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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회상-폭주의 시작
작성일 : 17-07-15 14:20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7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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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8년 전. 뢰메르 숲.

 

 

 

 

 숲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다. 작정하고 숨어들면 누구도 찾아낼 수 없는 크고 작은 그늘들이 있었다.

 

 그런 그늘에 어린 그가 자신을 숨겼다. 빛이 부재 중 인 어둠 속에선 반짝이는 은발도 푸른 눈동자도 모두 감출 수 있었다.

 

 커다란 푸른 눈망울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걷기 시작할 때부터 숨는 것을 익혀온 그는, 오늘 처음으로 맹수가 아닌, 사람들을 피해 숨어 들었다.

 

 품에 안고 있던 붉은 새끼 여우 스팍이 답답한지 낑낑거렸다.

 

 

 “쉿! 스팍, 조용히 있어!”

 

 

 졸졸 따라다니는 스팍과 조금 멀리까지 산책을 나왔었다.

 

 스팍을 데리고 나온 것이 잘못일까? 다른 때보다 조금 멀리 나온 것이 잘못이었을까?

 

 촤악!

 

 선명히 들려오는 채찍소리가 마치 자신의 등을 후려지는 것만 같아서 온 몸이 움찔거렸다.

 

 아아아아악!!!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는 영혼 속으로 날아든 날카로운 가시 다발 같았다.

 

 

 “빨리 움직이지 못해! 이 더러운 느림보들!”

 

 “이쪽으로 간 것 같은데.”

 

 

 포악스러운 소리에 스팍을 더 바짝 끌어 안았다.

 

 스팍은 어미 잃은 새끼 여우였다. 언제나 그렇듯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

 

 숲에선 홀로 된 새끼들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축 쳐진 작은 생명을 주워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숲에서 태어나 여태껏 이곳에서 살았다. 살려낸 동물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천적과 싸우다 다친 짐승들, 어미를 잃은 새끼들, 병에 걸려 무리에게 버려진 것들, 살아가는 것에 큰 기대 없이 외톨이로 숲을 헤매는 것들.

 

 그는 그런 미약한 짐승들의 수호자였다.

 

 숲의 수호자. 그 호칭은 어머니가 지어준 것이다. 이제 10살인 그는 그 호칭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숲에서 그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스팍은 마지막 짐승이 될 것이다.

 

 내일은 아버지를 만나러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북쪽의 말코족과 싸우는 용감한 전사라고 하셨다.

 

 그곳은 늘 전쟁이 있기에 어린 아들을 위해 그곳을 떠나셨지만, 아버지는 떠나올 수가 없었다. 그 곳을 떠나려고 하는 것은 죄가 되어 바로 감옥에 가기 때문이랬다.

 

 어머니는 이 숲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최근 들어 숲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어쩔 수 없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하셨다.

 

 근처에 광산이 발견 되면서 사람들은 이 험준한 산에 마찻길을 내고 수시로 들락거렸다.

 

 어머니는 절대로 그들의 눈에 띄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

 

 

 [널 보는 즉시 잡으려 할 거다. 짐승을 잡듯. 그런 후 자유를 빼앗아 버린단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가라앉은 표정과 갈라진 목소리, 심각한 분위기를 봐서 그들은 대단히 나쁘고 위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위 틈 사이에 웅크렸다. 땅위로 드러나 있는 나무뿌리들이 바위틈을 가려주었다. 그 사이로 밖을 응시했다.

 

 답답해하는 스팍을 다독이기 위해 쓰다듬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몇 차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장비들을 수레에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며 수레를 끌고 밀며 나르는 사람들.

 

 그 뒤로 인정사정없이 채찍으로 후려치는 사람들이 또렷이 기억났다.

 

 나쁜 사람들이 바로 저들일 거란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들의 눈에 띄어서도 안 되고 잡혀서도 안 된다.

 

 밀려드는 두려움 속에서도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그들에게 절대 잡히지 않을.

