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머리야.”
휴대폰 알람 소리에 일어나던 민서희는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젯밤 마신 술로 인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목도 말랐다.
벌컥벌컥
호텔 냉장고 문을 연 그녀는 생수통을 집어 들고 아저씨처럼 생수통에 입을 대고 물을 삼켰다. 찬 물이 들어가자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안경식이 인터뷰 요청에 실패하고, 실망한 그녀가 술을 마구 들이켠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최진철 형사를 본 것도 같은데, 필름이 끊기는 바람에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어찌됐든 어제 저녁을 먹으며, 김신일 CP에게 통화를 한 결과는 명확하게 기억났다. 김신일 CP는 인터뷰를 따오기 전까지는 오지 말라고 했었다. 금번 ‘진실을 알고 싶다.’ 주제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그녀는 박민용 교수를 만나 수학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의문을 해결해야만 했다. 이번에 발표한 것은 여러 검증을 거치지 않은데다 물리학적인 요소가 많아 그에 대한 박민용 교수의 의견을 들어야만 했다.
“에휴.”
그녀는 일단 KCB 부산 지국으로 가 안경식과 함께 다시 한 번 인터뷰 건에 대해 논의하기로 하였다.
익숙한 걸그룹 노랫소리가 들렸다. 민서희 자신의 벨소리였다.
휴대폰 화면에는 최진철 형사의 이름이 떴다.
‘휴 어젯밤에 정말 본 게 맞구나. 아 창피해 이 놈의 술을 진짜 끊던지.’
그녀는 자신이 술주정을 부린 것 때문에 전화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예 민서희입니다.”
휴대폰을 타고 최진철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숙취가 가시지 않은 자신의 축 처진 목소리와는 정반대였다.
“하하하 어제는 잘 주무셨나요? 설마 기억을 못 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필름이 끊기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싫어 거짓말을 하였다.
“아뇨. 완전 생생하게 잘 기억납니다. 그렇게 남 놀리려고 바쁜 아침부터 전화질이신가요?”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더 이상 들춰내기 싫어 일부러 삐딱하게 대답하였다.
“그런 게 아닙니다. 어제 같이 있던 직원분이랑 얘기를 하다보니까, 이번에 세계 7대 난젠가 문제인가 하는 걸 푼 교수를 인터뷰하러 오셨다고 들었거든요.”
이미 마음이 삐뚤어진 그녀는 어떠한 말도 곱게 들리지 않았다.
“아 그래서요? 왜요? 남이야 인터뷰를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톡 쏘는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도 최진철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능글맞게 얘기했다.
“흐흐흐 뭐 어느 정도 이런 반응 예상했습니다. 뭐 어쨌든 그 분이 부산대 박민용 교수님 아닌가요?”
“예 맞아요. 아니 그런데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그렇게 남을 스토킹하면서 따라다녀야 해요? 나 좋아해요?”
갑작스런 그녀의 공격에 능글맞게 대답하던 최진철도 적잖이 당황하였다.
“어. 아..아니 저 저는 혹시 이번 사건이 박민용 교수님과 관련이 있어, 혹시 취재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전화했었죠. 서희씨는 제가 아침에 전화한 게 그렇게 싫으세요?”
숙취로 인해 속도 쓰리고 머리도 아픈 와중에도 불구하고, 최진철의 입에서 박민용 교수의 얘기가 나오자 눈이 번쩍 뜨이는 민서희였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박민용 교수님한테 무슨 사건이 발생했나요? 경찰이 개입할 만큼 큰 사건이에요?”
“예. 뭐 그런 비슷한 사건입니다. 박민용 교수의 일을 도와주던 박사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이 어제 밤에 자살을 했습니다. 아니지. 아직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니까요.”
민서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서 사건 현장은 보셨나요?”
“아니요. 저도 이제 막 현장으로 출동을 하려고 합니다. 어때요? 관심이 좀 생겼나요?”
“예. 예. 아 고마워요. 이번에 박민용 교수님 인터뷰도 못해서, 정말 사소한 것 하나라도 뭔가 가져가야 했거든요. 장소가 어디에요? 알려주시면 오늘 밤에 제가 회 쏠게요.”
민서희가 갑자기 최진철에게 콧소리를 넣으며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최진철은 그런 그녀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술을 마신다는 말을 듣자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제 그렇게 술을 마시고선 또 무슨 술입니까? 장소는 제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한 번 확인해보세요.”
“예 고마워요. 어우 정말 진철씨밖에 없다니까요. 사랑해요. 호호호.”
뚜륵
그녀는 자기가 할 말만 하고, 빨리 씻고 나갈 준비를 위해 휴대폰을 끊었다.
차 안에서 민서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최진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흐 아니 그렇게 좋으..”
뚜륵
민서희가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은 것이었다.
“아 진짜, 이 여자를 누가 데려갈지 정말 노벨 평화상 하나 줘야겠다.”
최진철은 푸념을 하며 차에서 내렸다.
민서희는 전화를 끊고 마음이 급해졌다.
“어어. 바지, 옷 그래 빨리 빨리 입자.”
그녀는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바지와 윗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봤다.
‘오 마이 갓.’
그녀는 아직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머리에는 어젯밤 그녀가 토한 흔적이 묻어있었다.
“욱 우욱.”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의 토사물을 보자 다시금 구토가 올라왔다.
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정신없이 화장실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