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3개월짜리 남자
강현은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곧바로 지담을 뒤따라 나왔다.
지담은 그렇지 않아도 집에 가고 싶었는데, 강현의 실없는 농담이 오히려 반가웠던 차에, 욕 짓거리 한마디 해주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 남자 이렇게 금방 뒤따라 나올 줄이야... 지담은 귀찮았다.
강현은 다급하게 지담의 손목을 잡아체면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군...농담이었어 ”
급한 마음에 강현은 반말까지 나왔다.
지담은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저는 그쪽한테 관심 없습니다. 정 그렇게 연애를 하고 싶다면 다른 상대 찾아보시죠? 저한테 이러지 마시고요”
라고 말하고는 손을 뿌리치려는데, 강현이 더 힘주어 잡았다.
손을 놓으면 도망갈 게 뻔하니까...
그리고 그녀의 말에 자신의 고백이 또다시 무시당한 것 같아 화가 났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꾸 당신만 생각나.... 그런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찾아?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하라고...”
다소 격앙된 강현의 목소리에 지담은 어떨떨했다.
-어쩜 그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할 수 있는지...-
지담은 순간 마음이 찌르르했다. 머리에서 경고신호가 왔다.
지금 차단을 해야 한다고...
“그건 그쪽 마음이죠... 나더러 어쩌라고?”
“그래 이건 내 마음이야... 그래서 이제부터 나도 마음 가는 대로 해 보려고...”
-안돼...차단해야 돼-
지담의 마음이 다급했다.
“나 당신 말고도 머릿속이 터질 것 같으니까 보태지 마... 그리고 경고하는데 더이상 다가오지마”
“그럼 나하고 3개월만 만나자, 서지담...”
강현은 철벽 수비 서 철벽에게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천천히 다가가고, 지켜보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강현은 무대포로 나가기로 했다.
“뭐, 뭐하자고?”
“나랑 3개월만 만나자고... 3개월 뒤에도 당신 마음이 지금처럼 그대로라면 내가 깨끗이 물러나지”
이 황당한 제안에 어이가 없는 지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강현을 올려 다 보았다.
여전히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은 체, 말을 이어갔다.
“당신한테는 손해 보는 제안은 아닌 것 같은데... 결혼하자는 것도 아니고... 3개월 후에 당신마음이 그대로면 내가 귀찮게 안 하겠다고...”
“내가 거절한다면?”
“그럼 내가 당신을 이렇게 따라다니며, 귀찮게 할 수 밖에...”
“하~”
지담은 다른 한 손을 자신의 이마에 대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3개월 후, 당신이 나와 같은 마음이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가야 돼”
“무,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거절하겠어”
“왜? 겁나? 그럼 하는 수 없군... 내가 평생 따라다녀야지”
“..........”
평생이라는 강현의 말에 움찔한 지담이었다.
평생 이럴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3개월 이상은 귀찮게 할 것 같은, 남자인 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거침없고 막무가내인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한 지담이었다. 그때,
“브라보~난 이 연애 찬성일세~”
뒤에서 이 상황을 다 지켜본 세윤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지담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세윤이 더 빨랐다.
“생각할 게 뭐 있어? 3개월 후에 네 마음이 변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그거... 뭐가 문제야?”
지담은 곰곰이 생각했다.
-끝이 있는 연애라... 3개월 뒤 내가... 마음이... 변할 리...가 없잖아?...그럼 귀찮은 저 남자를 떼어 낼 수 있겠군...-
생각을 마친 지담은 씨~익 마녀의 웃음을 지으며,
“좋아, 알았어...단 약속 꼭 지켜... 3개월 후면 다시는 귀찮게 안 하겠다고.. 그럼 계약서를 써야겠군”
“아니 계약서는 안 써... 연애 기간은 3개월, 당신의 마음에 따라 내가 떠날지, 나하고 끝까지 함께할지, 조건은 이것 뿐이야”
“3개월 뒤 당신이 떠날지 어떨지,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계약서라도 써놔야지”
“계약서는 필요 없어... 계약서보다 더 정확한 증인이 저기 있잖아”
강현은 턱짓으로 세윤을 가리켰다.
세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동의한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건 싫어...좀 더 세밀한 조건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니 더이상 조건은 필요 없어... 이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그럼 난 마음 가는대로 행동할 테니까”
“아~알았어...아무튼 3개월 후에 귀찮게 안 한다는 약속 꼭 지켜, 알았어?”
“그러지... 그리고 당신도 당신 마음이 나한테 오는 걸 부정하지도 말고 피하지도 마, 그건 계약 위반이야... ”
사실, 강현은 계약서를 굳이 쓰지 않는 이유는 지담 때문이었다.
아마 계약서를 쓰게 된다면, 온갖 금지사항이란 금지사항은 다 적어 넣을 게 뻔했다.
그럼 남들이 다하는 연애다운 연애는, 제대로 못 하게 되는 건 안 봐도 훤한 강현이었다.
“음~근데 이 손 좀 놓지... 그리고 왜 자꾸 아까부터 반말이야?”
지담은 아까부터 강현이 자신에게 반말하는 게 기분 나빠서 자신도 말을 놓았다.
뜬금없는 질문에 강현은 웃음이 났지만 참았다. 그리고 그제 서야 손을 놓으며,
“그런 당신도 말을 놓고 있잖아”
라고 받아쳤다.
“아니 난.. 이 강현씨가 말을 놓기에 나도 그런 거지...”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기도 하고...이게 더 편하지 않아?”
“그래 나보다 늙어서 좋~겠다”
“푸하하하~ 이래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거라고...말, 한마디, 한 마디에 반응을 하니까...자, 그럼 계약 성립이 된 거지? 3개월 동안 잘해보자고”
그러고는 손을 내민 강현이었다.
“좋아... 3개월짜리 남자, 이 강 현 씨”
자신만만하게 지담은 강현의 손을 잡았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증인 세윤은 속으로 흐뭇하고 뿌듯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강현만큼은 꼭 지담의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지담이 이제는 그 아픔에서 벗어났으면 했고, 또 자신이 보기에도 강현은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담아, 첫 연애 축하한다-
세윤은 진심으로 지담을 축하했다. 물론, 속으로만....
겉으로 표현하면 자신은 아마 지담에게 살아남지 못 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