 

 그는 빨랐다. 눈에 뜨인다 해도 빠르게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숲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으니 어디로 가면 따돌릴 수 있는지도 알았다. 여차해서 잡힌다 해도 목덜미를 움켜잡아 틀어쥐면 그대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예전에 공격 해 왔던 늑대도 그렇게 해서 해치웠다.

 

 바퀴가 자갈들을 으깨는 소리들이 가깝다.

 

 이대로 조용히 그들이 지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스팍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마저 끝내지 못한 이동준비를 마치고 따뜻한 식사를 하고 어머니의 곁에서 잠이 들 것이다.

 

 조용히 이대로 이순간이 지나가면 말이다.

 

 말과 마차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다가 갑작스레 정적이 드리워졌다.

 

 시야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왔다.

 

 숱하게 맹수들에게 쫓겨 도망쳐 봤고, 맹수들을 피해 숨어 본 적도 많았다.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한 맹수는 밤사이 내리는 눈처럼 고요하게 접근한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직감은 그가 위치가 들통 난 사냥감이 됐다는 것을 알려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그 앞을 가려주는 위키나무 뿌리는 무엇보다 훨씬 강한 향을 내뿜었다. 그래서 냄새를 숨기기 위해 이 바위틈을 택한 것인데.

 

 바스락.

 

 지척에서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이 바위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해!

 

 곧 밖에 도사리고 있는 무언가의 정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르렁.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다. 흰색에 검은 점박이가 있는 처음 보는 늑대였다.

 

 있는 힘껏 발로 머리를 차니 신음소리를 내며 녀석이 균형을 잠시 잃었다. 그 틈을 타서 바위 틈 밖으로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이긴 것이다.

 

 조용히 도사리고 있던 늑대들이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맹렬히 추격해왔다.

 

 키의 두서너 배 되는 작은 절벽과 바위들을 뛰어내렸다.

 

 나무들 사이를 빠르게 비켜 지나갔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스팍이 다치지 않게 신경 쓰면서 움직여야 했다.

 

 머릿속에 그린 계곡에 도착하자, 유난히 높게 뻗은 거목을 향해 달렸다.

 

 이 나무만 오르면 이번 위험은 종료되는 것이다. 계곡의 반대편에서 뻗은 나뭇가지와 맞닿은 부분을 찾아 건너편으로 넘어가면 된다.

 

 나무를 오르기 위해 스팍을 가슴 속에 넣었다. 허리춤에 두른 띠 때문에 스팍은 밑으로 흘러내리지 않았다.

 

 

 “스팍 이제 곧 안전해 져. 조금만 참아.”

 

 

 늑대들의 울부짖음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숲의 늑대들은 저리 요란하지 않아.

 

 삐죽삐죽 튀어 나온 잘린 가지들을 붙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스팍은 답답한지 연신 꿈틀대고 있었다. 녀석의 발톱이 가슴과 배를 할퀴어 대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가며 오르는 데만 전념했다.

 

 다른 나무들이 아래로 내려다보일 무렵 스팍은 격렬히 안간힘을 쓰더니, 결국 밖으로 앞발 하나를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이내 가슴 밖으로 뛰쳐나와 어깨에 올라탔다.

 

 

 “스팍, 안 돼!”

 

 

 명령에 아랑곳없이 녀석은 등을 타고 내려, 갈라진 나무외피를 움켜잡더니 빠르게 내려갔다.

 

 땅에 도착한 스팍은 늑대들의 기척을 그제야 느꼈는지 다시 나무를 오르려 했다. 내려오는 것만큼 쉽지 않았던지 계속 나무 밑동 근처에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러게 왜 내 품에서 나왔니?

 

 녀석은 이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안전하고 따뜻한 품속에서 빠져나왔겠지. 답답해서 나와 보니 위험한 냄새가 나고.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겠지.

 

 너무나 어려서. 이런 위험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스팍을 위해 땅으로 다시 내려왔다. 스팍을 안아 들려 하자 또 다시 바둥거리며 도망치려 했다.

