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령이 나와 소라에게 목례로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소라가 황급히 뛰어나왔다.
"은미령씨.... 저 좀 잠깐 볼까요?"
두 사람은 사옥 꼭대기에 마련해둔 잔디 벤치에 앉았다.
미령은 뿌옇게 안개낀 서울 시내를 내려봤다.
"얘기 들었어... 결국 오빠를 배신했더군..."
미간을 찌푸리고 소라를 향했다.
"말 조심해죠.. 예전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회장 부인이야..."
"허... 기가 막히네... 이런 식으로 사람 뒷통수 치는게 전문인가보지..
너가 언제부터 회장 사모님 소릴 듣고 살았어!"
주먹이라도 한 대 날라올 기세로 씩씩거렸다.
"너도 마찬가지 아냐. 성현씨 사랑하지 않잖아. 단지 니 욕구를 채워 줄
사람을 찾았을 뿐이잖아..."
소라가 사납게 째려봤다.
"좋아... 나 순수하지 못해. 그래 너도 말했다시피 더러운 욕구로만 가득
찼어. 근데 내 욕구충족에 방해되는 건 누구도 용납 못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겠다는 것 같네..."
"그럼.. 당연하지. 누가 누가 이기는지 보자구..."
"너나 당장 사표 쓸 각오해!"
미령이 벌떡 일어나 걸어 내려갔다.
"꼭 보고 말겠어... 너가 피눈물 흘리는 걸 ...."
소라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분이 상할때로 상한 미령이 울긋불긋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초
조하고 불안해졌다. 띵- 회장실이 있는 층에 멈췄다. 미령이 화들짝 놀
래 원길을 봤다. 남비서가 휠체어를 끌고 타려고 서 있었다.
"아직 안 갔어요......?"
"저.... 원길씨...."
원길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았다.
"왜 그래요?"
미령이 엘리베이터 밖을 나와 원길을 꽉 껴안았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영문을 모르는 원길이 당황했다.
"무슨 일 있었군요? 왜 그래요? "
남 비서가 흐느적거리는 미령을 억지로 일으켜세웠다.
"원길씨는 언제나 내 편 맞죠? 그렇죠?"
"맞아요... 난 미령씨밖에 없어요."
안심한 듯 눈물을 닦았다.
"무슨 일 계십니까?"
이번에는 남비서가 물었다.
"아니요... 그냥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런가봐요..."
"네... 회장님 그만 가시죠..."
"어디 가세요?"
"네.. 이따 집에서 봐요..."
미령이 한쪽으로 길을 비켜줬다.
"제가 댁까지 모실까요?"
남비서가 예의를 갖춰 말했다.
"그럴 거 없어요. 택시 타고 가면 되요..."
원길과 남비서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미령이 흥분을 가라
앉히려 숨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