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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악마와 싸우는 안티히어로

 
동병상련 쥰페이
작성일 : 24-02-18 22:24     조회 : 45     추천 : 0     분량 : 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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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화

 동병상련 쥰페이.

 

  그게 잘못이었다.

 아주 나쁜 징조의 예였다.

 미나미가 날랐다. 정확히 벌크업 양아치 인중에 닉킥이 들어갔다.

 뻑! 소리와 함께 그대로 선 채로 넘어져 대자로 뻗었다.

 그러니까 손가락 마디는 왜 꺾어, 그 순간 넌 진 거야, 쪼다... 속으로 그런 생각했다.

 그때였다. 스타크래프트 벤이 쏜살같이 달려와 섰다.

 창문이 열렸다.

 

 - 얘들아, 빨리 타!

 

 미나미 아빠였다. 나는 망설였다. 싸우고 싶은 게 아니라 자전거 때문이었다.

 작은아버지가 사준 건데, 비싼 건데...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

 

 - 자전거는요?

 - 지붕 위에 올려!

 

 나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한 손으론 아야코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론 자전거를 끌고

 벤으로 황급히 다가갔다. 나머지 애들도 뒤따라왔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벌크업 패거리들이 섣불리 쫓아오지 못했다. 쓰러진 벌크업을 부축한다는 핑계에다 때마침 건장한 종업원 둘이 나온 것도 있었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고 느낀 게 확실했다.

 

 - 그냥 가도 돼?

 - 그러면 니들 보내고 나 혼자 남지, 뭐.

 

 아야코 말에 내가 어연번듯한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 어이구, 허풍선이...

 

 아야코가 내가 열어 준 문으로 올라타며 말했다. 그러면서 깨물어주고 싶다는 표현을 그 큰 눈으로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 오른손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 좋을 때다...

 

 미나미 아빠가 백미러를 보고 웃으며 부러운 듯 툭 던졌다.

 

 - 야! 거기서!

 

 목덜미에 문신한 놈이 오지도 않고 그 자리서 선 채로 고함을 질렀다.

 미나미, 유리나, 다이히토가 재빨리 벤에 올라탔다.

 나와 쥰페이가 자전거를 차 지붕 위에 눕혀서 싣고

 벤에 올라타서 문을 닫자 그제야 벌크업 패거리들이 안심되는지 몰려왔다.

 미나미 아빠가 잽싸게 벤을 빼서 앞으로 달려 나가자 벌크업 패거리들이 분풀이한다고 들고 있던 각목을 달려가는 벤 뒤에다 던졌다.

 대형 벤이라 여섯 명 타고도 공간이 충분했다. 톱 셀럽들이 타는 차가 이런 거구나, 차 안이 한껏 고급스러웠다. 톡톡 튀는 미나미 아빠다웠다. 중후한 것하고 거리가 멀다더니 차 안을 핑크빛과 짙은 남색으로 대조를 이루게 했다. 그런데 전혀 촌스럽지가 않고 엘레강스 했다.

 

 - 퍼스트 레이디냐? 그래서 니 둘이 나섰어?

 - 아빠, 아야코 뚜껑 열리면 아홉 시 뉴스 장식합니다, 큭...

 

 유리나의 과장에 우리는 깔깔거렸다. 나는 종횡무진 활약하는 아야코의 쭉 곧은 다리를 생각해 내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야코는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내 머리 안에 들어갔기라도 한 듯 눈을 흘겼다.

 

 - 오, 딸, 전광석화, 살아 있네?

 - 그럼, 두 놈이 각목을 안고 쓰러진 게 미나미와 유리나 주먹에 의한 거였어? 와~ 대박~ 내 눈엔 주먹이 안 보이던데~

 

 미나미 아빠 말에 호들갑스럽게 내가 MSG 듬뿍 뿌린 말을 덧붙이자 차 안은 한바탕 웃음으로 수놓아졌다. 호들갑은 아야코의 그 흘긴 눈 때문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야코는 코를 찡그린 미소를 지으며 어깨로 내 어깨를 쳤다.

 남자가 소심하기는...

 나와 아야코, 쥰페이와 유리나가 같은 자리에 동석(同席)했는데 미나미와 다이히토는 따로 떨어져 앉았다. 미나미가 옆에 앉으려는 다이히토에게 인상을 찌푸리자 1인석에 가서 앉았던 거였다.

 아야코가 귓속말했다.

 

 - 내 다리 흉하지, 만져 볼래?

 - 저 아버지, ‘블루 아워(프 : l'heure bleue, 영어: the blue hour)’로 가주세요!

 

 내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모두 나를 쳐다봤다.

 유리나와 미나미는 눈치를 챘는지 픽하고 웃었다.

 아, 저 가시나들 눈치 하나는...

 미나미 아버지가 백미러로 얼굴이 발개진 내 얼굴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블루 아워 커피숍을 좋아한다.

 낮도 아니면서도 밤도 아닌 ‘순결의 시간’이라는 뜻도 가진 이 불안한 시간을 좋아한다.

 꼭 지금의 우리, 불안한 존재를 말하는 것 같아 좋았다.

 

  * * *

 

 - 아베 신타로(安倍 愼太郞)가 가쿠슈인 중학교 출신이구나...

 - 악명을 떨쳤지...

 

 이케부쿠로역 부근 ‘블루 아워’ 커피숍에서 우리는 노무라 쥰페이의 기가 찰 뿐만 아니라 치가 떨리는 학폭에 대해 듣고 있었다.

 

 - 그놈은 쥰페이 말대로 쓰레기 중에 쓰레기야, 인간 말종, 개과천선이 안되는 놈이야. 절대로...

