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4일 일요일 날씨 우중충
현재 시각 새벽 4시. 정신이 없다. 피곤하고 졸리고 머리가 핑핑 돈다. 하지만 일기는 써야 된다. 자고 일어나면 이걸 기억하지 못 할 테니까.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하루 동안 또 행복한 집순이의 생활을 지내다가 9시에 너한테 연락이 왔었지. 술 마시자고. 뭐지?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지만은 일단은 알겠다고 했어. 요 며칠간 널 못 봤었으니까.
그래서 츄리닝 차림에서 재빠르게 꾸민 듯 안 꾸민 듯 평범한 데일리 룩으로 갈아입고 화장까지 다 했어 그 야밤에 널 만나려고.
어디서 술 마실 거냐고 톡으로 물어보니까 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자기방으로 오라고 했지. 우린 정말 친하게 지냈었지만 서로의 집은 가본 적이 없었잖아? 애초에 집이랄 것도 없었고, 우리 둘 다 고아원이랑 기숙사에서만 살았으니까 말이야.
혼자 막 이상한 상상이란 상상은 다 했던 거 알아? 너무 떨렸다고 집 들어가기 전에 몇 번이고 확인했는지 몰라 화장은 잘 됐는지 스타일링은 잘 됐는지 속옷 색깔은 맞춰서 입었는지 진짜 엄~청 긴장했는데 넌 모를거야.
떨리는 손가락으로 겨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는데 집이 정말 개판이더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빨래들이랑 설거지 안한 그릇들이 쌓여 있고 창문도 안 열고 담배만 피워댔는지 종이컵에 수북한 담배꽁초하고 방안 가득 담배 냄새가 났어. 이런 말하면 정말 미안한데 조금 많이 더러웠어...
대충 집정리만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렸고 너는 계속 담배만 피면서 핸드폰만 하더라고 대충 방정리가 되고 나서 드디어 너랑 단 둘이서 술을 마시게 됐어.
시시콜콜한 대학 생활 얘기를 안주 삼아 소주를 한 두잔 마시다 보니까 어느새 넌 취했더라고 그리고 그 때 너가 그 여자 얘기를 했어. 상희라는 여자. 고백을 했는데 연락이 없다. 어떡하냐. 진짜 너무 좋은데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진짜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너무 슬프고 힘들다. 라는 푸념을 계속 뱉어댔지.
처음에 진짜 너무 화가 났어.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싶었고, 지금 당장이라도 상희라는 그 여자를 찾아가서 머리채라도 쥐어뜯고 싶은 느낌이었어. 근데 너랑 얘기하면서 점점 애잔해지더라고. 분명히 내 앞에 있는 건 너였는데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어. 결국 마음에도 있지도 않은 연애상담을 해줬지. 그 때 느낌이 정말 이상하더라. 평소에 내가 너한테 느꼈던 걸 얘기하는 느낌이었어. 내심 알아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눈치가 없는 건지 너무 취했던 건지 전혀 눈치를 못 채더라고 결국에 연애 상담을 하는 도중에 넌 술에 취해서 쓰러졌지. 그대로 쓰러진 널 멍하니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너한테 뽀뽀를 해버렸어.
넌 모르겠지? 뽀뽀를 당했단 사실도 내가 처음으로 한 뽀뽀였다는 것도... 술에 취한 너를 침대에 바로 눕히고 너 옆에서 자고 싶었지만 오늘의 너는 너무 아니었어. 내일 만약 만나면 상희씨를 만나면 한 마디 해야 될 것 같아.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사실 너희 집에서 나올 때 너가 입었던 팬티 한 장만 챙겨왔어! 내가 깨끗이 치워줬잖아? 이 정도는 상으로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