 

 늑대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아홉 마리였다. 이 숲에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늑대들이었다. 같은 종이 아닌지 색깔도 생김새도 모두 제각기였다.

 

 그를 둘러싸고 열심히 짖어댈 뿐 공격해 오지 않았다.

 

 등을 보이는 순간 달려들 것이다.

 

 기어코 스팍은 답답하지만 안전한 품속보다 찰나의 위험한 자유로움이 더 소중했는지, 손등을 깨물고 달아났다.

 

 

 “스팍!”

 

 

 스팍을 따라 달렸다. 스팍을 잡으려던 순간 풀숲에 숨어 있던 다른 늑대 한 마리가 갑작스레 나타나 스팍의 작은 몸을 물어버렸다.

 

 

 “안 돼!”

 

 

 스팍을 문 늑대에게 달려들며 목덜미를 가격하자 땅에 푹 쓰러졌다.

 

 쓰러진 늑대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고는 아가리에서 스팍을 꺼내 들려 할 때, 등 뒤에서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들에 그대로 땅에 뒹굴 수밖에 없었다.

 

 물어뜯는 늑대들을 한 놈씩 쓰러트리는 동안 수없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힘없이 늘어진 스팍이 눈에 들어왔다.

 

 고통스럽지만 한 놈, 한 놈 처리하다 보면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송곳니들이 여기저기 파고 들어, 몸은 붉은 피로 범벅이었다.

 

 야무진 작은 손에 뜯기는 늑대의 피와 그의 피가 뒤섞였다.

 

 이제 세 마리가 남았다. 다리를 이렇게 물어 뜯겼으니 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끝까지 싸우는 수밖에.

 

 마지막 안간힘을 쥐어 짜 늑대 위에 올라타 아래턱을 잡아 내리는 순간, 갑작스레 날카로운 줄이 목을 죄어 왔다.

 

 조여 드는 가는 쇠줄을 풀어 보려 버둥거렸지만 계속 고통만 커져갈 뿐이었다.

 

 목이 끊어져 나갈 것 같은 찰라, 격통에 몸이 뒤집혔고 위를 올려봤다.

 

 

 “크크크. 진짜 화족을 보게 될 줄이야. 보통 횡재가 아니야.”

 

 “내가 뭐랬어? 지난번에 잘 못 본 게 아니라고 했지.”

 

 “정말 말이 않나오는군. 사냥개 여덟 마리가 죽다니. 고작 꼬맹이한테.”

 

 “냄새 끝내주게 잘 맡는 놈들로 준비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구경도 못할 뻔 했어.”

 

 

 각각 올가미를 쥐고 있는 험상궂은 남자 두 명이 히죽거리고 있었다. 두 개의 올가미가 목을 조이고 있었다.

 

 

 

 **

 

 

 

 끼끼끼루. 끼끼끼루.

 

 

 “……엄마?”

 

 

 익숙한 숲의 소리에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눈을 뜨려하자, 말라붙은 피딱지들 때문에 눈꺼풀이 뻑뻑했다.

 

 멀찌감치 들려오는 노예상인들의 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용을 쓰며 몸을 움직여 보려 했다.

 

 밀려드는 통증 말고도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온 몸이 단단한 사슬로 묶여 있었다.

 

 끼끼끼루. 끼끼끼루.

 

 의식이 한 번 더 선명해졌다. 엄마의 신호였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려했지만 통증 때문에 충분히 고개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수레위에 누워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엄마.

 

 엄마가 날 구하려 오신거야.

 

 호흡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염원하는 그의 눈동자가 절박하게 흔들렸다.

 

 모닥불이 타는 소리, 냄비를 긁는 소리, 조심스럽게 소곤거리는 소리, 노닥거리는 소리, 무질서한 발자국소리, 말들의 거친 콧숨 소리, 벌레소리.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이 소리들 가운데 엄마의 소리를 찾아내야 했다. 머릿속이 바빴다.

 

 그 소리는 아마도 조심스럽고 아주 조용한 소리일 것이다.

