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나비-2
저녁 늦게 노미 아버지가 오셨다. 그리고는 석이 상태를 살펴주셨다. 다행히 목숨은 건질 것 같다고 하셨다. 응급처치를 빨리해서 생각보다 피를 많이 쏟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온몸에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이 멍이 들었고, 뼈 마디마디 상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뼈가 부러진 곳이 없었다. 총알도 몸에 박히지 않고 관통을 해서 그 또한 다행이었다.
노미 아버지는 석이가 목숨을 건진 것은 천운이라고 하셨다. 일본놈들이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석이를 발로 차고 때리고 하면서도 신기하게 뼈를 부러뜨릴 만큼 세게 차거나 때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노미 아버지는 미순이가 어디로 잡혀갔는지도 알아보고 오셨다. 아마 벌써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 일본군들은 여자들 명수를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고 했다. 군인들을 위한 천황폐하의 선물이라는 명목하에 셀 수없이 많은 조선의 처녀들이 중국으로, 대만으로, 남양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처녀들은 돈 벌러, 일하러 가는 것으로 알고 가는 이들이 많았다. 이렇게 대놓고 잡아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미순이가 어디로 끌려갈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경상도 지역에서 차출되는, 혹은 잡혀가는 처녀들은 대부분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갔다가 대만 혹은 남양군도로 보내진다고 했다. 누워있던 석이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그러더니 또
“미순아...”
하고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석이의 퉁퉁 부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윤화가 석이 손을 잡았다.
“석아, 내 목소리 들리나?”
석이가 겨우 눈을 떴다.
“형님....”
윤화를 바라보는 석이 눈에서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윤화는 석이 얼굴을 아프지 않게 가만히 쓸어주었다. 윤화는 울지 않았다.
그날 밤, 윤화는 식구들이 잠이 든 사이 집을 나섰다. 마당에 선 윤화는 아버지가 계신 안방을 향해 큰절을 했다. 마당에 있던 멍멍이가 윤화를 향해 다가와 낑낑거렸다.
“집 잘 지키고 있으래이. 내 퍼뜩 갔다오께.”
윤화는 멍멍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돌아서 집을 나서려는데 노미가 방 앞에 나와 서 있었다. 윤화는 순간 멈칫했다.
“어디를 가시는교?”
하고 노미가 윤화에게 물었다.
“미순이 데리러 갑니더.”
윤화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수로예. 어디 있는 줄 알고예?”
노미는 목이 멨다.
“징용 가는 트럭이 아침에 출발한다 들었습니더. 그걸 타고 가믄 잡을 수도 있습니더.”
“징용에 가신다고예? 도련님!”
노미는 기가 막혔다.
“그 수밖에 없습니더. 부산이든, 일본이든, 남양이든, 지가 찾아옵니더.”
달빛조차 희미한 한밤중인데 윤화의 눈은 불이 붙은 듯 번뜩였다.
“도련님.... 안됩니더.... 형님이 절대로 도련님 징용 못 가게 하라고 지한테 신신당부를 했습니더.”
노미는 어떻게든 윤화를 말리고 싶었다. 말려야 했다.
“자기는 자기 색시 찾겠다고 발바닥에 피가 나게 뛰어갔던 양반이 내보고는 암것도 하지 말라고요?”
윤화는 그 와중에 피식 웃는다.
“지는 죽으면 죽었지 미순이 이래는 못 보냅니더.”
노미는 더는 윤화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진중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 누가 뭐래도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말도 안 되는 길을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형수님, 몸 건강히...”
하는데 윤화가 목이 멘다. 윤화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노미는 처음으로 보았다.
“그래도, 형수님이 배웅을 해주시니 지가 좀 덜 섭섭합니더. 홍이에게도 안부 전해 주이소. 작은아버지가 금방 온다고 해주이소.”
하고 윤화는 이제 막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노미의 배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노미에게 꾸벅 절을 하고 돌아섰다.
“도련님....”
노미는 윤화의 옷자락을 와락 움켜잡았다. 노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윤화는 펑펑 우는 노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옷자락을 잡은 노미의 손을 제 손으로 감싸 쥐었다.
“형수님, 형수님만 믿고 갑니더. 형수님이 계셔가 지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더. 살아서 옵니더. 틀림없이 살아서 올 테니 걱정 마이소.”
노미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윤화 손에 쥐어주었다. 옥가락지였다. 어머니가 미순이 주라고 주신, 윤화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옥가락지였다. 윤화가 나서는 것을 보고, 마당에서 큰절을 하는 것을 보고, 노미는 가만히 어머니가 주신 옥가락지를 꺼내 손에 쥐고 나왔던 것이다. 옥가락지를 받아든 윤화의 눈이 아프게 떨렸다.
