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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25.두 사람 신혼부부죠?
작성일 : 17-11-06 18:04     조회 : 13     추천 : 0     분량 : 8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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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철수와 함께 홈 셰어 생활을 한 지 벌써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이는 가방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철수에게 사과를 건넸다.

 

  "철수 씨, 죄송해요. 원래 청소기 돌리는 건 제가 해야 하는 건데……."

 

  "괜찮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못한 건데요."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집안일을 깜박했던 제이는 철수에게 청소기를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고양이와 함께 살다 보니 청소기를 하루라도 돌리지 않으면 온 집안이 고양이털로 더러워져서, 하루에 한 번 씩은 꼭 청소기를 사용해 청소를 해야 했다.

 

 바닥에 떨어진 고양이털 하나도 없는 걸 보아하니 철수가 그녀의 부탁대로 깔끔하게 청소를 해놓은 것 같았다.

 

  '그럼 난 세탁기를 돌려볼까.'

 

 텅 비어있는 빨래통을 보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 제이가 베란다로 나가보니 깨끗하게 빨아진 수건이 건조대 위에 차곡차곡 걸려있었다.

 

  "……어라?"

 

 분명히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집안일인데…….

 

 제이는 거실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철수에게 물었다.

 

  "철수 씨, 혹시 수건 빨래도 하셨나요?"

 

  "네, 내가 했습니다."

 

  "그건 원래 제가 해야 하는 일인데……."

 

  "누가 하면 좀 어떻습니까. 조금 덜 바쁜 사람이 하는 거지요."

 

 살짝 굳어진 철수의 표정을 보고 제이는 재빨리 말문을 열었다.

 

  "저는 철수 씨가 집 안 청소도 다 하시고 빨래도 다 하시느라 힘들까 봐 그런 거예요."

 

 철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는 김에 했습니다."

 

 홈 셰어 생활을 하기 전 걱정했던 것과 달리, 철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사는 건 제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장점이 많았다.

 

 집안일도 둘이 같이하니까 더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었고,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까지 더해지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럼 오늘 분리수거는 제가 할게요."

 

 쓰레기 버리기와 분리수거는 원래 철수가 하는 일이었지만, 철수에게 하라고 시키는 것보다 자신이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제이는 분리수거함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제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철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쌓여있는 쓰레기 봉지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러 가기 위해 카디건을 걸쳤던 제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철수 씨, 왜 그러시는 거예요?"

 

  "분리수거 하러 같이 갑시다."

 

 제이가 철수를 말릴 틈새도 없이 현관문 쪽으로 나온 철수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쓰레기 봉지와 분리수거 봉지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철수 씨, 같이 가요!"

 

 철수를 따라서 얼른 엘리베이터로 탑승한 제이는 철수의 손에 들려있는 쓰레기 봉지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제가 들어도 되는데……."

 

  "이거 보기보다 무겁습니다."

 

 철수는 단호한 어조로 계속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이 손 더러워지면 안 되잖아요."

 

 제이는 생긋 웃으면서 철수를 바라봤다.

 

 확실히 그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철수는 삐죽한 가시가 돋은 고슴도치 같은 성격에서 부들부들한 솜털처럼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철수는 그의 변화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분명히 그녀를 만난 이후로 그에게서 어떠한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났다.

 

 분리수거함이 모여 있는 아파트 뒤편에 도착한 철수와 제이는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유리는 유리대로, 일반 쓰레기는 일반 쓰레기대로 함께 사이좋게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가 그들에게 말을 붙였다.

 

  "신혼부부 두 사람이 같이 분리수거 하는 거예요? 아주 보기 좋네요."

 

  "네……네?"

 

 당황한 제이가 살짝 볼을 붉히면서 철수와 경비원 아저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더다.

 

 철수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진짜 보기 좋아요.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분리수거 같은 거 잘 안 하고 그냥 막 여기다 버려두고 그래요. 근데 신혼부부가 사이좋게 같이 와서 분리수거 하니 얼마나 좋아."

 

  "아저씨, 저희 신혼부부 아닌……."

 

  "그나저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분리수거를 잘 안 하는지 몰라."

 

 제이가 자신과 철수는 신혼부부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경비원 아저씨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셨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철수를 바라보니, 그가 그녀에게 이해하라는 듯이 눈짓을 보냈다.

 

  "진짜로 신혼부부끼리 다정해 보여서 정말 좋네. 예전에 서로 분리수거 안 하겠다고 죽어라 싸우던 젊은 부부가 있었거든. 물론 그 부부는 같이 산 지 1년도 안 돼서 헤어지던데. 두 사람은 정말 오래 가겠어."

 

 철수와 눈이 마주친 제이는 다시 한번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분리수거를 다 끝마치고 그와 함께 걸어오던 제이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우리 둘을 신혼부부라고 착각하셨나봐요."

