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단술
그렇게 춥더니 겨울바람이 조금 누그러졌다. 남화에게서 전보가 왔다. 백방으로 형님 소식을 알아보고 있으나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로 가는 강을 건넜는지 안 건넜는지도 확실치 않고, 움막에 돌아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남화는 고향으로 가셨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오시거든 꼭 알려달라고도 했다.
여기까지인가 싶었다. 그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그 순간 왜 미순이 생각이 났을까. 노미는 또 버릇처럼 자기 가슴을 쥐었다.
“내내 이래 업고 걸을 수 있으믄 좋을 낀데, 세상이 어수선해가 우예 좋은 날만 있겠습니꺼. 낼로 따라와 줘서 고맙고, 또 고마븐데, 사는 게 녹녹지 않아가 힘든 날도 많고 그랄 낀데....”
“내도 압니더. 여름도 있고, 가을도 있고, 겨울도 있고, 그라다 보믄 또 봄도 있고..., 지는예, 좋은 날만 보자고 사는 거 아입니더. 어려븐 일이 있으믄 같이 헤쳐 나가믄 되지예. 세상에 좋은 일 나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더. 다 그냥 살다 보믄 생기는 하늘이 주는 일들입니더. 하늘은 원래 아무 이유 없이 사람한테 일을 주고 그라지 않습니더. 그래가 나쁜 사람은 좋은 일도 나쁜 일로 맨들고, 좋은 사람은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맨듭니더. 서방님은 좋은 사람입니더. 내가 본 중에 젤로 좋은 사람입니더. 그래서예, 지는 아무 걱정이 안됩니더. 서방님이랑만 있으믄 내는....”
시집오던 날 진화 등에 업혀서 했던 말이었다. 노미는 헛웃음이 났다.
‘뭘 안다고.... 내가 뭘 안다고....’
하늘이 주시는 일을 그저 받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었다. 과연 그런가. 그걸로 좋은 것을 만들 수도 있고, 나쁜 것을 만들 수도 있단다. 과연 참으로 그런가. 이대로 노미의 삶에서 진화가 없어져 버리면? 노미는 더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덜커덕 거기서 멈춰버린 생각은 앞으로 좀처럼 나아가지 않았다. 도련님들이 아무리 어여뻐도, 홍이가 아무리 소중해도 진화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 딱 그 사람 하나 뿐이었다.
그런 노미를 곁에서 지켜보는 민화의 심정은 말로 할 수 없었다. 넋이 나간 형수님을 어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우야믄 좋노.”
민화는 한숨만 나왔다. 노미는 아까부터 삼베를 손으로 비벼 째고 있었다. 겨울이면 여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넋이 나간 채 손만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태화도 정화도 가슴이 미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태화 눈에 노미 손바닥이 까져 피가 나는 것이 보였다.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노미는 삼베를 손으로 비벼 입으로 째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태화가 노미에게 와락 다가가 손을 획 낚아챘다.
“뭐 합니꺼? 손 째진 거 안 보입니꺼?”
태화는 화가 난 목소리로 하지만 낮고 조용하게 야단쳤다. 노미가 그런 태화를 바라보았다. 태화는 노미 손에서 삼베를 획 빼앗아 삼베를 바구니에 던져 넣고는 저리 밀어버렸다.
“정화야! 여기 붕대랑 고약이랑 좀 가져온나!”
하고 정화에게 소리쳤다. 정화는 ‘어~.’ 하며 약을 가지러 갔다.
“됐습니더. 괘안습니더.”
하고 노미가 태화를 말렸다.
“괘안키는 뭐가 괘안습니꺼. 손이 이래 째지가 피가 나는데!”
태화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런데 화를 내는 태화 눈에 물이 비친다. 노미는 그런 태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괘안타, 괘안타! 입만 열면 괘안타! 형수는 뭐가 그래 맨날 괘안습니꺼. 아프면 아프다고 하이소. 제발 쫌!”
태화는 결국 목이 메고 말았다. 태화는 정화가 가지고 온 약 바구니에서 고약을 꺼내 노미의 손바닥에 바르고 붕대를 매주었다. 민화는 홍이를 안고는 멀찍이 서 있고, 웬일로 정화도 슬그머니 물러나 멀리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형수, 지금.... 안 괘안습니더.”
하고 태화가 말했다. 결국 노미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태화의 큰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멀리서 보고 있던 민화는 얼굴을 하늘로 쳐들었다. 정화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도련님, 지는... 우야믄 좋습니꺼. 우야믄 좋습니꺼.”
노미는 그렇게 겨우 나오는 목소리로 말하며 흐느껴 울었다. 태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태화도 답을 해 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같이 울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태화는 형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같이 울어주었다. 민화도 정화도 다가와 그렇게 같이 울어주었다.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저녁을 좀 일찍 먹고 치운 후였다. 노미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단술(식혜)을 만드느라 부엌에 있었다. 가마솥에 단술을 끓이는 동안에는 커다란 주걱으로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어주어야 했다. 달콤한 단술 향이 올라와 이제 거의 다 되었다 싶으면 불을 빼고 차게 식히기만 하면 겨울철 내내 마실 수 있는 식혜가 되는 것이다.