 

 저녁바람에 나뭇잎들이 사그락 거리면서 미세한 소리들을 삼켜버렸다.

 

 바람이 멈추고 묻혀 버린 소리들이 다시 들려오길 기다렸다. 좀처럼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바스락!

 

 

 “……엄마?”

 

 

 쉿! 수레 아래쪽에서 드디어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햇살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이 그의 어깨 옆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소리의 주인을 확인하자, 소년의 두 눈두덩이가 금새 뜨거워졌다.

 

 

 “쉿! 엄마가 널 찾았으니 이제 괜찮아. 집에 가자.”

 

 “스……스팍을 못 구했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의 상처들을 차마 만지지 못하고 고통으로 숨을 삼켰다.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동물을 지키는데 있어 단 한 번도 실패 해 본적 없던 숲의 수호자의 좌절.

 

  자신의 위급한 상황보다 먼저 위로 받고 싶은 아들의 심정을 읽었다.

 

 

 “엄마는……네가 최선을 다했을 거란 걸 알아.”

 

 

 그녀는 속삭이며 손목에 감겨 있던 금속 팔찌를 빼 반듯하게 펼쳤다.

 

 그것으로 아들 가슴위에 있는 사슬을 묶어 둔 자물쇠에 꽂아 넣었다.

 

 달각. 달각. 섬세한 감각이 필요한데, 그녀의 손이 자꾸 떨려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아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엄마를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어린 아들의 눈에 어찌 보일까 걱정스러운지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더 이상 자신의 표정이나 생각은 중요하지 않은 듯 손끝에 집중했다.

 

 그도 다그치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외모인 엄마를 찬찬히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감을 이겨내고 있었다.

 

 달칵. 아들은 엄마의 눈에 깃든 희망과 마주쳤다. 그 다음은 그녀의 어깨너머 사악한 눈과 마주쳤다.

 

 

 “엄마!”

 

 

 그의 표정이 공포로 굳어지자 엄마의 눈도 흔들렸다. 그녀가 뒤돌아 볼 새도 없이 노예상인이 억센 팔로 그녀의 목과 허리를 붙잡았다.

 

 

 “새끼가 안 돌아오니 드디어 어미가 기어 나왔군.”

 

 

 미친 듯이 저항하는 것이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노예상인은 더욱 세게 목을 조이며 거칠게 그녀를 흔들었다.

 

 그의 정신은 요란하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지만 실제는 힘없는 애벌레의 꿈틀거림과 같았다.

 

 그녀는 죽을 힘을 다해 고개를 숙인 뒤 빠르게 뒤통수로 노예상인의 코를 가격했다.

 

 뇌에 전달 된 충격에 둘의 몸이 분리되고 그녀의 절박함이 좀 더 빠른 공격을 가능케 했다. 바닥에서 돌덩이를 들어 그의 머리를 한 번 더 내리쳤다.

 

 뒤늦게 상황을 본 노예상인들이 소리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엄마는 몸을 돌려 그에게 달려와 자물쇠에 꽂힌 금속에 손을 뻗었다. 절망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달칵. 자물쇠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윽!

 

 그녀가 손에 반듯하게 펼친 금속 팔찌를 쥔 채 그의 가슴 위로 꼬꾸라졌다. 뒤에 검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 검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어……엄마?”

 

 

 엄마의 고정된 시선이 아들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엄마의 그런 얼굴을, 그런 눈을 본적이 없었다.

 

 엄마! 그렇게 보지마.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 낼 듯 그녀의 입술이 벌어져 있었다.

 

 왜 무조건 달리지 않았니?

 

 그 고목나무에서 내려와야 했니?

 

 버려진 스팍을 데려와야 했니?

 

 숲의 수호자 따위가 그리 좋아?

 

 공포와 슬픔의 상태로 굳어 버린 채 그를 향한 표정이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 엄마를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 싫어졌다.

 

 스스로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했다. 머릿속에 용암이라도 들어 차, 기억들을 모조리 녹여 버렸으면 했다.

