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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27.강 레옹과 윤 마틸다
작성일 : 17-11-06 18:06     조회 : 16     추천 : 0     분량 : 8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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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을 찾기 위해 추적에 나서기 전 철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섰다.

 

 오늘 철수는 첩보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블랙 슈트를 입고 있었다.

 

 항상 단정하게 목까지 채워져 있던 단추는 거칠게 풀어헤쳐있었다.

 

  ㅡ 윤백룡 씨가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크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는 것을 봤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흥신소를 찾은 철수는 죽기 전에 백룡의 이상행동에 대한 정보를 하나 더 찾을 수 있었다.

 

  ㅡ 선생님이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셨다고요?

 

  ㅡ 네. 그런데 그게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철수는 다시 미간에 깊게 주름을 잡았다.

 

 단서. 조금 더 많은 단서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얻은 정보로 선생님을 죽인 범인을 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위해선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ㅡ 그런데 형. 윤백룡 씨가 형의 인생에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한국으로 거처를 옮기면서까지 집착하는 이유가 뭐야?

 

  ㅡ …….

 

 한국을 기점으로 하는 아시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온 것이었지만, 태오는 급하게 한국으로 거처를 옮기는 철수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ㅡ 솔직히 말해봐. 한국으로 가야하는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야?

 

  ㅡ …….

 

 태오의 질문에 철수는 저도 모르게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났던 제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고 있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너무나도 무능력하고 쓸모없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선생님에게 진 마음에 빚을 갚기 위해서였지만 점점 철수는 제이에게 무언가 도움이 돼주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ㅡ 철수 씨와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철수는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첫사랑을 만난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자신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의 순수했던 눈동자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선 자신은 꼭 선생님의 죽음에 비밀을 밝혀야 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굳은 다짐을 한 철수는 거실로 나왔지만, 아직 제이가 준비를 마치지 않은 것 같았다.

 

 손목시계를 보면서 시각을 확인하고 초조해진 철수가 그녀를 불렀다.

 

  "제이, 어서 나와요. 얼른 가야죠. 이러다간 늦겠습니다."

 

  "네, 지금 나갈게요."

 

 대답을 하고 나서도 나오지 않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그녀의 방 문 앞으로 다가갔다.

 

 벌컥.

 

 철수가 막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에 제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결좋은 긴 생머리를 자랑하던 그녀는 어깨까지 똑 떨어지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제이?"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왠지 모르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진하게 스모키 화장을 한 제이는 길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그녀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것 같았다.

 

  "제이, 제이 맞아요?"

 

  "그럼요. 설마 제가 머리 잘랐다고 몰라 보시는 거예요?"

 

 화장을 하면 어조도 바뀌는 건지 제이는 새침한 말투로 철수에게 대답했다.

 

  "얼굴에 그건 뭡니까?"

 

  "선글라스죠."

 

  "예전에 꼈던 거랑 다른 것 같은데……."

 

 철수가 머무는 호텔에 왔을 때도 제이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잠자리 같은 선글라스로 제이의 작은 얼굴을 반쯤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였는데, 지금 그녀가 끼고 있는 선글라스는 알이 작고 동그란 선글라스였다.

 

  "사실 이건 제 것이 아니라 철수 씨 거예요."

 

  "……내 꺼요?"

 

  "네, 철수 씨도 저만큼은 아니지만, 사람들한테 얼굴이 많이 알려졌잖아요. 그러니까 변장은 필수죠."

 

 제이가 자신의 얼굴에 선글라스를 씌우려고 하자 철수가 고개를 내저어 거부했다.

 

  "왜 그러세요. 제가 철수 씨를 위해서 준비한 건데."

 

  "싫습니다. 그거 안 할래요."

 

  "왜요? 이거 괜찮지 않아요?"

 

 제이가 동그란 선글라스를 끼며 철수를 바라보았다.

 

  "괜찮군요."

 

  "그렇죠? 괜찮죠?"

 

  "……네, 김구 같아요."

 

 철수의 말에 제이가 살짝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뾰로통하게 변한 그녀의 표정이 귀여워 철수는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철수가 넌지시 그녀에게 물었다.

 

  "제이."

 

  "왜요?"

 

 단발머리를 한 제이.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준비했다는 동그란 선글라스와 검정색 비니 모자. 이건 분명히…….

 

  "혹시 '레옹과 마틸다' ……뭐 그런 겁니까?"

 

  "우와, 어떻게 알았어요. 역시 철수 씨는 영화에 대해서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철수는 다시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까까지 잔뜩 올라있던 사기가 제이의 황당한 행동 때문에 한순간에 누그러진 철수는 조금 허무해졌다.

 

  "……별로인가요? 그럼 그냥 가발 벗을까요?"

