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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2 괴물의 마석-3(소민)
작성일 : 18-06-09 06:17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8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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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우리 왔어!”

  소민이 밝게 웃으며 병실 문을 열었다.

 “형, 우리 왔어!”

  마찬가지로 소인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병아리들! 어서와.”

  소민 남매를 반겨준 사람은 그들의 장남인 ‘거인’이었다. 이름처럼 거대하고 듬직한 사내였지만, 지금은 그저 다리를 다쳐 입원 중인 환자에 불과했다.

  소민 또한 다친 그를 평소의 오빠 보듯 보지 않았다. 다치기 전의 그가 울창한 숲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커다란 나무였다면, 지금의 그는 말라 비틀어진 고목나무라 생각될 정도로, 힘이 없어보였다.

 “오빠, 죽 먹네? 특식이야?”

  오늘은 그래도 그의 모습이 괜찮아보였다. 소민은 그가 병원 밥이 맛이 없기에 더욱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가 죽을 행복하게 먹는 모습에 오히려 스스로 더욱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엔트에서 주문한 거야. 7분 만에 배달이 오는 가게는 난생 처음이야! 더군다나 엔트라는 가게는 여기서 거리가 꽤 되는 걸로 알고 있거든.”

  거인은 쌍둥이를 한 사람씩 바라보며 엔트의 주방장에 대해 감탄을 분출하듯 터뜨렸다. 쌍둥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표정으로 감탄했다. 그러고선 서로를 바라보더니, 곧 검지로 상대방을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거인은 자신의 동생들의 밝은 모습에 앞에 놓인 먹음직스런 죽도 잊은 채,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소민은 이내 거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 눈으로 그가 베개 밑으로 시계를 숨기는 것을 확인했지만,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며 생긋 미소 지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니? 수업은 끝난 거야?”

 “응, 형. 끝나자마자 나랑 소민이랑 바로 온 거야.”

  소인은 때 묻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조금 돈이 필요해서 헤헤.”

  소민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돈? 소민아 왜 돈이 필요하다는 거야?”

  거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으로 소민을 지적하듯 가리켰다.

 “으, 응?”

 “며칠 전에도 돈 받아갔잖아.”

  거인의 질문에 소민은 입이 얼어붙은 것 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며칠 전에도 돈 받아갔어?”

  소인은 묘하게 억울한 마음에 소민과 거인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수록 소민의 등골은 서늘해졌고, 점점 거인도 그녀를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그때는! 책을 사기 위해서라고 말했잖아.”

  소민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맞아, 책을 산다고 했었지.”

 “이거…”

  소민이 꺼낸 책은 ‘요리 기본서’였다. 요리치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광고된 물건이었다. 거인과 소인은 그녀이기에 살 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고, 소민도 숨길 생각 자체가 없었다.

 “야, 너 요리도 안하면서 왜 이런 걸 산거야! 아하하!”

  얼마 지나지 않아, 소인은 웃음을 터뜨렸고, 마치 그녀를 조롱하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소민은 불쾌했지만, 입술을 앙다물며 소인에게 닥치라는 눈빛을 보냈다.

 “너희들 요리 안 해먹어?”

  거인이 차갑게 말을 마친 그 순간, 소민의 몸에는 닭살이 쫙 돋았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거인은 좋은 오빠지만, 장남이었기에 고리타분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가 차갑게 말을 한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 한바탕 훈계를 시작하려는 것을, 소인과 함께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소인도 겁에 질렸다. 위협을 느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당연하게도 생각은 통했다.

 “아냐, 오빠 잘 들어봐!”

  소민이 눈을 크게 뜨며 양 손을 빠르게 흔들었다.

 “난 해먹어!”

  소인이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 소민은 쓰레기를 보듯 그를 노려보았다.

  거인은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영악한 쌍둥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말이 되는 변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소민은 입 모양을 움직여 소인에게 “죽고 싶냐?”라 물었고, 소인은 혀를 내밀며 그녀를 조롱했다.

 “과학자님이 마음껏 쓰라 하셨지만, 그래도 적당히 뽑아 써야해. 알았지?”

  거인은 그들에게 금빛으로 빛나는 카드를 건넸다. 갑작스레 건네진 카드에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빠?”