“미순이 꼭 찾아오이소. 꼭 찾아가 주이소.”
노미는 그 짧은 순간 생각했다. 윤화의 이름이 새겨진 옥가락지를 누군가에게 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윤화가 정할 일이라고 말이다. 윤화는 그 옥가락지를 손에 꽉 쥐었다. 그리고 노미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형수님 얼굴이었다. 선녀가 있으면 이런 얼굴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고운 얼굴이었다. 윤화는 눈물이 범벅이 된 노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손을 뻗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고맙습니더. 댕겨올께예.”
그리고는 싱긋 웃더니 그대로 문밖으로 사라졌다. 노미는 식구들이 깰까 봐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
윤화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트럭에 타고 있었다. 부산에 가려면 아마도 기차로 갈 것이다. 트럭에는 윤화 또래의 남자들부터 훨씬 어려 보이는 소년들까지 열 명 정도가 타고 있었다. 미순이도 트럭에 실려 갔다 했다. 이 트럭이었을까? 일일이 사정을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다들 가난에 못 이겨, 혹은 강압에 못 이겨 징용에 자원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사람을 데리고 가면서도 송출이라고 했다. 일본인들에게 조선의 사람들은 물건과 다를 바가 없었다.
노미의 말처럼 ‘일본사람들도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에게 뭐 그리 나쁘게 하겠나.’ 하는 것이 당시 조선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 혹은 착각이었다. 착한 사람들이 하는 가장 흔한 실수 중 하나가 내 맘이 이러니 남들도 다 내 맘 같겠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틀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마음을 바로잡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보물을 찾는 것만큼이나 귀하고 어려운 일이다. 친구라고 다 믿을 수 없고, 가족이라고 다 믿을 수 없다. 우리는 그게 누구든 사람이면 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 내 맘 같으리라 믿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도, 제일 더러운 것도, 제일 악한 것도 ‘사람’이다.
트럭은 한참을 달려 기차역에 도착했다. 트럭에서 우르르 내려진 사람들은 이제 기차의 화물칸에 태워졌다. 창문도 없는 캄캄한 화물칸 안에는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조선의 남자들이, 소년들이 한가득 타고 있었다. 다들 석이 태화 민화 정화를 닮았다. 윤화는 순간 집에 두고 온 동생들 생각이 났다.
‘지금쯤 난리들이 났을 텐데...’
기차는 또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 도착해서는 신체검사를 받았다. 흰 가운을 입은 군의관들이 채혈도 하고, 시력 청력 입안 등을 검사하고 키와 몸무게를 재었다. 자존심 강한 윤화는 소 새끼가 된 기분이라 영 기분이 더러웠지만, 꾹 참았다. 신체검사가 끝나자 임시 건물처럼 생긴 막사 같은 곳에 모여있게 했다.
“혹시 여자들 못봤는교?”
하고 윤화가 미리 와 앉아 있던 한 사내에게 물었다.
“여자들이요? 아니요. 여자들은 이쪽에다 모으지 않는 것 같던데요.”
그의 대답은 여자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어디 있다고 하던데예?”
“여는 아니고.... 저 건너편 창고들 서 있는데 줄줄이 가더만.”
남자는 늘 보던 광경인 듯 덤덤하게 말했다. 윤화는 눈이 번쩍했다.
기다리던 밤이 되었다. 생각보다 경계는 허술했다. 다들 일본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황국신민으로서의 위대한 자부심으로 국가산업 발전의 역군이 된다.’는 감격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이동비 일체와 기찻삯, 뱃삯, 나누어주는 식은 밥 덩어리까지 모두 값이 치러지고 있었고, 고스란히 그들이 지급해야 할 빚이었다.
다들 여기저기 쓰러져 잠이 들었다. 제대로 된 잠자리나 조각 이불조차도 주지 않았다. 추운 계절이 아니라 다들 그런대로 쪽잠을 잤다. 군인들이 여기저기 지키고 서 있었지만, 경계를 서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정도였다. 윤화는 살그머니 일어나 문을 나섰다. 문이랄 것도 없는 천 덮개였다. 이쪽에 비해 부두 저쪽은 건물도 큼직하고 불도 밝았다. 들키지 않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윤화는 건물 그림자들을 따라 여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창고 쪽으로 건너갔다.