 

 엄마를 죽게 만든 나쁜 아들.

 

 사라지고 싶다.

 

 아빠가 알면 나를 얼마나 미워할까?

 

 엄마 없이 가도 아빠가 날 받아줄까?

 

 지우고 싶어.

 

 지켜주지 못 한걸.

 

 나 때문에 엄마도, 스팍도 죽었어.

 

 지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악악악!!!!!!!!!!!!!

 

 머릿속에 진짜로 용암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심장이 용암을 거세게 뿜어 온 혈관으로 보내고 있었다.

 

 소년의 손이 갈퀴처럼 세워졌다. 흰 자위가 붉게 충혈 되었다.

 

 괴성을 지르던 그가 자물쇠에 손을 갖다 되는 순간, 툭, 이미 열린 자물쇠와 사슬이 흘러 내렸다.

 

 쓰러진 동료를 살피던 노예상인은 서둘러 팔을 뻗었다. 그의 목을 조르고 자물쇠를 다시 채우려고.

 

 그러나 소년의 손이 더 빨랐다. 사슬에서 빠져나와 노예상인의 목을 쥐어뜯어 버렸다. 빨간 선혈들이 콸콸 뿜어져 노예상인도 그도 온통 피로 물들었다.

 

 두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는 노예상인의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는 거추장스런 사슬들을 몸에서 치워 버리고 일어났다.

 

 보이는 세상은 온통 붉고 검었다.

 

 하늘은 붉고 나무들은 검었다.

 

 흙바닥은 하늘보다 더 진하게 붉었다.

 

 그것들이 빠르게 휘돌더니 선으로 보였다.

 

 붉은 선들과 검은 선들.

 

 마치 거대한 하프의 선들처럼.

 

 검은 선들이 움직였다. 선들을 좇아 그도 움직였다.

 

 그 선들을 움켜쥐고 잡아 뜯을 때마다 듣기 좋은 날카로운 소리들이 들렸다. 그 자극적인 소리는 전율을 일으켰다.

 

 그는 연주자가 된 듯 현을 찾아 소리를 확인했다. 모든 현들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그것이 유일한 존재의 이유라고 느껴졌다.

 

 현들도 차츰 사라지고 소리도 사라졌다. 존재 이유가 사라지자 소년은 그대로 꼬꾸라졌다.

 

 

 

 *

 

 

 

 아득히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가 그의 정신을 깨웠다. 하늘은 밤의 시작을 알려왔다.

 

 울음소리를 따라 고개를 움직여 보니, 저만치 긴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풀숲 앞에 앉아 훌쩍이고 있었다.

 

 소년은 일어서려 했지만 남아 있는 힘이 없었다.

 

 아이를 불러보러 했지만 들을 수 없는 헛바람소리만 조금 나올 뿐이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그는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도 저 아이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본능이 말했다. 한참을 걸려 아이 곁에 다다른 그는 툭, 아이를 건드렸다.

 

 그제야 피범벅이 된 그를 본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울음을 그쳤다. 그가 그녀를 지나 풀숲으로 기어 들어가자 머뭇거리던 여자아이도 따라 들어갔다.

 

 이 풀숲 속에 있으면 체취와 피 냄새를 감춰 맹수들의 먹이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게다가 싸늘한 공기도 어느 정도 막아 주어 몸의 열기도 지켜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그는 더 이상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본능이 이끌 뿐이었다.

 

 또 다시 정신을 잃었다. 아이도 우느라 지쳤던지 옆에 웅크리고 누워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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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추격자들. 2017 / 7 / 15 22 0 6837   
7 늑대의 방문 2017 / 7 / 15 25 0 8469   
6 회상 - 귀족스승 노예제자 2017 / 7 / 15 28 0 7133   
5 회상-고통을 삼키는 조우 2017 / 7 / 15 24 0 8816   
4 회상-폭주의 시작 2017 / 7 / 15 27 0 7905   
3 카라스의 검은 기사 2017 / 7 / 15 28 0 9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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