭 초가집이었다.
모두 당장 물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일단 짐부터 내려놓아야 했다. 미순이는 아주 어릴 때 와보고 오랜만에 오는 곳이라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안 데리고 왔으면 어쩔뻔했나 싶었다. 다들 일단 발만 담그고 세수를 했다. 물이 어찌나 시원한지 세수만 했는데도 더위가 싹 사라졌다.
진화는 먼저 밭부터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다녀간 흔적이 없었다. 감자 줄기도 새파랗게 잘 자라 있었다. 검은 흙을 파헤치자 씨알 굵은 감자들이 굴러 나왔다. 모두 탄성을 질렀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남자들이 모두 밭에서 감자를 캐는 동안 노미와 미순이는 밥을 지었다. 다들 아침도 못 먹고 출발했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방금 캐 온 감자를 섞어서 감자밥을 짓고, 된장찌개도 끓였다. 집에서 가지고 온 김치에, 나물에, 부러울 것이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할머니는 평생 이때 먹은 감자가 제일 맛있었다고 하셨다. 산밭 감자는 할머니가, 노미가 두고두고 언제나 그리워하던 감자이기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곳의 흙냄새, 그 된장찌개 냄새가 언제나 코끝에 맴돌았다. 그렇게 둘러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던 그 식구들이 노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대충 감자밭 일을 마친 남자들은 이제 드디어 계곡물에 뛰어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남자들은 폭포 아래쪽 넓은 물에서 놀고 여자들은 폭포 위쪽 작은 웅덩이에서 놀기로 했다.
“니 이짝으로 절대 건너오지 마라!”
하고 석이가 미순이에게 단단히 이르자,
“오라버니들이나 이짝으로 건너오지 마셔라!”
하고 미순이 받아쳤다. 남자들이 폭포 아래쪽으로 신나게 달려 내려가고 난 후 미순이와 노미도 손을 맞잡고 폭포 위쪽 바위 뒤에 가려진 작은 웅덩이로 향했다. 수영복이 따로 없던 시절이라 미순이도 노미도 얇은 속치마와 저고리만 입고 물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갈 때는 너무 차가웠는데 조금 있으니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둘은 서로에게 물장구를 치며 까르르 웃었다. 멀리서 남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물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노미와 미순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괜스레 민망해서 큭큭 웃었다.
“오빠들은 여름마다 여 와서 며칠을 놀다 오곤 했는디, 월매나 자랑을 해싸는지 지가 배가 아파 죽을 뻔 했당께라.”
하며 미순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언니 덕분에 지도 여 와보고, 참말로 올해는 운수대통이랑께.”
하며 미순은 노미 팔에 매달렸다. 그때 멀리서
“와! 형! 언제 이래 실해졌나?”
하고 태화가 누군가를 보고 말했다.
“닥쳐라!”
윤화 목소리다.
“큰형 실한 거야 알고 있었지만 둘째 형도 만만치 않네!”
하고 정화가 소리쳤다.
“여자들 듣는다. 조용히 해라!”
하고 진화가 말했다.
“미순이 귀 닫아라잉!”
하고 석이가 소리쳤다.
“하나도 안 들려라!”
하고 미순이 소리쳤다.
“하나도 안 들리는데 대답을 허냐?”
하고 석이가 소리쳤다.
“지가 귀 막아주고 있습니더.”
하고 노미가 소리쳤다.
“당신도 귀 막으세요!”
하고 진화가 소리쳤다.
“형수님은 들어도 된다 아입니꺼? 다 알낀데.”
하고 태화가 말했다.
“뭘 아는데?”
하고 정화가 정말 몰라서 물었다.
“이 누무 자슥들이! 입 닫고 목간이나 해라!”
하고 윤화가 소리쳤다.
“아! 진짜! 뭘 아는데?”
하고 정화가 안달이 나 묻는다. 민화랑 태화가 옆에서 배꼽이 빠져라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남화야! 얘 쫌 갈쳐 봐라! 참말로!”
하고 윤화가 답답해 하자,
“지는 뭐 압니꺼.”
하며 남화도 영 민망해한다. 그리고는 다들 ‘누가 제일 실한가 보자!’ 하며 엎치락뒤치락 누군가 물먹고 꼬르륵거리는 소리, 고함치는 소리, 물장구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여자들은 귀 막는 척하고 앉아서 그 소리들을 다 들었다. 소리가 안 나게 웃느라 미순이도 노미도 애를 먹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여자들이 먼저 집으로 올라가 몸을 닦고 말리는 사이 남자들이 머리가 젖은 채로 돌아왔다. 물에 젖었다가 나오니 그렇지 않아도 환한 인물들이 더 환하다. 물놀이하고 오니 배가 고팠다. 다들 둘러앉아 막 쪄 놓은 감자를 먹었다.