겨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창고에 도착했다. 창고는 세 동 정도가 보였다. 미순이가 붙잡혀 왔다면 부산에. 그리고 지금 저기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창고 주변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그런데 유독 한 창고 앞에 군인 둘이 보초를 서고 있고 다른 창고들은 지키는 군인이 없었다. 윤화는 저기다 싶었다. 그리고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곳에 윤화가 있었던 막사와 비슷한 건물들이 줄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군인들이 쓰는 숙소인 모양이었다. 그 창고로 다가가려면 군인들이 자는 막사를 지나가야 했다. 윤화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주변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평화롭기까지 했다. 윤화는 건물 뒤쪽으로 빙 돌아 창고를 향해 다가갔다. 다른 막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막사 뒤쪽으로 붙었다. 그때였다. 안쪽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놓아라! 이 개놈들아!”
여자의 당찬 목소리였다.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기개가 있는 목소리였다. 미순이는 아니었다.
“うるさい！ 朝鮮ピー！우루사이! 조센삐!”
(입 닥쳐! 조센삐!-조선여자를 낮추어 부르는 말)
하며 뺨을 치는 소리가 퍽하고 들렸다. 여자는 입을 틀어막혔는지 짓눌린 채 울부짖는 소리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윤화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か弱そうなアマがかなり鼻っ柱が強いな。おもしろくしてやるって言ってるのに嫌だとはな！”
카요와소우나 아마가 카나리 하나빠시라가 츄요이나. 오모시로꾸 시테야루테 이테루노니 이야다토와나!
(야리야리하게 생긴 년이 엄청 독하구만. 재미있게 해준다는데 싫다니!)
라고 말하는 다른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놈이 아니었던 것이다.
“とっととやっつけろ！ 俺だって急いでるんだ！”
톳토오토 야츠케로! 오레다테 이소이데룬다!
(어서 해치워! 나도 급하다!)
하는 다른 놈의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신음 소리와 함께 흐느껴 우는 소리 그리고 도저히 귀로 들을 수 없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곳은 군인들이 우글거리는 막사 한가운데나 다름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자 비명이 들리는데, 다들 들릴 텐데, 다른 막사에서는 미동조차 없었다.
당장에라도 뛰어 들어가 세 놈 목을 따고 여자를 구해와야 했다. 여자는 기절했는지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자기 욕구를 푸느라 헐떡거리는 남자들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럴 줄 알았지만, 이런 짓들 하려고 소녀들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직접 확인하자 윤화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윤화는 이미 머리가 고장 나 버린 것 같았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윤화는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중간 큰 창고를 향해 다가갔다. 그 창고에는 창문이 없었다. 아주 높은 곳에 작은 환기구 같은 창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높아서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윤화는 경계하는 군인들이 없는 창고 뒤쪽으로 가서 벽에 귀를 대보았다. 소리가 들렸다. 윤화는 눈이 커졌다.
안에서 흐느끼는 소녀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미순이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녀들이 붙들려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윤화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렸다. 높은 창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안쪽에 전등을 희미하게나마 켜 둔 모양이었다. 윤화는 확인해야 하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상자 몇 개가 보였다. 잘만하면 건물 뒤쪽으로 난 창문까지 밟고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창문이 너무 작아서 그리로 들어가거나 나올 수는 없었다. 윤화는 용기를 내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상자들을 쌓아 올리고 창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안이 보였다. 어둠에 눈이 잘 익지 않았지만 안은 비교적 환했다.
삼사십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소녀들이 서로 부둥켜안은 채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다들 미순이 또래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더 어려 보이는, 아기나 다름없는 소녀도 보였다. 윤화는 눈을 비벼가며 안을 살폈다. 그리고 윤화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미순이였다. 미순이가 그들 사이에 있었다.
윤화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하마터면 상자 위에서 곤두박질칠 뻔했다. 많이 울었는지 미순이는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곳의 소녀들이 모두 그랬다. 하마터면 ‘미순아!’하고 부를 뻔했다. 윤화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내려와 숨을 고르며 앉았다.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그때였다. 아까의 그 막사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군인 두 명이 축져진 소녀를 양쪽에서 붙들고 질질 끌면서 창고로 다가오고 있었다. 축 처진 소녀는 정신을 잃었는지 댕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앞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어느 대갓집 딸인 모양이었다. 입고 있는 옷도 고운 빛깔의 양반집 아가씨 옷이었고, 머리를 묶은 댕기도 붉은색의 비단 천으로 된 것이었다. 어쩌다 양반집 애기씨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원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소녀를 끌고 온 군인들의 계급이 더 높은지 보초를 선 군인들이 경례를 붙였다. 군인들은 철로 된 창고 문의 빗장을 풀고는 안으로 그 소녀를 던져 넣었다. 안에서 ‘아이고!’ 하는 소녀들의 탄식 소리가 들렸다. 흐느끼는 소녀들의 소리가 커졌다. 군인들은 조용히 하라고 일본말로 고함을 치고는 쇳소리를 내며 문을 닫아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