 “소인이는 해 먹는다니까, 굳이 내가 훈계할 이유는 없어. 소인이는 누나를 좀 더 챙겨주고, 소민이는 동생을 본받도록 해.”

  소민은 거인의 얼굴에 핀 한 송이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 돋아 오른 닭살은 어느새 사라졌고, 안심할 수 있었다. 거인이 화를 내거나, 훈계를 한다면 누구라도 위압감을 느껴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소인과 함께 한 두 번 혼나본 것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좀처럼 무서움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가 미소를 지은 이유를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혼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오빠, 우리가 아직도 어린이로 보여?”

  소민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능글맞게 말했다.

 “형, 걱정 마. 소민이가 많이 쓰지, 난 별로… 악!”

  소민은 빠르게 소인의 뒤통수를 쳤다. 손맛은 평소의 배 이상으로 강했다. 스스로도 아까부터 소인이 꼴사나웠고, 기분 나빴기에 더욱 매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거인이 당황하자,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어댔다.

 “소인아, 괜찮아?”

 “형, 괜찮아… 나는 이 정도로 죽지 않아.”

  소인은 온 몸을 떨고 있었고, 새빨간 코피가 흘렀다. 그 모습에 거인은 미소를 거두고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소민은 스스로도 화를 제어하지 못하는 걸 후회했다. 오빠가 엄하게 혼을 냈고, 소인과의 화해로 끝을 맺었지만, 그의 코에 꽂힌 하얀 휴지가 붉게 물들어가는 걸 도저히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들은 ATM기에서 돈을 빼오는 걸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방금 전의 폭력이 영향을 끼쳤는지, 승자는 소민이었다. 소인은 군말 없이 돈을 뽑으러 나갔다.

  거인은 소민을 바라보았다. 그는 소민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가 알던 순수하게 장난을 좋아하는 평소의 그녀가 아닌, 전혀 모르는 누군가를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스스로도 오빠의 그런 시선을 느끼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났지만, 돈을 찾으러 간 소인도, 거인의 반찬을 사러 간 강혁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거인이 식어버린 죽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한 술 떴다.

 “오빠.”

 “왜?”

  크게 떠진 죽은 강혁의 입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힘이라는 거 정말 무섭지 않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힘이라니.”

  거인은 눈을 깜빡거렸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순서가 틀렸네. 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소민의 물음에 거인은 입 속의 죽을 꿀꺽 삼켰다. 그는 갑작스런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냥 묻는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소민은 그가 진심이 느껴지는 질문에는 성심성의껏 말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소인과 좀 더 가까운 사이라 느끼고 있었지만, 고민만큼은 그에게 묻기 힘들었다. 오히려 고민은 거인만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거인은 죽을 먹는 것도 멈춘 채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힘이라…”

  반면, 거인은 흘려보내듯 말하며 소민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소민은 어딘가 괴로워보였다. 알게 모르게 그녀는 자신의 복부와 오른쪽 가슴을 번갈아가며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무언가 느껴진다. 마치 소민이가 묻는 ‘힘’이라는 송곳니가 내 무언가를 자극하는 느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소민이가 말 못할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군.’

  거인은 측은한 눈빛으로 소민을 바라보았다.

 “소민아, 오빠가 힘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지는 잘 모르겠어.”

  거인의 말에 소민은 잠시 주춤거렸다. 곧,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그를 바라봤지만, 스스로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힘이 있다고 강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해져야 힘을 쓸 수 있는 거야.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결국에는 그 힘에 먹혀버릴 거라 생각해.”

  거인은 스스로도 미묘했다. 소민이 어떤 의도로 물어봤는지 알 수 없었을 뿐더러, 자신이 한 말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을 거라 전혀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거인은 애써 그녀를 옅은 미소로 바라보며, 그 이후로 입을 열지 않았다.

  소민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알았어. 오빠, 항상 좋은 말 고마워.”

  거인은 침묵으로 끄덕거렸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고, 소민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비록 거인은 다리를 다쳐,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편했었다. 그렇게까지 편한 건 아니었지만, 몇 개월 동안 움직일 수 없었던 이 다리를 생각하니,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편안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 이 순간 깨져버리고야 말았다.

