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탄 원길은 말이 없었다. 미령은 미안하고 불안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비서가 룸미러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짐작하느라 애썼
다.
"미령씨 먼저 집에 들어가요..."
"원길씨는요?"
"난 회사에 일이 남았어요."
"늦었는데 내일 해요..."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 하지 않기로 해놓고선... 미령이 씁쓸히 봤다.
원길은 금새 고개돌려 차창을 향했다. 어둠으로 원길의 무표정한 얼굴이
반영되었다.
미령이 홀로 연희동 저택에 떨궈진 느낌이었다. 원길은 영영 돌아오지 않
을 것처럼 쌩하니 가버렸다. 쓴맛을 다시고 저택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헤드라이트를 깜빡 거렸다. 미령이 돌아보자 성현이 내렸다.
"왜 혼자 내려?"
미령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다가가 성현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성현이 놀라 다시 날아오는 손바닥을 막았다.
"더 이상 유치해서 못 봐주겠어! 육체적 교감? 허!"
"너도 좋았잖아. 나랑 섹스하고 싶어 죽겠잖아. 안 그래?"
"..............."
"넌 창녀야. 네 몸 속엔 아직 남아있다고. 내가 깨워줬을 뿐이야..."
"미친 놈."
미령이 비참해서 왈칵 눈물이 터져나왔다.
"누가 내 성질 건드리래. 너한테 좋을 거 없다구. 알아!"
"그래.. 너 소원대로 내가 없어져 주면 되지. 어디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
어버려줬으면 좋겠지! 응?"
서럽게 눈물을 흘리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내가 죽을게... 그럼 너도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 흐느적거리며 미령
이 생각했다.
성현이 약간 당황해서 미령을 일으켜세우러 했다. 하지만 미령은 뿌리치
고 일어나 다시 핸드백으로 성현을 때렸다.
"어디 끝까지 가봐! 끝까지 가서 너도 후회안 할 자신 있나 어디 해봐!
해보라구!!"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고 미령이 저택으로 뛰어들어갔다. 성현은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무하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
늦은밤 사무실로 돌아온 원길이 결심을 굳힌 얼굴로 남비서를 봤다.
"남비서... 아까 만났던 조성현에 대해 조사해봐. 그의 출생, 과거, 여
자, 배경... 아는 건 모조리 전부다 말야. 그리고 들키지 않게 조심해."
"왜 그러십니까?"
"보통 사람 같진 않아. 살인이라도 저지를 사람처럼 보였어."
남비서가 깜짝 놀랐다.
"날 헤칠 뜻은 아니겠지만 꼭 누군가를 죽이고 말겠다는 눈빛이었거
든...."
불길한 눈동자를 허공에 두었다.
그러다 기획상황실장이 두고 간 보고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자극
이라도 받은 듯 버럭 화를 냈다.
"누가 이런 보고서를 여기다 두고 가냔 말이야!"
움찔 놀라 남비서가 얼른 보고 파일을 치웠다.
"정신 빠진 놈. 중대한 보고서를..."
혀를 내차며 남비서에게서 파일을 뺏었다. 오늘 하루 주가는 무려 만원이
나 폭등했다. 길게 한숨을 쉬고 이마를 붙잡았다.
이러다 끝없이 추락하겠지.... 불길해....
이제라도 돌아가야 할까....
힘없이 책상에 팔베개를 하고 머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