 

 제이가 조심스럽게 묻자 철수가 한 손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요. 좋습니다."

 

 칭찬에 약한 그녀는 칭찬 한마디에 또 헤실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단순하지만 순수한 그녀를 보고 미소를 머금은 철수는 제이에게 팔짱을 끼라는 듯이 한쪽 팔을 내밀었다.

 

  "갑시다."

 

 잠시 머뭇거리던 제이가 용기를 내어 그의 팔에 팔짱을 끼자 철수는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철수의 눈빛은 그의 강한 의지라 고스란히 담긴 듯 날카롭게 빛났다.

 

 

 

 ***

 

 

 

 생각보다 아빠의 죽음에 비밀을 파헤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제이는 낙담한 듯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도 검찰도 기자도 아닌 철수와 제이가 백룡이 자주 다니던 가게를 조사하고, 죽기 전에 백룡의 행동에 무슨 이상한 점이 없었는지 물어보고 다녔더니,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을 수상하게 바라봤다.

 

  "철수 씨, 어쩌죠? 다들 협조를 안 해주시고 우리를 수상하게만 바라보네요."

 

 아빠가 자주 가시던 카센터, 아빠가 매일 운동하러 가셨던 동네 헬스장, 아빠가 주말마다 가시던 동네 목욕탕을 차례대로 들렀지만, 딱히 이렇다 할만한 성과는 없었다.

 

 아빠는 죽기 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시면서 평범하게 생활하셨다는 증언뿐이었다.

 

  "……인제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요?"

 

  "아닙니다. 제이.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말아요."

 

 철수는 살며시 제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다정하게 그녀를 위로했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제이. 분명히 우리는 할 수 있어요."

 

 직접 운전까지 하고 오느라고 많이 지쳤을 법도 한데, 철수는 힘든 기색 없이 제이를 다독였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자주 가시던 설렁탕 집에 가봅시다."

 

 철수의 말에 제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 백룡 씨가 죽기 전에 뭔가 이상하지 않았냐고요?"

 

  "네, 혹시 누구랑 싸우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셨다거나……."

 

 조금이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생각한 제이는 한번 더 힘을 내고, 긴장한 표정으로 설렁탕 집에서 서빙을 하는 30대 여성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고…… 그런데 누구세요?"

 

  "……아, 저는 윤 백룡 씨랑 아주 친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에게 자신을 윤백룡의 딸이라고 소개하면 그녀가 윤제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면 또 이상한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이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했다.

 

  "그래요? 그런데 윤 백룡 씨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지 않았나요?"

 

  "네? ……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아직 2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혀 타인인 사람들에게는 아빠의 죽음이 멀게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인데 무슨 비밀이 있니 마니 하면서 파헤칠 필요가 있을 까요?"

 

  "……."

 

  "아니, 그렇잖아요. 이미 죽은 사람이 억울한 게 뭐 있다고……."

 

  "말 함부로 하시지 마십쇼."

 

 보다 못한 철수가 제이를 등 뒤로 보내고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갑자기 찾아와서 민폐를 끼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철수의 정중한 인사에서 여자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못하실 거면 최소한 방해라도 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이, 어서 갑시다."

 

 숨이 턱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제이는 철수의 손에 이끌려서 밖으로 나왔다.

 

  "괜찮아요? 원래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으니까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말아요."

 

 철수의 위로에도 제이의 마음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로 저분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이."

 

 제이는 눈물이 맺힌 눈동자로 철수를 올려다봤다.

 

  "정말 이렇게 해서 아빠의 죽음에 비밀을 밝힐 필요가 있을까요?"

 

  "……제이."

 

  "전 정말로 자신이 없어요."

 

 제이의 풍성한 속눈썹이 처연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험난한 길이라는 것을 예상하였지만,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냉담한 사람들의 반응에 제이는 처음과는 달리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제이, 몇 번 실패했다고 해서 너무 낙담하지 말아요."

 

  "……."

 

  "사람은 원래 처음에는 다 실패하는 겁니다."

 

  "……."

 

  "제이도 처음에 마술을 배울 때를 생각해봐요."

 

 철수의 말에 제이는 처음 마술을 배웠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마술 학원에서 배운 것이 아니었고, 아빠의 저서 '마술로 배우는 과학', '마술의 정석'을 보고 혼자서 독학으로 마술을 공부했었다.

 

 혼자서 책을 보고 스스로 배우는 것이어서 실패도 많이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제이는 마술을 독학한 지 1년 만에 국내에서 열린 마술 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속에 베배꼬인 사람이 하는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제이."

 

  "……."

 

  "나랑 함께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우리는 분명히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꺼예요."

