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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21.연애하는 기분
작성일 : 17-11-06 18:00     조회 : 19     추천 : 0     분량 : 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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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로운 오후, 초콜릿 와플이 맛있다고 입소문 난 카페를 찾은 윤정은 귀엽지만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는 제이를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요즘 제이의 행동이 이상하긴 하단 말이야.'

 

 중학교 때부터 오랫동안 제이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윤정은 그녀의 행동에 생긴 미세한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제이가 지금처럼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ㅡ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재미있는 동영상이라도 있는 거야?

 

 언젠가 한 번은 윤정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뭘 보고 웃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제이는 바람피다 걸린 것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급하게 핸드폰 화면을 손으로 가렸었다.

 

  ㅡ 으……응? 아니야, 별거 아니야.

 

  ㅡ 그런데 왜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자꾸 웃는 거야? 너 솔직히 말해봐. 요즘 썸타는 남자 있니?

 

  ㅡ 아니야, 썸타는 남자는 무슨…….

 

 강력하게 부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제이는 지금 막 연애를 시작하는 여자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또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ㅡ 이 영화 진짜 재밌다. 입소문 좋아서 봤는데 진짜 볼만 하네.

 

  ㅡ 응, 정말 재미있었어.

 

  ㅡ 제이야, 우리 이제 어디 갈까? 노래방 가서 신나게 노래라도 부를까?

 

  ㅡ ……응? 아, 저기…….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내 새끼들 노래나 부르려고 했던 윤정은 제이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푸시쉭 김이 빠졌다.

 

 노래방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애가 왜 이럴까.

 

  ㅡ 미안해, 윤정아. 나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ㅡ 벌써? 아직 8시밖에 안 됐는데?

  ㅡ ……미안. 내가 9시까지는 꼭 집에 들어봐야 하거든. 그럼 이만 갈게.

 

 마치 자정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제이는 윤정이 붙잡기도 전에 쏜살같이 사라졌다.

 

  ㅡ 이상하네, 예전에는 지하철 끊기기 전까진 놀아도 괜찮다고 했는데.

 

 혼자 덩그러니 지하철역 앞에 남겨진 윤정은 혹시 제이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처음으로 의심했다.

 

 오늘도 영어 회화 수업을 듣기 전에 앤디가 내준 과제를 하러 카페에 왔는데, 제이는 과제는 하지 않고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핸드폰 닳겠다 닳겠어,

 

 한마디 하려다가 윤정은 꾹 참고 아이스 카페라테에 꽂힌 빨대를 빨았다.

 

 미키 마우스 모양의 핫케이크를 찍은 사진을 보면서 헤실 미소를 머금은 제이가 철수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철수 씨, 미키 마우스 핫케이크 너무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원래 식사 준비는 제이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일찍 일어난 철수는 제이가 잠에서 깨지 않게 혼자서 조용히 핫케이크를 만들어 먹고, 늦게 일어날 그녀를 위해서 핫케이크를 하나 더 만들어 놓고 나갔다.

 

 그것도 깜찍한 미키마우스 모양으로.

 

 아침에 일어난 제이는 예쁜 접시에 올려져 있는 미키 마우스의 한쪽 귀가 접혀 있는 것을 보고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모양은 조금 어설펐지만, 맛은 끝내주게 좋아서 조금씩 잘라 먹다 보니 어느새 접시는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맛있게 먹었습니까? 그럼 다행이군요.]

 

  [네, 정말 맛있었어요 ㅎㅎ]

 

  [냉장고에 생크림도 있는 데 핫케이크랑 같이 먹었습니까?]

 

 제이가 살짝 입술을 앞으로 내밀고 헐, 하는 소리를 냈다.

 

  [냉장고에 생크림 있었어요? 헐, 나 생크림 진짜 되게 많이 좋아하는 데.]

 

 철수가 만들어 놓은 미키 마우스 핫케이크를 보고 너무 기뻤던 나머지, 제이는 냉장고를 자세히 살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로 미니 오픈으로 핫케이크를 따뜻하게 데웠다.

 

 조금 아쉬워진 제이는 슬픔이 가득 담긴 메시지를 그에게 보냈다.

