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다. 발미는 그중에 숲길을 통과하기로 했다. 고된 과정을 거쳐 정식으로 의사가 된 그는 훌륭한 제안을 뿌리치고 서둘러 고향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숲길은 여행자의 몸을 저지하는 가지와 뿌리와 잎이 밀집해 있지만, 발미로서는 가장 익숙하고 그립던 길이다. 도중에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화적떼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좀 더 평탄한 과정을 지났을 텐데. 그는 오른손으로 나무 상자의 손잡이를 꼭 쥐었다.
오랜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탓인지 숨이 금세 거칠어지긴 해도 어릴 때부터 형과 함께 거의 모든 반경을 휘젓고 다닌 장소였던 터라 두렵지 않았다. 떨어진 지 오래 안 되어 아직 생기를 머금은 나뭇잎과 가지들, 신발을 파고들 만큼 크고 모난 돌멩이, 단단하고 무른 흙 속에서 튀어나온 나무뿌리까지 오래전 내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해가 다 지기 전에 숲을 통과해야 했다. 등에 멘 가방에 램프가 있긴 하지만 기름이 충분할지는.
세 번째인가 네 번째로 돌부리에 엄지발가락을 찧었을 때 발미는 제자리에 멈추었다. 다른 잎보다 두드러지게 마른 낙엽이 밟히며 바스락거렸다. 발가락이 아픈지도 모르고 예비 의사는 손톱같이 생긴 검은 구멍을 응시했다. 수상한 낌새가 전해졌다. 구멍은 나무 덩굴로 뒤얽힌 바위 아래에 깊숙이 패어 들어간 작은 굴이었다. 그가 가보니 그 안에 한 여자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아이의 한쪽 팔에 상처가 눈에 띄게 벌어졌다. 그는 희미하게나마 소녀가 내뱉는 숨결을 들었다. 바로 옆에 검붉은 새 한 마리가 아이의 흙투성이 금발을 부리로 쪼아댔다. 발미는 옛날 저 동물 때문에 자기 마을 찻잎 농사를 크게 망쳤다고 들었다.
“미안하지만 나가줘야겠다, 넌.”
그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에뮤의 몸통을 잡아 올리려다 손가락을 물렸다. 육식동물의 송곳니가 아닌가 싶을 만치 매서운 부리였다. 재빨리 굴 밖으로 짐승을 내던진 덕에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피가 몇 방울 떨어지다 말았다. 발미는 굴 입구에다가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램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어느덧 널리 어두워졌다.
램프 속 작은 불빛이 일렁였다. 한쪽에 내려놓은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에는 의료용 가위, 핀셋, 메스 등이 알맞은 위치에 놓여있다. 대장장이 형이 만들어준 도구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어지간하면 녹슬거나 닳지 않았다. 가위와 메스에는 그의 이름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의사가 되고 싶던 형과 대장장이의 운명에 적합한 동생. 어머니는 살며 단 한 번 형제의 인생에 깊이 간섭해 직업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학교에서 발미의 기구를 촌스럽다고 놀리는 치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수도 출신의 이름난 계급이나 규모 있는 무리의 세력가 자제였다. 그들은 발미처럼 먼 타지에서 온 평이한 사람들을 은밀하게 혹은 대놓고 조롱했다. 발미는 그들에 당당히 맞섰고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는 아무도 발미를, 겉으로는, 자극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치켜세웠다.
관리인들이 평생 주치의로 모시려고 점찍은 우등생.
발미는 먼저 상자에서 가위를 꺼내 여자아이의 다친 팔을 덮은 옷을 적당히 잘라냈다. 상처 부위에 소독약을 바른 뒤 봉합사를 바늘에 연결했다. 바늘 집게와 핀셋을 집어 들고 상처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잘 돼가고 있단다. 내 얘기 들리니? 잘 돼가고 있어. 난 발미라 불리고 얼마 전 의사가 되었단다. 소개가 좀 늦었지.”
평소에도 그는 환자가 원한다면 수다를 멈추지 않는 초보 의사이다. 하지만 깊은 밤 피 흘린 채 기절한 소녀를 위해 집도하려니, 누구보다 발미 자신을 안심시키고자 말을 끊지 않았다.
“지금 고향에 가던 길이야. 하지만 당분간 네 옆을 지킬 거란다. 마음이 놓이려나. 가서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조금 늦어도 이해해주겠지. 그래, 네게도 좋은 소식이겠구나. 얘야, 난 수도에서 몇 년 있었단다. 거기선 나로선 상상도 못 할 시도를 하고 있지. 우리가 더 고난 겪지 않아도 될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 그중 하나는 성공에 가깝단다. 그게 뭔지 어서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아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숲으로 도망쳤고, 피가 흘러 정신이 아득해질 때 작은 굴을 발견해 숨은 기억이 났다. 지금은 처음 보는 사람이 웃으면서 떠드는 모습이 띄었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자 그의 말이 빨라졌다.
“일어났구나. 마침 상처는 다 꿰맸단다.”
아이 어비는 아까보다 희미해진 램프 옆 나무 상자에 가장 반짝이고 날 선 물건을 발견했다. 숲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라서일까, 조그만 소녀가 홀로 상처를 견디며 굴에 숨어있는 걸 보니 연민이 생겨서일까. 발미는 알 권한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지 않았던 얘기를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수년간 겪은 경험과 곧 다가올 조금은 더 나은 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의 속마음에는 이런 격려가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잘 버텨준 너에게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어. 우리는, 우리는 이제 앞으로 사막이 더 퍼지지 않게 막을 수 있어. 그들이 함부로 알려주지 않는데, 나는 알아냈단다. 쉽지 않았지. 그래도 알아냈어. 그들과 수준을 맞추려 노력했거든. 그러니 얘야, 부디…….”
하지만 소녀에게는 다소 일방적인 친절로 전해졌을까. 두려움을 겨우 떨쳐낸 아이가 나름에는 용기 내어 소리치는 바람에 의사는 속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귀를 막았다. 소녀가 몸을 움직였고 램프가 뒤집혔다. 불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