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간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밀려나 마당으로 나온 김근수가 한숨을 내쉬며 뒷산으로 가는 통로인 탱자나무 울타리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엔 도둑고양이가 다니던, 강아지가 다니던, 김근수가 다니던 개구멍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에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뒤로 돌아서 대문으로 가는 도중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마구간을 쳐다봤다. 그때 마주친 눈빛들.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들 뿐이지 춥다며 들어오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문 밖으로 나간 김근수가 뚜벅뚜벅 걸어서 올라간 곳은 딸기밭에 있는 오두막이었다. 아래로는 빽빽하게 우뚝 쏟은 대나무 숲이었다. 어릴 때 이런 식으로 무시를 당하거나 야단을 맞으면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로 쉽게 빠져 나와 앉아 있던 도피처이며 안식처이며 때론 공부방이기도 했다. 물론 이수현도 같은 목적으로 늘 사용하던 아지트이기도 했다.
비닐 천막이 낡고 구멍도 몇 개 뻥뻥 뚫려 있었지만 김근수가 그나마 찬바람을 피해 청승을 떨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가는 대나무를 몇 개 꺾어 마루를 쓸고 앉아 대나무 사이로 보이는 마당을 멀뚱히 보면서 방금 전 아들의 행태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치고 있었다.
‘사내 자식이 돼가지고 어떻게 주관이 없어?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오냐! 오냐!’ 자라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게 아비 야단치는 수법이란 말이지. 할머니와 어쩌다가 이모가 돼버린 이수현의 치마폭에서 기껏 배운 것도 할아버지와 같단 말이지! 조부모의 철저한 냉대만 없었다면 세상에 구경도 못 하게 했을 이모의 단점 중 하나인 ‘입바른 소리!’ 어떻게 그것만 쏙 골라서 배웠을까?’
그때 이수현이 시댁에서 시집살이를 하는 딸을 보려고 염치불문하고 찾아온 친정 어머니처럼 정미경을 보고 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게 뭐냐? 개도 밥 먹을 땐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밥 먹는 사람을 쫓아내는 시아버지가 세상에 어디에 있어? 안되겠다. 너희들 분가해라. 정말 눈꼴 사나워서 못 보겠다.”
정미경도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래야겠어. 어~~ 정말!”
그때였다.
“정말 뭐?”
하필이면 시어머니가 노려보고 있었다.
“엄마야!”
정미경의 발이 이수현보다 더 날렵했다. 게다가 이수현의 바지를 김근수 딸이 붙잡아 매달리기까지 하며 눈물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모 나도 같이 가!”
정미경이 막내를 이수현이 김근수 딸을 껴안고 뛸 때 고함소리가 마당에 쩡쩡 울려 퍼졌다.
“너! 거기 안 서!”
두 사람의 발바닥에서 제법 요란하게 끽 소리가 났다. 김근수의 어머니가 정미경 앞으로 왔다.
“이래 줘!”
그때 이수현도 김근수의 딸도 서럽게 눈물만 흘리며 쫓겨나가면서 시어머니 귀에 들릴 정도로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손자만 빼앗아가. 야! 정말 무섭다. 무서워!”
그렇게 도망치던 정미경이 고개를 갸웃하며 멈춰 서 돌아서 물었다.
“어머님! 저! 정말 나갑니다.”
“야! 이놈이! 그래 나가라. 나가. 다 꼴 보기 싫다.”
손바닥까지 밖으로 휘두르면서 단호하게 내쫓던 시어머니가 한 발짝도 떼기 전에 바로 돌아섰다.
‘아차! 이 집안의 경제권!’
“아니다! 너는 들어와! 저 놈만 내쫓아!”
빙긋이 웃으며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정미경의 뒤 꼭지를 닭 쫓던 개마냥 넋이 나간 얼굴로 보던 이수현이 김근수 딸이 손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시선만 정미경을 향해 끌려가고 있었다.