 

 가쿠슈인 중학교 출신 다이히토가 핏대를 세우며 디스 할 정도면 아베 신타로에 대해 알아보지 않아도 그놈이 얼마나 악랄한지 짐작이 갔다.

 아마 다이히토도 그놈한테 톡톡히 당한 것 같았다.

 나는 부산에서 중학교 다녔고 아야코, 유리나, 미나미는 카이세이 영재 중학교 출신이라 가쿠슈인에 대해 전혀 몰랐다. 중학교 다닐 땐 모두 카이세이 영재 고등학교에

 진학할 거라 생각했지, 가쿠슈인 고등학교에 갈 거라 꿈도 꾸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 대학생이야?

 - 아니, 고3...

 - 우리 한해 위네, 해가 있는 꼴을 보고 대학생인 줄 알았어...

 - 대학생인 척 여대생을 꼬드기고 요절을 내는 거지, 당한 여대생이 부지기수야...

  ‘베로나 발코니’ 간 것도 그런 수작으로 간 걸 거야, 먼저 미끼를 던지고 상대편이 어떤 반응을 보이냐 따라서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 매뉴얼이 있네.

 - 그런 셈이지, 유리나에게 수작을 걸려다가 너한테 걸린 거라 계획이 틀어진 거구...

 - 수작 건 여자의 남자 친구가 있어도 그게 여자에게 통했어?

 - 여긴 일본이야.

 - 진짜, 오마이 갓이네.

 

 내가 그놈에 대해서 따지듯 묻자 쥰페이가 그놈의 수법(手法)에 대해서 세세하게 말했다. 가쿠슈인 여고 삼총사는 신기한 듯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황실에 사는 다이히토도 그놈이 사는 세계에 대해서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가문이나 집안의 철저한 보호 아래 있기도 했지만, 카이세이 영재 중학교는 아예 학폭을 저지르는 악질이 없었다. 공부하기 바쁘기도 했지만, 학교 당국의 세심한 관심과 나아가 각자가 호신술을 익히고 있었기에 악행을 저지르는 건 꿈도 못 꿨다. 그러니 여고 삼총사는 이쪽 세계를 알 수가 없었고, 다이히토는 가쿠슈인 중학교 다니면서 학폭을 가끔 당하기는 했지만, 가쿠슈인 고등과로 진학하고서는 아베 신타로를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소문으로 들었지만 다이히토가 천황을 움직여 아베 신타로를 다른 고등학교로 보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다이히토는 부인(否認)도 긍정(肯定)도 안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쥰페이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다. 중학교 다닐 때는 젖살이 덜 빠져 통통하면서 귀여웠다고 했다. 그래서 가쿠슈인 중등과로 입학하자 한 학년 위인 아베 신타로가 일당들과 함께 쥰페이를 으슥한 곳으로 불러 맷집이 좋다며 어깨를 주먹으로 치고, 샌드백을 치듯 두들겼다고 했다. 심지어는 당시 유행하는 노래와 함께 춤을 추라고 했다. 주크박스처럼 번호를 누르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 했다. 코가 1번이고 귀가 2번이고 혓바닥이 3번이고 하는 식으로 코를 누르고 귀를 꼬집고 혓바닥을 당기고 했다고 했다. 발라드든 슬픈 노래든 무조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고 했다. 옥상에서 춤을 추다가 고인 빗물이 튀어 아베 신타로 옷에 묻자 옥상에서 1층까지 아베 신타로를 목말 태우고 내려가게까지 했다고 했다. 아베 신타로는 주짓수와 격투기를 배웠다고 목을 조르는 기술로 쥰페이 목을 졸라 실신하기도 했다고 했다. 일당 중 한 놈이 동영상을 찍다가 쥰페이가 기절하자 기절한 척한다고 발로 차기도 했다고 했다. 학폭을 당할 때부터 호신술을 배웠지만 정작 써먹지는 못했다고 했다. 노무라라는 이름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자신이 바보 같았다고 했다. 괜히 혼자서 지레짐작으로 가문을 생각해 참은 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쥰페이가 중학교 2년 동안 아베 신타로에게 학폭 당한 것을 말할 때는 담담하게 말했

 다. 흥분하지 않았다. 겁도 내지 않았고 두려워하는 기색도 내지 않았다. 나는 쥰페이

 의 말에 성제가 떠올려져 말없이 쥰페이 손을 잡아줬다. 쥰페이도 내 손을 꽉 잡았

 다. 니가 있기에 나는 두렵지 않다는 것 같았다, 아니 너희가 있기에 나는 무서울 게 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우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눈으로 말했다.

 

 - 야 근데 넌 날 괴롭히려고 했냐?

 - 미안, 그냥 허풍떤 거지... 히...

 - 얘는 천성이 누굴 괴롭히지 못해...

 

 분위기가 가라앉아서 내가 농담을 하자 쥰페이가 미안해했고 다이히토가 쥰페이 대신 변명을 해줬다. 쥰페이와 다이히토는 가쿠슈인 초등부터 지금까지 단짝이었다. 쥰페이와 나하고는 은행 통장 압축처럼 짧은 기간에 몇십 년 사귄 친구가 되었던 거라면 쥰페이와 다이히토는 유아원 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우정을 다지고 온 사이였다. 친해지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3~4학년부터라고 했다.

 

 - 가자.

 

  아야코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 가자니까?

 - 어딜, 집에?

 

 뜻밖의 아야코 행동에 나는 하겐다즈 솔티드카라멜푸치노 콘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눈이 동그래져 어딜 갈 거냐고 되물었다.

 

 - 그놈, 아베 신타로라는 그놈, 볼기짝이라도 때리게...

 - 직접 나서지 않아도 조만간에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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