 

 철수의 말에 제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마지막으로 동아줄을 붙잡는 다는 심경으로 들어선 가게에서 철수는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ㅡ 동네 목욕탕에서 윤백룡 씨가 어떤 사람이랑 같이 사우나를 하는 것 봤는데, 그 사람이 조금 이상했지.

 

  ㅡ 어떤 점이 이상했습니까?

 

  ㅡ 아 글쎄 조폭도 아닌데 등뒤에 문신을 하고 있더라니까.

 

 철수는 본능적으로 그와 백룡의 죽음에 무슨 관계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생각에 표정이 밝아진 철수가 운전석에 탑승했다.

 

 그런데 조수석에 앉아있는 그녀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었다.

 

  "제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습니까?"

 

  "……흑! 철수 씨."

 

 갑자기 자신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흘리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당황한 듯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혹시 누가 제이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흐흑."

 

 아무 말 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제이를 보자 철수의 가슴을 찢어지는 듯했다.

 

 또 그녀가 울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신을 혐오스럽게 만들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자신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철수가 제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가 기대어 울 수 있도록 자신의 품을 빌려주는 것밖에 없었다.

 

  "제이, 만약 선생님의 죽음에 대해서 파헤치는 것이 힘들면 이야기해요. 그냥 내가 혼자서 다 하겠습니다."

 

  "……흑."

 

 철수의 말에 제이는 더욱더 감정이 복받친 듯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철수는 품 안에 있는 제이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아직도 눈물을 그치지 않는 제이를 보면서 혹시나 자신이 너무 세게 두드린건가 싶어서, 철수는 손에서 힘을 빼고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철수 씨, 사실 난 아빠와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어요."

 

 제이가 털어놓는 말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우연히 친척 어르신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어머니가 사실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쏟아지는 진실에 철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그저 가만히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난 그래서 아빠가 나를 미워하시는 줄 알았어요. 난 정말 성격이 나쁜 것 같아요."

 

  "제이."

 

 철수가 팔로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으면서 제이의 이름을 불렀다.

 

 선생님이 제이를 미워하신다니, 그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백룡을 지켜봤던 철수는 그가 얼마나 자신의 딸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다.

 

  "철수 씨가 나보다 더 열심히 아빠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는 것을 보니 ……너무 부끄러워요."

 

 제이는 철수가 건넨 티슈로 눈물을 닦으면서 울먹거렸다.

 

 철수는 촉촉해진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제이를 보자 온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순수한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 참 좋았다.

 

 제이는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얼마나 순수한지 알고 있었던 철수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제이, 선생님이 제이를 싫어했다는 생각을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에요."

 

  "……."

 

  "선생님은 항상 메일로 제이가 마술 대회에서 상을 탔다면서 내게 자랑하시곤 하셨어요."

 

  "……그러셨나요?"

 

 아마 감정표현에 서툰 백룡은 제이에게 그러한 사실을 절대로 티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백룡은 제이가 마술 대회에서 받아온 상을 사진으로 찍어서 첨부파일로 보내며 철수에게 자랑했었다.

 

  "그리고 제이. 왜 선생님이 '환상의 마술'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셨는지 아세요?"

 

  "……그, 글쎄요."

 

 제이가 눈물이 맺힌 눈가를 티슈로 찍어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선생님이 제게 말씀했던 적이 있으세요."

 

  ㅡ '환상의 마술' 트릭은 나중에 제이가 성인이 되면 넘겨줄 거야.

 

 철수가 '환상의 마술'이 적힌 노트를 건드렸다고 크게 화를 낸 백룡은 몇 시간 뒤 맥주 몇 캔을 사서 철수에게 다가왔다.

 

  ㅡ 내 딸이지만 제이는 훌륭한 마술사가 될만한 재능과 소질이 타고난 아이야. 나중에 내가 물려준 '환상의 마술'을 제이가 무대 위에서 하는 것을 보는 게 내 일생의 소원이지.

 

  "……아빠의 소원이 정말 그거였나요?"

 

  "네, 그럼요. 내 귀로 똑똑히 들었어요. ‘환상의 마술’은 제이를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

 

  “선생님은 제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셨습니다."

 

 철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자 제이는 이제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아빠가 저를 위해서…….”

 

  “그래요. 모두 제이를 위해서입니다..”

 

 이제야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았다는 듯이 제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룡의 진심을 제이에게 똑바로 전한 철수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철수 씨, 감사해요.”

 

 제이가 가만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순간 철수의 눈동자에 그녀의 반짝이는 입술이 들어왔다.

 

 오늘 꽃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제이의 입술은 앵두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한입 배어물고 싶은 것 같은 빛을 발하는 제이의 입술은 보드랍고 탐스러워 보였다.

 

 철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귓불로 향했다.

 

 부드럽고 말랑한 귓불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녀의 목을 따라서 블라우스 깃 사이로 보이는 보드라운 가슴이 철수의 시야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보드라운 가슴에 코는 파붇고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싶었다.