노미가 감자 하나를 집어 호호 불면서 껍질을 까서는 진화에게 주었다. 순간 모두가 ‘우~!’한다. 진화는 씩 웃으며 맛나게 받아먹는다. 이런 반응일 줄 몰라 노미가 당황하고 있는데 다들 미순이 손을 보고 있다. 미순이가 감자 하나를 호호 불며 까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미순이는 잠시 오빠들을 둘러 보았다. 다들 저 감자가 어디로 갈지 궁금했다. 미순이는 원래 자기가 먹으려고 깐 건데 상황이 요상하게 되어버렸다. 미순이는 잠시 망설이다 껍질을 다 깐 감자를 윤화에게 주었다.
“됐다! 니 오빠 줘라!”
하고 윤화가 사양했다. 그러자 석이가
“아! 첨부터 내꺼가 아니었구마잉.”
하며 삐진 얼굴을 한다. 당황한 미순이 어색하게 주인 없는 감자를 들고만 있었더니
“그럼, 내가 묵을까?”
하며 정화가 손을 내민다. 다 같이 답답한 표정으로 정화를 노려봤다.
“미순이 팔 아프데이. 형이 드시오!”
하고 민화가 거들자 윤화는 짐짓 싫은 척하며 감자를 받아 입에 쏙 넣어버렸다. 다들 또 한 번 ‘와!’하고 소리쳤다.
“이거이, 색시 없는 사람 서러버 살겠나!”
하고 태화가 한탄을 한다.
“니는 내가 까줄께.”
하고 민화가 막 깐 감자를 태화에게 건네자,
“됐다! 내도 형수님 까주신 거 먹을 끼다!”
한다. 어느새 노미는 감자 하나를 더 까서 막 남화에게 주고 있었다. 남화가 고맙게 받아들고 먹는 사이 석이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다음 감자를 까고 있는 노미 손을 보고 있는데 그사이 감자 하나를 더 깐 미순이 석이 앞에 감자를 내민다.
“오라버니~!”
하는데 석이는 짐짓 미순이를 째려보며
“칫! 니가 주는 건 안 먹을랑께!”
한다. 그러자 미순이도 입을 쑥 내밀며
“그럼, 민화 오라버니 드셔라!”
하며 민화 손에 감자를 쥐여 주었다. 속없는 민화는 좋다고 감자를 받아들고 맛나게 먹었다.
“그럼, 이거 드셔예.”
하며 노미가 석이 손에 막 깐 감자를 쥐여 주자 그제야 석이도 환하게 웃었다. 노미는 감자를 부지런히 까서 태화도 주고 정화도 주었다.
“이제 그만 하고 당신 드시오.”
하며 진화가 막 깐 감자를 노미에게 건네주려는데 도련님들이 모두 감자를 하나씩 들고는 노미 앞에 동시에 내밀었다.
“형수님, 제 꺼 드십시오.”
“아니, 지 꺼 드셔라!”
“아니, 제 꺼 드셔예.”
하는데, 고맙기도 하고 어찌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노미는 미안해하며 결국 진화가 내민 감자를 받았다. 뭐 당연한 결과였는데도 불구하고 도련님들은 아쉬운 탄식을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참으로 조용조용 감자 하나를 정성스레 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윤화다. 모두 저 감자가 어디로 가려나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윤화는
“와?! 내 묵을 낀데.”
한다. 그러자 다들 ‘에이~!’ 한다. 미순이 관심 없는 척하며 먼 산을 보고 있자 윤화는 ‘참, 나, 그래 니들 원하는 대로 해줄게.’ 하는 표정으로 미순이에게 감자를 내밀었다. 미순이를 닮아 작고 오동통한 감자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미순이가 망설이고 있는데 윤화가 감자 든 팔을 들고 흔들었다. 하는 수 없이 미순이 받아들자 다들 ‘와~!’하고 손뼉을 쳤다. 석이도 이번에는 할 수 없다는 듯 빙긋 웃으며 대충 손뼉을 쳐 주었다.
물놀이를 하고 배불리 먹었으니 다들 노곤했다. 모두 한숨 자기로 했다. 초가집이 단칸방이라 어쩔 수 없이 모두 한 방에 누웠다. 제일 안쪽에 미순이와 노미가 눕고 그 옆에 진화가 눕고 다른 동생들이 주르르 누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곯아떨어졌다.
눕자마자 코를 고는 남화를 윤화가 퍽 치자 코골이가 뚝 멈추었다. 누군가 방귀를 뀌었는데 범인은 알 수 없다. 아직 잠이 덜 든 노미와 미순이가 큭 웃었다. 범인이 한둘이 아니다. 노미는 미순이 이불을 여며주고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입 모양으로만 ‘자라!’하고 토닥토닥해주었다. 미순은 아기처럼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그런 노미를 빙긋이 바라보는 진화는 동생들이 잘 자고 있는지 눈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노미 손을 끌어다 잡고는 잠이 들었다.
노미도 진화 너머로 동생들 자는 모습을 건너다보았다. 다들 아기들처럼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다. 세상 제일로 보기 좋은 것이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고, 세상 제일로 예쁜 것이 내 새끼 자는 모습이라 했다. 어느새 노미에게 진화도 미순이도 도련님들도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순간 노미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부러울 것이 없었다. 다들 그렇게 달콤하기 그지없는 한낮의 낮잠을 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