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하지 못한 사건으로 인해 큰 혼란이 있었지만 상황은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여전히 외부를 돌아다니는 좀비들의 위험은 계속 되고 있었지만 군인들의 경계는 더욱 삼엄해졌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지금까지와 달리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생활하게 되었다.
“대장님.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겁니까?”
사건이 있은 후 일주일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성의 복귀는 정식으로 허가되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즉시 결정되었을 일이지만 세상이 혼란스러워 VIP와 연락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VIP는 현재 어디 계시지?”
“1번 대피소에 가족 분들과 계십니다.”
“그곳의 안전 책임은?”
“경호대에서 전담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그래도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 비축되었던 식량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2번 대피소로 옮길 계획을 짜는 중이라고 합니다.”
“흐음…….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지금과 비슷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대통령 즉 VIP의 안전 확보다.
VIP와 함께 그의 가족들은 안전을 책임지는 이들과 함께 대피소로 숨게 되는데 그것을 위해 마련 된 대피소는 국내에 총 다섯 개가 존재한다.
각 대피소마다 약 30명의 인원이 6개월 정도를 생활할 수 있는 각종 물품들이 비축되어 있다.
“저 그리고…….”
아까부터 자신을 찾아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불안해하는 철민의 모습을 애써 모른 척 했다.
“왜?”
“이거 먼저 전해 드리고 싶어서요.”
“응?”
철민은 책상 아래에 두었던 철제 가방을 들어 위로 올렸다.
“허……. 이게 아직도 있었냐?”
“당연하죠.”
현역시절 자신이 사용하던 개인장비들.
각 단원들의 체형에 맞춰 제작된 방어복과 그들이 선택한 무기류가 들어 있는 가방이다.
철제로 만들어졌기에 가방이라기보다는 상자에 가까운 것.
딸칵!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맑은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가지런하게 정리 되어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는 우성의 표정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대로 사용하실 거죠?”
“왜? 더 좋은 게 있냐?”
“원하신다면 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서라. 알잖아. 내게는 이게 최고야.”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타국에서 사용하는 대물용 저격소총 M82 배럿이라는 놈을 기본으로 특수 개발 된 K-25 저격소총.
배럿과 마찬가지로 12.7미리의 무시무시한 탄약을 사용하지만 K-25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그건 바로 총열과 개머리판을 분리한 후 5.56미리 탄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지금까지 총기류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시한 이 기능은 오로지 우성의 생각으로 인해 탄생된 것이다.
“그런데 전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게 있습니다.”
오랜만에 자신의 장비를 마주하고 감회에 빠져 있던 우성이 고개를 돌렸다.
“뭐가?”
“대체 왜 저격 소총을 자동소총으로 사용하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그게 뭐가 어때서?”
“총열과 개머리판을 분리하면 명중률이 바닥입니다.”
그건 철민의 말처럼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우성은 질문을 한 철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동소총이 뭐라고 생각하냐?”
“그거야…….”
방아쇠를 당기면 탄알이 연속적으로 자동 장전되며 발사가 가능한 것이 자동소총이다.
“탄창에 있는 탄약을 자동으로 장전해서 쏘는 게 자동소총이야.”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자동소총은 어떨 때 사용 하냐?”
“싸울 때?”
“죽을래?”
“장난입니다. 적을 무찌를 때 사용하죠.”
“맞아. 하지만 그게 전부지.”
“예?”
철민은 우성의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을 무찌를 때 사용하는 총기라면 당연히 명중률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총열과 개머리판이 제거 된 K-25는 명중률이 50%를 넘지 못한다.
“그냥 쏘다보면 맞겠지.”
“그게 뭡니까?”
“하나씩 죽이려면 저격하면 되는 거고 긴박한 상황에서 싸우려면 적이 나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거야.”
아주 단순하고 멍청한 생각에서 만들어진 우성을 위한 K-25 저격소총.
쓸데없이 탄약을 무의미하게 허비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형편없는 결과물이었음에도 결과는 전혀 달랐다.
“우리가 일반 군대는 아니잖아.”
“그거야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무기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넌 임무를 혼자 수행 하냐?”
“아니죠.”
“그래.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녀석들과 함께 하니 내가 죽지 않고 버티면 그만이야.”
“하아. 무책임하십니다.”
“그런 놈 밑에서 생활했고 지금은 복귀를 원하고 있지 않냐?”
“그거랑 같습니까?”
“싫으면 새로 만들어지는 내 팀에 들어오지 마.”
“미쳤습니까? 그 좋은 자리를 왜 포기합니까?”
몇 번이나 무명단원들이 우성의 저격소총을 사용하고자 노력했었던 적이 있었다.
팀에 있는 저격수들조차 탐을 낼 정도로 뛰어난 저격소총이다.
하지만 그 무게가 상당했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임무의 특성상 결국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놈이 있으니까 든든한데?”
“대장님이나 좋고 든든한 놈이겠죠.”
“크크크. 그러냐?”
모든 장비를 착용한 우성의 모습은 매우 멋있었다.
기본 복장이야 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등에 빗겨 멘 K-25 저격소총은 그 자체로도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는 중이다.
“현재 네 팀원들 중에서 데려 올 녀석들은 있냐?”
“없습니다.”
“뭐야? 팀원들에게 애착이 없어?”
“왜 없겠습니까? 다만 대장님과 함께 할 녀석들이 없다는 거죠.”
“왜?”
“대장님을 따라갈 놈들이 없어요.”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돼?”
“그러지 마시죠. 나름 유능한 놈들입니다.”
“말을 말자.”
친구 광수의 죽음으로 다시 현역 복귀를 결정한 우성.
복귀 의사를 전한 후 열흘이 지났을 때 결국 그의 복귀가 사실화 되었다.
“다른 녀석들은 곧 도착하게 될 거다.”
“좋네요. 거절한 녀석들은 없었습니까?”
“거절? 그럴 놈이 있었겠냐?”
“한심한 놈들이네요.”
“그 중 가장 한심한 게 너라는 건 알지?”
“끄응……. 알겠습니다.”
“그리고 네가 요구했던 독립작전권. 인정하기로 했다.”
“쉽지 않았을 텐데 감사합니다.”
“대신 내 통제는 받아야 한다.”
“그거야 당연하죠.”
이것으로 최소한의 준비는 끝이 났다.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지만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좀비와 싸워할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럼 어디부터 시작할 생각이냐?”
“신약개발연구소가 있던 곳부터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