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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10.당신이 내 곁에 없다면
작성일 : 17-10-31 16:14     조회 : 18     추천 : 0     분량 :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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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준비를 하기 위해서 제이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달칵.

 

 손잡이를 돌려서 확실하게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한 제이는 한쪽에 있는 옷걸이로 다가갔다.

 

 옷걸이에는 무명시절부터 중요한 무대에 설 때마다 입었던 여성용 턱시도가 걸려있었다.

 

 팔을 교차시켜 입고 있던 티셔츠를 잡고, 팔을 위로 곧게 뻗은 제이는 먼저 직접 다림질한 하얀 블라우스에 팔을 넣었다.

 

 그다음으로 제이가 걸친 턱시도 재킷은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고., 여민 부분에 심플한 금장 버튼으로 고급스럽게 장식되어있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더블 턱시도 슈트였다.

 

 제이는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을 치르듯이 옷을 갈아입었다.

 

 조명이 달린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품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낸 제이는 항상 은은한 피부 화장만 하는 평소와 달리 진한 스모키 화장을 했다.

 

 마술 공연할 때는 평소의 귀엽고 청순한 모습에서 카리스마 있고 관능적인 모습으로 180도 바뀌었는데,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는 다르게 무대 밖에서 수줍음이 많은 제이를 보고, 사람들은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놀라면서도 감탄했다.

 

 제이는 무대위에선 눈빛이 달라졌다.

 

 똑똑똑.

 

  "제이야, 준비 다 됐어?"

 

 밖에 있던 지우가 대기실 문을 두드리며 묻자, 마지막으로 허리까지 오는 결 좋은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묶은 제이가 대답했다.

 

  "네, 이제 다했어요."

 

  "10분 정도 남았으니까 빨리 나와."

 

  "네, 금방 나갈게요."

 

 공연장에 들어서기 전 제이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원래 부끄러움이 많았던 제이는 낯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무대에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마술 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제이가 당당하게 무대 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하는 마인드 컨트롤 덕분이었다.

 

 제이는 공연 10분 전에 항상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마술사'라고 되뇌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마술사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술사야.

 

 나는 관객들에게 오늘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마술 공연을 보여줄 테야.

 

 공연 전에 마인드 컨트롤을 충분히 하면, 놀랍게도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도 떨지 않을 수 있었다.

 

  "자, 오늘이 마지막이야.“

 

 마지막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제이는 잔뜩 기합이 들어간 상태였다.

 

  "아자, 아자, 화이팅!"

 

 제이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통로를 비장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보고 철수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중하게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결과, 공연이 한 시간이나 지연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었고, 사정을 이해해준 관객들은 미뤄진 공연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까지 해주었다.

 

  '……다행이야.'

 

 혹시 공연이 취소될까 봐 마음 졸였던 철수는 1층 관객석 제일 뒤에 있는 벽에 몸을 기댔다.

 

 제이는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말했지만, 관객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서 취소하겠다고 말한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철수는 오늘 공연이 순탄하게 진행도리 수 있도록 힘을 써서 조명 기술자들을 불렀다.

 

 철수가 급하게 부른 조명 기술자들은 무대 조명을 완벽하게 수리했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철수는 뿌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무대 조명이 한둘씩 꺼지고 어둠이 가라앉자, 웅성거리던 관객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경쾌하고 빠른 비트의 음악과 함께 검은 턱시도를 입은 제이가 무대 위로 나타나자, 벽에 기대서서 공연을 보고 있던 철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무대 위에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제이가 서 있었다.

 

 평소 청순하게 풀고 다니는 긴 생머리를 깔끔하게 위로 올려묶고 스모키 화장을 한 그녀에게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리고 어쩐지 묘하게…….'

 

 매력이 있었다. 도도한 고양이처럼 무대 위를 자유롭게 뛰어노는 제이를 보고 철수의 얼굴에 살짝 열이 올랐다.

 

  "조금 있으면 제이가 하는 '환상의 마술'을 볼 수 있겠네요."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제이의 마술 선생님이라고 했던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제이의 마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는 제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친근하게 굴었던 사람이었다.

 

 이름이 마재윤 이라고 했던가.

