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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악마와 싸우는 안티히어로

 
이탈리안 레스토랑
작성일 : 24-02-16 20:45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4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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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이탈리안 레스토랑.

 

  프랑스 국립 파리오페라발레단(Paris Opera Ballet)에서 백조 오데트 역(役)으로 내정되어 연습 중 왕자 뺨을 때리고 그날로 짐을 싸서 귀국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미나미가 다이히토에게 입술을 깨물며 하면 죽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왕자역의 발레리노가 자기 몸을 자꾸 좀 과하게 터치하는 거 같아 왕자 뺨을 때리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그게 진절머리가 나서 발레를 때려치웠다고 했다. 쥰페이와 한 참 친해졌을 때 유리나와 미나미에 대해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었던 전설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우리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입구로 향했다.

 미나미가 내 자전거와 자기 자전거를 양손으로 끌고 우리 먼저 앞서갔고 다이히토가 풀이 죽어 쥰페이 자전거와 자기 자전거를 끌고 우리 뒤따라왔다. 짝사랑의 비애(悲哀)인가? 에그, 황위 계승 7위의 다이히토야, 안됐다. 아 가시나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좀 받아주면 안 되나... 미나미는 살짝 아주 보일 듯 말 듯 한 미묘한 거지만 내가 감으로 눈치를 챘는데 누굴 좋아하긴 하는 것 같았다. 누군지는 베일에 싸여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야코한테 미나미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물으니, 환하게 웃으며 아야코가 단칼에 없다고 했다. 그런가? 나는 미심쩍었지만, 아야코 말을 믿기로 했었다. 좀 찜찜하기는 했다. 어느 날이었다. 아야코가 뜬금없이 왜 그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는데...

 

 - 미나미, 너 누구 좋아하지?

 - 아니...

 

 당황하지 않고 미나미는 핸드폰을 보면서 무심하듯 말했다.

 내가 매의 눈으로 살폈지만 미세한 떨림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또 한 번은...

 

 - 미나미, 너 몽 좋아하지?

 - 응

 - 그럼, 사귀어, 양보할게.

 - 좋지, 몽 오늘 우리 1일...

 

 이것들이 내가 물건이냐? 속으로 괜한 투정을 하며 아야코의 떠보는 물음에 태블릿 PC에 눈을 둔 미나미의 반응을 봤지만 미세한 당혹감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미나미의 피앙세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다이히토만 애가 탈 수밖에, 그러나 시르죽을(기운을 못 차리고 생기가 없어지다) 줄 알았던 미나미에 대한 그놈의 짝사랑은 깊어만 가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안타깝고 애가 탔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100여 미터 이상 줄을 선 사람들이 기괴한 모양새로 다가오는 우리를 일제히 쳐다봤다.

 저렇게까지 줄을 서서 장시간을 투자해 먹어야 할 만큼 맛있는 요리가 나오려나...

 아무리 맛있어도 안 먹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돈까지 내서 사 먹는데 줄까지 서서 사 먹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잠깐 기다리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100여 미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예약했기에 가는 거지 도저히 내 성질엔 맞지 않았다. 속에 들어가면 다 똥 될 텐데 이 무슨 호들갑이냐, 끔찍했다.

 입구에 다다르자 미나미로부터 연락을 받았는지 미나미 아버지가 마중 나왔다.

 나는 아야코를 안아서 내렸다.

 쥰페이도 유리나를 안아서 내렸다.

 

 - 아빠...

 - 안녕하십니까?

 

 미나미와 다이히토가 한 말이다.

 

 - 오늘 미팅 있습니까?

 

 턱시도를 한 미나미 아빠를 보고 내가 한 말이다.

 

 - 어느 여대죠?

 

 쥰페이의 짓궂은 질문이다.

 아야코와 유리나는 미나미 아빠와 말을 섞는 대신 하이 파이브로 인사했다.

 심심하면 보는 사이인지라 우리와는 스스럼없었다. 우리를 딸 셋에 아들 둘이라 생각할 정도의 미나미 아빠였다. 미나미 아빠는 그 나이에 비해 사고가 열려 있었고 젊었다. 가쿠슈인의 우치다 치카(內田 慈) 선생 같았다. 습하고 더운 날의 청량음료 같은 괴짜였다. 오히려 미나미가 쿰쿰한 보수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우리 사이엔 괴팍한 진보로 한 획을 긋는 미나미가 말이다.

 

 - 응, 왔구나, 코알라처럼 안겨서 왔어? 우리 미나미는 왜 솔로야?...

  마마 오셨습니까? 우리 미나미는 엉덩이가 커서 부담스럽습니까?

 - 아빠?!

