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는 밤새 차를 달려 한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자신의 차안에서 근처에 주차된 차들을 살펴보던 사토는 7287 구형 코란도 승용차를 발견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사토는 코란도 차량 앞에서 주위를 한 번 살펴보더니 빠른 동작으로 자동차 아래에 뭔가를 부착하였다. 다시 자신의 차로 돌아온 사토는 가지고 있던 스마트기기의 전원을 켰다. 화면에는 코란도 차량의 위치가 나타났다. 잠시 후 사토는 반듯한 자세로 운전석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새벽 4시. 유진은 출근 준비를 한 채로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어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슈퍼비틀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이라는 것은 둘째 치고 일본을 방문하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으며, 동생을 납치해서 데리고 있는 그 곳이 어디인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었다. 슈퍼비틀 연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있다는 사실도 금시초문이고 이미 세계적으로 공표해 버린 것을 무슨 이유로 막으려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인생에서 온전히 들어내고 싶은 단 하루가 있다면 바로 어제 일본에서의 하루였을 것이다.
유진은 평소 출근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차에 올랐다. 자신이 뽑아야 할 유일한 선택지를 위해 시동을 걸었다. 연구소 건물 입구의 경비요원은 하루 종일 제자리에 서서 거수경례만 하는 게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TSA ROOM에서 같이 생활하는 연구원들을 따돌리고 슈퍼비틀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진은 동료들이 출근하기 전에 일을 처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소 정문을 8시에 오픈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출근한 후 다른 연구원이 출근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매사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라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 오던 자신이 온갖 상념에 붙들려 있는 상황이 너무나 낯설고 불안했다. 한편의 첩보영화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진은 어쩔 수 없이 시동을 걸었다.
빠르게 차를 운전하여 8시 10분쯤 연구소에 도착했으나 주차장에는 이미 김지민 연구원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유진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왜 휴가 중간에 돌아왔냐고 물어볼텐데!'
유진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뭔가를 생각해 낸 듯 차에서 내려 1층 개인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유진은 3층 자료보관실로 올라갔다. 슬라이딩 방식의 캐비넷을 급하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더니 디스크 하나를 꺼내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열람용 책상에 있는 책꽂이에 꽂아 두고 나왔다.
"어? 어쩐 일이세요? 휴가 중이시잖아요."
일찍 출근해 커피를 마시던 김지민 연구원은 예상했던 대로 질문을 해 왔다.
"아! 유진씨, 일찍 출근했네?"
유진은 흥분 된 표정을 하며 새벽 내내 생각해낸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 번쩍하는 거야. 그래서 동생 얼굴만 보고 바로 돌아왔지. 베이비들의 폐사율을 줄일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지민씨! 복제를 시작했던 13번째 슈퍼비틀 자료 좀 갖다 줄래?"
유진은 TSA ROOM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일부러 기기를 만져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오, 정말요? 역시! 대단해요 선배! 자료 바로 가져 올게요"
김지민 연구원은 들고 있던 커피를 놓아두고는 3층 자료보관실로 향했다. 김지민 연구원이 TSA ROOM을 나서기가 무섭게 유진은 TSA ROOM의 전원 관리함을 열어 CCTV전원을 차단한 후 B실로 들어갔다. 유진은 명령어를 입력하는 동안 고개를 들어 TSA ROOM 입구를 계속 살폈다. 마음이 급했던지 명령어를 두 번이나 잘못 입력하고 나서야 캡슐을 꺼냈다.
'어? 이상하네. 왜 13번째 자료만 없는 거지?'
김지민 연구원은 3층 자료보관실에서 13번째 슈퍼비틀 자료를 찾고 있었다. 일련 순서대로 자료가 있어야 되는데 13번째 슈퍼비틀 디스크만 보이지 않았다. 캐비넷의 모든 자료를 대략 훑어보고도 디스크를 찾지 못한 지민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료보관실을 나오려다 열람용 책상에 있는 13번째 슈퍼비틀의 디스크를 발견했다.
'뭐야 이거? 어휴! 경수씨 참!'
덜렁대는 성격의 나경수 연구원이 가끔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지민은 그를 의심했다. 그리고는 자료를 찾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생각에 급하게 자료보관실을 나섰다.
"선배! 가져왔어요. 경수씨가 또 아무데나 놔뒀었나봐요. 혼 좀 내야 돼. 정말!"
TSA ROOM에는 정적이 흘렀다. 지민을 기다리는 것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자신의 커피 잔뿐이었다.
유진은 흰색 가운 주머니에 숨겨온 캡슐을 자신의 검은색 손가방에 넣고는 얼른 옷을 갈아 입었다. 현관으로 꺾어지는 복도에서 위층의 인기척을 살피던 유진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현관 쪽으로 돌아섰다.
"어? 깜짝이야!"
"어, 어.. 미안! 출근하니?"
"선배! 무슨 급한 일 있어요? 참! 지금 일본에 있을 시간 아니에요?"
"어, 응. 중요한 일이 있어서 어제 못 갔어. 지금 가려고. 야, 비행기 시간 다 됐다. 나 다녀올게!"
유진은 시계를 보더니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예, 잘 다녀오세요!"
나경수 연구원은 달려 나가는 유진을 향해 말했다. 대꾸도 없이 달려나가는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경수는 유진이 저렇게 서두르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