마당은 어스름한 달빛이 환하게 가득 차 있었다. 그때였다. 마당에서 ‘에헴’하는 헛기침 소리가 났다. 노미는 단술 젓는 것이 이제 막 끝나 불을 다 빼고 솥뚜껑을 덮으려는 참이었다. ‘에헴’ 하는 기침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노미는 솥뚜껑 쥔 손이 덜덜 떨렸다. 손이 어찌나 세게 떨리는지 솥이랑 솥뚜껑 부딪히는 소리가 ‘달달달’하고 요란하게 울릴 정도였다. 노미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보소. 내 옷 좀 내주소.”
노미는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지조차 못했다.
“내 아버지 먼저 뵙고 나오리다.”
그렇게 그 소리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버지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들은 석이네 건너가 있어서 집에 없었다. 석이랑 석이 어머니가 겨울을 나려고 와 있었다. 노미는 얼른 방으로 가서 장을 열고 진화의 옷을 꺼냈다. 꺼내려고 손에 쥐었다. 여전히 손이 덜덜 떨려 노미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어야 했다. 그때 뒤에 인기척이 났다.
“사람이 왔는데 와 쳐다도 안 보노.”
노미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렸다. 이번에는 쥐고 있는 장문 손잡이가 달달달 떨렸다. 진화가 가만히 노미 어깨에 손을 올렸다.
“놓으이소.”
노미가 차갑게 말했다. 진화는 깜짝 놀랐다.
“내 몸에 손대지 마이소.”
노미는 진화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손에다 옷을 휙 쥐여주고는 얼굴도 보지 않고 방을 나와 부엌으로 갔다. 눈이 터질 듯이 빨개졌는데 막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노미는 끓여놓은 단술을 다시 저었다. 아직 솥에 불기가 남아있어 놔두면 밑이 눌어붙어 탄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미는 열심히 단술이 다 식을 때까지 주걱으로 단술을 저었다.
진화는 옷을 갈아입고는 마당으로 나와 섰다. 아직 11월이라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제법 상쾌하기까지 했다. 진화는 그렇게 마당에 서서 집안의 공기를, 고향의 바람을 들이마셨다. 자기를 쳐다보지조차 않는 노미를 어찌 달래줘야 하나 싶어 진화는 안타까웠다. 보름달이라 온 천지가 대낮처럼 환했다. 두 사람의 첫날 밤 같았다.
“형? 큰형?”
집으로 돌아온 태화가 제일 먼저 마당에 서 있는 진화를 발견했다. 진화는 소리난 쪽을 바라보았다. 세 동생이 자기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형....”
자기 눈을 믿을 수 없는 민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민화는 홍이를 안고 있었다. 홍이까지 데리고 석이네 놀러 갔다 오는 길이였다. 진화 눈에 홍이가 보였다. 진화는 홍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화를 바라보는 정화의 눈은 곱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눈물과 원망으로 이글거렸다.
민화는 진화에게 다가가 홍이를 안겨주었다.
“형 아들이다. 홍이다.”
진화는 홍이를 어색하게 안았다. 눈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홍이는 낯도 안 가리고 진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친 홍이의 커다란 눈은 진화를 똑 닮아 있었다. 진화가 웃자 홍이도 따라 웃었다.
“홍아, 아부지다. 아부지 해봐라.”
하고 민화가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울음을 겨우 삼키며 말했다. 그러자 홍이가
“아부부....”
했다. 요즘 삼촌들이 열심히 가르친 말이었다. 진화는 그만 ‘헉!’하고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진화는 홍이를 끌어안았다.
“형~!!”
하며 태화가 달려와 진화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민화도 같이 끌어안고 울었다. 그런데 정화는 내내 보고만 서 있다.
“정화야~!”
하고 진화가 정화를 안타깝게 불렀다. 민화가 얼른 홍이를 받아 안고는 진화를 정화 쪽으로 밀었다. 정화는 노려보고 서 있을 뿐 진화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진화는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정화야~~!”
하고 진화가 안타깝게 막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됐다! 오지 마라!!”
하고 정화가 고함을 쳤다. 진화는 순간 멈칫하고 서서는 하염없이 울었다. 하지만 막내를 너무 안고 싶었다. 눈을 부라리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가슴에 안으려 했다. 그러자 정화가 밀쳐냈다.
“저리 가라! 내는! 내는! 니! 죽어 뿐 줄 알았다!!”
정화가 고함을 치며 진화 가슴을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퍽 소리가 나며 진화가 휘청했다. 하지만 진화는 그대로 정화 주먹을 맞아주었다.
“형수가! 형수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니 아나?”
하며 정화는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미안하다! 내 잘못했다. 내 잘못했다.”
하며 진화는 흐느꼈다.
“안 오는 줄 알았다꼬! 다시는...,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다고!!”
결국, 정화는 진화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목을 놓고 꺼이꺼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그 소리에 홍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민화가 홍이를 달랬다.
그리고 그 소리에 석이가 뛰어 내려왔다. 진화가 석이를 보았다. 진화가 품에 정화를 안은 채로 석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석이가 달려와 진화 품에 안겼다. 석이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었다. 그렇게 진화는 석이랑 정화를 품에 안았다. 태화는 진화 등에 머리를 대고 울었다. 민화는 홍이를 안고 서서 이 다시 못 볼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부엌에서 아직도 단술만 젖고 있는 노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울음이 채 가시지 않은 홍이를 달래며 말했다.
“홍아, 괜찮다. 괜찮다. 어무이도 아부지도 이제 금방 괜찮아질끼다.”
하며 빙그레 웃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달처럼 환하고 고운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