 

  "그런가 보군요."

 

  "어쩌죠? 경비원 아저씨께서 오해하신 것 같은데……."

 

  "뭐, 우리 둘을 신혼부부라고 착각할 수 있죠. 그게 욕은 아니지 않습니까?"

 

 철수가 자신을 바라보자 제이는 고개를 작게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철수의 표정을 살피던 제이가 철수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아까 마트에서 딸기를 팔고 있더라고요. 철수 씨, 같이 딸기 사러 가실래요?"

 

  "됐습니다."

 

 철수의 단호한 거절에 제이는 살짝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왜요. 철수 씨, 딸기 좋아하잖아요."

 

 기껏 생각해서 해준 말이건만 철수의 목소리는 차가워도 너무 차가웠다.

 

  "나 딸기 안 좋아합니다."

 

 걸음을 우뚝 멈춘 제이가 놀란 듯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왜 내가 딸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겁니까?"

 

  "그거야 맨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만 드시던 철수 씨가 '늘 봄'까지 와서 딸기 스무디를 드시길래, 당연히 딸기를 좋아하신다고 생각했어요."

 

 철수가 몸을 돌려서 제이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딸기 좋아해서 딸기 스무디 사먹으러 간 거 아니었습니다."

 

  "……그럼요?"

 

 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수를 올려다보자,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가 커다란 손으로 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철수의 눈동자는 되레 그가 왜 늘봄까지 가서 좋아하지도 않는 딸기 스무디를 먹었을지 알아 맞춰보라는 눈빛이었다.

 

  "……앗!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제이가 힝, 하면서 항의를 하자, 철수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쓰윽 아파트 통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쩐지 슬쩍 미소 짓는 철수의 표정이 수수께끼 같아서 제이는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띵.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아주머니가 철수와 제이를 힐끔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 신혼부부죠?"

 

  "……네?"

 

 이번이 또 두 번째.

 

 철수와 함께 있는 걸 본 사람들은 다들 제이와 철수를 신혼부부라고 착각했다.

 

 어딜 봐서 철수 씨랑 내가 신혼부부로 보이는 거지?

 

  "진짜 두 사람 잘 어울리네. 선남선녀야. 난 처음에 두 사람 보고 우리 아파트에 연예인 커플이 사는 줄 알았다니까요."

 

 제이는 멋쩍은 듯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부부끼리 서로 '씨'라고 부르는 건 좀 너무 했다. 신혼은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는 건데, 서로 거리감 생기니까 '씨'라고 하지 말고 '아기', '자기'. 뭐, 이런 거로 불러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서로 달달한 호칭으로 많이 부르던데."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가만히 있던 철수가 불쑥 내뱉는 말에 제이는 화들짝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철수 씨가 이런 말을 할 줄이야.

 제이는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듣고도 믿기질 않는다는 듯이 철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럼요, 남편이 먼저 리드를 해야지 부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아니, 정말 또……?

 

 제이는 너스레를 떠는 철수를 보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철수 씨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주머니가 사라지고, 단 둘이 남은 제이는 살짝 그에게 눈을 흘겼다.

 

  "뭐예요. 철수 씨,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해요."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 그냥 맞춰드려야죠. 그렇다고 우리가 왜 같이 살게 되었는지 상세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틀린 소리는 아니어서 제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ㅡ 두 사람이 같이 분리수거 하는 거예요? 신혼부부가 아주 보기 좋네요.

 

  ㅡ 두 사람 신혼부부죠? 진짜 두 사람 잘 어울리네. 선남선녀야.

 

 경비원 아저씨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모두 제이와 철수를 신혼부부라고 착각했다.

 

 정말로 나랑 철수 씨가 신혼부부처럼 보이나 봐.

 

 제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힌 것을 보고 철수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발목까지 가리고 있던 스키니를 벗은 제이는 짧은 청바지와 민소매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래도 밀린 이불 빨래를 해야겠어.'

 

 어느덧 햇볕이 따사로운 7월이 되었다.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되니 두꺼운 이불을 안으로 집어넣고 가볍고 얇은 이불을 꺼내기 위해서, 제이는 집안에 나와 있는 이불을 모두 들고 욕실로 향했다.

 

  '역시 이불 빨래는 밟아서 빨아야 해.'

 

 잘못하면 옷이 다 젖을 수 있기에 짧은 청바지와 민소매 티셔츠로 바꿔 입은 제이는 그녀의 하얀 피부가 밖으로 훤히 노출시켰다.

 

 제이의 투명한 피부가 다른 사람 - 특히 한 집에 사는 강철수 씨 - 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제이는 욕실 문을 활짝 열고 이불을 무자비하게 밟아댔다.