 

 우리는 그럼, 그렇지 하며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미나미 아빠가 다이히토를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줄 선 사람 중에 연세가 있는 몇몇 사람이 다이히토를 향해 90도 절을 하거나 꿇어앉아 큰절했다.

 다이히토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다. 길바닥에서 절을 하는 사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나미 아버지의 짓궂은 질문도 한몫했다.

 나는 꿇어앉아 절을 하는 사람을 보고 어리둥절했고 미나미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미나미 아버지를 재촉했다.

 

 - 아빠, 우리 예약했대.

 - 그래?

 - 제 숙모 히가시노 리에(東野理恵)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겁니다.

 - 그럼, 들어가자...

 

 우리는 미나미 아빠 따라서 이탈리안 식당 ‘베로나의 발코니’ 안으로 들어갔다. 이탈리아의 최고급 메뉴를 싼값, 즉 서민들 주머니 사정으로도 먹을 수 있다는 역발상으로 대박이 난 곳이었다. 식당 이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유명한, 베로나의 발코니 장면이 없으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고 하는 ‘발코니’ 장면에서 따왔다고 했다.

 밖에 줄 선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했다. 사장이 나와서 우리를 데리고 가는데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예약자이기 때문에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일본 국민들 정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했다.

 새치기는 있을 수 없는 거였다. 또한 황위 계승 7위의 다이히토가 있기에 더더욱 시비는 있을 수가 없었다. 역린(逆鱗)은 건드릴 수 없다는 건지 모른다. 필요에 따라 실속이 없는, 실권(實權)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존재 황실... 물론 그런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족속들도 있기는 하다. 바로 야쿠자다. 한 달 전에 예약해야 예약이 되는 이탈리안 식당인데 내가 한 달 후에 병원에 입원할 거라 미리 알고, 퇴원하면 이탈리안 식당에서 밥 먹게 해야지 해서 예약한 건 아닐 거니까 하여튼 뭔가 있었지만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숙모의 배려에 고마워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조폭처럼 무조건 무식하게 주인을 윽박질러서 자리를 강탈하거나 자리에 앉은 사람을 내쫓아서 차지한 예약석이 아닐 것이다. 누가 예약을 했는지 알아보고 만만한 상대를 골라 몇 배의 위로금(?)을 주고 다른 예약 날짜까지 잡아주고 정중히 양보(?)를 받은 것일 거다. 작은아버지 말로는 양보한 사람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이탈리안 식당 ‘베로나의 발코니’에서의 식사를 포기해야 할 거 같아 사업적 관계를 고려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양도받은 거다, 남 주기 아깝고 해서 주는 거니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시켜 먹고 카드를 그으라고 했다. 내가 부담가질까 봐 흰소리한 거였다. 나는 복잡한 게 싫어서 그냥 작은아버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이 모든 구상(構想)은 숙모의 머리에서 나온 거였다. 알다시피 작은아버지는 일본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야쿠자 두목이다. 숙모는 베일에 싸인 신비의 여자고, 한때는 전남편과 함께 일본 5대 야쿠자 조직을 다스린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명목상 손을 씻고 사업체를 운영하지만, 야쿠자 조직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숙모하고 외출하면 멀찍이 떨어져 깍두기들이 따라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숙모가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의 경고를 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그건 조직 전체의 명운이 걸린 문제라서 그런 거 같았다. 숙모가 작은아버지에게 좀처럼 하지 않는 잔소리를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보다 못한 내가 그랬다.

 

  - 작은엄마, 각방 쓰세요.

 

 작은아버지와 숙모가 빵 터졌다. 숙모는 얼굴까지 붉어졌다.

 이탈리안 식당 ‘베로나의 발코니’는 붐볐다. 앉아서 먹는 테이블은 몇 개 없고 대부분 키가 높은 탁자를 두고 서서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하루 테이블 회전율이 3

 회일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혹시나 해서 치한(癡漢)들을 생각해 여자애들을 앞에 세우고

 남자 셋이 뒤에서 에워싸고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런 우려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일어났다.

 어느 테이블을 지나가는데 나쁜 손이 슬그머니 나오더니 아야코는 패스하고

 유리나를 골라 허리 쪽을 더듬으려고 하는 순간,

 매의 눈을 가진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내가 잽싸게 그자의 손목을 잡고 꺾었다.

 

 - 윽...

 - 죽을래? 어디서...

 

 대학생 같았다. 훤칠하고 잘생겼다. 잘생긴 놈이 하는 짓이 어째 더러운 짓이냐,

 갑자기 성제가 떠올랐다. 일본에도 성제 같은 놈이 있구나, 지저분한 새끼...

 손목을 꺾은 손에 힘이 부쩍 들어갔다.

 

 -윽, 윽~

 

 같은 또래의 패거리들이 셋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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