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신전에서 찾을 수가 없다고?”
세르게이 왕은 이마를 찌푸렸다. 시종장은 깊숙이 허리를 조아렸다. 옆에 서 있던 공작이 킁 하고 코웃음을 쳤다.
“지하 감옥밖에 더 있나.”
“…귀빈으로 대우하라고 했는데, 말이지.”
그 고지식한 교황이 왕명을 거역했다면 분명히 그걸 신의 뜻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왕은 찻잔에 직접 차를 따랐다. 붉은 물이 하얀 잔에 담기는 광경은 여러 번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시종장이 당황해서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거둬들였다. 왕은 관대하게 모르는 체헤 주었다.
“지하 감옥부터 살피라고 전해.”
“예, 폐하.”
시종장이 눈짓했다. 갑자기 사람이 하나 나타나서 옆에 서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가 사라졌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왕에게는 그림자가 일곱 명 딸려 있다. 그 중의 한 명이 임무를 받아 떠났을 뿐이다.
오늘 차에 곁들인 과일은 농익어 맛이 달았다. 지나치게 달다 싶을 정도다. 파란 과육을 한 입 베어물으며 왕이 물었다.
“내 부인은 이제, 책을 읽는다고?”
“제가 잘 가르친 덕이지요.”
공작이 딸 바보처럼 웃었다. 왕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 하고 두드렸다. 시종장이 지도를 펼쳐 보였다. 제국의 수도부터 왕국의 수도까지 넓은 산맥이 펼쳐져 길을 막고 있다. 산맥 끝자락, 용의 보금자리라 불리는 도시를 가리키며 왕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제국의 사신이 곧 온다.”
엄밀히 말하면 ‘곧’은 아니다. 제국의 수도에서 출발하여 산맥을 따라 건너오면 대략 일 년. 지금쯤 제국의 사신이 출발할 때가 되었다. 이방인의 출현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국의 국민들과 귀족들에게는 알려야만 한다. 공작은 혀를 찼다.
“절차를 서둘러야겠군요….”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단, 이적으로 규정하여 화형되기 전에 왕족이 되어야지.”
세르게이 왕이 손가락을 두 개, 접어 보였다.
이 세계에 온 신의 사도는 올가 왕비만이 아니었다. 그 밖에도 두 명, 이방인이 온 기록이 있다. 올가 왕비 이후의 이방인은 왕국이 아닌 제국에 나타났으며 마법이 통하지 않는 체질에 특이하게 검사로 명성을 날렸다. 제국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던 그는 결국 사냥당해 쓸쓸히 죽었다고 하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 후 다른 이방인이 나타났을 때, 제국 황제는 전의 검사를 예시로 들며 즉시 그를 처형했다. 즉 신의 사도 또한 ‘죽을 수 있다.’
순간 왕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탕 하고 소리가 나며 지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왕이 손톱을 깨물었다. 오른발로 바닥을 두드리다가 말을 이었다.
“교황의 배다른 형이 제국에 있었지.”
“…폐하.”
막시밀리안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교황이 아직 어리고 직위를 받기 전부터 보아왔던 공작은 나름 사람보는 눈에 대해서는 자신하고 있었다. 공작이 양팔을 벌리며 말을 이었다.
“니콜라이는 왕국을 배신할 자가 아닙니다.”
“신을 배신할 놈도 아냐.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왕과 공작의 회의를 방해할 만한 담대한 자가 누구인지 시종장이 급하게 문을 열고 나갔다. 곧 시종장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폐하. 급한 소식입니다.”
아까 나갔던 그림자였다. 맑던 안색은 회색 재와 검댕에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마력의 힘을 빌려 달려갔다 돌아왔는지 힘없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눈에 띄는 부상은 없었다.
“신전의 지하 감옥이 폭발했습니다.”
“뭐?”
왕이 무어라 입을 벌리기도 전에 공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름살이 깊게 패인 이마에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대체 저번에 보낸 견습 사제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왕이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손가락에 낀 인장 반지가 번쩍거렸다.
“그건 됐고.”
그림자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갖다 댔다.
“현재 알려진 생존자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남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
공작이 이마를 감쌌다.
“소이는 지금 그 남자 이야기를 계속 하는데….”
“일단 없다는 사실은 숨겨.”
왕이 잘라 말했다.
“어차피 천국에서 부리던 노예 아닌가. 왕궁에서 생활하면 곧 잊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