  거인은 생각했다. 소인은 그녀의 생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것일까? 그것은 병원에서 움직이기 힘든데다, 마냥 해맑았던 소인의 모습만으로는 그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소민이 무언가를 하려 하는 것 같았다. 거인으로서는 그걸 말릴 생각은 없었다. 장난기 많은 쌍둥이는 항상 그에게 솔직했고, 그랬기에 거인은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숨기려 한다면, 그게 정말 선한 의도이고, 오빠로서, 가장으로서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럼에도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었지만, 거인은 숨을 고르며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빠,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소민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거인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병실 개인 화장실로 다가갔다.

 “소민이 녀석…”

  거인은 한숨을 쉬며 창 밖을 바라봤다.

 

  소민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파…”

  입에서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퍼뜩 정신이 들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화장실에서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이 느껴지자, 손바닥을 이로 깨물었다.

 “분명… 괜찮았었는데?”

  소민은 커버를 내린 변기를 의자 삼아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오른쪽 가슴과 복부를 번갈아가며 움켜쥐었다. 아픔이 사라지길 바랐지만, 그럴수록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리아야…’

  소민은 품에서 마석을 꺼냈다. 읽을 수 없는 글자가 붉게 발광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받은 마석이 빛을 낼 때마다 통증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적은 없었다. 마석의 주인인 그녀는 힘을 얻기 위해선 고통이 따른다고 말했고, 그녀는 이 아픔이 힘을 얻기 위한 고통의 단계라 생각하며, 더욱 심해지는 통증에도 버티고, 또 버텼다.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증명하고 싶었다. 그녀는 괴물이 아니고, 그녀가 건넨 마석은 괴물의 마석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냈다 생각한 소민은 더 이상 복부가 아프지 않았다.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복 상의를 들춘 그녀는 세면대의 거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 이건!”

  복부를 확인한 그녀는 그만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곳에는 마치 그린 듯한 붉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한 쌍의 송곳니 같은 모양이었고, 날개 같기도 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욱 선명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가 오는 건 복부의 문양만이 아니었다. 소민의 눈동자도 점점 피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아픔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흘리고 있던 눈물의 색도 점점 눈동자처럼 붉게 흘러내렸다.

 “이게 뭐지? 핏줄?”

  그뿐만이 아니었다. 복부의 문양은 오른쪽 가슴까지 핏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소민은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 그것은 곧 또 하나의 심장의 고동이었다.

 “안 돼… 안 돼!”

  소민은 절규했다. 고동은 절규와 섞여 점점 더 커져가며, 화장실 안을 가득 메웠다. 메아리치듯,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어느새 그녀가 흘린 피눈물이 안을 가득 메우자, 절규 섞인 고동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소민아? 소민아!”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부른다. 소민은 눈을 떴다. 하지만 눈앞은 뿌옇게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민아 괜찮은 거니?”

  담임인 세정의 목소리가 그녀를 안아주듯, 귓속으로 들어왔다. 소민은 그 목소리에 집중하며 눈에 초점을 맞추자, 곧 앞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그래, 소민아. 선생님이야. 괜찮은 것 맞니?”

  세정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소민은 책상에 엎드린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책상에 쌓아놓은 책들, 지우다 만 칠판, 미처 덮지 못한 교과서까지, 단 한 가지, 책가방이 없는 소인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익숙한 교실의 풍경이었다. 그곳에서 세정이 소민의 손을 잡고 있었고, 옆에서는 4교시 역사 시간을 담당한 역사 선생과 반장이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꿈이었구나, 몇 번을 꿔도 생생한 그 꿈. 또 그걸 꾸다니…’

  소민은 꿈이라는 것에 한편으로는 안심했지만, 몇 번이고 같은 내용의 꿈을 꾸는 탓에 마음이 두려워졌다. 그녀가 꾸는 꿈의 내용은 일주일 전에 겪었던 일이었지만, 점점 내용에 꿈 특유의 과장이 더해지며 꾸면 꿀수록 더욱 암울해졌다.

 “전… 괜찮아요.”

 “괜찮긴! 눈이 충혈 되었잖니! 정말… 소인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거니?”

  세정은 소민에게 나무라듯 말했다. 어느새 그녀의 눈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박 선생님…”

  곁에 있던 역사 선생이 나지막이 말했다.