 

  "제이가 하는 '환상의 마술'은 어떠려나."

 

  "잘할 거에요. 제이는 기본기가 탄탄하게 잡혀있는 아이니까."

 

 철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무대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환상의 마술'이라는 건 백룡이 살아생전에 고안한 100가지의 마술(간단하게 카드를 이용하는 마술에서부터 화려하게 무대에서 펼쳐지는 마술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을 종합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환상의 마술'은 같은 마술사가 봐도 신기한 것 같아.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생각해내고 어떻게 만들어 냈을까."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감히 트릭을 유추해 내지 못할 정도로 신비로웠던 '환상의 마술'의 비밀은 오직 백룡만 알고 있었다.

 

  "백룡 씨가 정말 대단한 마술사긴 했어요."

 

 마술에 반쯤 미쳐있던 백룡을 떠올리며 철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마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항상 들고 다니던 노트에 메모했고, 않으나 서나,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머릿속은 언제나 마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철수는 가만히 무대 위에서 마술하는 제이를 바라보았다. 장례식장에서 조문하고 바로 독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벌써 한 달째 한국에서 머물고 있던 철수는 생각보다 길어진 한국 생활이 고단하기도 했지만, 백룡에 죽음의 비밀을 끝까지 밝혀내고 싶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있을 위협에서 제이를 보호하고 싶었다.

 

 자신의 추측대로 백룡이 '환상의 마술'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환상의 마술'의 트릭을 알고 있는 제이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사랑하는 내 딸을 부탁하네.]

 

 돌아가신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철수는 제이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제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밝은 미소를 짓자, 철수의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지이잉.

 

 주머니 안에 넣어놨던 핸드폰의 진동을 느끼고 철수는 공연장 홀로 걸어 나왔다.

 

  "여보세요?"

 

  - 형, 나 태오야.

 

 독일은 한참 이른 아침일 시간인데.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철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 형, 지금 독일 본사에 문제가 생겼어.

 

 태오가 이른 시각에 한국에 있는 철수에게 전화까지 할 정도면 꽤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무슨 문제?"

 

  - 우리 '말디'에 물건을 납품하겠다고 계약을 맺었던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하네.

 

  "계약 파기?"

 

  - 아무래도 가격 협상하려고 하나 봐. 쉽게 말해 돈을 더 달라는 거지.

 

  "……."

 

 더 듣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눈에 선하게 보였던 철수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다.

 

  - 일단 내가 잘 얘기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형이 독일로 와야 할 것 같아.

 

 철수는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가격협상에 관한 문제는 상대방과 계약 조건을 조율하면서, 자신의 회사에 유리하게 계약을 맺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철수가 담당하던 일이었다.

 

 지금 당장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만, 철수는 조금 더 한국에 있고 싶었다.

 

 그에게는 한국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 형, 언제쯤 독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

 

 애타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구조요청을 보내는 태오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복잡해진 철수가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가격협상은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철수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독일로 돌아갈게."

 

 전화를 끊은 철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혔다.

 

 

 

 ***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보답하기 위해 제이는 마이크를 들고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양손으로 마이크를 붙잡은 제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덜덜 떨다가 멋쩍은 웃음을 터트렸다.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떨고 있는 제이를 격려해주었다.

 

  "……이상하게 마술할 때는 하나도 안 떨리는 데 마이크만 잡으면 이렇게 떨리네요."

 

 무대 위에 서 있던 제이는 밑으로 보이는 관객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어린아이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빛보다 더 아름다운 눈빛으로 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들 모두 제 공연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즐거우셨나요?"

 

 관객들은 마치 미리 입을 맞춘 듯이 동시에 네, 하고 대답했다.

 

 제이는 자신의 마술 공연이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물했다는 사실에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짜릿했다.

 

  "감사합니다. ……사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참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다시는 서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무대였다.

 

 백룡은 야속하게도 마술을 하는 제이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칭찬을 해준 적이 없었지만, 마술사이자 아버지인 백룡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제이에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어느 관객이 '기다리는 거 안 힘들었어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던 제이가 방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에요, 한 시간 동안이나 기다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이는 다시 사람들이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난 역시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이 제일 행복해.