 

  [생크림에 찍어서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 T^T]

 

  [아무래도 냉장고에 붙여 둘 수 있는 미니 칠판 같은 걸 하나 사야겠습니다.]

 

  [미니 칠판이요?]

 

  [네, 앞으로 거기다가 냉장고에 있는 것을 적어두면, 제이가 잊지 않고 꺼내서 먹을 수 있잖아요.]

 

 아이디어 뱅크도 아닌 데 어쩜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걸까, 제이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네, 미니 칠판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에게 간결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 제이의 입꼬리가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철수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제일 좋았던 건, 그가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 답장을 바로바로 보내 준다는 것이었다.

 

 독일에 있는 철수와는 아무래도 시차 때문에 메시지를 주고받아도 계속 이어지는 대화 같진 않았는데,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와 그녀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는 기분이었다.

 

 제이는 영어 회화 수업 시간이 되기 전에 빨리 과제를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펜을 잡았다.

 

  "제이야."

 

  "……응?"

 

 한 손으로는 재빨리 영어 작문을 완성하면서 제이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 정말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흘러내려 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꼽으면서 제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야, 너 혹시 남자친구 생겼어?"

 

  "……뭐어?!"

 

 너무나도 어이없는 물음에 황당해진 제이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다가 그만 볼펜을 아래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괜찮아.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

 

  "……그런 거 아니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제이가 다시 펜을 들어 밀린 영어 과제에 집중했지만, 여전히 윤정은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그럼 너 왜 핸드폰 화면을 보고 계속 웃는 거야?"

 

  "으……응? 아, 그게……."

 

 철수와 함께 살기로 한 제이는 이 사실을 윤정에게 이야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많이 망설였다.

 

 윤정은 남자와 홈 셰어 하는 여자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함께 사는 사람이 철수라는 것을 비밀로 했다.

 

 정말 세상에서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였지만, 친구 사이에도 어느 정도 지켜야 하는 선은 있는 법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제이는 입을 닫고 어색한 미소만 흘렸다.

 

  '그래도 철수 씨가 내 남자친구라니, 그건 진짜로 말도 안 되지.'

 

 다시 펜을 들어 영어 작문을 완성하는 제이의 표정은 아까보다 살짝 굳어져 있었다.

 

 사실 철수가 혹시 자신을 좋아하는 걸까, 라고 의심했던 적이 있었지만 떡볶이 집에서 불난 듯이 화를 냈던 철수를 보고 제이는 그런 생각을 아예 머릿속에 배제하고 있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아.'

 

 괜한 말을 꺼내서 그와 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지금의 평화를 마음껏 누리고 싶었던 제이는 다시 펜을 들고 글씨를 사각사각 써 내려갔다.

 

 

 

 ***

 

 

 

 작게 웃음 짓는 철수를 보고, 닥터 리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대표님, 혹시 지금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신 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철수는 대수롭지 않게 그게 뭐가 큰 문제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닥터 리를 바라봤다.

 

 잔머리가 한 올이라도 삐져나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닥터 리는 언제나 자신의 긴 머리를 한 번에 올려 묶었다.

 

 V라인의 턱에 마른 몸매의 그녀는 1년 전까지 철수의 상담을 맡았던 정신과 의사였다.

 

  "아뇨. ……뭐, 문제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거든요."

 

  "……."

 

  "물론 아직 대표님에게 제가 신뢰를 충분히 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치료에 도움을 드릴 수 있게 조금 더 제게 협조해주십시오."

 

 철수의 얼굴을 살피자 약간은 불쾌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삼 년 전 그때와는 달리 확실히 한 톤 더 밝아진 표정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 선생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한 층 쌓아 올린 철수가 고마웠던 닥터 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1년 만에 저를 다시 찾아오셨군요. 갑자기 저와의 상담을 그만두신 이유는 무언가 심경에 변화가 있으셨던 것입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저 일하느라 많이 바빴을 뿐입니다."

 

 독일에서 크게 성공한 청년 사업가 강철수의 병명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독일 전역으로 사업을 성공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종차별 단체에 납치를 당했던 그는 PTSD로 인해서 납치당했던 당시 상황을 지속해서 꿈으로 경험하고 있던 심각한 상태였다.

