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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내 소중한 싸다구
작성일 : 17-07-21 16:50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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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영주님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어요?”

 

 

 그가 몸을 틀어 욕조 턱에 팔을 괴고 그녀를 나른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갑작스런 응시에 세라는 고개를 숙였다.

 

 유능한 하녀에게 맞지 않는, 전문성 떨어지는 퉁퉁부은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묵사발이 된 그녀의 얼굴을 살피던 검은 눈이 잠시 일그러졌다.

 

 

 “브르노…… 너도 나한테 몇 대만 맞자.”

 

 

 아카드는 자신도 모르게 세라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을 떠올렸다.

 

 세라는 그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끝부분만 듣고 놀라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볼을 감쌌다.

 

 

 “네?”

 

 “영주라고 말 안 해줬다고 따지는 건가 지금?”

 

 

 그가 장난치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노곤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뇨 아뇨. 그, 그런 게 아니라…….”

 

 “기사로서 나는 마음에 들었는데, 미치광이 영주라니까 찜찜해졌나?”

 

 “여, 영주님이라는 것 알았으면…….”

 

 “알았으면?”

 

 

 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이지 뭐. 미친개랑 미친 사람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바로 손이 날아들 텐데.

 

 노파도 미쳐서 그렇게 힘이 좋은데, 미친 영주는 힘이 얼마나 더 좋겠냐고~.

 

 맞고 싶지 않아. 너무 아파.

 

 세라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니, 아카드가 대신 대답했다.

 

 

 “처음부터 도망도 안쳤고 아침마다 발딱발딱 일어나서 출발했을 테고, 황제조카 따라간다고 나한테 다이아몬드도 던져주지 않았을 테고……겁 없이 절벽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았을 테고.”

 

 

 그가 읊어대는 대로 그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얼굴이 얼얼했지만 그게 문제냐 지금.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냐고 끈덕지게 묻지도 않았을 테지.”

 

 

 울상을 지으며 생각 없이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여기선 부정을 해야 하나 긍정을 해야 하나? 아, 진짜!

 

 

 “아니, 그게 아니고. 영주님…… 아이씨~ 제발 떼리지 마세요. 지금 맞으면 아까보다 훨씬 아플 거란 말예요. 맞은데 또 맞으면 두 배 세 배로 아파요.”

 

 

 세라는 울먹이며 멀찌감치 구석으로 파고들어 아카드로부터 떨어졌다. 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웬만하면 이렇게 모양 빠지게 이러겠어요. 지금 내 볼이 내 볼이 아니라고요.

 

 내 소중한 싸다구를 지켜야 합니다. 내 싸다구!

 

 구석으로 도망간 세라를 그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뭐야…… 지금, 내가 널 때릴 것처럼 보여?”

 

 

 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대만 맞자 라고 하셨잖아요. 고작 질문 하나 했을 뿐인데.”

 

 “하! 내가 한 약속을 벌써 잊었나 보군. 네 허락 없인,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그래 그런 약속을 기사가, 아니 영주가 직접 한 거네!

 

 그럼 아까 식당에서 내 입술을 핥았던 것은 허락 없이 한 건데. 따질까?

 

 아니지 아냐. 매를 벌면 안 돼. 언제 마음이 뒤집힐지 몰라. 미쳤잖아, 영주는.

 

 노파가 때리기 전엔 담담하게 임했지만 맞아 보니 담담? 그게 무슨 뜻이래요?

 

 그토록 정신적, 신체적 피해가 클 줄 알았으면,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몸을 사렸지, 고스란히 뺨을 대주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폭력의 피해로부터 멀어지는 게 상책!

 

 아카드는 겁먹은 강아지마냥 살살 기는 세라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그런 자신에 놀라, 서둘러 그것을 지워버렸다.

 

 

 

 **

 

 

 

 

 “으윽, 내……소중한……싸다구.”

 

 

 아카드는 결국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세라가 연신 끙끙 앓으며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소파로 다가간 그는 세라를 내려 보았다.

 

 눈보라가 쏟아지고 있어 달빛은 없지만 구석에 놓아 둔 아라늄에서 나오는 빛의 도움으로 그녀의 실루엣을 찬찬히 훑어 내렸다.

 

 

 “날 기다려 놓고서……내가 닿으면 심장이 요동치면서……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는 거야?”

 

 

 하녀처럼 목욕수발을 아무렇지 않게 드는 그녀까지는 이해했다. 자존심이 강한 여자니까.

 

 그러나 소파에 드러 눕자마자 곯아떨어진 그녀는 분명 그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나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야. 너처럼 아무생각 없이 속 편히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네.”

 

 

 그는 자조적인 냉소를 지었다.

