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만의 집으로 돌아온 건지 모르겠다.
호텔 방이 더 익숙해지려고 할 즈음에 돌아온 내 집엔 식구가 한 명 더 늘어 있었다.
그게 할아버지가 아닌 건 유감스럽지만.
또 영주라고 해서 미치게 싫거나 아쉬운 마음이 치솟았던 건 아니다.
"어디 가세요?"
짐을 대충 풀고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다시 집을 나설 준비를 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는 다소 분주한 목소리로 '경찰서. 영주 나오라고 해라.' 하며 대답했다.
나는 물컵을 식탁에 내려두고 그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온 지 한 시간도 안 됐어요."
"늦기 전에 얼른 탈북민 신고해야지."
"내일요."
내일 해요,
아버지도 피곤하시잖아요-
그의 어깨를 어루듯 잡았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알았다-' 하고 도로 발걸음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영주가 있는 내 방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렵습니다.'
'...........'
'그곳엔 은호 형님이 없지 않습니까?'
새 땅을 밟자마자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그를 내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원 생활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
기왕 그렇게 될거면 그냥 하루라도.
하루라도 맘 편히 잠드는 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방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니 침대에 얌전히 앉아 있던 영주가 고개를 고꾸라뜨리며 졸고 있었다.
'그 방은 안돼.'
'그럼 영주는 어디서 지내요.'
'할아버지 오시기로 했던 방인데 그 아일 들일 순 없어.'
그래서 결국 임시방편으로 내 방으로 데려오긴 했는데 편히 앉아 있으라는 말에도 하나하나가 다 조심스러웠던 영주는 결국 긴장이 풀려 잠과의 사투에서 백기를 들었나보다.
"......."
영주야,
그의 어깨를 조심스레 잡아 침대에 뉘었다.
잔뜩 졸린 눈을 하고 '은호 형님-' 하고 나를 올려다보는 그 얼굴에 처음으로 마음이 아려왔다.
아직 모든 걸 겪기엔 너는 너무 어렸다.
고작 십 대의 끝자락에 있는 네가 감당하기에는 말이다.
"편히 자."
내 한 마디에 너는 마법에 빠진 듯 스르륵 잠이 들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 색색- 숨소리가 흘러나온다.
너무 곤히 잠든 탓에 머리에 베개를 대어줄 생각도 못 하고 이불을 그저 가슴팍까지 끌어다주었다.
그리고 눈 두덩이로 쏟아진 앞머리칼을 옆으로 슬쩍 넘겨주곤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
함경북도 온성시
손영주, 18세.
2014년 7월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부터 이탈.
탈북민 확인.
까다로운 국정원 조사 절차를 밟은 뒤 그는 하나원으로 보내졌다.
영주의 짐은 우리 집에 풀을 새도 없이 그대로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그를 배웅하러 가는 길,
아버지는 나를 내려두고 먼저 가셨다.
가타부타 인사도 없이.
제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씩씩한 표정으로 웃어보이는 영주를 바라보다가 문득 풀린 운동화 신발 끈이 눈에 들어왔다.
참 깨끗이도 신었다.
중국에서 사고 그 날로부터 얼마나 지났는데 얼룩 하나 묻지 않은 그 신발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칠칠맞게."
허리를 굽히고 그의 발 근처로 손을 뻗었더니 놀라며 발을 뒤로 뺐다.
"손 더러워지십니다."
"가만 있어 봐."
다시금 손을 뻗어 그의 발목을 가볍게 그러쥐고는 앞으로 당겼다.
얼마나 말랐으면 내 손아귀에 그의 발목이 다 들어온다.
"밟고 넘어지지 말고."
신발 끈을 가지런히 묶어주는 동안 발 한 번 움적거리지 않는 그를 종국엔 올려다보았다.
햇살을 등지고 있는 그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운다.
일어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데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영주야."
"........."
"잘 지내."
내내 씩씩하던 그의 얼굴이 곧 울상으로 변하더니 이내 코끝을 빨갛게 물들인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왜."
"꼭 다신 못 만나는 것 같으니까요."
입술을 꾹 깨무는 영주에 굽혔던 다리를 일으켜 그와 제대로 마주 섰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의 머리통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다.
한 번은 그래 보고 싶었는데,
바람에 깃털처럼 흩날리는 너의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한 번은 그 뒤통수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잘 다녀 와."
"기다려 주실 거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더니 볼에 남긴 눈물 자국을 황급히 닦아내고는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잘 지내다 올 거여요-
천천히 그의 머리에 올려둔 손을 아래로 내렸다.
허공에 떨어진 내 손이 너에게 안녕을 고한다.
잘 다녀 와,
별 탈 없이.
우리 최대한 지금 상황에서 변한 거 없이 만나자.