 

  "……제이! 제이!"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철수의 목소리에 제이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철수 씨! 저 거실에 있는 욕실에 있어요."

 

 무슨 일이길래 철수 씨가 나를 다급하게 찾는 거지?

 

 제이는 자신을 애타게 찾는 철수의 목소리에 급한대로 비누 거품이 묻어있는 팔과 다리를 물로 씻어냈다.

 

  "제이, 또 괜찮은 카페 있으면 추천……."

 

 욕실 앞에 있는 제이와 마주친 철수의 동공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의 시선은 곧 제이의 가느다란 팔뚝 선과 훤히 드러난 제이의 뽀얀 허벅지에 와닿았다.

 

 이불 빨래를 하느라 급히 밖으로 나왔던 제이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면서 철수에게 다가갔다.

 

  "철수 씨, 무슨 일이세요?"

 

 철수는 홀린 듯이 제이의 흰 살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아닙니다."

 

 힘겹게 고개를 옆으로 돌린 철수가 그녀와 눈을 못 마주치며 물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그동안 사용했던 이불을 다시 집어넣기 전에 이불 빨래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제이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철수의 귀를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혹시 철수 씨가 어디 아픈가?'

 

 제이가 성큼 그에게 한걸음 다가가자 철수는 당황스러워하면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왜 그러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제이의 시선을 피하던 철수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면서 오른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먹은 듯 메스꺼워하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철수 씨,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아뇨, 아닙니다."

 

 하지만 철수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제이가 뭐라 묻기도 전에 철수는 쾅, 하고 그의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뭔가 철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안 제이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졌다.

 

 

 

 ***

 

 

 

 피터는 오른손에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철수가 사는 펜트하우스를 방문했다.

 

 '인종차별 반대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자신에게 그가 후한 점수를 준 건지, 전화 한 통에 철수는 순순히 자신을 그의 집안으로 끌어 들였다.

 

  「피터 씨,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철수의 손을 가볍게 잡은 피터는 정중하게 한국식으로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벽면에 벽돌이 쌓여있는 펜트하우스는 독일에서 손꼽는 부자가 사는 곳답지 않게 좁고 누추한 곳이었다.

 

 대체 이렇게 작은 곳에서 어떻게 살지.

 

 피터는 펜트하우스를 한 번 둘러보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대표님, 집으로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하지만 피터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것쯤은 피터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근처에 있다가 이곳에 철수 씨가 사신다는 게 생각이 나서 와봤습니다. 혹시 민폐를 끼치지 않았는지 걱정되는군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캣 타워에서 한껏 몸을 늘어트리고 있던 고양이는 피터가 나타나자마자 소파 밑으로 숨어버렸다.

 

 피터는 직접 가지고 온 초콜릿 케이크를 접시에 담고, 직접 뽑은 아메리카노를 철수에게 건넸다.

 

  「안색이 조금 안 좋아 보이시는군요.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 그렇게 티가 많이 나나요?」

 

 철수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멋쩍은 듯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좋은 미끼가 될 만한 것을 본능적으로 냄새 맡은 피터는 자신의 어두운 속내를 숨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 문제는 피터 씨가 잘 알아봐 주신 덕분에 문제없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피터는 크게 자른 초콜릿 케이크를 입안에 넣고 음미하며 철수의 표정 변화를 예민하게 관찰했다.

 

 철수는 무언가 고민이 있는 듯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혹시 같이 사시는 여자분이랑 관계가 있는 일입니까?」

 

  「아, ……네. 뭐,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죠.」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냥감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처럼 철수가 스스로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피터는 조금 초조한 듯 엄지와 검지로 양미간을 매만졌다.

 

  「사실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데…….」

 

 철수가 입술을 달싹이자 피터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저절로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는 겨우겨우 밑으로 당기면서 피터는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철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실 나도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을 잘 모르겠습니다.」

 

 한숨 쉬듯 토해낸 철수의 말을 듣고 피터는 역시나, 하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함께 살고 있다는 여자는 철수에게 보통 의미가 아닌 것 같았다.

 

 여자친구인 것 같지는 않은 데, 왜 그가 그녀와 함께 이런 누추한 곳에서 사는 걸까.

 

  「원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못 알아채고는 합니다.」

 

  「……그렇습니까?」

 

  「네, 다들 그러하다고 합니다.」

 

 철수가 조금 마음의 경계를 허문 것인지 소파에 몸을 편안하게 기대고 말을 이어갔다.

 

  「제이가 내 곁에서 멀어지면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또 제이가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면 그것 또한 두렵고 무섭습니다.」

 

 피터는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할 때였다.

