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해, 저건 누이 달거리 샌 자국이랑 똑같아.’
멍한 상태로 혁은 한동안 정지상태였고, 강이 엉덩이의 빨간 물 든 것이 점점 더 크게 부각돼 보였다.
‘뭐야, 저 녀석. 여자야?’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저건...여자만이....’
‘강이야, 너 여자야?’
혼란스러운 혁은 머리를 마구마구 뒤흔드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강이야! 야 이강이!!!”
너무도 놀란 상황이라 혁의 목소리는 너무도 작아 들리지도 않았다.
“강이야!”
좀 더 크게 소리친 혁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고, 뒤를 돌아본 강이가 번개처럼 달려왔다.
“왜그래? 무슨 일이야?”
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넘어졌어? 독사한테라도 물린 거야?”
혁은 빤히 강이 얼굴을 쳐다봤다.
‘설마... 설마... 너 여자야?’
눈과 목덜미도 바라봤다. 가슴이 마구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니가 여자라서, 내 심장이 뛴 거야? 정신 좀 차려보자. 정신 좀!!’
혁은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왜그래? 어?”
강이는 걱정돼 소리쳤지만, 혁은 전혀 강이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 그동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는데, 강이가 여자라면, 그렇다면 다 맞아 떨어지는 얘기야.’
“넘어지면서 머릴 부딪친 거야? 왜 넋이 나갔어?”
강이는 여전히 혁을 불러댔지만, 혁은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기지배 같았어. 근데 진짜 기지배였던 거야!’
강이와 눈이 마주치자, 혁은 눈길을 피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며 속으로 외쳐댔다.
‘아니, 아니야, 사내라도 기지배처럼 곱상하게 생길 수 있어. 그런 애들 있잖아.’
“혁아. 정신 좀 차려봐. 내가 누구야?”
강이는 혁이 혹 머리라도 다친 게 아닌가 싶어, 어깨를 흔들었지만, 혁은 넋이 빠진 채 그대로 멍한 상태였다.
‘속단하지 말자. 흥분하지 말자. 차근차근 생각, 생각하자, 생각!’
강이가 어깨를 흔들자, 갑자기 숨이 멎을 것만 같더니, 문득 색시를 보고 돌아올 때 일이 생각났다.
“강이야 내 색시 어때?”
“고와. 아름답고. 천상 여자더라.”
“그치? 너도 장가가고 싶지?”
“갈 수 있으려나. 난 나중에 절에 들어가 스님이나 될까 해.”
“왜?”
“......”
“우리 자식들도 친구 만들어줘야지.”
“내가 혼례를 올릴 수 있을까 싶어서. 평생 혼자 살거나, 스님이 되거나.”
“넌 스님이 되고 싶어? 왜?”
“........”
끝내 강이는 왜 스님이 되고 싶은지, 그날 말해주지 않았다.
‘남자가 아닌, 여자여서 그랬던 거야!’
혁의 머릿속에 지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야, 더운데 물에 한번 들어가자니까”
그 뜨거운 여름, 혁이 계곡에서 웃통을 벗어던지며 멱을 감자고 해도,
“싫다니까”
강이는 항상 거부했었다.
“발목만~ 무릎만 담궈도 시원해!”
칼싸움을 끝낸 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강력하게 거부했다.
“됐어. 난 물이 싫어. 무서워”
급기야 혁은 강이를 물로 잡아끈 적도 있었다.
“놔!!. 싫어 싫다고! 안들어갈 거야. 놓으라구~~ ”
목 놓아 울지언정 강이는 절대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미안해. 물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줄 몰랐어.”
그렇게 심하게 우는 하는 강이를 보곤,
‘정말 물을 무서워하는구나.’
혁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물이 무서운 게 아니라, 여자인 게 들킬까봐 그랬던 거야!’
“왜그래?”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산에서 하룻밤 보내고 내려오던 날도 생각났다.
“추워서!”
진흙 싸움이 끝난 뒤, 비가 쏴아~ 하고 내렸을 때, 강이는 춥다며 자신의 가슴을 두 팔로 감싸 안았었다.
‘그래, 열 네 살이면, 가슴이 나올 때야. 미영이도 벌써 가슴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잖아.’