 

 갈증이 난 것처럼 입안이 바짝 마른 철수는 열기가 담긴 날숨을 내뱉었다.

 

 차 안에서 단둘이 그녀와 있는 것이 이렇게 자극적이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배 속에서 끓는 욕망으로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갑시다."

 

 여기서 계속 있으면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철수는 서둘러서 운전대를 잡았다.

 

 철수의 팔뚝에 두꺼운 힘줄이 성이 난 듯 잔뜩 솟아있었다.

 

  '제이, 위험하니까 안전띠 메요."

 

  "아, 네, 근데 그게……."

 

 아무래도 안전띠가 안으로 접혀 들어간 것인지 제이가 쉽게 안전띠를 빼내지 못했다.

 

 망설이던 철수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서 왼손으로 조수석에 있는 안전띠를 잡아당겼다.

 

  "정말로 안 되네요."

 

  "……네, 그냥 갈까요?"

 

  "아니요, 안전띠 안 하면 위험합니다."

 

 철수가 다시 한번 힘주어 탁, 탁 안전띠를 잡아당겼다.

 

 제이는 철수가 쉽게 안전띠를 뺄 수 있게 살짝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고개를 살짝 비튼 제이의 숨결이 철수의 귓가에 와닿았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계속 안전띠를 잡아당겼지만 철수의 숨만 거칠어질 뿐이었다.

 

  "……미안합니다. 안전띠가 고장이 났나 봐요."

 

 결국 포기한 철수가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 왼손으로는 안전띠를 꽉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입술이 닿을 듯해서 제이는 긴장한 채로 가만히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무릎 위로 올려진 제이의 손은 주먹을 곽 틀어쥐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고른 숨을 내쉬던 철수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 운전대를 잡았다.

 

 철수의 시선은 아직도 블라우스 사이에 있는 제이의 뽀얀 피부에 내리 꽂히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의식한 듯 제이가 한 손으로 그녀의 옷깃을 여미자 철수는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유리창에 비친 제이의 표정은 살짝 달아오른 듯했지만, 철수는 온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철수의 시선은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져있는 그녀의 작고 하얀 손으로 향했다.

 

 잠시 망설이던 철수가 천천히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는 순간에 갑자기 철수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흠."

 

 또다시 공황발작이 시작되는 듯해서 철수는 다시 한번 헛기침을 내뱉었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던 피가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듯 차갑게 식어갔다.

 

 조금만 더 참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한 철수는 조수석 서랍에 있던 공황 장애약을 꺼내서 목구멍으로 집어삼켰다.

 

  "……하아."

 

 약을 먹었지만 쉽게 발작 증세가 가라앉지 않아서 철수는 근처 도로에 차를 세웠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제이가 놀랐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철수를 바라봤다.

 

  "철수 씨,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아닙니다."

 

 겨우 입술을 달싹여서 말을 내뱉은 철수는 다시 한번 길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인지 제이는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겨우 진정을 되찾은 철수는 다시 천천히 운전대를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하지만 아직 철수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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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두 사람 신혼부부죠? 2017 / 11 / 6 13 0 8649   
24 24.‘표적’이라 불리는 사나이 2017 / 11 / 6 14 0 8410   
23 23.그럼 나랑 사귈래요? 2017 / 11 / 6 19 0 7797   
22 22.만나서 뭐했습니까? 2017 / 11 / 6 16 0 8274   
21 21.연애하는 기분 2017 / 11 / 6 20 0 8500   
20 20.우리 이제 같이 살아요 2017 / 11 / 6 15 0 8426   
19 19.동거와 홈 셰어의 미묘한 차이 2017 / 11 / 6 19 0 8169   
18 18.아침형 인간 vs 올빼미형 인간 2017 / 11 / 6 18 0 8480   
17 17,다시 만난 철수 2017 / 11 / 6 15 0 8328   
16 16.그녀와 잘 어울리는 집 2017 / 11 / 6 14 0 8622   
15 15.인류애가 넘치는 남자 2017 / 11 / 2 20 0 7889   
14 14.난 독일로 돌아갑니다 2017 / 11 / 1 19 0 8558   
13 13.발송인불명 편지 2017 / 11 / 1 23 0 8661   
12 12.눈을 뗄 수 없는 여자 2017 / 11 / 1 12 0 7755   
11 11.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당신 2017 / 11 / 1 19 0 8472   
10 10.당신이 내 곁에 없다면 2017 / 10 / 31 20 0 8112   
9 9.혹시 나 좋아해요? 2017 / 10 / 31 18 0 8653   
8 8.불안한 사각관계 2017 / 10 / 31 13 0 8381   
7 7.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것 2017 / 10 / 31 20 0 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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