 “4교시가 역사 시간이었지? 역사 선생님이 끝나기 10분 전부터 네가 잠자듯 쓰러져 있었다고 하셨어. 처음에는 네가 피곤해보이고, 오늘은 진도가 빨라서 자습을 했기에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하셨대. 그런데 실장이 네가 마치 어디 아픈 사람처럼 식은땀도 흘리고 괴로워 보였다고…”

  세정은 그녀를 야단치면서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고, 결국 울컥한 마음에 눈가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반장은 그런 그녀에게 휴지를 가져다주었다. 세정은 눈물을 닦으며 격앙된 감정을 애써 달랬다.

  역사 선생과 반장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소민은 코를 훌쩍이는 세정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아직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지만, 지그시 눈을 감아 뜨거운 숨을 여러 차례 내쉬었다. 그렇게 다시 눈을 뜬 그녀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당연하지! 우리 소민이가 힘든데, 선생님은 괜찮아야지.”

  세정은 안정적인 발음으로 말했다.

  소민은 차마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죄송해요.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괜찮아. 네가 사과할게 아니야.”

  세정은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는 소민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녀의 따스한 손이 괜찮다고 말해줄수록, 소민은 몸을 더 움츠렸다.

 “하지만 세상에 참아서 괜찮아질 건 없단다. 모든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해야해. 혼자 해결하기 힘들면 참지 말고 선생님한테 언제든 말해도 괜찮아. 소민이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널 도와줄 사람들이 아주 많단다.”

  소민은 세정의 따뜻한 목소리와 다정한 말에 마음이 울적해졌다. 머릿속에서는 붉은 마석과 그것을 건네주는 가느다란 팔, 그리고 꿈에서 봤던 날개 같은 한 쌍의 송곳니 형상의 문양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것들은 그녀에게 두려움이란 물이 차오르게 만들었고, 자연스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게 했다.

 “소민아…”

 “죄송해요 선생님. 하지만 말을 해도 믿지 못하실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은 거예요.”

 “한 가지만 물어볼게. 과연 네 담임인 내가 소민이 널 믿지 못한다면 과연 누가 널 믿을 수 있지?”

  그때 소민의 머릿속에서 깨달음의 종소리가 크게 울렸다. 한 마디였지만, 마음을 울린 그 무언가에 그녀에게 차오른 두려움이란 물은 깨끗하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 소민은 입을 열었다.

 “소인이는 모를 거예요. 또한 병원에 있는 제 오빠도요.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았거든요.”

 “어쩐지… 소인이도 잘 모른다고 했거든. 그것보다도 대체 무슨 이야기 길래 그러니?”

 “오컬트예요. 그 선생님도 알고 계시는 오컬트 맞아요. 제 말은 사실이에요. 정말 저조차도 믿기 힘들어서 차마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고… 그래서…”

  소민은 울먹거리며 말을 더 이어나가지 못했다. 세정은 손에 들린 아직 사용하지 않은 휴지 몇 장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사실은 지금도 무서워요. 붉은 무언가가 절 잡아먹을 것 같고… 그래서… 그래서…”

 “많이 힘들었구나…”

 “이 이야기를 믿으세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소민은 스스로도 믿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오컬트에 대한 이야기다. 의심해도 그녀로서는 할 말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세정은 그녀의 이야기를 믿어주었다.

 “못 믿을게 뭐있니? 선생님은 항상 네 편이야.”

 “선생님…”

  소민은 속에서 무언가의 감정이 점점 끓듯 뜨거워졌다. 이것은 ‘용기’ 그녀가 어느 샌가 잃어버렸던 것이었다.

 “소민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을게. 하지만 아무리 오컬트라고 해도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되겠니?”

  세정이 마치 격려하듯 말하자, 소민은 시계를 바라봤다. 시간은 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몸이 안 좋아서 조퇴해도 괜찮을까요?”

  소민은 세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정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미소에 소민은 비로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해답은 바로 자신의 친구이자 마석의 제작자인 ‘그녀’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힘들면 참지 마라, 말을 해라, 도움을 요청해라 등의 별 것 아닌 조언이었지만, 적어도 그 조언이 붉은 마석에 사로잡혀 눈앞이 어두워진 소민에게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하나의 등불이 되었다.

  소민은 등불을 들고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교문을 나온 소민의 눈동자는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교복에 가려진 복부와 오른쪽 가슴에서 붉은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 소민은 알지 못했다. 그저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라 생각하며, 기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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