혁은 강이를 올려다봤다. 강이와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강이야 너 정말 여자야? 근데 왜 그동안 숨겼어? 왜 지금까지 말을 안하고, 여자로 살고 있는 거야?’
혁은 소리치고 싶은 걸 억지로 억누르며 강이를 빤히 쳐다봤고, 강이 또한 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혁아. 내가 누군지 알겠어? 내가 누구야? 어? 말해봐.”
“내 가장 친한 친구 강이.”
“아~~~”
강이는 그대로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옆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난 또.”
혁이 잘못됐을까 놀랬던 강이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 놀랐잖아. 무슨 일이길래,...”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서, 꼼짝을 못하겠어서...”
“어디 좀 봐. 주물러줄게.”
“아니야, 아니야... 나아지고 있어.”
“봐봐...”
강이는 혁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혁은 강이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고, 강이 가슴을 바라봤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혁은 혼란스러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자니? 하고 물어볼까??’
‘아니지, 지금까지 말 안한 거 보면, 내가 몰라야 되는 건데...’
‘그렇다고 피 묻은 채 내려가게 할 순 없잖아.’
혁은 일단 강이를 붙잡아두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두루마기를 벗어주는 것도 이상하잖아.’
혁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순간 고민했다.
‘아, 그래 그거야.’
“우리 오디 따먹자. 쥐 난 덴 오디가 좋대. 피 순환을 도와준대.”
“그래? 그걸 왜 이제야 말해.”
혁을 정신없이 주무르던 강이는 얼른 숲으로 뛰어갔고, 혁도 강이를 뒤쫓았다.
“다행히 오디가 많다.”
강이는 뽕나무 열매를 정신없이 따고 있었다.
‘그래, 저건 분명 달거리 자국이야.’
뽕나무가 우거져 다소 어두웠지만 강이 엉덩이 부근, 두루마기에 빨간 핏물자국이 혁의 눈에 또다시 선명하게 들어왔다.
‘니가 여자였다니, 니가 여자였다니!’
혁은 큰 바위 위에 앉아 강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많지? 알도 굵어.”
강이가 한아름 오디를 따 혁 옆에 놓으며, 혁의 입에도 하나 쏙 넣어줬다.
“아, 달다. 맛나. 너두 먹어봐.”
강이가 먹여주자,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 해봐.”
“먹고 있어봐. 더 따올게.”
혁은 오디를 한 알 입안에 넣으면서 강이를 계속 바라봤다. 정신없이 오디를 따 나른 강이 덕에, 어느새 수북이 쌓였다.
“너두 앉아. 먹어.”
강이가 오자, 혁은 바위에서 내려왔다.
“아니야, 난 괜찮아.”
“따느라 고생했는데...편히 앉아서 먹어.”
혁은 강이의 양 어깨를 잡고 바위에 앉히는 척 하며 오디 위에 털썩 주저앉게 만들어 버렸다.
“아 뭐야,”
“앗, 미안.”
오디의 붉은 물이 강이의 엉덩이에 그대로 묻었다.
“너어,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화가 난 강이가 쏘아보자, 혁이 씨익 웃었다.
“웃어? 웃음이 나?”
“그냥 자꾸 웃음이 나.”
자길 놀린다고 생각한 강이는 혁한테 오디를 던지기 시작했다.
“너두 당해봐라!”
오디 싸움이 시작됐다.
“야, 얼굴엔 제발 하지마..”
얼굴에 비비고, 옷에 던지고, 따온 오디를 다 쓰자, 뽕나무 밭에 가서 오디를 따왔다.
“옷이 엉망이잖아.”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혁은 계속해서 도망쳤고, 강이는 끝까지 쫓아가 오디를 던졌다.
“야, 그만 그만!”
뽕나무 밭에 오디가 다 없어질 정도로 싸움이 계속 됐다.
‘니가 여자라니, 믿을 수가 없어. 정말 여자 맞지 강이야?’
치열한 오디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혁의 얼굴에선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미친놈이 아니었어.’
하얗던 두 사람의 두루마기도 오디로 점점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어느 새 얼굴이며 손에도 오디 물이 진하게 들었다.
“아아, 숨차. 항복, 항복!”