 

 

 “날 너무 믿는 거 아냐? 벌써 아군이라고 정해 버린 건가, 옛 사랑을 불러오는 이 알량한 몸뚱이 하나 때문에?”

 

 “때린데 또 때리지 마요.”

 

 

 그녀의 잠꼬대가 계속 되었다.

 

 

 “내 싸다구는 빨래판이 아니라고요. 그만! 차라리 코로 먹을 게요.”

 

 

 표정 없이 아카드는 그녀를 내려 볼 뿐이었다.

 

 

 “세라 파갈. 너 이러는 거 보면 사람들은 재미있어 하겠지. ……하지만 난 조금도 재미있지가 않아.”

 

 

 파갈성에서 그녀의 고통을, 강가에서 그를 피해 도망치는 그녀를, 노예상인들이 그녀를 뒤쫓아 가는 것을, 용병에게 붙잡힌 그녀를, 노파에게 맞는 그녀를 봐 놓고 생뚱맞은 잠꼬대 좀 한다해서 재미 있을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슬픈 것도 아니니까 너무 으스대지 마.”

 

 

 자꾸 늘어나는 너에 대한 기억들이 나중에 내게 무슨 짓을 해댈지…….

 

 

 “비밀 하나 알려 줄까? 두려운 게 없는 천하의 내가, 딱 하나 두려워하는 게 있는데.”

 

 

 아카드는 소파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상체를 기울여 그녀의 귀에다 속삭였다.

 

 

 “내 머릿속에 있는 선명한 기억들. 그게 날 괴롭혀. 그래서 약을 끊지 못해.”

 

 

 세라가 웅얼거림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마치 그의 비밀 얘기를 귀담아 듣는 듯.

 

 

 “네가 준 기억들, 네가 앞으로 줄 기억들. 결국 내겐 고통으로 남겠지.”

 

 

 세라의 입술이 살포시 벌어지는 것을 그의 짙은 눈동자가 담았다.

 

 

 “네 기억 속엔 없고, 내 기억 속에만 있는 것들.”

 

 

 아카드가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무릎을 바닥에 내려 소파에 바짝 다가 왔다.

 

 입술에 난 그녀의 상처를 머금은 후 볼 쪽으로 그의 입술을 옮겼다. 부드러운 깃털처럼 가볍게 상처들을 핥아 나갔다.

 

 그의 섬세한 바람 같은 움직임이 옮겨질 때마다 그 안에서 신음소리가 삼켜졌다.

 

 한참 후 점차 부어오른 상처들이 진정이 되니 구겨진 미간이 펴지고 잠꼬대도 사라졌다.

 

 그가 아쉬운 듯 몸을 일으켰다.

 

 

 “허락 없이 건드렸는데 투정도 없겠군. 기억도 없으니.”

 

 

 

 

 **

 

 

 

 

 일어나 보니 영주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세수를 하다가, 잠들기 직전까지 욱신거리던 뺨이 마구 비벼대도 말짱한 것을 깨닫고 거울을 올려봤다.

 

 피부에 난 상처도 몰라보게 호전되었고 붓기도 가라 앉아 통증이 사라졌다.

 

 

 “와우, 브르노 선생님의 연고가 대단하네. 돌팔이는 아닌가 봐.”

 

 

 신기함에 거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잠시 후, 물기를 닦아내고 세탁방으로 향했다.

 

 일을 하는데 할리한테 끌려 나왔다. 영주가 성에 머무는 동안은 개인시중을 드는 일이 우선이라며 쫓겨났다.

 

 영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해서 상쾌한 기분으로 시갈한테 향했다. 밤새 눈보라를 쏟아내더니 하늘은 청명함을 뽐내고 있었다.

 

 

 “시갈, 어제는 재미 좋았겠네. 자, 난 약속을 지켰으니. 네 차례다.”

 

 “히이이이이잉.”

 

 “그래 내가 뭐랬어. 나만 믿으라고 했지. 보통 도도한 녀석이 아니었는데. 다 내덕이라고.

 

 “프르르르.”

 

 “시갈, 오늘은 정말 준비 됐겠지? 나 너무 떨려.”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 간다던 샤르트가 마구간에 와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며 그녀가 샤갈에게 바짝 다가갔다.

 

 세라는 할 수 없이 이번에도 몸을 숨기고 샤르트가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번에 또 걸리면 너는 말이라고 봐주겠지만 나는 다르다고. 그때처럼 기밀서류에다 싸서 가져 온 건 아니겠지? 그때만 생각하면 너를 확, 스튜를 해 먹어도 시원치 않아!”

 

 “프르르르르~”

 

 “어쭈, 웃어? 지나간 얘기다 이거야?”