 

 납치에 가담했던 범인들이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인에 대한 불신도 극심했던 철수는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에 있는 자신을 찾아와서 상담을 받았다.

 

  ㅡ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강 철수라고 합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철수는 정중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철수는 2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으로 와서 자신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갑자기 1년 전에 아무 말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렸다.

 

  "1년 만에 다시 찾아오시니 반갑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는군요."

 

  "……죄송합니다. 이 선생님."

 

  "왜 그때 연락을 끊으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문 철수를 보고 닥터 리는 티가 나지 않게 눈썹을 위로 추어올렸다.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납치 사건의 피해자 강철수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강한 남자였고, 그도 자신의 정신력에 대해서 크나큰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치의와 상의없이 마음대로 치료를 그만두면 안 되지.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철수 같은 환자는 가장 다루기 힘든 케이스에 속했다.

 

  "일단 요즘에 근황에서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후우."

 

 으레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잘나간다 싶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속을 터놓는 것을 꺼리는 철수는 항상 상담하기 전에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상담자로서 내담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닥터 리는 암막 커튼을 치고, 간접 조명을 켜서 은은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나긴 침묵 끝에 철수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사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계기는 그리 유쾌한 이유는 아닙니다. 제가 존경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상담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내담자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었다.

 

 조금 더 편한 기분으로 그가 자신에게 속내를 털어놓기 바랐던 닥터 리는 따뜻한 시선으로 철수를 응시했다.

 

  "계속 말씀하세요. 저는 지금 다 듣고 있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보육원 출신인 저한테 유일하게 '너는 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신 분이셨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비명횡사하셨다는 걸 듣고 인생이 겨우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은인이나 다름없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저도 인생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 것 같습니다."

 

  "……네, 그렇죠. 회의감,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 마음이 릴렉스해진 철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닥터 리는 점점 표정이 굳어졌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으며 답답한 듯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젊은 그의 인생을 덮쳐왔던 역경의 파도들이 너무나도 크고 무서웠다.

 

  "그런데 어쩌면 선생님의 마지막 남은 딸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제가 자처해서 한국에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따님분의 성함이 혹시……?"

 

  "윤 제이."

 

 닥터 리는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세상에 대서특필 되었던 미녀 마술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럼 대표님과 윤 제이 씨가 지금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으십니까?"

 

 사실 너무나도 사적인 질문이었기에 말을 하고도 닥터 리는 아차, 싶었지만, 철수는 불쾌해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같은 방에서 자는 건 아니고, 서로 다른 방에서 자고는 있지만 같은 집에서 사는 건 맞습니다."

 

 사실 닥터 리는 1년 만에 상담실 안으로 들어오는 철수를 보면서 그전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었다.

 

 정중하고 신사다웠지만,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삐죽한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 같았던 1년 전과는 다르게 지금 철수는 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상태였다.

 

 일단 복장부터가 달라졌다.

 

 강박증이 있는 사람처럼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고,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넘기고 있었던 1년 전과는 달리 지금 그는 편안하게 앞머리를 내리고 캐주얼하게 코디했다.

 

  "혹시 아까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사람이 윤 제이 씨입니까?"

 

  "네, 맞습니다."

 

 닥터 리의 머리 위로 전구 하나가 밝게 켜졌다.

 

 어쩌면 갑자기 달리진 그의 분위기에 '윤 제이'라는 여자가 크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이런 감은 책이나 이론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 경력 20년의 세월에서 터득한 감이었다.

 

  "강철수 씨."

 

 철수가 고개를 들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닥터 리를 주시했다.

 

  "윤 제이 씨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그녀는 그냥……."

 

  "예쁜가요?"

 

  "네."

 

 오호라, 뭔가 철수의 PTSD 후유증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닥터 리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약을 먹거나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치료였지만,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는 '사랑'만큼 강력한 것은 세상에 없었다.

 

  "뭔가 제이 씨에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닥터 리의 애매모호한 질문을 단번에 알아들은 철수는 어이가 없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선생님이 안 본 사이에 더 재밌어지셨군요."