혁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며 주저앉았다. 입술 주변이고 얼굴에 붉게 오디 물이 들어있었다.
“아 웃겨. 너 귀신 같애. 하하하하”
강이는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래, 넌 웃는 게 참 예뻐. 처음부터 기지배처럼 예쁘다 했어.’
혁이 빤히 강이를 바라보자, 웃던 강이가 정신을 차리며 혁을 빤히 바라봤다.
‘뭘 그렇게 쳐다봐 혁아. 가슴 떨리게.’
“얼른 가자, 집에.”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강이가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고, 뒤꽁무니를 혁이 종종 거리며 쫓았다.
‘강이야, 너 정말 여자지? 내가 지금 미쳐 착각한 거 아니지?’
싱글벙글하던 혁이 갑자기 멈춰섰다.
‘아니야,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어.’
강이 뒷모습을 보던 혁은 갑자기 확인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손에 물이 안빠져. 어떡하지?”
돌다리에서 손을 씻는 강이를 보며 혁이 옆에 앉았다.
“강이야!”
“응?”
강이가 물에 손을 휘휘 저으며 바라봤다.
“왜?”
“이제 나 혼례 올리면 어른이잖아.”
“근데?”
“나 혼례 올리면, 이럴 날도 없을텐데, 우리 싸움 한번 하자!”
“무슨?”
“오줌발 싸움!”
“뭐어?”
열 살 때인가, 혁이 오줌발이 누가 센지 내기 하자고 할 때도 강이는 얼버무리며 하지 않았다.
“어른이 오줌발 싸움하기도 그렇고...”
“........”
“우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번 하자. 어? 우리 한 번도 안했잖아.”
강이는 당황스러운 걸 감추며 벌떡 일어섰다.
“싫어. 안해.”
“왜?”
“왜긴 왜야? 싫으니까 싫지.”
“그러니까 왜 싫은데?”
‘여자라서?’
강이는 뒤도 안돌아보고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오줌이 안마려운데, 어떻게 오줌발 싸움을 해! 난 안마려워.”
강이가 얼른 돌다리를 다 건넜다.
“그럼, 우리 등목이나 하자.”
“뭐어?”
“그동안 우리 등목 한번 안했잖아. 내가 너 등목 해줄게.”
“아니 괜찮아.”
“야, 옷도 드러워졌는데, 하자. 응?”
“됐다고! 안한다고!”
“왜?”
“니 색시한테나 해달라 해!”
강이가 버럭 소리 지르더니 그대로 가버렸다.
‘그래, 여자인 걸 숨기려고 도망치는 거야.’
혁은 점점 더 확신이 들었다.
‘확실해. 여자인 게 확실해.’
혁은 강이 뒤를 쪼르르 쫓아갔다.
‘니가 남자로 살고 있어도, 내 가슴은 널 여자로 느꼈던 거야.’
기분 좋은 혁은 휘파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경쾌한 휘파람 소리에 강이가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좋아?”
“어?”
“혼례 올리니까 그렇게 좋으냐고.”
‘아니, 니가 여자라서 좋아’
혁은 씨익 웃으며 강이를 바라봤다.
‘칫!’
강이가 질투하는지 혁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강이는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같이 가~~”
강이를 쫓아가는 혁의 뒤로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새 두 사람은 마을로 내려왔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강이야!”
강이가 혁의 부름에 돌아보자, 혁의 심장이 또다시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혁은 속으로 외쳤다.
‘내가 미친놈이 아니었어. 내 심장이 니가 여자인 걸 알아채고, 뛴 거야!’
“왜에? 불렀음 말을 해얄 거 아냐!”
“.......”
“어?”
“메롱!!”
혁은 강이를 향해! 약 올리듯 혀를 날름! 거려 메롱했다.
“뭐야, 우에~~~”
강이도 우에~ 하며 혀를 내밀며 장난쳤다.
‘좋다. 좋아. 너의 장난치는 모습.’
혁은 그런 강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니가 여자라서 좋다! 정말정말 좋다!’
그날 혁은 강이가 자기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강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그렇게, 지그시,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딜 갔다 이제야 와?”
집으로 돌아온 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혼례 준비로 온 집안에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으악!!! 내일 내 혼례지!’