“이모! 우리 어디로 가야 해? 이렇게 쫓겨 나는 거야?”
“글쎄! 나는 아니고 너는 맞는 것 같아! 일단은 나가서 생각해보자.”
“아빠는?”
멀뚱히 김근수의 딸을 내려다 보다가, 갑작스레 남편을 보내고 시댁과 이별을 할 때보다 더 서럽다는 생각이 울컥하면서 들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모! 왜 울어?”
김근수의 딸이 이수현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고 덩달아 울기 시작하더니 이수현의 손을 잡고 이수현보다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울지마!”
이수현이 김근수의 딸을 껴안으며, ‘아! 이 기분이 남편을 잃고 빈 손으로 시댁에서 쫓겨날 때 기분이구나!’ 훌쩍이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자신을 보고 또 한번 웃으며 마치 회귀할 친정도 없는 서글픈 처지가 된 것처럼, 어릴 때 김근수와 놀던 아지트로 올라가고 있었다.
정미경은 시어머니 앞으로 가다가 인상을 찡그려 마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주 잠시 주도권 싸움에 시어머니가 빙긋이 웃고 있었다. 주먹을 불끈 쥔 정미경이 다음 행선지로 달려갔다. 시어머니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마루로 가고 있었다.
그때 김근수가 눈물이 범벅이 돼 올라오고 있는 딸과 이수현을 보고 비꼬는 듯이 말했다.
“기어이 한 소리 들었구나. 나는 장모님 오신 줄 알았다.”
“내가 흥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도 들렸어?”
김근수가 대 숲 사이에 보이는 마구간 쪽으로 고개를 까닥했다. 소와 사람만 다니는 통로가 아닌 소리도 다니는 통로였다. 순간적으로 이수현의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면서 안도의 한숨도 함께 내쉬며 말했다.
“여기서 얘기하는 거 어머님이 전부 들었다는 말이잖아. 어머님 욕도 엄청 많이 했는데.”
그때 여전히 감시 대상인 이수현을 따라 정미경도 올라왔다.
“언니! 무슨 말이야? 여기서 하는 말이 집까지 들린다고?”
이수현이 입을 막은 채 정미경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응! 대숲 사이로 말이 날아 간데!”
깜짝 놀라던 정미경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 올라 김근수의 어깨를 새색시처럼 치면서 말했다.
“아이! 창피해. 어머님이 다 들었겠네.”
김근수가 빙긋이 웃으며 고자질하듯이 말했다.
“그것만 들었겠냐? 어머님이 돈 빼갔다고 난리를 칠 때마다 내가 불려갔다. 불만이 있어도 조금만 소리를 낮춰 말하라고 하시더라. 한번은 수현이 너희 어머님이 놀려 오셨는데 그날 우리 정여사님이 아주 생동감 있게 어머님 험담을 해서 망신스러워 죽는 줄 알았더라.”
정미경의 얼굴이 더 벌겋게 물들었고, 이수현도 김근수가 정미경의 남자가 되기 아주 오래 전에 여기를 신혼 방으로 여겼던 때가 더 올라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김근수가 한술 더 떴다.
“여기를 아지트로 생각하면 안돼. 우리 숨소리까지 전부 다 들릴 때도 있어.”
그때 이수현이 입술을 비틀어 올리면서 투덜댔다.
“약아빠진 할망구 같으니라고. 그렇게 잘 알면서 그랬단 말이지? 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정미경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날렸지만 뿔이 나 있는 이수현의 인상을 보고 의심을 삼키는 걸로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그때 이수현이 김근수를 노려보며 닦달을 했다.
“너는 언제까지 농사만 짓고 있을 거야? 등록금이 안 아까워?”
김근수가 피씩 웃으며 말했다.
“그게 내 돈이냐? 부모님 돈이지.”
김근수 딸이 꼭 갖고 싶었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다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김근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