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주를 공격한 아마미크의 무리가 모조리 쓰러지던 날의 일이다.
땅바닥에 엎드린 사내가 희미하게 정신을 차렸다. 눈 떠 보니 어두웠고 입 안은 모래로 가득했다. 침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혀가 건조했다. 무디던 감각이 통증으로 굳어져 전신에 전해졌다. 그는 토하듯 숨을 뱉고 두 손을 짚어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옆에 떨어진 활을 집어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왼쪽 무릎이 유난히 고통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지반이 단단한 사막에 쓰러진 시신들이 눈에 띄었다. 어떤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 한 때 같은 무리였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져버렸다. 라이너만 살아남았다. 그는 느리게 몸을 움직여 한 때 대장이라 불리던 사람을 찾아다녔다.
시간이 흘러 익숙한 풍채가 시야에 잡혔다. 활을 지팡이 삼은 라이너는 아마미크의 머리맡에 서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처음 그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던 장면을 떠올렸다.
*
“고개 들게. 앞으로 저 치들이 얼씬도 못 할 게야.”
아마미크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사내에게 건넸다.
“라이너라고 했던가? 그렇게 유쾌하고 유려한 농담은 처음 접했네.”
라이너는 외투를 받아 찢어진 입술에 갖다 대었다. 옆에는 그의 낡은 기타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지금은 재담꾼이지만 한 때 시인이었어. 웃기든 감동시키든 모두가 나를 싫어했지만. 웃고 우는 청중도 물론 적잖으나 괜히 화내는 꼴도 많이 봤거든. 단상에서 떠들기만 하는 노동자는 화풀이 대상이라나. 참, 그러고 보면 끝까지 내 농담과 시를 제대로 들어준 놈 하나 없구먼.”
“아깝군. 자네만 괜찮다면 내 귀에 무슨 소릴 지껄여도 좋다네. 내 다 들어주지.”
“평생 걸려도 안 끝날 텐데.”
“세상 모든 소리를 귀에 담을 운명이라 겁나지 않는군.”
라이너가 실소하며 아마미크의 손을 잡았다.
“거, 무슨 신의 귀라도 지니셨나?”
“날 부르는 이름이 그리하니 어쩔 수 없잖은가. 소개하지. 난 아마미크라 불리도록 태어났네. 우리 무리의 말로 ‘다 들어주는 이’란 뜻이기도 하지.”
*
라이너는 멀리서 무장한 군인들이 오는 소리를 듣고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이미 기타보다 익숙한 굳센 활에 몸을 맡겨 자리를 벗어났다. 입 안에 남은 모래를 뱉어가며 이곳과 무관한 자리로 옮기려 했다.
“쓸 만한 농담 하나 건졌으니 됐지 뭐.”
그는 뒤에서 오는 이들이 자기를 못 보기를, 본다 해도 사막을 떠도는 영혼의 형태로서 그들 눈에 비치기를 바랐다.
라이너가 떠나고 이윽고, 죽은 아마미크의 두 귓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바위틈에서 새는 맑은 물처럼 내려 조금씩 모래를 적셨다. 물이 점차 세고 빠르게 낙하했는데, 보기에는 가느다란 물줄기이나 주위에 퍼지는 영향은 폭포와 다르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관 아흔 짝을 채울 만한 너비가 축축하게 젖었다. 반면 아마미크의 건장한 육신은 점차 말라가더니 푸른 모래가 되어 바람에 날렸다. 시신을 확인하러 온 병사들은 뿌연 푸른 모래가 스쳐 가는 걸 대수롭지 않게 넘겨보았다.
훗날 사람들은 사막의 한 작은 자리가 늘 검은 습기로 가득하여 상서롭다 여겼다. 이야기꾼들은 너도나도 작은 사막의 일부가 새까만 물기를 머금은 기원을 지어냈다. 그건 그 나름의 이야기로 남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