전하지 못한 진심을 속으로 읊으며 녀석에게 잠시만 안녕을 고했다.
-
교환학생 처리로 학고는 면할 수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증발해버리듯 학교에서 사라진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밥 정도 같이 먹던 영준이는 저번 달에 자퇴를 했다고 했다.
몇 차례 교수와 면담을 했다.
구멍 난 강의를 메우기 위해 계절 학기를 신청했고 따분한 미디어의 이해를 귀로 흘려버리기를 몇 시간째.
저 교수의 목소리가 내 귀로 목적없이 들어와 낭비되고 있다.
'톡- 톡- 톡-'
볼펜 끝으로 책상을 톡톡 치는 일은 아무 생각도 없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반복된 행동에 생각은 내 머릴 비집고 들어왔다.
멍하니 내가 생각해낸 건,
'은호 형님은 펜을 좋아하지요?'
'왜.'
저는 펜보다는 연필을 선호합니다-
연필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좋습니다.
연필이 서걱거린다 라는 표현은 참 오랜만에 들어본 것 같았다.
볼펜 끝이 부드럽게 종이 위를 굴리는 느낌을 좋아하는 나로선 영주가 말하는 것이 생소했다.
연필.
그러고 보니 연필은 쓴 적이 정말.
"시간 오바됐네-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할게요."
드르륵-
의자를 밀고 일어나는 학생들과 같이 나도 따라 일어났다.
단지 그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가방을 챙겨 들었다는 것 정도.
그길로 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에서 연필 한 다스를 사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래 몇 달간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너무 감쪽같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 기분이 이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지금 녀석을 보러 가는 건,
지난 내 몇 달간에 너라는 사람이 있었단 흔적을 찾기 위해서.
가면 입구에서 널 불러달라고 해야 할까,
널 보려면 까다로운 면회 신청서라도 필요한 걸까 그런 생각들이 앞다투어 일어났다가 곧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근처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는 그 테만 봐도 손영주였다.
저벅저벅, 익숙하게 하나원 안으로 들어가 그 모래 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너는 어딘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뱅글뱅글 도는 여섯 살 난 꼬마아이를 보는듯하다.
하나원 울타리 밖에 있던 그 아이는 한동안 그 주위를 배회하는 가 싶더니 멀리 길이 난 쪽으로 가버렸다.
천천히 걸어 그의 앞으로 갔을 때
제 앞에 그림자가 지는 것을 느낀 영주가 고개를 돌렸고 나는 머뭇거림 없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은호 형님."
"손영주."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그가 이내 눈을 감고 천천히 입술에 호선을 그린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 작은 고백에 여기까지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어때."
"다 좋습니다."
밥을 크게 한 숟갈 떠먹던 영주가 이내 '아-' 하고 급하게 입에 남은 음식물을 목 뒤로 넘긴다.
저런, 물 좀 먹지.
얼굴이 발개졌음에도 말을 꺼내기 급급했던 영주는 내가 내민 물컵을 가만히 받아들고 있었다.
기어이 물보다 말이 먼저였나보다.
"그래도 은호 형님보단 아닙니다."
"알아-"
너무 쉽게 수긍해버리는 내 농담에 눈을 끔뻑거리는 손영주가 이내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
쟤는 무슨, 농담도 못 해.
됐다며 손을 휘휘 젓고는 반찬으로 나온두부 조림을 집어 먹었다.
하나원 근처 맛있는 백반집이라고 녀석이 손수 데리고 온 곳은 허름하니 다 쓰러져가는 집이었다.
반신반의 했건만 진짜 맛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
"어떤 일로 여까지 오셨습니까?"
머뭇거리며 묻는 그에 나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음- 하며 시간을 끌었다.
글쎄, 그냥 강의가 너무 지루했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두 달간 내가 너와 알고 지냈다는 사실을 몸소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하러."
"뭘 말입니까?"
"너 잘 있나."
또 동그래질 그 눈에 피식거리기부터 하려고 했는데,
의외로 잔잔히 웃으며 '어째 그런 거짓말을 하십니까-' 하고 받아친다.
발끈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형님은 학문을 배우느라 바쁘시지 않습니까."
"학문이라고 하니까 되게 거창해 보이네."
영주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뒤엣말이었나보다.
그러니 형님이 저를 직접 보러 올 일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라는 그의 대답 말이다.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그 말에 나는 반찬을 뒤적거리는 영주의 젓가락을 응시했다.
"많이 안 바빠."
"......."
"그러니까 종종 올게. 보러."
햇살이 제법 따가운 초여름날에도 네 얼굴은 탄 흔적조차 없이 하얬다.
여전히 가는 관절 마디마디에 조심스레 부러지지만 말아라- 바람을 불어 넣었다.
이 마음의 출처가 측은지심이라 할지라도,
설령 그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네가 잘 버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