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길 검사가 경직된 얼굴로 원길을 봤다.
"푸른 눈을 가진 거머리를 조사해주시오. 그러면 나도 내 죄값을 치루겠소..."
그럴싸한 댓가였다. 검사로서는 사회 시선도 있었던 터라 감히 그룹 회장
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정직한 검사라 하더라
도... 그 파장은 무시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푸른 눈을 가진 거
머리를 찾아주면 죄값을 치루겠다고 자진해서 거래를 요구하지 않는
가... 검사가 피할 이유는 없었다.
"좋습니다."
검사는 파일을 덮고 일어섰다.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오..."
원길이 거절하고 휠체어를 끌었다.
검사가 기분 좋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대기하고 있던 경호요원이 다가섰다.
"남비서는 어디 갔나?"
"잠깐 어딜 좀 다녀오겠다고 하셨는데... 아직 안 오셨습니다."
"그래..... 집으로 가지..."
미령이 부들부들 떨고 남비서를 올려다봤다. 남비서가 괴로운 듯 주저앉
은 미령을 일으켜세웠다.
"회장님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그게 회장님을 위한 길이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울 거에요. 뱃속에 아이 지울 거에요..."
도우미가 엿듣다 남비서 눈총에 주방으로 들어갔다.
미령이 울먹이며 남비서의 팔을 붙잡았다.
"나 회장님 사랑해요... 진심이에요..."
남비서가 진실을 읽어보려는 듯 뚫어지게 봤다.
미령이 간절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저도 제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장담 못하겠
습니다."
남비서는 정중히 인사하고 나갔다.
긴장이 풀어진 듯 미령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러다 애처롭게 배를 어루만
졌다. 눈시울이 붉히다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갔다. 도우미가 놀라 나왔지
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령은 없었고 현관문만 크게 열려 있었다.
원길이 탄 자동차가 연희동 저택에 다달을 쯤... 미령이 지나가는 택시
를 세웠다. 잘못 봤을까.... 자세히 보려 미간을 좁혔다.
"여사님이신데요....."
운전기사도 한눈에 알아보고 말했다.
"따라가...."
핸들을 틀어 택시 뒤를 쫓아 달렸다.
택시에 탄 미령은 서둘러 핸드폰을 찾았다.
"여보세요..."
성현의 무거운 목소리였다.
"나... 미령이야...."
미령은 울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
"날 데리고 도망쳐죠... 너 날 사랑하잖아...."
"미령아.... 어디야..."
"너한테 가고 있어.... 부탁이야. 나 무서워...."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해봐... 아니 와서 말해...."
"나쁜 자식.... 나 니 아이 가졌어...."
미령이 전화기를 껐다.
성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금방 들려온 소리를 되새겼다.
뭐라고... 아이를 가졌다고....
급히 외투를 걸치고 나갔다. 주차장에서 미령이 오길 초조하게 기다렸
다. 택시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깜빡였다. 미령이 한걸음에 달려와 성현
을 껴안았다. 눈물이 뒤범벅된 얼굴을 성현이 매만졌다.
"미령아......"
"무서워... 너가 날 가져... 우리 다 끝내자..."
뒤따오던 자동차가 시동을 끄고 가만히 섰다. 원길이 상심한 듯 그 둘에
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