 

 닥터 리는 철수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혹시 내가 재미가 없어서 대표님이 안 오는 건가 싶어서 나름대로 개그 연습 좀 많이 했습니다."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그녀를 여자로 보지 않아요. 그저 제가 은혜를 입은 선생님의 딸이기 때문에 그녀를 보호하려고 하는 겁니다."

 

 더 캐물으면 철수가 다시 한번 자신의 상담실에 발길을 뚝 끊을 것 같아서, 닥터 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럼 만약에 제이 씨한테 다른 남자친구가 생기면 어떨 것 같으세요?"

 

  "……그건 정말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군요."

 

  "현실성이 없다고요? 윤 제이 씨라면 화장품 모델을 할 정도로 예쁜 미인 아닙니까. 제가 볼 땐 남자들이 줄을 설 것 같은데."

 

  "예쁘긴 하지만…… 여자라기보다는 아직 어린 아이 같죠."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던 닥터 리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 꾹꾹 웃음을 참았다.

 

  "그래서 제이 씨한테 접근하는 남자들은 없을 거로 생각하시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당연합니다. 또 제이도 남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가요?"

 

  "네, 저랑 같이 있을 때 뭔가 많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남자랑 같이 있는 것을 어색해하고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닥터 리는 그녀가 당신이 옆에 있으니까 불편해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제이한테 접근하는 남자가 있을 리가 없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이 세상에 '절대'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철수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이것은 가르쳐줘서 배우는 게 아니라 좀 더 세상의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었기에 닥터 리는 조용히 입을 닫고 오늘의 상담을 끝마쳤다.

 

 

 

 ***

 

 

 

 급한 대로 병원에서 공황 장애약을 처방받은 철수는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ㅡ 오늘 상담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제이 씨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대표님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군요.

 

 사실 이건 철수도 느끼고 있는 바였다.

 

 납치 사건 이후로 심한 공황 장애를 앓았던 철수는 꾸준한 상담 치료와 약 복용 덕분에 공황발작이 일어나지 않자, 스스로 치료를 멈추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 공황발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죽을 것은 공포감과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서 순이 가쁘거나 속이 메스꺼우며 약간의 현기증을 겪는 일이 잦아졌다.

 

 다시는 공황 장애를 겪고 싶지 않았던 철수는 자신의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 닥터 리를 다시 한번 찾았다.

 

  ㅡ 약을 먹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이 씨와 함께 하는 것이 공황장애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최대한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린 철수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해제 버튼을 눌렀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심장이 뛰거나 식은땀이 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철수는 제이에게 콩금시각을 정해줌으로써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ㅡ 여기 근처에 '늘봄'이라는 카페가 있어요. 거기에 있는 딸기 스무디가 엄청 맛있어요.

 

 철수는 그녀가 추천한 카페에 가기 위해서 운전대를 잡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딸기 스무디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딸기 스무디를 먹고 나서 감상평이나 별점을 말해주고 싶었다.

 

 근처에 있는 건물에 소담하게 위치한 늘봄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종업원에서 딸기 스무디를 시킨 철수는 창가에 앉아서 주문 한 딸기 스무디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

 

 콧노래를 부르던 철수가 창밖으로 돌리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동공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저도 모르게 부드득 이를 갈았다.

 

 짤랑, 하는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제이와 정혁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네, 여기 딸기 스무디가 되게 맛있거든요. 그래서 자주 오는 곳이에요. ……어? 철수 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정혁과 제이에게 다가가는 철수의 눈동자는 화르륵 섬광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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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인류애가 넘치는 남자 2017 / 11 / 2 20 0 7889   
14 14.난 독일로 돌아갑니다 2017 / 11 / 1 19 0 8558   
13 13.발송인불명 편지 2017 / 11 / 1 22 0 8661   
12 12.눈을 뗄 수 없는 여자 2017 / 11 / 1 12 0 7755   
11 11.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당신 2017 / 11 / 1 19 0 8472   
10 10.당신이 내 곁에 없다면 2017 / 10 / 31 18 0 8112   
9 9.혹시 나 좋아해요? 2017 / 10 / 31 18 0 8653   
8 8.불안한 사각관계 2017 / 10 / 31 13 0 8381   
7 7.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것 2017 / 10 / 31 20 0 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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