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세상의 이치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오래된 것이 사라지고 나면 새로운 것이 다시 찾아오는 것도 세상의 이치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형체 없는 땅을 딛고 서 있는 기분은 여전하지만 그것이 구름 위처럼 느껴지거나 깊은 물의 수면 위처럼 느껴지거나 하는 것은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랐으니까. 난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한해를 또 맞았다. 아빠를 못 본지 만 일 년을 넘겼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난 나에게 위로가 될 만한, 혹은 뭔가 기댈만한 것을 찾는데 급급했다. 그래서였을 거라 생각했다. 계속 발을 딛어 딱딱한 뭔가가 닿을 때까지 움직여보려고 했다. 새해라는, 만 일 년이라는 의미는 내게 그래서 달랐다.
‘닿지 않으면 어때? 딱딱한 땅이 아니면. 내 발 아래, 깊은 물이 아닌 허공이 아닌 구름 위 일수도 있는데.’
난 스스로의 변화를 감지하고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려고 했다. 아빠가 계셨더라면 그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일상은 그야말로 일상이었다. 변화를 바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혹독한 겨울의 추위만이 날 괴롭혔다. 결로로 인해 얼어붙은 내 방의 작은 창문과 얄팍한 사방의 벽은 어디로든 그 괴롭힘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그 추위마저 친구로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 속의 방은 점점 커지고 아늑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일 빼기 일은 영이 매일 반복되는 내 일상이 그렇게 난 좋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남김없이 내 모든 것을 다 소모해버리고 언젠가는 아빠를 만날 것이다. 아빠가 남겨 놓은 그 어떤 것들도 다 가져갈 것이다. 적어도 이 차가운 세상 위에 나와 아빠의 흔적일랑은 찾아볼 수 없도록 내 모두를 다 써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