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넨 누군가?? 이 곳은 타지 사람은 물론 인근 마을사람들도 안 오는데.
할아버지는 낯선 이방인이 신기했는지 접근해 말을 걸어왔다.
네.. 저..... 그게..
딱히 변명거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설마 혹시 자네 상혁이 아닌가?? 나야 나!! 석환 삼촌!! 너의 별장과 같은 동네에 살았던. 기억 안 나나??
상혁은 갑자기 들이닥친 이 상황이 낯설고 어색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자신과 이곳에서 같이 놀아주던 인상 좋은 삼촌과 그의 가족들이 기억이 났다.
아..! 삼촌 아니 어르신
그냥 삼촌이라 부르게. 정말 오랜만이군.
네.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변명거리가 생각이 안 나 그럴싸한 답을 말하며 말을 이어갔다.
삼촌은 어쩐 일이세요?? 여기는 저주받은 동네라고 사람들이 발길이 끊겼다고 하던데요.
완전히 끊긴 건 아니지. 나 같은 노인네들은 추억 없이 못 살아. 그러니 이렇게 가끔가다 찾아오지. 나도 추억에 젖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이곳에 오지. 누군가에게는 저주라며 피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저 젊은 시절을 상기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장소니까.
그렇군요. 삼촌 23년 전 별장 화재 사고 기억하시죠??
그럼 기억하지. 덕분에 이 적적한 동네는 유령 동네로 변했으니까.
상혁은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어 석환 삼촌의 잠시 눈을 피했다.
삼촌도 그 사고를 잊을 수 없나 봐요??
너무나도 끔찍한 사고였지. 서울에서 놀러 온 신혼부부가 불에 타서 죽었으니..
사실.. 그 신혼부부는 저의 친구들이었어요. 신혼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둘에게 저의 별장을 빌려주면서 잠깐 별장이라도 가서 휴식 좀 취하고 오라고 했었죠.
음.. 그렇군.. 그래서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 이곳에 못 온 건가?
그 부분은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죄송합니다. 전 그만 가볼게요.
그래 상혁아. 힘이 들거나 가끔 생각나면 찾아와라~ 아! 이건 내 번호니까 필요할 때 연락하고.
네 삼촌.
상혁은 삼촌의 명함을 받으며 족쇄와 같은 장소에서 빠른 발길로 벗어났다.
예인은 소독을 하며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
깁스는 되셨고 다른 부위 상처들도 소독을 다 했어요. 환자분께서 찝찝하시겠지만 깁스 부위는 샤워를 못해요. 그 부분 주의해 주세요.
네. 저.. 혹시 남자친구 있어요?? 아.. 그게 그러니까.. 친해지고 싶어서....
죄송합니다. 개인 정보는 알려줄 수 없어요.
네.....
민망해하는 남성을 뒤로한 채 그 자리에서 나왔다. 가끔 이렇게 예인의 번호를 물어보는 젊은 남성분들이 간혹가다 있었다. 그러면 예인은 다 거절했다. 아직은 연애의 뜻도 없을뿐더러 간호사의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연애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방금 그 남자는 못생겼다.
간호사 선생님 힘들죠? 이거 하나 드세요.
새로운 편의점 사장님(주인)이 예인에게 건강 음료 하나 주면서 말을 걸어왔다.
아 정말로 고마워요~
병원 일이란 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항상 힘내시고 수고하세요. 늘 응원합니다~
가끔 이렇게 마주치면 좋은 말을 해주신다. 정말이지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요즘 들어 예인을 힘들게 하는 건 태움이 아닌 정체 모른 사람이 함부로 짓거린 “비밀” 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솔직히 예인은 부모가 누구인지 출생에 관해서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 사진과 진실이란 단어를 들으니 그 정체 모를 사람과 출생, 그리고 예인의 부모에 대해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예인의 머리를 조여왔다.
병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규가 예인을 보며 웃긴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야! 뭐야 그 표정은 푸하하하하
야 너 웃으니까 더 못생겨진다. 웃지 마라.
머야? 죽을래!!
이래야 김예인 답지.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그랬다.
이렇게 쌩쌩하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야.. 너.. 이씨..
예인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해 준 상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너야말로 멋있는 척하지 좀 마!! 토 나오잖아
솔직히 동료애에 감동했지? 알아~
그래 감동 쬐끔 먹었다.
한간호사!
네 가요!! 야 나 그만 가봐야겠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감동 좀 많이 먹고~~
그래 잘 가.
퇴근 후 예인은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혼자 산 지도 어느덧 시간이 흘러 간단한 요리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다시 그 번호로 전화를 하고 싶은 욕구가 몸속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참지 못한 예인은 핸드폰을 들어 그 번호로 전화를 했다. 신호음은 얼마 안가 끊겼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들릴 뿐 전화는 받질 않았다.
예인은 포기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휴대폰의 벨 소리가 들렸다. 그 번호였다.
여보세요.
김예인씨 되시죠?? 경찰입니다.
네? 경찰이요??
경찰이란 단어를 들은 예인은 놀라서 되물었다.
네. 혹시 김상혁 씨랑 어떤 관계입니까??
네?? 죄송한데 저는 김상혁 씨가 누군지 몰라요.
그래요? 이 핸드폰 주인이에요. 그리고 전화번호 단축키 1번이 김예인씨로 되어있습니다.
갑지기 예인은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어 지나간 과거의 일부분이 생각이 났다.
아! 얼마전에 치료해준 환자랑 이름이 같은데요
신체적 특징을 말할 테니 맞는지 확인해보세요. 50대 남성이면서 키는 170, 안경을 쓰지않은 남자에 왜소한 체형인데 맞나요?
헐.. 맞아요!!
말을 하면서 그 번호의 주인의 이름인 김상혁 씨란 걸 알게 된 예인은 다른 한편으로 내가 치료해 준 환자라는 사실에 소름을 돋았다. 드이어 “그 번호”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경찰이 저에게 전화를 한 거죠??
김상혁 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