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을 수술하고 나서도 학교에서의 악몽은 계속되었다.
이제는 더는 놀림거리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거기에 대한 기대가 컸던 걸까, 내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마치 거울이 와장창 깨지듯 내 마음속에서는 그 깨진 유리가 스크래치를 내듯이 계속 아픈 곳을 쿡쿡 찔렀다.
이런.. 3학년이 되고 나서 최석훈이랑 같은 반이 됐다.
왜 하필이면 최석훈일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졌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몸을 쭈그릴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냥 내 몸이 그랬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작아졌고 그런 나를 원망하면서도 계속 웅크리고 쭈글거리며 지냈다.
자고로 최석훈은 내가 1학년 때 나에게 ‘고릴라’라고 놀렸던 남자애다. 그런 애가 나랑 같은 반이 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3학년의 생활이 힘들겠거니 했는데, 역시 내 예상이 딱 들어맞았다다. 3학년 때 역시 나의 담임은 여자 선생님이셨다.
남자 여자 모두 급식을 먼저 먹고 싶어 해 번호순으로 줄을 서서 남자, 여자, 남자, 여자 순으로 돌아가면서 급식을 먹었다.
부산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번호를 가나다순이 아니라 생년월일 순으로 번호를 매겼다. 그렇기에 12월생인 나는 항상 끝 번호 52, 53이었고 반에 애들이 많으면 54번까지 항상 내가 마지막이었다. 재수 없게도 최석훈은 생년월일이 빨라서 제일 앞번호였다.
이건 또 무슨 운명일까..
남자가 먼저 밥을 먹게 되면 내가 마지막으로 줄을 서게 되고
여자가 먼저 먹게 되면 내 뒤에는 항상 최석훈과 그 외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여자가 먼저 먹는 날이 그렇게도 싫고 끔찍했다.
여자가 먼저 먹는 날이면 항상 내 뒤에는 남자애들이 있게 된다. 하필이면 최석훈이 바로 내 뒤라 너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나...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내 뒤에 남자애들이 서는 날에는 항상 괴로웠다.
남자애들끼리 장난치면서 나를 계속 치고 밀면서 은근히 때리는 것처럼 장난쳤기 때문에 너무 싫었다.
자기들끼리 장난치다가도 나한테 조금씩 부딪히거나 옷깃이라도 스치기만 하면 질색팔색을 하면서 으~ 하며 더럽다고 일부러 내 쪽으로 밀었다. 계속 장난을 치면서도 내가 식판과 수저를 집을 때면 그 장난을 멈췄다. 왜 멈추겠거니 했더니...
“야야야, 쟤 이제 식판 잡는다. 쟤 손 더러우니까 쟤가 뭐 집는지 봐야 깨끗한 식판 잡을 수 있다”
“야, 재 뭐 집었어?? 오른쪽에 있는 수저, 아니면 왼쪽?”
“다른 남자애들한테도 말해서 이거는 박소영이 잡은 거니까 더럽다고 다른 거 집으라고 전해라 빨리”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면 내가 말도 하지 않는다고 못 알아듣나 싶었는지, 너무 기분도 나쁘고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라 여자가 먼저 먹는 때일 때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나의 왼팔이 원망스럽기도 한 나였다.
어릴 때부터 숫기도 없고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터라 학교에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도 제시간에 들어오지 못할까 봐 소변도 꾹 참으며 화장실도 안 갔던 나라, 항상 조용히 지냈다.
그래서 최석훈과 그 외 남자애들이 날 무시했는지도.. 꼭 왼팔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싫었는지도..
그런데 이 사실만큼은 알아주길 바란다.
더러운 것도 아니고 옮기는 그런 전염병 같은 병도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래도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남자애들이 장난칠 때 재빨리 식판과 수저를 집어서 내가 뭐 집는지 모르게 했다. 그러면 애들이 내가 뭐 집었는지 모르니까 내가 집은 식판을 잡을 확률이 있겠지 하면서 좋아했는데...
더 속상하고 또 속상한 말을 들었다..
“아~.. 얘 집은 거 못 봤다.. 얘 손 더러워서 꼭 봐야 했는데.. 아.. 얘 뭐 집었지? 이건가?”
그러면서 나에게 묻는 말
“야야, 네 뭐 집었어? 오른쪽 수저 집었나? 왼쪽 수저 집었나?”
하~.. 이젠 아예 대놓고 묻네..
이번에도 일기장에 적어서 담임 선생님께 알리면 되지 않나 했지만, 이상하게 이번에는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유는 없다.
왜 용기가 안 났는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내가 학년이 점점 올라갈수록 세상 물정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점점 더 말도 없고 숫기는 덤으로 없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런 데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정말로 무서운 선생님이셨다. 내가, 최석훈이 나를 은근히 괴롭힌다고 말하더라도 보일만 한 증거 따윈 없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 언니도 소진이도 아무도 모르게 당하면서 4학년이 될 때까지 묵묵히 참아냈다.
그렇게 나는 3학년을 지냈고, 버텼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나는 더 작아졌고 그런 나를 원망하며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나 한없이 우울해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