 

 

 샤르트가 시갈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시갈은 천연덕스럽게 망을 보는 듯 했다. 샤르트가 구석에서 건초들 속에서 작은 뭉치를 꺼내들어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급히 도로 싸서 품에 숨겼다.

 

 유유히 시갈 앞으로 온 샤르트와 시갈 사이에 묘한 눈빛 교환이 있은 후,

 

 

 “시갈, 앞으로도 우린 한 팀이지?”

 

 “히이이잉”

 

 “특별 하사품 때문에 날 배신했다간 국물도 없어. 빨래로 그년 싸다구를 내려치는 수가 있다고?”

 

 

 세라는 자신의 불쌍한 볼을 감쌌다. 어젯밤 꿈에 빨래판이 되어 온갖 고초를 격은 그녀의 볼.

 

 시갈이 조용하자, 옆 칸에 있던 갈색 말이 투레질을 했다.

 

 

 “시끄러! 넌 밥숟가락으로 떠 넣어줘도 못 먹는 주제에 어디서 참견질이야?”

 

 

 갈색 말이 조용해졌다.

 

 

 “토니를 다시 구슬려 볼 테니까 네 앞가림이나 잘 하셔!”

 

 

 그 때, 기사 몇 명이 마굿간으로 들어왔다.

 

 

 “뭐야? 세탁방 샤르트 아냐?”

 

 “이런, 이런. 또 무슨 꿍꿍이들일까?”

 

 “시갈, 자꾸 샤르트랑 어울리면 너도 같이 요래 된다.”

 

 

 기사 하나가 손가락을 올려 귀 옆에서 뱅글뱅글 돌렸다. 시갈이 콧방귀를 뀌었다.

 

 샤르트는 기사들을 잠시 노려보다가 갑자기 히죽거리며 머리를 베베 꼬았다. 그러면서 천연덕스럽게 마구간을 나온 순간 본래의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세라 옆을 스쳐지나며 샤르트는 품에 든 것을 살짝 꺼내 냄새를 맡더니, 잠깐 멈춰 부르르 떨고는 사라졌다.

 

 세라는 바위 틈에서 나와 샤르트가 사라진 입구를 쳐다보며,

 

 

 “쟤도 뭔가에 중독 된 건가?”

 

 

 품에 숨긴 것이 뭘까? 시갈은 왜 그걸 도와주고.

 

 그녀의 등 뒤로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그녀를 보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우리 황제폐하는 참 섬세하셔. 하다하다 마구간도 염탐 해 오라하고.”

 

 “말들이 건초를 얼마나 먹나 똥은 얼마나 싸나 궁금한가 보지.”

 

 “야, 너! 영주님 믿고 아무데나 싸돌아다니나 본데, 여기는 너 같은 첩자가 올 때가 아니야. 썩 꺼져!”

 

 

 세라는 순식간에 날아든 차가운 눈빛과 비수같은 말들에 정신과 몸이 움츠러들었다.

 

 말들이 그녀 앞까지 다가와 그녀를 몰아부쳤다. 접지른 발목 때문에 걸음이 엉키고 엉덩망아를 찧었다.

 

 

 “영주님의 독에도 끄떡없으니 어젯밤 뜨거운 밤 좀 보냈나?”

 

 “네가 첩자짓거리만 안 한다면 우리도 축하해줄 일이지만.”

 

 

 말들이 금새라도 그녀를 밟고 올라설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말들의 무게도 기사들의 분노의 무게도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것 들이었다.

 

 

 “저거 봐, 끝까지 살려달라는 말, 첩자가 아니라는 말, 한 마디 내뱉지 않는 거. 이 번에 황제가 작정하고 보낸 거라고. 퉤!”

 

 

 붉은 머릿결에 침이 날아와 붙었고, 기사들은 세라를 비켜 멀어져 갔다.

 

 황제의 첩자…… 내가?

 

 반역 가문의 멸문지화가 목적이라 생각했는데.

 

 라시스……,

 

 당신이 나를 여기로 보낸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건가?

 

 세라는 파갈이라서 미움을 샀던 상황에서 이제 첩자라는 오해로 자신이 미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산 하나 넘으니 더 큰 산이 나타났다.

 

 다시 식당으로 가기가 무서워졌다. 그나마 가장 안전한 곳이 세탁방임을 알고 그곳으로 향했다.

 

 노파도 그저 노려볼 뿐 해코지는 하지 않으니.

 

 그 때, 그녀 앞으로 뚝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 종이끈이 묶어 있었다. 세라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늘에 매 한 마리가 맴돌고 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던진 거지?

 

 협박 편지 일까?

 

 그녀는 종이끈을 풀어 꼬아진 것을 활짝 펼쳤다. 그녀의 눈이 점점 커지고 종이를 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세련되고 유려한 필체.

 

 

 - 나의 사랑,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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