 

 힐끔 옆을 쳐다보니 시윤이 손으로 마지막 무대 준비가 다 되었다며 사인을 보냈다.

 

  "마지막 무대는 수조 탈출 마술입니다."

 

 웅장한 음악 소리와 함께 무대 위로 커다란 수조가 들어왔다.

 

 마술 도우미 지우가 손목에 단단한 수갑을 채우자, 제이는 머리 위로 손을 높이 들어 관객들에게 수갑을 보여주었다.

 

 계단 위로 올라간 제이가 수조 안으로 들어가고 지우는 커다란 쇠자물쇠로 수조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이제 분위기가 바뀌고 무대 위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관객들은 모두 숨을 죽이며 무대를 바라봤다.

 

 천천히 수조 안으로 차가운 물이 밀려들고, 물이 제이의 턱 끝까지 차오르자 지우는 검은 천으로 수조를 가렸다.

 

 수조 안이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게 되자, 제이는 열쇠가 없어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쉽게 풀리는 수갑을 서둘러 벗어버렸다.

 

  '……으, 차가워.'

 

 수영장에서 매일같이 잠수 연습한 결과, 3분 동안 숨을 참고 물속에 있을 수 있었던 제이는 발장구를 쳐서 수조 위로 올라갔다.

 

 수조의 입구를 잠그고 있는 잠금장치의 핀셋만 빼버리면 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제이는 손가락으로 검은 핀셋을 잡아당겼다.

 

  '……어라? 왜 이러지?'

 

 원래 조금만 힘을 주고 당기면 쑥 하고 쉽게 빠져나오는 핀셋이 고정된 듯 단단하게 박혀있었다.

 

  '……자, 잠깐 이 핀셋이 아닌가?'

 

 하지만 잠금장치에 달린 핀셋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차가운 물이 담긴 수조에 갇혀버린 제이의 얼굴이 핏기없이 하얘졌다.

 

 이제 시간은 벌써 1분이 지나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자꾸만 수조 밑으로 가라앉지. 제이는 다시 침착하게 검은 핀셋을 잡고 있는 힘껏 당겼지만, 허무하게 손가락만 미끄러졌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제이의 시야에 보이는 건 무대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조명밖에 없었다.

 

  '……아! 수, 숨이……!'

 

 입에서 공기 방울이 나오면서 몸이 완전히 수조 밑으로 가라앉았고,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수조 안은 마치 엄마의 자궁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아득해서, 제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귀찮기만 했다.

 

 ……됐어. 이제 다 귀찮아. 날 좀 내버려 둬.

 

 팔로 자신의 다리를 감싸 안은 제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능숙하게 마술을 펼쳐 보였던 아까와는 다르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제이를 철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이크를 들고 바들바들 손을 떨고 있는 제이는 자신이 아는 제이 모습 그대로였다.

 

 마지막 수조 탈출 마술이 준비되었는지 시윤이 제이에게 사인을 보냈다.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수조에서 몇 분 만에 탈출하는 겁니까?"

 

  "아마 60초 정도일 거예요. 수조 안에서 수갑을 풀고 바로 잠금장치에 있는 핀셋을 빼면 되니까 얼마 안 걸립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꽤 위험한 마술 같았는데, 나름대로 충분히 안전장치가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제이가 들어가 있는 수조에 물이 차는 것을 보고 철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상당히 춥겠군.'

 

 수조에 가득 물이 들어차자 마술 도우미가 검은 천으로 수조를 가렸다.

 

  '60, 59, 58 …….'

 

 철수는 차분하게 속으로 초를 세기 시작했다.

 

 60초의 시간 동안 관객들뿐만 아니라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도 잔뜩 긴장한 채로 제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10, 9. 8…….'

 

 옆에서 기범이 물에 흠뻑 젖어서 나올 제이를 위해 수건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조에서 탈출한 제이는 관객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마술을 화려하게 장식할 것이다.

 

  '……3, 2, 1.‘

 

 60초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제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당황한 철수가 주변을 둘러보니, 마술 단원들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듯했다.

 

 철수가 무대 앞으로 뛰어가려고 하자 시윤이 철수의 앞을 막아섰다.

 

  "제이가 2분 정도는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3분 정도는 물속에서 참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도 벌써 60초가 지났잖습니까."