 

  「혹시 같이 사는 여자 분이 너무 순진하셔서 그러신 거 아닙니까?」

 

  「제이가 순진하긴 합니다. 보통 다른 여자에 비해서 많이 순수한 편이죠. 하지만…….」

 

  「…….」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냥 내 마음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철수는 지금 상황이 조금 견디기 버거운 건지, 얼굴을 아래로 푹 숙였다.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 깊은 속에 기쁨이 샘솟은 피터가 슬며시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피터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윤 제이라는 여자가 강철수의 약점이로군.'

 

 

 

 ***

 

 

 

 근처 어린이집에 봉사활동으로 마술을 보여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제이의 표정은 조금 침울했다.

 

 아무래도 집을 나서기 전, 평소와 다르게 이상했던 철수의 상태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까 철수 씨 건강 상태가 정말로 안 좋은 것 같았어.'

 

 사실 철수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청소하러 들어간 그의 방안은 항상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는데, 어떤 날에 물건이 모두 흐트러져 있던 것을 발견했다.

 

  '……그날도 철수 씨 상태가 조금 이상했던 것 같아.'

 

 제이에게 집적거렸던 앤디를 내쫓고 같이 집으로 올라오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철수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식은땀을 흘렸었다.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의 반응이랑 아까의 반응이 완전 똑같았다.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의 성격상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답해주지 않을 게 뻔했다.

 

 제이는 가방 속에 들어있던 마술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정말로 이게 마법 지팡이였으면 좋겠는데, 철수 씨가 왜 지금 힘들고 괴로워하는 건지 '팡!'하고 소리치면 알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마술 지팡이를 휘익 돌리던 제이의 손에서 빠져나간 마술 지팡이가 멀리 날아갔다.

 

  "……어?"

 

 바닥에 떨어진 마술 지팡이를 잡으러 간 제이는 볼이 깊게 팬 외국인과 마주쳤다.

 

 제이가 사는 곳은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라, 그리 낯설지 않았지만 뭔가 기분이 께름칙했다.

 

 파란 눈의 외국인은 제이가 떨어트린 마술 지팡이를 그녀에게 건네며 생긋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제이 씨」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외국인을 보고 제이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영국 발음이라기에는 조금 더 딱딱하고 빠른 영어 악센트를 구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아시나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제이 씨. 저는 피터 블링켄베르라고 합니다.」

 

 제이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만 내미는 손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그의 손을 잡았다.

 

 마주 잡은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강철수 씨와 같이 사는 윤제이 씨 맞으시죠?」

 

  「……네? 혹시 철수 씨랑 아시는 사이세요?」

 

  「저는 지금 방금 철수 씨 집에서 나오는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철수 씨와 아는 사이라니, 딱히 의심할 필요는 없겠구나 싶어진 제이는 어두워진 표정을 밝게 풀려고 노력했다.

 

  「철수 씨한테 제이 씨가 굉장히 소중한 사람인 것 같더군요.」

 

  「……네? 아니네요. 설마요.」

 

 제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피터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제이는 그가 작은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기분 나쁜 사람이야."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을 느낀 제이는 조용히 그녀답지 않은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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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두 사람 신혼부부죠? 2017 / 11 / 6 14 0 8649   
24 24.‘표적’이라 불리는 사나이 2017 / 11 / 6 14 0 8410   
23 23.그럼 나랑 사귈래요? 2017 / 11 / 6 19 0 7797   
22 22.만나서 뭐했습니까? 2017 / 11 / 6 16 0 8274   
21 21.연애하는 기분 2017 / 11 / 6 20 0 8500   
20 20.우리 이제 같이 살아요 2017 / 11 / 6 15 0 8426   
19 19.동거와 홈 셰어의 미묘한 차이 2017 / 11 / 6 19 0 8169   
18 18.아침형 인간 vs 올빼미형 인간 2017 / 11 / 6 18 0 8480   
17 17,다시 만난 철수 2017 / 11 / 6 15 0 8328   
16 16.그녀와 잘 어울리는 집 2017 / 11 / 6 14 0 8622   
15 15.인류애가 넘치는 남자 2017 / 11 / 2 20 0 7889   
14 14.난 독일로 돌아갑니다 2017 / 11 / 1 19 0 8558   
13 13.발송인불명 편지 2017 / 11 / 1 23 0 8661   
12 12.눈을 뗄 수 없는 여자 2017 / 11 / 1 13 0 7755   
11 11.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당신 2017 / 11 / 1 19 0 8472   
10 10.당신이 내 곁에 없다면 2017 / 10 / 31 20 0 8112   
9 9.혹시 나 좋아해요? 2017 / 10 / 31 18 0 8653   
8 8.불안한 사각관계 2017 / 10 / 31 13 0 8381   
7 7.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것 2017 / 10 / 31 20 0 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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