 

 옆에 있던 기범도 무대로 나가려는 철수를 말렸다.

 

  "제이가 이 무대를 위해서 한 달 동안 훈련하고 연습했어요. 지금 나가서 공연을 중지시킨다면 제이가 무척 실망할 거에요."

 

 철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벌써 1분 30초 지나고 있었다.

 

  "난 제이가 실망하든지 말든지 신경 안 씁니다.“

 

 그것보다 그녀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했다.

 

 철수가 무대 위로 나타나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무대 위로 나오시면 안 되는데……."

 

 갑자기 무대에 난입한 철수를 보고 지우가 놀란 듯 입을 벌렸지만, 철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수조를 가리고 있는 검은 천을 치워버렸다.

 

  "꺄악!"

 

 수조 안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제이를 발견하고 지우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관객들이 놀라지 않게 장막을 내렸던 시윤도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젠장!"

 

 욕지거리를 내뱉은 철수가 지우에게 열쇠를 빼앗아서 자물쇠를 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제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오히려 더욱더 침착해진 철수는 긴급한 상황임에도 떨지 않고 침착하게 열쇠를 자물쇠에 넣고 돌렸다.

 

  "제이!"

 

 수조의 문을 연 철수는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준비운동 없이 차가운 물 안에 들어가서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온몸이 시렸지만, 철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단 철수가 제이를 위로 들어 올려 수조 밖으로 밀어내자, 종환과 시윤이 제이를 잡아당겨서 그녀는 안전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이는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비켜요!"

 

 철수는 제이의 곁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단원들을 밀어내고 그녀의 입에 공기를 불어 넣었다.

 

 입술에 맞닿은 그녀의 입술은 안쓰러울 정도로 차가웠다.

 

 철수는 보드라운 입술을 맞대고 그녀에게 생명의 공기를 불어 넣었다.

 

 간절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제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깊게 포개었다.

 

  ㅡ 나한테 인공호흡 같은 건 왜 가르쳐주는 거예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철수는 백룡의 마술단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백룡은 철수에게 일은 시키지 않고, CPR(심폐 소생술)을 가르쳤다.

 

  ㅡ CPR이 얼마나 대단한 건데. 죽음의 문턱까지 간 사람을 다시 이 세상으로 불러낼 수 있는 엄청난 기술이야.

 

  ㅡ 내가 의사나 간호사도 아니고…….

 

 백룡이 들고 있던 종이를 둘둘 말아서 철수의 머리를 가볍게 내려쳤다.

 

  ㅡ 이놈아! 사람이 의사나 간호사들 앞에서만 죽을 뻔한 줄 알아? 위급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있으니까 어려움에 부닥치면 서로서로 도와줘야지! CPR을 배우면 평범한 손도 황금손으로 변할 수 있다고.

 

 철수는 양손을 겹쳐서 제이의 가슴을 세게 압박했다. 제이는 아직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제발!'

 

 제이의 호흡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철수는 계속해서 심장 마사지를 했다.

 

 철수의 몸짓은 주위 사람들도 숨을 죽이고 지켜볼 만큼 간절하고 필사적이었다.

 

  "……제이! 제이!"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제이는 천천히 눈꺼풀을 위로 들어 올렸다.

 

 얼굴 위로 바로 떨어지는 환한 조명 탓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제이는 살짝 눈을 감았다 뜨고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부진 턱선에 조각같이 생긴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철수 씨?“

 

  “제이, 정신 차려요. 이제 괜찮아요?”

 

 제이가 깨어나자 이제야 긴장이 풀린 듯 철수는 털썩 제이의 옆에 주저앉았다.

 

  “……네, 괜찮아요.”

 

 힘겹게 입술을 달싹인 제이는 다시 스르륵 눈꺼풀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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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당신 2017 / 11 / 1 19 0 8472   
10 10.당신이 내 곁에 없다면 2017 / 10 / 31 19 0 8112   
9 9.혹시 나 좋아해요? 2017 / 10 / 31 18 0 8653   
8 8.불안한 사각관계 2017 / 10 / 31 13 0 8381   
7 7.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것 2017 / 10 / 31 20 0 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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